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198)
198화
“뭐야?”
우르티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제온의 등 뒤로 일어선 모래들이 인간의 형상을 갖춰 갔다.
순식간에 모래 병사 수십 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믿을 수가 없군. 모래로 병사를 만들다니.”
우르티안의 목소리에 반응이라도 하듯 샌드 솔저들이 제온의 앞으로 나섰다.
“설마 네오 서울의 모래……술사인가?”
그의 목소리가 절로 떨려 나왔다.
최근에 입수한 믿을 수 없는 정보.
바로 네오 서울에 모래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모래술사가 출현했다는 소식이었다.
비록 사막에서 정처 없이 떠돌지만, 붉은 폭풍단은 항상 네오 서울에 대한 정보 수집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혹시 네오 서울에서 토벌대를 파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오 서울의 스캐빈저들과 항상 끈을 이어 놓고 있었다.
당시 스캐빈저들은 네오 서울에 모래술사가 출현해 초미의 관심을 끌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출현하지 않은 클래스의 등장이었다. 하지만 자신들과 관계없는 일이기도 했고, 모래술사라는 존재 자체가 쉽게 믿기지 않았기에 그저 그런 게 있나 보다 하고 넘어갔었다.
“모래술사라니. 쿠라얀에도 없는 능력을 각성했군.”
“쿠라얀에 대해 잘 아는 모양이군요.”
“거기서 넘어왔는데 모를 수가 없지.”
“직접 넘어왔다고요? 그럼 나이가…….”
“인간들 나이로 백오십이 훨씬 넘었을 거다.”
“생각보다…….”
“백오십 살이 넘은 늙은이 주제에 젊어 보여서 이상한가? 우린 인간들과 노화 속도가 다르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이미 엘프들의 여왕을 본 적이 있거든요. 그녀도 쿠라얀에서 넘어왔는데 젊음을 유지하고 있더군요.”
“여왕?”
“세리언 올리아나. 네오 서울의 이종족들은 그녀를 여왕이라고 부르더군요.”
“흐흐! 그렇게 고고한 척하더니 결국은 여왕으로 불리는군. 누구는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 온갖 더러운 짓을 다 하고 사는데 말이야.”
우르티안의 말투는 곱지 않았다.
그가 세리언에게 그다지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부러우면 당신도 네오 서울로 들어오지 그랬습니까?”
“난 가축이 아니다. 인간이 만든 성 따위에서 주는 먹이나 받으면서 살 수는 없다.”
“그래서 선택한 게 약탈입니까?”
“왜, 나빠 보이나? 인간들은 모두 그렇게 살지 않나? 그래서 나도 그렇게 사는 거다.”
우르티안은 인간 세상에 적응한 엘프였다.
처음 지구로 넘어왔을 때는 그도 정의롭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동료들에게 버려져 낙오되고, 인간들 틈에서 살면서 현실을 깨달았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간단한 명제를 말이다.
순수했던 엘프는 점차 악귀가 되었고, 별 볼 일 없던 오합지졸 스캐빈저 무리를 수백 명이 넘는 대집단으로 키워 냈다.
그는 인간보다 더 악독해졌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못 할 것이 없었다.
“너를 죽여야 우리가 산다.”
우르티안이 수하들과 함께 제온을 조여 왔다.
보통의 엘프들은 다수로 소수를 핍박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만, 그는 달랐다.
과정이야 어떻든 승리하기만 하면 된다.
결국 이 세상은 승자만 기억하고, 살아남은 자가 모든 것을 가진다.
살아남고,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라면 우르티안은 뭐든지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우르티안이 수하들에게 말했다.
“상대는 모래술사다. 모래를 부릴 시간을 주면 안 된다.”
“네!”
“씨발! 그래도 칼 맞으면 뒈지는 건 똑같아.”
우르티안의 수하들은 모두 그를 닮아 독기가 가득했다.
조심스럽게 포위망을 좁히던 그들이 어느 순간 일제히 달려들었다.
“죽엇!”
“이야앗!”
각종 무기와 스킬이 제온을 향해 쏟아졌다.
하지만 그들의 공격이 제온에게 닿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샌드 솔저들이 제온의 앞을 막아섰기 때문이다.
퍼버버벅!
샌드 솔저들이 붉은 폭풍단의 공격을 맨몸으로 막아 냈다.
어떤 샌드 솔저는 멀쩡했고, 어떤 솔저는 강력한 스킬을 견디지 못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애초 모래로 만들어진 병사였기에 아무래도 강도가 약한 것이다. 하지만 모래는 얼마든지 있었고, 제온의 마나는 많이 남았다.
마나만 있으면 얼마든지 부서진 샌드 솔저를 복구할 수 있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스르륵!
