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96)
196화
홀트란은 제온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가 회의 중에 갑자기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을 때는 얼마나 놀랐는지 몰랐다. 하지만 더 놀란 것은 제온이 거웬이 보낸 자들에게 암습을 당했다는 사실이었다.
설마 거웬이 이렇게 대놓고 제온을 죽이려 할 줄은 그도 예상 못 했다. 암살을 시도해도 강철 요새를 떠난 후에나 할 줄 알았다.
거웬은 우연히 강철 요새를 들렀던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처리했다. 그래서 홀트란은 제온이 떠나기 전에 경고해 줄 생각이었다.
“후! 거웬의 횡포가 선을 넘었군. 내가 대신 사과하겠네.”
“홀트란 님께 사과를 듣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저희는 어차피 아침이면 떠날 사람이니까요.”
“그럼?”
“홀트란 님도 이 사실을 알고 대책을 세우셨으면 해서입니다.”
“내가 힘이 있었다면 진즉 그랬겠지. 하지만 알다시피 모든 전권은 거웬이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다네. 각성자도, 물도 그가 꽉 잡고 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네.”
“그럼 거웬이 없어지면 강철 요새를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겠습니까?”
“도와주겠다는 말인가?”
“이유야 어쨌든 그가 우리를 죽이려고 한 것은 사실이니까요.”
“으음!”
홀트란이 침음성을 흘렸다.
그는 섣불리 대답하지 않고 장고에 들어갔다.
갈등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제온은 텄다고 생각했다.
기회는 쉽게 오는 것이 아니다.
번개처럼 스쳐 지나가는 짧은 기회를 잡는 것은 준비된 자의 몫이다.
아무래도 홀트란은 준비가 된 것 같지 않았다. 그런 자를 백 마디 말로 설득하는 취미는 없었다.
제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강철 요새를 정상화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네요.”
“겨우 몇 분 고민하고 결정할 일이 아니잖은가? 내게 시간을 더 주게. 그리고 솔직히 우리가 자네를 어찌 믿는가?”
“네?”
“거웬이 함정을 파고 끌어들이려는 속셈일 수도 있지 않은가? 우리에게도 검증의 시간이 필요하다네.”
홀트란의 말에 엘로이와 레빈 등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좋은 입지에 만들어진 요새가 왜 이렇게 망가졌나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군.”
“그러게요.”
“항상 보면 우유부단한 인간이 더 문제라니까.”
브리엘까지 합세해 한마디 했다.
그에 홀트란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의 심복들이 발끈해 일어나려는 순간이었다.
쿵!
갑자기 밖에서 미세한 소음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 소리를 들은 이는 제온이 유일했다.
제온이 미간을 찌푸리며 밖에 귀를 기울였다.
“크읍!”
그 순간 누군가의 답답한 신음성이 들려왔다.
감각을 집중시키지 않았다면 절대 듣지 못했을 만큼 미약한 소리였다.
엘로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
“아무래도 밖에 문제가 생긴 것 같군요.”
“문제?”
제온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때 제온의 눈에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집에서 조용히 빠져나오는 인영이 보였다.
고양이처럼 소리도 없이 나온 인영의 손엔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이 들려 있었다.
제온과 인영의 눈이 마주쳤다.
“…….”
잠시 두 사람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제온의 등장을 예상 못 한 인영의 얼굴엔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무서운 속도로 제온을 향해 쇄도했다.
쐐액!
섬전처럼 다가와 검을 휘두르는 인영은 바로 두두얀이었다.
그녀는 강철 요새 내부를 돌아다니며 위험해 보이는 이들을 암살하고 있었다.
붉은 폭풍단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에 최대한 많이 위험 인물을 제거하려는 것이다.
벌써 각성자가 세 명이나 그녀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제온까지 죽이면 네 명째였다.
이 정도라면 우르티안에게 자랑해도 될 것이다.
챙!
하지만 그녀의 암살 시도는 아쉽게도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엘로이가 끼어들어 그녀의 공격을 튕겨 낸 것이다.
두두얀의 얼굴을 본 엘로이가 인상을 썼다.
피부가 새까만 데다가 귀가 뾰족하다.
이런 특징을 가진 종족은 하나뿐이었다.
