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08)
208화
사막 엘프의 집은 모래로 만들었다.
모래를 뭉친 후 마법으로 굳혀 벽돌처럼 만든 것이다. 그렇게 만든 벽돌을 쌓아서 집을 만들었다.
당연히 모래로 만들었기에 불에 탈 일이 없었다.
모래로 만든 집은 오랫동안 사막 엘프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줬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모래로 만든 집은 불에 타고 있었다.
일반적인 불길이 아니라 마법으로 만들어 낸 불길이었다.
초고열의 화염은 모래를 녹이는 것도 모자라 아예 불태우고 있었다.
오크 제사장이 펼친 ‘죽음의 숨결’이라는 스킬이었다.
죽음의 숨결로 만들어 낸 화염은 목표가 된 대상을 모두 태워 버리기 전까지 절대 꺼지지 않는다.
그것이 설령 모래일지라도 말이다.
“으악!”
“살려 줘!”
불타는 모래 집 사이로 사막 엘프들의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오크들이 엘프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엘프들도 나름대로 저항하고 있었지만, 워낙 오크들의 숫자가 많다 보니 속절없이 밀리고 있었다.
엘프 하나에 오크 서넛이 달려들어 공격하다 보니 제대로 저항할 수 없었다.
결국 해일에 휩쓸려 가는 개미처럼 엘프들도 오크라는 거센 물결에 휩쓸려 버렸다.
곳곳에서 엘프들의 비명과 절규가 울려 퍼졌다.
백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힘겹게 구축해 온 터전과 함께 엘프들이 죽어 가고 있었다.
“이럴…… 수가!”
사막 엘프족의 족장 타바로가 힘겹게 눈을 떠 주위를 둘러봤다.
보이는 모든 것이 죽음이었다.
그가 이끌고, 세워 왔던 모든 것이 무너지고 불타고 있었다.
그의 혈족, 그를 따르는 일족이 모두 죽어 가고 있었다.
오크라는 죽음의 해일을 막지 못한 대가였다.
타바로도 그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그의 복부엔 거대한 창이 꽂혀 있었다.
힘이 좋은 오크들도 들기 힘들어 보이는 거대한 창의 주인은 바로 오크 대군장 오르카였다.
오르카는 타바로의 복부를 관통한 창을 그대로 들어 올렸다. 덩달아 타바로도 허공으로 떠올랐다.
“크윽! 오크 따위에게…….”
“그게 네가 죽는 이유고, 너희 종족이 몰락하는 이유다. 엘프!”
오르카가 죽어 가는 타바로를 비웃었다.
오크족만큼이나 변화가 없는 것이 엘프족이었다.
모래로 만든 조악한 집, 마수 가죽으로 만든 옷, 뜨거운 햇볕에 그을린 피부.
나름 지구에 적응해 산다고 하지만, 말 그대로 연명만 하는 것일 뿐 발전이라곤 전혀 없었다.
그런 주제에 엘프족들은 늘 오크족을 무시하고 경멸한다.
스스로를 고귀한 종족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이상의 발전은 없다.
자신이 엘프족이었으면 오크족의 습격에 대비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전혀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게 오늘 사막 엘프 마을이 몰살당하는 이유였다.
오르카가 창에 꿰뚫린 타바로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오늘부로 엘프는 몰락하고, 오크족은 부흥할 것이다.”
“하……찮은 오크 따위가…….”
“너희들이 경멸하고 무시하는 오크가 어디까지 가는지 지옥에서 지켜보거라.”
푸화하학!
순간 창에 꿰뚫린 타바로가 폭발했다.
오르카가 창에 투기를 집중시켜 타바로의 몸을 터트려 버린 것이다.
사방으로 튀는 살점과 피.
아직 살아 있는 엘프들이 절규했다.
“타바로 님!”
“안 돼!”
그들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렀다.
오크들은 그들마저 잔인하게 죽였다.
그렇게 사막 엘프 마을 하나가 세상에서 사라졌다.
오르카는 잔해에 앉아 불타는 사막 엘프의 마을을 바라봤다.
화염이 충천하며 회색 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오르카는 그 광경이 꽤나 장관이라고 생각했다.
‘인간들의 도시도 이렇게 불태울 것이다.’
오크의 유전자엔 인간과 엘프를 향한 강렬한 적의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어째서 그런 적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이유도 몰랐고, 또 궁금하지도 않았다.
오크는 고민하는 종족이 아니라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종족이었다.
오크족 전체에서 고민하는 존재는 단 한 명뿐이었다.
“제사장!”
바로 늙은 오크 제사장이었다.
오르카의 오른팔이자 머리라 할 수 있는 제사장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그가 침울한 표정으로 오르카에게 다가왔다.
