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95)
195화
“으어헉!”
엘로이의 옷을 벗기려는 남자는 가랑이에 손을 넣고 바닥을 뒹굴었다. 그의 가랑이는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엘로이가 침을 뱉으며 중얼거렸다.
“어디다 더러운 물건을 꺼내는 거야. 크기도 작으면서.”
“너, 너?”
“뭐, 이 번데기 새끼야! 그냥 처자기나 해.”
빠각!
엘로이는 남자의 항변을 간단히 무력화시켰다.
그녀의 주먹 한 방에 남자의 정신이 날아간 것이다.
실 끊어진 인형처럼 풀썩 쓰러진 남자를 뒤로하고 엘로이가 제온이 있는 곳으로 나왔다.
그곳 역시 이미 정리가 된 상태였다.
침입자 중 제정신으로 서 있는 사람은 우두머리뿐이었다.
그의 얼굴은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어, 어떻게? 네눈박쥐의 독액은 인간의 신경을 완전히 마비시켜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만드는데.”
“무방비 상태로 당했다면 그렇겠죠.”
“그럼 미리 대비하고 있었단 말인가?”
“낯선 곳에서 무방비 상태로 있는다는 게 더 이상한 일 아닙니까?”
제온이 오히려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마수들이 아니었다.
같은 인간이었다.
오직 인간만이 같은 동족을 상대로 사기 치고, 목숨을 빼앗는다.
더군다나 강철 요새는 처음 들어올 때부터 호의적인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무런 대비책도 세우지 않고 멍하니 있는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다행히 그들에겐 브리엘이 만든 해독 포션이 있었다.
덕분에 네눈박쥐의 독액을 가공해 만든 신경가스를 손쉽게 해독할 수 있었다.
“으득! 이 개새끼들이 감히 나를 기만해? 다 죽여 주마.”
우두머리 남자가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순간 검은 기운이 그의 몸을 중심으로 회오리쳤다.
그가 검은 기운을 제온 등을 향해 쏘아 보내며 소리쳤다.
“불안, 혼란, 마비!”
“저주군.”
제온은 단번에 남자가 방출한 기운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저 검은 기운은 바로 저주의 결정체였다.
격중당하면 각종 저주가 이성을 마비시키고, 육체를 쇠약하게 만들 것이다.
제온이 남자의 몸 주위에 모래벽을 세웠다.
저주는 모래벽을 뚫지 못하고 소멸했다.
“무슨?”
“아저씨는 잠 좀 자 두셔.”
레빈이 나서 남자의 목덜미에 뇌전을 방출했다.
빠지직!
스파크와 함께 남자가 눈을 까뒤집고 기절했다.
이제 레빈은 전류의 강도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게 됐다. 전류를 미세하게 조절해 중추신경만 마비시키는 것은 그에게 일도 아니었다.
엘로이가 제온을 보며 말했다.
“어떻게 할 거야? 우리를 죽이려고 했는데 이대로 가만둘 거야?”
“생각 중입니다.”
“생각할 게 뭐 있어? 당장 이놈들을 부린 자들을 찾아내 족쳐야지.”
“그 후에는요?”
“후에 뭐?”
“책임질 수 있습니까?”
“무슨 책임까지 생각해? 일단 족치고 보는 거지.”
“이천 명입니다.”
“뭐가?”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숫자입니다. 그 말은 곧 이천 명의 목숨이 달린 일이란 뜻입니다.”
“씨발!”
제온의 말속에 담긴 뜻을 알아차린 엘로이가 욕설을 내뱉었다.
제온과 그들은 어차피 떠날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천 명은 그 후로도 이곳에서 살아야 했다.
그들이 무책임하게 거웬 등을 죽이면 이천 명의 미래가 어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섣부른 개입은 이 요새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크게 변화시킨다. 그들의 삶을 책임질 수도 없으면서 개입하는 것은 제온의 방식이 아니었다.
엘로이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휴! 세상 참 복잡하게 사네. 단순하게 살면 어디가 덧나?”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행동했다가 몇만 명이나 죽일 뻔했거든요.”