“다크 엘프?”
“흥!”
두두얀이 대답 대신 검을 휘둘러 엘로이의 목을 공격했다.
슈우우!
“죽어랏!”
“이런 씨발 것이…….”
엘로이가 분노해 미친 구미호를 휘둘렀다.
카카캉!
검과 창이 순식간에 십여 번이나 부딪쳤다.
잠시 물러난 엘로이가 물었다.
“넌 뭐냐? 다크 엘프라니.”
“그러는 너도 엘프의 피가 섞였구나.”
“왜 사람들을 암습하는 거냐? 너도 거웬의 부하냐?”
“거웬? 이 요새의 주인 말이냐? 그도 내 암살 대상에 불과하다.”
“그럼 외부에서 왔다는 말인가?”
“말이 많구나. 하프 엘프!”
대화를 하는 사이 호흡을 고른 두두얀이 다시 엘로이를 공격해 왔다. 엘로이도 미친 구미호를 휘둘러 그녀와 맞서 싸웠다.
쾅! 콰아앙!
그 순간 요새 내부 곳곳에서 폭음이 터져 나왔다.
홀트란이 황망한 표정으로 폭음이 들리는 곳을 바라봤다.
“이건?”
“아무래도 우리 말고도 외부의 손님이 있는 모양이군요.”
제온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곳곳에서 화염이 피어오르고,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깊은 밤 곤히 잠에 빠졌던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기습에 대항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이럴 때를 대비해 각성자가 존재하는 것인데, 많은 각성자들이 거웬의 집에서 마약에 빠져 있었다.
거웬과 각성자들이 뒤늦게 뛰쳐나왔을 때는 붉은 폭풍단에 의한 약탈이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뭐야? 어떻게 외부인들이 들어온 거야? 경비를 서던 놈들은 어떡하고?”
거웬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참상이 믿기지 않았다.
자신의 왕국이 그가 보는 앞에서 무너지고 있었다.
그가 약에 취한 각성자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소리쳤다.
“뭐 하는 거냐? 어서 놈들을 막지 않고?”
“예? 예!”
마약에 취한 각성자가 비틀거리며 붉은 폭풍단에게 다가갔다.
뛰는 것도 아니고, 걸어서 말이다.
그 모습을 본 붉은 폭풍단의 각성자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 뭐냐?”
“나는 강철 요새의 수호자다.”
“수호자 좋아하네. 약에 취한 약쟁이 새끼가.”
붉은 폭풍단의 각성자는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이 무기를 휘둘렀다.
약에 취한 강철 요새의 각성자는 그의 공격을 막지 못했다.
서걱!
그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절명했다.
다른 이들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붉은 폭풍단을 막으러 갔던 각성자들은 별반 힘도 써 보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본 거웬이 절규했다.
“아, 안 돼!”
통제하기 위해 복용시킨 마약 때문에 각성자들이 힘을 쓰지 못하고 무너지고 있었다.
붉은 폭풍단은 거침이 없었다.
그들은 강철 요새 내부를 제집처럼 돌아다니며 각성자들을 죽였다.
“크악!”
“억!”
강철 요새 각성자들의 구슬픈 비명이 널리 울려 퍼졌다.
“뭐야? 왜 이리 약해?”
“약쟁이 새끼들이 절반이 넘네.”
“미친 새끼들! 안전한 곳에 처박혀 있다 보니 감을 완전히 잃었군.”
오죽했으면 붉은 폭풍단 각성자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을 정도였다.
붉은 폭풍단 각성자들은 사막의 마수와 모래에서 가족을 지켜야 했다. 믿을 것은 오직 각성자들뿐이다.
그 사실을 알기에 붉은 폭풍단 각성자들은 언제든 전투를 치를 수 있도록 감각을 날카롭게 벼리고 있었다.
당연히 마약에 취해 해롱거리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이런 새끼들에게 이 요새는 분에 넘치지.”
“모두 죽이고 빼앗자.”
붉은 폭풍단 각성자들은 더욱 미쳐 날뛰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홀트란이 눈을 부릅떴다.
무적의 요새라고 생각했던 강철 요새가 붉은 폭풍단에 의해 유린당하는 광경이 거짓 같았다.