“오르카 님!”
“무슨 일인가? 사막 엘프의 마을을 없앴는데, 왜 표정이 밝지 않지?”
“붉은 망치족의 주술사가 죽었습니다.”
“주술사가?”
오르카가 미간을 찌푸렸다.
오크족의 제사장은 주술사들과 심령을 공유한다.
서로의 생각을 알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감정을 공유함으로써 서로의 생사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붉은 망치족이라면…….”
“아샹카 님에게 딸려 보낸 이들입니다.”
“그에게 문제가 생겼군.”
주술사는 제사장처럼 직접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후방에서 지원한다.
그런 주술사가 죽임을 당했다면, 전위를 지키던 오크들에게 문제가 생겼음을 의미한다.
아샹카는 자신의 휘하에 있는 주술사를 죽게 내버려둘 정도로 멍청하거나 책임감이 없지 않았다.
분명 주술사를 보호하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 것이 분명했다.
“어떡할까요? 오르카 님!”
“기수들을 보내라. 우리는 기수들이 돌아올 때까지 이곳에서 기다린다.”
“그리 행하겠습니다.”
제사장이 공손히 대답했다.
기수들이 부리는 블러드 울프는 후각과 기동성이 매우 뛰어나다.
그들이라면 하루가 가기 전에 아샹카가 어찌 되었는지 알아낼 것이다.
“멍청한 아샹카. 겨우 인간 따위에게 주술사를 잃다니.”
주술사는 매우 귀중한 존재였다.
제대로 된 주술사를 키우려면 매우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죽었으면 복수를 해 주고, 죽지 않았으면 네 머리통을 뽑아 버려 주마.”
어느 쪽이든 아샹카는 죽은 목숨이었다.
***
제온은 자리에 앉아 강철 요새 내부를 바라봤다.
살아남은 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오크의 습격으로 수많은 이들이 죽거나 다쳤다. 하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에겐 죽은 사람들을 추모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언제 또 오크들이 쳐들어올지 몰랐다.
그 전에 완벽하게 대응 태세를 갖춰야 했다.
일단 죽은 사람들 시신을 치워야 했다.
시신을 한곳에 모아 두고 불에 태웠다.
화장을 한 것이다.
시신을 방치하거나 묻어 뒀다가는 냄새를 맡고 마수들이 몰려들 수도 있기에 어쩔 수 없이 태운 것이다.
다음은 오크 시체였다.
쳐들어온 오크가 천 마리가 넘었다.
이 많은 시신을 태우는 것은 아무리 화염계 마법을 펼치는 각성자라도 힘들었다. 그래서 한 선택이 바로 네눈박쥐가 서식하고 있는 동굴에 밀어 넣는 것이었다.
“영차! 영차!”
“좀 더 힘을 써.”
사람들은 무거운 오크의 시체를 끌어와 수직 동굴에 처넣었다.
후두둑!
동굴 속에서 네눈박쥐들이 날갯짓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눈박쥐들은 오크 시체들로 때아닌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다행히 데보라가 여왕을 테이밍 했기에 네눈박쥐들이 수직 동굴을 통해 들어오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곁에 있던 데보라가 말했다.
“이렇게 시체를 꾸준히 먹이다 보면 네눈박쥐들이 오크들의 고기 맛에 길들여질 거예요.”
“오크 맛을 알게 된 네눈박쥐들이 든든한 지원군이 되겠군요.”
“이런 걸 전화위복이라고 하죠.”
“그렇네요.”
제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크의 시신을 네눈박쥐의 먹이로 주는 것은 순전히 데보라의 아이디어였다.
강철 요새는 네눈박쥐라는 든든한 수호신을 두게 되는 것이고, 네눈박쥐들은 오크라는 별미를 즐길 수 있으니 서로에게 윈윈인 셈이었다.
우르티안과 각성자들은 한참 요새의 방어력을 강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요새 아래쪽 경사지를 더 깎아 내 오크들이 기어오르기 힘들게 하고, 입구에 경사지에서 깎아 낸 돌을 쌓아 던질 수 있게 했다.
그 외에도 많은 것들을 준비했다.
이제 사람들 사이에 구분은 없어졌다.
다 함께 힘을 합쳐 오크와 싸우다 보니 전우애와 동질감이 생긴 것이다.
각성자들은 전투 준비를 하고, 평범한 사람들은 그들이 최적의 조건에서 싸울 수 있도록 움직인다.
데보라가 아련한 눈으로 사람들을 바라봤다.
“이제야 드디어 하나가 됐어요. 이곳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모든 것을 걸고 싸울 거예요.”
“잘됐네요.”
제온의 말투에서 데보라는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떠날 거죠?”