샌드 솔저들은 언제 부서졌었냐는 듯이 멀쩡한 모습으로 되살아나 붉은 폭풍단 각성자들을 공격했다.
“씨발! 이 거지 같은 것들이…….”
“그냥 순순히 뒈져랏!”
“크아아!”
각성자들과 샌드 솔저들이 격렬히 싸웠다.
우르티안이 그들을 지나쳐 제온에게 달려왔다.
‘모래 병사를 소환한 모래술사만 없애면 모든 게 해결된다.’
그가 제온을 향해 윈드 커터를 날렸다.
위이잉!
수십 개의 윈드 커터가 무섭게 회전하며 제온의 목을 노렸다.
그 순간 제온이 샌드 블라스터를 발출했다.
퍼버버버벅!
파열음과 함께 윈드 커터가 모조리 요격됐다. 하지만 우르티안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 정도 반격은 이미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의 진짜 노림수는 따로 있었다.
“죽어랏! 모래술사!”
쉬아악!
순간 샴쉬르에서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다.
아까처럼 오러를 덧씌운 게 아니다.
샴쉬르의 형상을 한 빛의 검.
극소수의 무투계 각성자들만이 쓸 수 있는 오러 블레이드였다.
오러로 만들어진 검은 던전에서 출토된 아이템마저 간단히 베어 버린다.
하물며 인간의 육체 따윈 말할 것도 없었다.
제온의 주위에서 모래가 뱀처럼 일어나 날아온다.
그의 스킬 중 하나인 바이퍼였다.
모래로 만들어진 독사는 무서운 속도로 날아와 우르티안의 전신을 두들겼다.
“크읍!”
엄청난 충격에 정신이 다 아득해졌다.
우르티안은 금세 혈인이 됐다. 그래도 그는 고통을 참으며 전진했다.
그에게 이 정도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보다 더한 상처를 입고도 적을 죽인 적이 있었다.
그의 전진을 막지 못한 제온이 또 다른 스킬을 펼쳤다.
“크레모아!”
콰콰쾅!
우르티안의 주위에 있던 모래들이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엄청난 폭발에 우르티안이 휩쓸렸다.
우르티안의 몸이 산산이 찢겨 나가기 직전이었다.
갑자기 그의 얼굴과 몸에 새겨진 문신에서 검은빛이 터져 나왔다.
검은빛은 막을 만들어 우르티안의 전신을 폭발에서 보호했다.
그의 문신은 수호주라는 아이템이었다.
하루에 딱 한 번 모든 공격에서 주인을 보호해 주는 사기적인 아이템.
문신 형태로 착용하며, 한번 착용하면 죽기 전까지 해제되지 않는다.
우르티안은 수호주를 믿고 전신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예상대로 수호주는 크레모아에서 우르티안을 완벽하게 보호했다.
멀쩡한 모습으로 폭발을 돌파한 우르티안이 제온의 심장에 오러 블레이드를 찔러 넣었다.
“끝이다. 모래술사!”
푸욱!
그의 오러 블레이드가 거침없이 제온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손에 느껴지는 푹신한 감촉에 우르티안이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의 미소는 나타날 때보다 빠르게 사라졌다.
“이럴 수가!”
오러 블레이드에 찔린 제온의 신형이 모래처럼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르티안이 수호주를 발동했을 때 제온은 샌드 솔저를 한 기 소환해 자신이 있던 자리에 세웠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우르티안은 눈치채지 못했다.
샌드 솔저를 관통한 오러 블레이드가 사라졌다.
너무 놀라 마나의 흐름이 끊겼기 때문이다.
제온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샌드 믹서.”
위이잉!
순간 사방으로 흩어졌던 모래들이 우르티안을 에워싸고 고속으로 회전했다.
우르티안은 샴쉬르를 휘두르며 샌드 믹서를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엄청난 압력에 짓눌려 뜻을 이루지 못했다.
갑옷과 피부가 고속으로 회전하는 모래 입자에 갈려 나갔다.
극심한 고통을 참지 못하고 우르티안이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악!”
그의 비명이 어찌나 처절했던지 근처에서 싸우던 각성자들이 행동을 멈추고 바라봤을 정도였다.
“대장!”
“안 돼!”
붉은 폭풍단 각성자들이 그를 구하기 위해 달려오려 했다. 하지만 샌드 솔저들에게 막혀 뜻을 이룰 수 없었다.
그사이 제온이 맹렬하게 회전하던 샌드 믹서를 폭발시켰다.
콰아앙!
지하 공동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흔들렸다.
그만큼 엄청난 폭발이었다.
모래를 뚫고 우르티안이 날아갔다.
벽에 처박힌 우르티안의 몰골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전신의 피부가 모조리 쓸려 나가 근육과 뼈가 드러나 있었다. 이런 상처를 입고도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였다.