그만큼 현실감이 떨어지는 광경이었다.
“이 장로님.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홀트란 님!”
홀트란을 따르는 각성자들이 그의 결정을 촉구했다. 하지만 홀트란은 멍하니 서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렇다면 각성자들이라도 빠릿하게 움직여야 하는데 그들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했다.
제온이 한숨을 내쉬었다.
“총체적인 난국이군.”
“이런 말 하긴 그런데, 망해도 할 말 없는 곳이네요.”
“어떻게 이 정도까지 다 썩을 수 있지.”
오죽했으면 레빈과 브리엘마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을 정도였다.
그때 제이콥과 루시가 제온에게 다가왔다.
“저희 좀 도와주세요.”
“부탁할게요.”
아직 열 살밖에 안 된 아이들이 제온 앞에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그들은 샌드웜을 너무 쉽게 잡던 레빈의 실력을 알고 있었다. 그런 레빈조차 제온에게는 몇 수 접어주는 행동을 했다.
그렇다면 제온이 훨씬 강할 것이 분명했기에 애원하는 것이다.
루시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어른들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니에요. 좋은 어른들도 있어요. 제발 그분들을 살려 주세요.”
어린 소녀의 애원에도 제온은 크게 동요되지 않았다. 하지만 브리엘은 달랐다.
그녀가 제온에게 말했다.
“계속 이렇게 지켜볼 거야? 섣부른 개입을 싫어하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이렇게 어린아이까지 죽게 할 수는 없잖아.”
“너하고 차이가 얼마 안 나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내 말은 인간의 도리를 말하는 거야.”
브리엘의 말에 제온이 피식 웃었다.
순혈, 그것도 하이 엘프인 브리엘이 인간의 도리를 말하니 왠지 웃겼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뭐야? 여기도 각성자가 있잖아.”
“죽여!”
붉은 폭풍단이 제온을 발견하고 다짜고짜 공격해 왔다.
무투계 각성자는 도끼를 휘두르고, 마법계 각성자는 윈드 커터를 날렸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공격이었다.
적이라고 판단하자마자 바로 살상 스킬을 펼친 것이다.
그들이 이런 일에 얼마나 능숙한지 잘 알 수 있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공격이 제온의 몸에 닿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제온이 오른팔을 휘둘러 파이어 미사일을 날린 것이다.
파이어 미사일은 윈드 커터와 무투계 각성자의 도끼를 요격했다.
콰아앙!
“크윽!”
“컥!”
제온을 공격했던 각성자들이 비명과 함께 나뒹굴었다.
어지간한 각성자였다면 제온의 반격에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보통이 넘는 실력과 배짱을 가지고 있었다.
바닥에 등이 떨어지자마자 바로 박차고 일어나 반격을 가했다.
“이 씨펄 놈이!”
“멱을 따 주마.”
그들은 더 강력한 스킬로 제온을 공격했다.
콰쾅!
그들의 공격이 제온에 작렬했다.
붉은 폭풍단은 이번 공격에 제온이 큰 상처를 입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이 기대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스르륵!
제온의 모습이 신기루처럼 사라진 것이다. 때문에 각성자들의 공격은 허무하게 뒤의 벽과 바닥을 때리고 말았다.
각성자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일루젼?”
그들이 공격한 제온은 실체가 아닌 환영이었다.
제온이 너무 빠른 속도로 고속 이동하며 잔상이 남은 것이다.
“그럼 놈은 어디에?”
“설마?”
순간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그들의 등 뒤에 인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제온이었다.
“씨발!”
“제기랄!”
각성자들이 급히 뒤돌아서며 반격하려 했다. 하지만 그들보다 제온의 움직임이 훨씬 빨랐다.
빠가각!
그의 주먹이 각성자들의 턱과 관자놀이에 작렬했다.
마치 실 끊어진 인형처럼 각성자들이 멀리 날아가 풀썩 쓰러졌다. 제온의 공격에 정신이 날아간 것이다.
그 광경을 멀리 있던 붉은 폭풍단 각성자들이 봤다.
“뭐야? 윌과 보헴이 당했어.”
“개새끼가 감히…….”
그들이 제온에게 달려왔다.
제온이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중얼거렸다.
“정말 개입하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