“농담이지?”
“…….”
“진짜구나.”
엘로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제온에게 말 못 할 과거가 있다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어마어마한 과거사가 존재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제온이 쓸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외부에서 보기엔 납득할 수 없어도, 이곳엔 자체적인 생태계가 존재합니다. 섣불리 개입하면 그 모든 것이 망가지죠.”
무려 백 년 동안이나 독자적인 생존을 해 온 사람들이었다.
외부와의 접촉 없이 살아오다 보니 사람들의 시야가 좁고, 폭넓게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래도 자신들만의 규칙과 명령 체계로 이제까지 살아왔다. 그런 이들이 수뇌부를 잃고 갑작스러운 변화에 적응할 수 있을까?
제온은 회의적이었다.
“변화가 일어나도 내부 사람에 의해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후유증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제기랄! 차라리 개입 안 하고 떠나는 것이 낫겠네.”
“이 장로인 홀트란의 집으로 가죠. 그에게 지금 있었던 일을 알려 주면 알아서 대책을 세울 겁니다.”
“아! 그 영감? 그래, 그거면 되겠네.”
홀트란은 강철 요새 내부 인물이었다.
그가 변화를 주도한다면 강철 요새 사람들도 따를지 몰랐다.
“그런데 홀트란의 집이 어디지?”
“제가 찾아볼게요.”
레빈이 나섰다.
유령처럼 변한 그가 곧 집 사이를 누비기 시작했다.
강철 요새엔 꽤 많은 각성자들이 있었지만, 그 누구도 유령화한 레빈을 눈치채지 못했다.
십 분이 지난 후에야 레빈은 홀트란의 집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밤이 깊은 시간이었지만, 홀트란의 집에는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그의 집엔 제이콥, 루시를 비롯해 꽤 많은 이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 홀트란을 따르는 자들이었다.
그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이가 울분을 토했다.
“거웬을 이대로 둘 수는 없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가 푼 마약에 중독되어 망가졌습니다.”
“제이콥과 루시를 보십시오. 죽을 뻔했습니다. 자신 파벌에 있는 아이들은 안전한 곳에 두고 굳이 두 아이를 썬 플라워 채취에 동원했습니다.”
사람들이 열변을 토했고, 홀트란은 눈을 감은 채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들의 불만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거웬은 썬 플라워를 가공한 마약과 식수로 강철 요새를 지배하고 있었다.
마약으로는 각성자를, 식수로는 주민들을 통제했다.
때문에 그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곳은 거웬의 왕국이었다.
홀트란과 심복들은 그런 거웬의 횡포에 반발했지만,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이렇게 폐쇄 정책을 고수하다간 모두가 고사할 겁니다. 외부와의 교류를 통해 변화해야 살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네오 서울이라는 곳과 교역해야 합니다.”
그들의 대화를 몰래 들은 레빈이 생각했다.
‘그래도 변화를 원하는 이들이 있구나.’
레빈은 제온과 엘로이 등에게 돌아가 자신이 엿들은 이야기를 모두 말했다.
제온이 결정을 내렸다.
“홀트란의 집으로 우리를 데려다다오.”
“네!”
그들은 다 함께 홀트란의 집으로 향했다.
***
“우와! 여긴 완전 천국인데.”
강철 요새 내부를 둘러본 아슬란이 휘파람을 불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두두얀도 그와 똑같은 생각이었다.
그들이 강철 요새에 잠입한 것은 불과 한 시간 전이었다, 그사이 강철 요새 내부를 거의 다 둘러봤다.
경비가 삼엄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내부 경계는 허술하기 그지없었다.
입구도 마찬가지였다.
두 명의 각성자가 경계를 서고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형식적이어서 눈을 속이고 잠입하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요새 입구가 지상으로부터 칠십 미터 높이에 있다 보니, 방심한 것이다.
아슬란이 두두얀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까?”
“각성자들을 모조리 죽이고 빼앗아야지.”
