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0)
20화
데이오든을 추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곳곳에 그가 남겨 놓은 흔적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사막을 지배하는 마수들의 사체가 곳곳에 보였다.
사체 모두 처참하게 훼손되거나 아예 산산이 부서져 흩어져 있었다.
데이오든이 지나가는 길에 있는 마수들을 모두 도륙한 것이다.
그야말로 상식을 부정하는 엄청난 무력이었다.
덕분에 제온은 마수의 위협에서 안전할 수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강한 거야? S급?”
제온이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 역시 직접 본 적이 없어서 확실히 알 수 없지만, S급도 이런 위력을 발휘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실제로 네오 서울의 S급 각성자들조차도 사막에서 홀로 활동하는 것을 꺼려 했다.
네오 서울 근처라면 모를까 먼 곳에 있는 사막을 홀로 다니는 것은 S급 각성자들에게도 두려운 일이었다.
S급 각성자들도 감히 시도하지 못하는 일을 데이오든은 아주 오래전부터 해 왔다.
홀로 사막을 주유하고, 수많은 마수들을 상대했다.
그는 마수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수가 그를 두려워했다.
이런 각성자는 처음이었다.
“S급 위의 각성자라니? 이런 사실을 네오 서울의 수뇌부는 알고 있을까?”
진심으로 궁금했다.
네오 서울의 수뇌부가 데이오든을 알고 있는지, 또 알고 있다면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말이다.
데이오든은 여러모로 상식을 초월한 존재였다.
그때였다.
제온의 시야에 저 멀리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보였다.
지평선 끝 하늘과 맞닿아 있는 곳에서부터 한 줄기 연기가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굳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저곳에 데이오든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제온은 마나를 주입해 속도를 높였다.
스르륵!
그의 몸이 미끄러지듯 사막을 횡단했다.
그렇게 삼십여 분을 달린 끝에 제온은 오아시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예전에 모래 아귀와 맞닥뜨렸던 움직이는 오아시스가 아닌 한곳에 고정된 오아시스였다. 이런 곳엔 모래 아귀가 살지 않아 거점이나 마을로 삼기에 딱 좋았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바로 사막 엘프들의 마을이었다.
사막 엘프들이 공들여 가꾼 조그만 마을은 처참하게 파괴되어 있었고, 엘프들의 것으로 짐작되는 고깃덩이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끔찍한 광경을 본 순간 제온이 입을 떡 벌렸다.
“미친!”
사방에 널브러져 있는 팔다리가 마치 애들이 화풀이로 부숴 놓은 장난감의 잔해 같았다.
이 모든 것이 데이오든 한 명이 저지른 일이었다.
제온은 급히 데이오든을 찾았다.
데이오든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제온이 있는 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데이오든의 앞엔 엘프로 보이는 중년인이 어린 소녀를 품에 안은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중년의 엘프는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고 있었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분위기로 보아 소녀를 살려 달라고 하는 것이 분명했다.
소녀는 아직 앳돼 보였다.
실제 나이는 알 수 없지만, 인간으로 치면 이제 겨우 열두어 살 정도로 보였다.
제온은 데이오든이 설마 어린 엘프를 헤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리 큰 원한을 가진 원수라도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이를 죽이는 것은 일종의 금기였기 때문이다.
푸화학!
하지만 제온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데이오든은 단칼에 중년 엘프와 소녀 엘프를 베어 버렸다.
그들의 몸에서 튄 선혈이 데이오든을 붉게 적셨다.
그 모습을 본 순간 제온의 머릿속에서 이성의 끈이 툭 끊어졌다.
“야 이! 개 같은 늙은이야.”
이성을 잃은 제온이 고함을 질렀다.
순간 모래가 파도처럼 일어나 데이오든을 덮쳤다.
엄청난 양의 모래가 데이오든을 압사시킬 것처럼 눌러 왔다.
그때 데이오든의 전신에서 피처럼 붉은 기운이 폭사되어 나왔다.
콰아앙!
붉은빛은 순식간에 모래와 제온을 날려 버렸다.
바닥에 나뒹군 제온이 정신을 차렸을 때 제일 먼저 본 것은 바로 데이오든의 다리였다.
고개를 드니 데이오든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두 눈엔 여전히 광포한 빛이 어려 있었다.