“이…… 새끼!”
우르티안이 일어나려고 발버둥 쳤다.
엄청난 상처를 입고도 그의 눈에 어린 독기와 살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엘프라기보단 악귀 같은 모습이었다.
그 어떤 상대라도 우르티안의 이런 모습을 보면 기가 질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제온은 달랐다.
제온은 우르티안보다 강하고 독한 존재를 많이 만나 봤다.
그런 제온에게 우르티안의 독기 따윈 하등 영향을 주지 못했다.
이제 끝을 내야 할 때였다.
제온이 주먹을 들었다.
초열의 건틀렛에 박혀 있는 드래곤의 눈이 붉은빛을 발했다.
제온은 가차 없이 주먹을 휘둘러 파이어 레인을 펼쳤다.
붉은 화염비가 우르티안에게 적중하려는 찰나였다.
“안 돼!”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누군가 제온과 우르티안 사이를 막아섰다.
우르티안 못지않게 체격이 큰 여자였다.
그녀는 겁도 없이 맨몸으로 붉은 화염비를 막아섰다.
“쯧!”
제온이 혀를 차며 파이어 레인의 궤도를 틀었다.
파이어 레인은 간발의 차이로 그녀와 우르티안을 비껴 나가 바닥에 작렬했다.
콰콰콰쾅!
폭음과 함께 먼지가 자욱이 피어오름에도 우르티안의 앞을 막아선 여자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고마워요.”
“당신은 누굽니까?”
“내 이름은 데보라, 당신이 죽이려던 저 사람의 아내예요.”
여자는 당당하게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그래서 남편의 죽음을 막기 위해 나선 겁니까?”
“내 눈앞에서 세 아이의 아빠가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까요.”
“세 아이?”
그제야 이쪽을 바라보는 아이들이 보였다.
우르티안과 데보라를 꼭 빼닮은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조그만 주먹을 꽉 쥔 채 제온을 노려보고 있었다.
“하아!”
제온이 한숨을 내쉬었다.
외통수였다.
제온은 아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비를 죽일 정도의 냉혈한은 아니었다.
“대단하네요. 아이들을 전장에 데리고 오다니.”
“아이들도 우리가 얼마나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지 알아야 하니까요.”
“다른 이들을 약탈하는 주제에 힘겨운 싸움이라니…….”
“얼마든지 비웃어도 상관없어요, 우리도 생존을 위해서 싸우는 거니까요.”
데보라는 당당했다.
우르티안의 아내로, 붉은 폭풍단의 안주인으로 십 년이 넘게 살아왔다.
온갖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붉은 폭풍단이 지금처럼 커질 수 있었던 것은 데보라의 공이 컸다.
붉은 폭풍단의 모두가 그녀를 좋아했고, 의지했다.
우두머리는 우르티안이었지만, 중심은 데보라였다.
데보라가 말했다.
“우리에겐 이 요새가 필요해요.”
“그래서 나보고 물러나란 건가요?”
“그 정도까지 염치없지는 않아요. 우리가 물러날게요. 보내 주세요.”
“거부하면요?”
“우리가 전멸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여기 사는 사람들도 무사하진 못할 거예요.”
데보라는 당당하게 협박했다.
하도 어이가 없어 웃음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실제 제온의 입가엔 서늘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반면 데보라의 표정은 돌덩이처럼 굳어 있었다.
겉으론 태연한 척했지만, 그녀는 누구보다 긴장한 상태였다.
상대는 끝을 알 수 없는 저력을 가진 괴물이었다.
이 사막의 유일한 모래술사.
적으로 두면 후환이 끝이 없을 존재였다.
그가 여기 있는 것을 알았다면 붉은 폭풍단이 아무런 대책 없이 강철 요새를 공격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일은 벌어졌고, 사태를 수습해야 했다.
쾅! 콰앙!
그때 폭음과 함께 두두얀과 코맥 등이 튕겨 나왔다.
우르티안처럼 그들도 각각 엘로이와 레빈에게 패한 것이다.
이로써 수뇌부들이 모두 패했고, 싸움은 어느새 멈춰 있었다.
모두가 그녀와 제온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온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좋아요. 그럼 이대로 조용히 물러나세요.”
“안 된다.”
그때 거웬이 끼어들었다.
거웬이 입에 거품을 물며 제온에게 소리쳤다.
“저놈들 때문에 내 부하들이 모두 죽었다. 그런데 보내 주자고? 그럴 순 없다. 저놈들을 모두 죽여라. 한 놈도 빠짐없이 죽여서 강철 요새의 비밀을 지켜야 한다.”
거웬은 핏발 선 눈으로 제온을 노려봤다.
그의 눈엔 광기가 가득했다.
제온이 혀를 차며 뒤로 물러났다.
“그럼 당신이 죽이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