“역시 그래야겠지.”
“그래야 우리가 살아.”
두두얀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페가수스 공략대의 약탈에 실패하면서 식량과 식수 사정이 나빠졌다. 최대한 빨리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 붉은 폭풍단의 가족들이 아사할 것이다.
두두얀이 단검의 손잡이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나는 수뇌부를 암살할 테니, 너는 대장이 쉽게 들어올 수 있도록 사전 작업을 해.”
“오케이!”
아슬란이 웃으며 대답했다.
두두얀은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다크 엘프답게 완벽하게 어둠에 동화된 것이다.
여러 번 본 광경이었기에 아슬란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럼 나도 움직여 볼까?”
붉은 폭풍단에서 아슬란의 역할은 바로 잠입과 정보 수집이었다.
최대한 정확한 정보를 우르티안에게 건네주어 냉철한 판단을 내리게 하는 것이다.
평소에는 딱 그 정도 역할만 했다.
그 이상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특별한 상황이 되면 그도 모험해야 했다.
그가 건들거리며 강철 요새 입구로 걸어갔다.
“누구냐?”
“뭐야?”
요새 입구를 지키던 각성자들이 인기척에 놀라 무기를 들었다. 그러자 아슬란이 태연하게 말했다.
“나야, 나.”
“누구?”
“나 모르겠어? 이거 섭섭하게 왜 이래?”
아슬란의 천연덕스러운 모습에 각성자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주변이 어두워 상대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 데다가, 아슬란이 워낙 자연스럽게 접근해 침입자라곤 상상조차 못 했다.
경비를 서던 각성자가 최대한 목소리가 비슷한 사람을 기억해냈다.
“누구? 오런인가?”
“그래! 나, 오런이야. 이제 알아보는 거야? 섭섭하게.”
아슬란도 태연하게 오런인 척했다.
각성자들이 그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다.
“오런, 자네가 이 시간에 웬일이야? 교대는 내일 오후인데.”
“할 말이 있어서…….”
“할 말?”
“그게 말이야.”
아슬란이 말끝을 흐리며 각성자들 곁으로 다가왔다. 그러자 벽에 걸려 있던 횃불에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각성자들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뭐야? 넌 오런이 아니잖아?”
“누구냐?”
푸푹!
아슬란이 대답 대신 단검을 뽑아 각성자들의 목을 찔렀다.
동료인 줄 알고 곁을 허용했던 각성자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아슬란이 단검을 다시 허리에 꽂으며 말했다.
“미안하다. 이렇게 죽여서…….”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하나도 미안한 표정이 아니었다.
그는 횃불을 꺼내 크게 흔들었다. 그러자 강철 요새 아래쪽에서도 누군가 횃불을 흔들었다.
뒤따라온 붉은 폭풍단이었다.
“좋아!”
아슬란은 웃으며 바구니를 내리는 장치를 건드렸다.
촤르륵!
도르래가 돌아가며 바구니가 밑으로 내려갔다.
잠시 후 아래서 누군가 줄을 당겼다.
아슬란은 도르래를 반대로 돌려 바구니를 끌어 올렸다.
잠시 후 거대한 바구니가 다시 올라왔고, 타고 있던 이들이 내렸다.
그 선두에 우르티안이 있었다.
우르티안이 아슬란에게 말했다.
“수고했다. 안의 상황은?”
“일단 두두얀이 사전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좋아!”
우르티안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횃불에 비친 그의 미소가 섬뜩했다.
그사이 바구니가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붉은 폭풍단의 각성자들을 태우고 올라왔다.
그렇게 바구니는 수십 차례나 내려갔다 올라오며 붉은 폭풍단을 강철 요새로 운반했다.
불과 한 시간이 지나기 전에 붉은 폭풍단 전원이 강철 요새로 올라왔다. 그때까지도 강철 요새에서는 붉은 폭풍단의 침입을 눈치채지 못했다.
우르티안이 붉은 폭풍단에게 명령을 내렸다.
“각성자들을 모두 죽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