제온은 그 눈빛을 피하지 않고 마주 노려봤다.
“아직 자라지 못한 애를 죽이다니 창피하지도 않습니까?”
“애?”
“어린 소녀였습니다.”
“그래도 네놈보다 나이가 많을 거다.”
“그…….”
콰직!
순간 데이오든이 발로 제온의 등을 짓눌렀다.
마치 거대한 바위가 짓누르는 것 같은 중압감에 제온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척추와 가슴뼈가 송두리째 으스러질 것 같아 숨을 쉴 수 없었다.
그그극!
여왕 늑대 개미의 껍질로 만든 흉갑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비명을 질렀다.
“크으!”
제온이 데이오든의 발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다. 하지만 아무리 용을 써도 데이오든의 발은 움직일 줄 몰랐다.
“이야앗!”
발버둥 치던 제온이 샌드 블라스터를 펼쳤다.
퍼펑!
샌드 블라스터가 데이오든에게 작렬했다. 하지만 늑대 개미의 머리도 박살 내던 샌드 블라스터를 정통으로 맞고도 데이오든은 미동조차 없었다.
데이오든은 더욱 세게 제온의 가슴을 짓눌렀다.
“커헉!”
제온이 피를 토했다.
데이오든은 그런 제온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조금 전처럼 광기에 찬 눈빛이 아니었다.
깊이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침잠된 눈빛이었다.
방금 전까지 광기에 차 엘프들을 학살하던 사람의 눈빛이 맞나 싶었다.
그가 제온의 가슴을 짓누르던 발에 힘을 조금 풀며 물었다.
“내가 너무한 것 같으냐?”
“애……까지 죽일 필요는 없지 않았습니까?”
“애는 왜 살려 줘야 한다는 거냐? 그냥 어리니까? 남들이 그렇게 말하니까? 그 애새끼가 자라서 적이 되는 법이다.”
“하지만…….”
“저 엘프 새끼들은 믿을 수 없는 종족들이다. 자신들이 살기 위해 남의 세상을 망가트려 놓았지. 그런 위선자들을 어리다는 이유로 살려 준다고? 웃기지 마라. 저것들은 살 가치가 하나도 없는 것들이다. 나는 앞으로도 보이는 족족 저 벌레 같은 것들을 죽일 것이다.”
“…….”
“내가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으냐? 나를 막고 싶으냐? 그럼 주둥이가 아닌 실력으로 막아라. 알겠냐? 입만 산 병신아!”
데이오든이 제온의 가슴을 짓누르던 발을 뗐다.
“커헉! 커흐헉!”
제온이 격렬하게 기침했다.
그런 그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데이오든이 조금만 더 눌렀으면 눈의 실핏줄뿐만 아니라 심장과 내장도 터져 나갔을 것이다.
애초 데이오든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예 비교 대상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데이오든은 그의 손이 닿을 수 없는 저 높은 하늘 위의 별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이제 생각이 달라졌다.
‘데이오든만큼, 아니 그보다 더 강해지겠다.’
강해져서 할 말은 하고 싶었다.
이렇게 비루한 개처럼 꼬리를 마는 게 아니라.
그의 인생 처음으로 확실한 목표가 생겼다.
목표는 데이오든.
제온은 그보다 강해지는 것을 과제로 삼았다.
***
제온이 엘프 마을을 살폈다.
혹시나 생존자가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하지만 데이오든의 손에서 살아남은 엘프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데이오든은 엘프 마을에 사는 생명체는 단 하나도 살려 두지 않았다.
백여 명이 넘는 엘프들이 고깃덩이가 되어 있는 모습에 절로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한편으로 의문이 들었다.
그는 데이오든의 말을 떠올렸다.
‘자신들이 살기 위해 남의 세상을 망가트려 놓았다고? 그럼 세상이 이렇게 된 데 엘프들의 책임도 있다는 건가?’
그렇다면 데이오든의 분노도 이해된다.
자신은 이미 세상이 망가진 후 태어났다.
그 때문에 이전의 세상에 대해 알지 못한다.
지금 네오 서울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랬다.
기록으로 남아 있지만, 직접 보지 못했기에 그 시절이 얼마나 찬란하고 풍요로웠는지 실감하지 못했다.
