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00)
200화
붉은 폭풍단과 강철 요새의 대립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두 세력이 합치는 것으로 끝났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붉은 폭풍단은 물론이고, 강철 요새의 사람들까지 얼떨떨한 반응이었다.
이런 협의를 끌어낸 것은 데보라 덕분이었다.
데보라의 활약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어서 시신과 잔해를 치워요. 상처 입은 자들은 최우선으로 치료해 주고, 남은 식량을 나눠 줘요.”
그녀가 각성자들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보며 제온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기존에 강철 요새에 살던 사람들의 민심을 수습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됐다.
일반인들의 피해가 컸지만, 모두가 전투 중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존자의 분노가 향한 이는 거웬이었다.
거웬은 지독한 폐쇄 정책을 고수했고, 각성자들만을 우대했다.
그 결과 주민들이 말은 안 했지만, 모두 거웬에게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 때문에 붉은 폭풍단의 합류에 큰 반감을 가지지 않았다.
더구나 데보라가 세 아이를 데리고 엉망이 된 요새 내부를 수습하려는 모습이 그들에게 깊은 인상을 줬다.
제온 역시 그런 데보라의 모습에 꽤 큰 감명을 받았다.
“여장부군.”
“나에게 과분한 여인이지. 그녀를 만난 것은 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다.”
“당신은 일 안 합니까?”
제온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곁에 있는 우르티안을 바라봤다.
우르티안은 데보라에게 모든 일을 맡긴 채 제온의 곁에 앉아 있었다.
“나는 싸우고, 그녀는 돌본다. 그게 우리의 역할이다.”
“게으름뱅이의 변명 같은데요?”
“네가 어떻게 생각해도, 우리는 이런 식으로 오랫동안 붉은 폭풍단을 이끌어 왔다.”
제온의 타박에도 우르티안은 태연했다.
“그럼 약탈도 계속하겠군요.”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먹여 살려야 할 인원은 더 늘었는 데, 식량도 식수도 부족하니까. 식량은 어떻게 마수를 사냥해서 보충한다고 쳐도, 식수가 문제야.”
“식수가 해결되면요?”
“식수? 그거 내가 확인해 봤는데, 겨우 사람들이 목말라 죽지 않고 살아갈 정도야.”
엉망이 된 강철 요새 내부를 수습하면서 제일 먼저 확인한 것이 바로 수원이었다.
요새 내부엔 지하에서 솟아오르는 샘이 존재했다.
맑은 물이 끝없이 공급되긴 했지만, 이 많은 인원이 만족할 만큼 마시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어쨌거나 식수만 해결되면 굳이 약탈할 이유가 없다는 거죠?”
“뭐, 일단은 그렇지. 식수만 풍족하면 나머지는 어떻게든 끼워 맞추면 되니까. 마정석 광산처럼 카라반이나 공략대의 거점으로 개방하고, 식량을 대가로 받아도 되니까. 하지만 그게 가능했다면 강철 요새가 이 꼴이 되었겠나?”
“그 말 잊지 말길 바랍니다.”
“왜? 식수를 찾아 주려고?”
“네!”
“진짜 그게 가능해?”
얼마나 놀랐는지 우르티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제온이 걸음을 옮기며 대답했다.
“아예 물이 없는 곳이라면 모르겠지만, 수원이 존재한다면 가능합니다.”
“미쳤네!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제가 모래술사라는 것을 잊으셨나 봅니다. 제 모래 지배력이 미치는 범위 안에 수원이 있다면 감지 가능합니다.”
“정말 사기 같은 능력이군.”
우르티안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제온을 따라 걸었다.
두 사람이 함께 걷는 것을 본 아이들이 달려왔다.
“아빠!”
“어디 가?”
“나도 가면 안 돼?”
첫째 레이오르, 둘째 다이안, 셋째인 사무엘까지 조잘거리면서 따라왔다.
약탈할 때는 무자비한 모습을 보여 주는 우르티안이었지만, 사랑하는 자식들 앞에서는 무장 해제됐다.
“그래! 같이 가자. 저 아저씨가 놀라운 것을 보여 준다니까.”
