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02)
202화
원래 제온은 붉은 폭풍단이 강철 요새를 점거한 다음 날 떠나려고 했다. 하지만 몇 가지 이유로 강철 요새를 떠나지 못하고 더 머물러야 했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강철 요새의 안정 때문이었다.
사막으로 변한 지구에서 인간이 살 수 있는 땅은 극히 한정적이었다. 운이 좋으면 커다란 콜로니로 성장할 수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었다.
대부분은 겨우 수십 가구가 사는 마을 정도가 한계였다.
그 이상의 규모로 커지려면 식수나 식량이 해결되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해결되지 않으면 마을의 인구는 더 늘어나지 않는다.
다행히 강철 요새는 수원을 확보해 안정적으로 성장을 도모할 수 있게 됐다.
강철 요새의 주인이 붉은 폭풍단으로 바뀐 것은 제온에게 큰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강철 요새가 정상화되면서 수많은 사람이 생존할 환경이 갖춰졌다는 것이다.
인류가 언제까지 지구에서 존속할 수 있을진 몰랐다.
지구의 가혹한 환경은 인간에게 적대적이었고, 수많은 위협 요인들이 인류를 노리고 있었다.
언젠가는 인간이 이런 외부 요인 때문에 멸망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시기가 최대한 늦춰졌으면 좋겠다는 것이 제온의 마음이었다.
인류가 번성할수록 멸망은 늦춰질 것이고, 언젠가 다시 지구를 정상화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실현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그렇다고 아예 손을 놓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강철 요새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면 지금보다 몇 배나 많은 인원이 안전한 거처를 얻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이곳에 머물 이유가 충분했다.
다행히 제온이 머무는 동안 강철 요새는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마치 처음부터 그런 모습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 모든 게 데보라 덕분이었다.
그녀는 붉은 폭풍단과 강철 요새 기존의 사람들을 잘 화합시켰다. 우르티안이 한 일이라고는 그저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데보라에겐 큰 도움이 됐다.
우르티안의 임무는 식량을 구하고, 외부의 위협에서 사람을 지키는 것. 그 외의 일엔 젬병이었다.
차라리 이렇게 방관자 포지션을 잡는 것이 데보라와 여자들을 도와주는 것이었다.
우르티안이 제온의 전신을 찬찬히 훑어봤다.
제온은 코트 형태의 로브를 입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우르티안이 아니었다.
“이제 떠날 생각인가?”
“너무 오래 머물렀습니다.”
“그런가? 아쉽군! 며칠 정도는 더 머물러도 될 텐데.”
“이쪽도 네오 서울로 돌아가야 할 사정이 있어서요.”
“들었다. 이지령에게 뒤통수를 맞았다면서?”
“네!”
“흐흐! 어쩐지 눈빛이 심상치 않더라니.”
“그쪽도 패했다면서요?”
“비루한 개새끼처럼 꼬리를 말고 도주했지. 흐흐!”
우르티안이 부끄럽지도 않은지 태연히 말했다.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 패한 것은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진짜 부끄러운 것은 상대의 기세에 압도당해 제대로 싸워 보지도 않고 도주하는 것이었다.
“놈은 S급이다.”
“알고 있습니다. 던전 안에서 격이 오르는 것을 봤거든요.”
“그런가? 어쨌거나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자신의 치부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 어떤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까.”
“명심하죠.”
제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오 서울로 돌아가면 이지령이 어떻게 나올지 대략 짐작이 됐다.
던전 안에서 동료의 뒤통수를 친 것은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비겁한 행위였다.
이 일이 알려지면 그의 위상은 무섭게 추락할 것이다.
제아무리 네오 서울이 강자를 추앙하는 곳이라지만, 비겁한 자를 무지성으로 따를 만큼 멍청한 이들이 많지는 않다.
그때였다.
“완성이다. 제온, 완성했어.”
갑자기 브리엘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그녀의 손에는 조그만 병이 들려 있었다.
제온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드디어 완성한 거냐?”
“응! 이게 썬 플라워 해독제야.”
브리엘이 투명한 액체가 든 병을 흔들었다.
병에 든 액체는 바로 썬 플라워로 만든 마약을 해독하는 해독제였다.