“네!”
“조금 더 있어 달라고 말하면 너무 염치가 없는 거겠죠.”
“제가 오래 사막을 떠돌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어요.”
“그게 뭔가요?”
“원주민들의 삶에 너무 많은 개입은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거예요.”
당시 제온은 떠돌이였다.
발길 닿는 대로 세상을 떠돌았다.
어디 한 곳에 정착할 생각도 없었다.
그런 그가 너무 많은 도움을 주고, 사람들이 그에 의존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사막에서 제온의 능력은 사기나 다름없었다.
그의 보호에 익숙해지면 콜로니나 마을의 자생력이 떨어지게 된다.
실제로 제온에게 크게 의지했다가, 그가 떠난 후 전멸한 마을도 몇 개 있었다.
제온은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크게 자책한 적이 있었다.
마을이 전멸한 것은 제온의 책임이 아니었지만, 그들이 자생력을 잃는 데 일조한 것은 분명했다.
그 후 제온은 어디에 가든 개입을 최소한으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데보라는 현명한 여자답게 금방 제온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그렇겠네요. 이제까지 도움받은 게 너무 커서 당연한 사실을 잠시 망각했어요.”
“데보라 님이라면 현명하게 이곳을 다스릴 수 있을 거예요.”
“그것도 살아남았을 때 이야기죠. 우리는 반드시 살아남을 거예요.”
“네!”
“언제고 네오 서울과 교역할 수 있을 만큼 번창하면 그때 찾아뵐게요.”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죠.”
“바로 가실 건가요?”
“이별은 빠를수록 아쉬움이 덜한 법이더라구요.”
제온이 엉덩이를 툭툭 털며 일어섰다.
데보라도 자리에서 일어나 제온과 함께 걸었다.
제온이 입구로 향하는 모습을 본 브리엘, 레빈, 엘로이가 다가왔다.
브리엘이 물었다.
“지금 떠날 거야?”
“응!”
“그럼 가자.”
“준비는?”
“이미 다 했지.”
브리엘이 레빈이 메고 있는 아공간 배낭을 툭툭 두들겼다.
레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식수와 식량을 충분히 챙겨 넣었어요. 당분간은 문제없을 거예요.”
아공간 가득 식량과 식수를 채워 넣었다.
이 정도라면 네오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바구니를 타고 강철 요새에서 내려왔다.
밑에 내려오자 우르티안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떠날 건가?”
“네!”
“그럼 이 녀석들을 타고 가라.”
우르티안이 내민 것은 쌍봉낙타의 고삐였다.
그것도 무려 두 마리였다.
“우리 사정이 넉넉했다면 한 사람당 한 마리씩 내줬을 텐데 미안하군.”
“아닙니다.”
제온이 고개를 저었다.
사막의 스캐빈저들에게 쌍봉낙타가 얼마나 소중한 물건인지 제온이 잘 알고 있었다.
단순히 이동을 위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친구이자 동반자였다.
번식도 쉽지 않아 수도 넉넉지 않았다.
그런 쌍봉낙타를 두 마리나 내준다는 것은 우르티안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였다.
“그래도 번갈아 가면서 타면 피로가 훨씬 덜할 것이다.”
“잘 타겠습니다.”
“혹시 네오 서울에 도착하면 놈들을 풀어줘라. 그럼 알아서 이곳까지 찾아올 테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온은 우르티안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그럼 작별이군. 무사히 네오 서울로 귀환하길 빌지.”
“이곳도 오크들의 침공을 무사히 막아 내길 빌겠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생존할 것이다. 그리고 이곳을 번영시킬 것이다. 나중에 찾아왔을 때는 네오 서울만큼이나 멋진 곳이 되어 있을 거라고 장담하지.”
“분명 그럴 겁니다.”
“그리고 이거…….”
“뭡니까?”
제온이 우르티안의 손에 들린 검은 보석을 바라봤다.
“네오 서울 안에 있는 스캐빈저들과 연락 수단이다. 이 녀석으로 우리가 그들과 연락했다.”
“일종의 통신 수단이군요. 그런데 이걸 왜?”
“정착했으니까 우리에겐 필요 없는 물건이다. 혹시나 스캐빈저가 필요하면 요긴하게 사용하라.”
“감사합니다.”
제온은 검은 보석을 받았다.
잠시 우르티안과 데보라의 얼굴을 바라보던 제온이 작별을 고했다.
“그럼 우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래!”
제온 일행은 우르티안과 데보라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강철 요새를 떠났다.
데보라가 멀어지는 제온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사막에 또 한 번 폭풍이 불겠군요. 거대한 모래 폭풍이…….”
제온이라는 이름의 모래 폭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