“놀라운 것?”
“그래! 보면 알아.”
“와아아!”
아이들이 신나서 함성을 질렀다.
제온은 그들의 목소리가 꽤 듣기 좋다고 생각했다.
역시 아이들이 많이 있는 곳에 생기가 돈다.
“어디 가요? 형!”
“같이 가.”
“아우! 시끄러워.”
레빈과 브리엘, 엘로이까지 따라왔다.
“예쁜 누나다.”
“우와아!”
우르티안의 아이들은 브리엘과 엘로이에게 엉겨 붙었다.
네오 서울이나 강철 요새나 아름다운 여자는 인기가 많은 법이었다.
엘로이가 코웃음을 쳤다.
“훗! 예쁜 것은 또 알아서.”
“손 잡아도 돼?”
“자!”
엘로이가 손을 내밀자 기다렸다는 듯이 레이오르가 손을 잡았다.
“아직 어린놈이 발랑 까져서.”
“헤헤!”
엘로이의 타박에도 레이오르는 활짝 웃을 뿐 손을 떼지 않았다.
엘로이가 레이오르의 손을 꽉 잡았다.
‘나와 같은 하프들. 부디 너희들은 나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살아가기를…….’
우르티안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의 자식들에겐 정이 갔다.
그녀와 같은 하프 엘프였기 때문이다.
브리엘이 제온에게 물었다.
“그런데 뭐 하려고?”
“한번 기적을 일으켜 볼까 해서.”
“기적?”
“그래! 기적.”
제온이 샘 앞에 멈춰 서며 대답했다.
그가 눈을 감은 채 지배력을 끌어 올렸다.
슈우우!
제온의 감각이 사암을 타고 지하 깊이 뻗어 나갔다.
사암도 결국 모래가 뭉쳐 만들어진 암석이었다.
제온의 지배력이 통하는 것이다.
한참을 뻗어 나간 제온의 감각이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했다.
똑!
그곳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느껴졌다.
어제 이곳에 처음 왔을 때도 느꼈던 감각이었다.
“후!”
잠시 숨을 들이쉰 제온이 본격적으로 지배력을 이용해 모래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콰드득!
제온의 발아래 있던 사암들이 밀려나기 시작했다.
밀려난 사암들이 좌우로 쌓이고, 지하로 향하는 통로가 만들어졌다.
그 모습을 본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아아!”
“모래가 알아서 길을 열어 준다.”
“신기해!”
아이들이 제자리에서 방방 날뛰는 모습에 멀리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다가왔다. 아이들의 반응이 그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다.
그 순간에도 지하로 향하는 통로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콰드득!
통로가 사암을 끝없이 토해 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우르티안이 급히 나서서 힘을 쓰기 시작했다.
“으랏차!”
거대한 사암을 옮겨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우르티안의 기행에 붉은 폭풍단의 이인자인 코맥이 다가와 물었다.
“뭐 하는 겁니까? 대장!”
“일단 바위들을 밖으로 옮겨.”
“알겠습니다.”
코맥은 두 번 묻지 않고 우르티안처럼 사암을 옮겼다. 그러자 다른 각성자들도 달라붙어 통로에서 밀려 나온 사암을 치웠다.
각성자들이 움직이자 멀뚱히 지켜보던 사람들도 무슨 일인가 해서 다가왔다.
그렇게 강철 요새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샘물 근처에 모였다.
그 순간에도 지하 통로가 계속 파이고 있었다.
제온의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사암을 움직이는 것은 모래를 움직이는 것보다 몇 배나 힘이 들었다. 그래도 제온은 쉬지 않고 지배력을 계속 운용했다.
지하 수십 미터 아래로 통하는 통로가 만들어졌다,
제온은 자신이 만든 통로를 걸어 내려갔다.
그 뒤를 우르티안이 따라왔다.
제온이 손을 뻗어 벽을 어루만졌다.
거대한 암석이었다.
모래가 압축된 사암과 달리 제대로 된 돌이었다.
제온이 우르티안에게 말했다.
“이 암석을 부술 수 있겠습니까?”