지난 며칠 동안 브리엘은 골방에 처박혀 해독제를 연구했다.
마약에 중독되어 거웬을 따르던 중독자들은 거의 죽었지만, 아예 폐인이 되어 죽을 날만 기다리는 자들도 몇 명 있었다.
브리엘은 그들을 위해 해독제를 연구했고, 결국 완성할 수 있었다.
그녀의 얼굴엔 감격의 빛이 가득했다.
단순히 강철 요새를 위해 한 일이 아니었다.
그녀에게도 마약의 해독제가 필요했다.
후유증에서 많이 벗어나긴 했지만, 그녀 역시 네오 서울의 마약에 중독된 상태였다.
주기적으로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엄청난 금단 증상에 시달렸다.
다행히 이곳엔 네오 서울에서 구할 수 없는 갖가지 재료가 있었다.
브리엘은 그 모든 재료를 가지고 연구에 몰두했고, 기어이 해독제를 만들어 냈다.
제온이 물었다.
“효과는?”
“누가 만든 건데? 이미 중독자들에게 복용시켰는데, 다들 큰 후유증 없이 정신을 차렸어.”
“다행이다.”
“이젠 내 차례야.”
“직접 복용하려고?”
“그러려고 만든 거니까.”
브리엘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순수해야 할 하이 엘프의 육체가 마약에 찌들어 있다. 그 때문에 브리엘은 자신의 재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 지겨운 마약의 족쇄를 벗어던지면 더 높이 날아오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잠시 결과물을 바라보던 브리엘이 해독제를 복용했다.
제온이 곁에 있으니 지켜 주리라 믿고 마신 것이다.
해독제가 몸에 들어오자 뜨거운 열기가 치솟아 올랐다.
“허억!”
브리엘이 가슴을 부여잡으며 주저앉았다.
얼굴이 용광로처럼 시뻘겋게 달아올랐고, 온몸에선 수증기처럼 김이 났다.
해독제와 몸 안에 남아 있는 잔류 마약이 싸우는 것이다.
땀을 얼마나 뻘뻘 흘리는지 전신이 흠뻑 젖었다.
그래도 제온은 섣불리 땀을 닦아 준다거나, 건드리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이럴 때는 그냥 지켜보는 것이 브리엘을 위한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잠시 후 브리엘의 몸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났다.
바로 그녀의 모공을 통해 악취가 나는 액체가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브리엘을 끈질기게 괴롭히던 잔류 마약이었다.
냄새가 어찌나 독한지 맡는 것만으로 제온과 우르티안의 정신이 다 아득해질 정도였다.
이렇게 지독한 마약에 찌든 채 온전한 정신을 유지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브리엘은 존중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브리엘은 정신을 잃었다. 그 와중에도 잔류 마약은 계속 배출되고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브리엘의 상태가 진정됐다.
제온은 그제야 손을 뻗어 브리엘을 안아 들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개입한 이가 있었다.
바로 데보라였다.
“나에게 맡겨 줘요.”
“…….”
“그래도 여자아인데 당신이 옷을 벗기고 오물을 닦을 수는 없잖아요. 내게 맡겨요.”
“부탁할게요.”
“걱정하지 마요.”
데보라가 브리엘을 조심스럽게 안아 인근에 있는 집으로 데려갔다.
그녀는 브리엘의 로브를 벗기고 정성스럽게 배출된 잔류 마약을 닦았다.
깨끗이 닦고 다시 로브를 입혔을 때 브리엘이 눈을 떴다.
“정신 차렸니?”
“제온은?”
“밖에 있어.”
“아!”
“어머! 키가 좀 큰 것 같은데?”
“진짜?”
데보라의 반응에 브리엘이 긴가민가하며 일어났다.
실제로 조금 키가 큰 것 같았다.
마약 중독에서 완전히 벗어나며 성장판이 다시 열린 것 같았다.
브리엘은 조금 자란 자신의 키가 어색한지 쭈뼛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며 좋아했다.
언제부턴가 키가 더 이상 자라지 않아 스트레스가 컸는데, 이젠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브리엘은 자신의 변화한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제온 곁에는 언제 왔는지 레빈까지 있었다.
레빈이 브리엘을 반겼다.