그러나 데이오든은 이전의 세상에 태어났다.
그 시절, 그리고 세상이 망가지는 과정까지 모두 지켜봤다.
그 과정에서 그가 느꼈을 상실감, 분노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후!”
제온이 한숨을 내쉬었다.
데이오든은 엘프 마을 밖 먼 곳에 홀로 있었다.
그는 엘프들의 마을에 잠시라도 머무는 것이 끔찍했다. 엘프들이 마시던 공기를 같이 마시는 것 자체가 데이오든에겐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제온은 엘프들의 마을을 둘러봤다.
엘프들의 거처는 모래를 굳혀 만든 흙집이었다.
별다른 건축 자재를 구할 수 없는 사막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나마 오아시스가 곁에 있어 이제까지 생존할 수 있었던 거지, 이마저 없었다면 엘프들은 진즉에 죽었을 것이다.
제온은 그나마 멀쩡한 집으로 들어가 봤다.
집 안은 무척이나 수수했다.
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들만 있었다.
그런데 물건들의 양식이 네오 서울에서 보던 것들이 아니었다.
어딘지 모르게 세월의 때가 묻어 있고, 고풍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겼다.
아무래도 엘프들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물건들인 모양이었다.
활과 화살, 아름다운 장신구, 로브 등이 눈에 들어왔다.
제온은 물건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확실히 최근에 만든 물건은 아니군.”
특히 그의 눈길을 끈 것은 매우 오래된 고서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엘프들이 본래 있던 세상에서 가져온 물건이 분명했다.
제온은 책자를 비롯한 물건들을 일단 아공간에 수납했다.
그에겐 필요 없는 물건이었지만, 그래도 팔면 돈이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제온은 쓸 만한 물건들을 모조리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집 안을 뒤지던 제온은 벽 뒤에 숨겨진 조그만 창고를 발견했다.
창고를 들여다보던 제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창고 안에 쌓여 있는 것들 모두 인간들의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엘프들의 고풍스러운 양식과 달리 효율적인 디자인과 재질.
주로 네오 서울에서 만드는 물건들이 이런 양식을 가지고 있었다.
물건들엔 인간의 것으로 짐작되는 피가 묻어 있었다.
“이 새끼들! 지나가는 사람들을 털었구나.”
인간에게 적대적인 엘프들이 제대로 된 대가를 주고 물건을 구했을 리 없다.
근처를 지나가는 인간들을 습격해 물건을 빼앗은 것이 분명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데이오든에게 죽은 엘프들에게 약간의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마음조차 깔끔하게 사라졌다.
이들은 외양만 다를 뿐 스캐빈저였다.
물건만 빼앗고 사람을 살려 뒀을 리 없었다.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분명 사람들을 죽여 입을 막았을 것이다.
물건의 양으로 봐서 죽인 사람들의 수도 엄청날 것 같았다.
“많이도 죽였네.”
제온은 고개를 흔들며 창고를 뒤졌다.
혹시나 필요한 물건이 있을까 해서였다.
하지만 쓸 만한 물건은 엘프들이 다 사용했는지, 남은 것은 잡동사니들뿐이었다.
이런 물건들은 가져가 봐야 그냥 짐만 될 뿐이다.
제온은 깔끔하게 포기하고 집 밖으로 나왔다.
몇 집을 더 돌아다녀 봤지만, 역시 쓸 만한 물건은 없었다.
제온은 모래 지배력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일대의 모래들이 꿀렁거리며 움직였다.
츠으으!
모래들은 꿀렁거리며 마을 전체를 덮었다.
부서진 집도, 엘프들의 시신도 모두 모래에 묻혀 사라졌다.
순식간에 제법 큰 마을이 하나의 무덤이 된 것이다.
그래도 표 나지 않았다.
일반 흙과 달리 사막의 모래는 움직이거나 덮어써도 흔적이 남지 않는다.
이제 누군가 오아시스에 우연히 찾아와도 엘프들이 살았다는 사실은 알지 못할 것이다.
제온은 물주머니에 오아시스의 물을 가득 담은 후 데이오든에게 다가갔다.
어느새 긴 밤이 지나가고, 해가 사막을 비추고 있었다.
데이오든은 가타부타 아무런 말도 없이 걸음을 옮겼다.
제온도 말없이 그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