“암석? 어디 한번 해 보지.”
우르티안이 샴쉬르를 꺼내 들었다.
슈우우!
샴쉬르에 오러 블레이드가 어렸다.
우르티안이 오러 블레이드를 휘두르자 거대한 암석이 매끄럽게 잘려 나갔다.
서걱! 서걱!
암반 중앙이 문짝처럼 네모나게 잘려 나갔다.
우르티안이 잘려 나간 암석을 걷어차자 뒤로 넘어갔다.
쿵!
암석이 넘어간 뒤로 공동이 나타났다. 하지만 너무 어두워 내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뭐냐?”
우르티안이 공동으로 들어가며 눈을 크게 떴다.
유달리 서늘하고 축축한 공기가 느껴졌다.
“설마?”
그 순간 어둠에 적응한 그의 눈에 공동의 광경이 적나라하게 들어왔다.
“맙소사!”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왜?”
“무슨 일인데?”
우르티안의 뒤에 있던 아이들이 폴짝 뛰며 소리쳤다.
어지간한 일에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 우르티안이 이런 반응을 보이니 내부가 궁금했던 것이다.
아이들이 입구를 막아선 우르티안을 비집고 공동 안으로 들어왔다.
순간 아이들이 외쳤다.
“호, 호수다.”
“물이 엄청 많아.”
“미쳤어!”
아이들이 눈에 들어온 것은 거대한 지하 호수였다.
오랜 세월 지하수가 흘러들어 와 생성된 지하 호수엔 엄청난 양의 물이 찰랑이고 있었다.
“호수?”
“물이라고?”
아이들의 말에 뒤쪽에 있던 사람들이 밀고 들어왔다.
우르티안이 비켜 주자 그들도 지하 호수를 볼 수 있었다.
“맙소사!”
“흐흑!”
“진짜 호수가 있어.”
거대한 지하 호수를 두 눈으로 본 사람들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떤 이들은 흐느끼기까지 했다.
그들의 반응은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귀한 세상이지만, 물은 더더욱 귀했다.
강철 요새에서도 물이 귀해 늘 아껴 마셨다.
거웬은 물이 언제 마를지 모르니 아껴야 한다며 가스라이팅까지 했다.
그 때문에 강철 요새 사람들조차 물을 마음껏 마셔 본 적이 없었다.
바깥일을 처리하느라 뒤늦게 지하 호수에 들어온 데보라가 눈을 크게 떴다.
“요새 지하에 이런 호수가 있었다니. 이 정도 물이라면 몇 만 명이라도 이곳에서 살 수 있어.”
데보라가 양손을 물에 담갔다.
손에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이 환상이나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정말 어마어마한 양의 물이 요새 지하에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이 생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물이었다.
풍족한 식수만 있다면 먹을 것은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었다.
가장 큰 문제가 순식간에 해결되었다.
데보라는 아예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흐느껴 울었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강철 요새와 붉은 폭풍단의 모든 여자가 홀린 듯이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흐흑!”
“물이다. 물이야!”
그녀들은 거대한 지하 호수 앞에서 흐느껴 울었다.
항상 물을 아끼며 살아왔다.
자식이 목마르다고 칭얼거릴 때도 조금밖에 주지 못해 늘 마음이 아팠었다.
특히 붉은 폭풍단 여자 중에는 물을 제대로 마시지 못해 아이가 죽은 이들도 있었다.
그런 여자들일수록 더욱 서럽게 울었다.
또다시 아이를 잃게 될까 봐 낳지 않았는데, 물이 풍족하니 이제 마음 놓고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게 됐다.
여자들이 울자 각성자들과 남자들의 분위기도 숙연해졌다.
‘이곳은 이제 우리의 터전이다.’
‘반드시 이곳을 지켜야 해.’
이제 물을 찾기 위해 사막을 떠돌아다니지 않아도 된다.
그들은 이곳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살아갈 것을 다짐했다.
브리엘이 제온에게 말했다.
“정말 일으켰네.”
“응?”
“기적 말이야. 정말 기적을 일으켰어.”
이 세상 유일의 모래술사 일으킨 기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