“와! 꼬맹이, 마약 중독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며? 잘됐다.”
“대연금술사가 될 몸인데 이 정도는 기본이지. 훗!”
“키도 좀 큰 것 같은데?”
“어! 나도 놀랐다니까.”
브리엘이 제자리에서 빙그르 돌며 자란 키를 자랑했다.
제온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마약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니 잘됐다.”
“응! 이젠 더 이상 약에 의존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창백하기만 하던 브리엘의 얼굴에 은은한 혈색이 감돌고 있었다.
이 역시 마약에서 벗어난 덕분이었다. 하지만 마약을 해독하는 과정에서 체력이 크게 소모되어 금방 지친 기색을 드러냈다.
그녀의 안색을 살피던 제온이 말했다.
“조금 더 이곳에서 머물러야겠군.”
“그러지 않아도 돼. 금방 체력이 회복될 거야.”
“원래 급격한 변화를 겪은 직후 더 조심해야 해. 하루만 더 머물다 가자.”
“그럴까?”
“그래!”
“알았어. 그렇게 할게.”
브리엘이 활짝 웃었다.
마약에서 완전히 벗어났기 때문인지 어쩐지 미모가 물이 오른 느낌이었다.
레빈은 그런 브리엘의 얼굴을 넋 놓고 바라봤다.
우르티안이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좋을 때다.”
***
까가강!
넓은 공터에서 연신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크 엘프인 두두얀과 하프 엘프인 엘로이가 공터에서 격돌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마치 철천지원수라도 되는 것처럼 서로를 향해 무섭게 무기를 휘둘렀다.
두 여자 모두 순수 엘프가 아니었다. 그래서 다른 엘프들에게서 큰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 때문인지 두 여자는 서로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꼈고, 언제부턴가 이렇게 대결을 펼쳤다.
두두얀과 엘로이 모두 무투계 각성자였다.
두두얀은 두 개의 단검을 사용했고, 엘로이는 미친 구미호라는 이름의 창을 무기로 썼다.
두두얀은 어떻게든 가까이 접근해 공격하려 했고, 엘로이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두두얀을 몰아붙였다.
단병과 장병.
상반된 격투 스타일로 서로의 약점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밥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일과를 전투로 보냈다.
덕분에 그녀들의 전투력은 며칠 전에 비할 수 없이 올라갔다.
“하아! 하아!”
“헉! 허억!”
전투를 끝낸 두 여자가 바닥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승자는 엘로이였다.
패했음에도 두두얀은 전혀 기분 나쁜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홀가분하다는 표정으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렇게 전력을 다해 싸워 본 적이 언제인가 싶었다.
엄청난 혹사로 근육이 고통을 호소하고, 심장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격렬하게 뛰고 있었다.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엘로이가 그런 두두얀을 보고 이죽거렸다.
“변태처럼 웃네.”
“그러는 당신은?”
“나는 왜?”
“거울을 보면 나하고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을걸?”
“그래?”
“완전 똑같거든.”
“쳇! 나도 변태인가 보지.”
“후후!”
“하하!”
두두얀과 엘로이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싸우면서 정이 든다고, 지금 두 엘프가 딱 그랬다.
그들은 싸우면서 교감했고, 서로를 깊이 이해했다.
두두얀이 엘로이에게 물었다.
“이제 떠날 건가?”
“그래야지.”
“이곳에 남을 생각은 아예 없는 건가?”
“이래 봬도 네오 서울의 고위직이라서 말이야.”
“차라리 이곳에 남는 것은 어때? 어차피 거기서도 그렇게 환영받지 않을 텐데.”
“그래도 그곳이 내 고향이야. 고향을 쉽게 버릴 수는 없지.”
좋든 싫든 이십 년이 넘는 세월을 네오 서울에 정붙이고 살아왔다. 이제 와서 네오 서울을 떠날 수는 없었다.
“아쉽네!”
“나중에 또 들르면 되지. 그때 문전박대나 하지 말라고.”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이곳 강철 요새는 우리의 터전으로 거듭날 테니까. 언제든 찾아오라고.”
“그러지.”
엘로이가 싱긋 웃을 때였다.
삐이이익!
다급한 호각 소리가 강철 요새 안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