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09)
209화
제온 일행은 모래 위를 걸었다.
제온은 당연히 모래걸음을 펼쳐 미끄러지듯 이동했고, 레빈은 유령화한 상태로 이동했다.
레빈이 유령화한 이유는 간단했다.
주력 스킬을 계속 사용함으로써 지속 시간을 늘리고, 등급을 올리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계속 유령화를 하면 마나의 소모가 엄청나다. 하지만 비워 내야 채울 수 있는 것처럼, 이런 행위를 꾸준히 반복하다 보면 마나의 용량이 늘어나고, 마나 회복력이 좋아진다.
레빈도 그 사실을 알기에 일부러 쌍봉낙타를 타지 않고, 유령화한 상태로 이동하는 것이다.
반면 브리엘과 엘로이는 쌍봉낙타에 타고 편히 이동하고 있었다.
브리엘은 낙타 등에서도 연금술을 연구하고 있었고, 엘로이는 미친 구미호를 손질하며 언제든 전투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아무리 미친 구미호가 던전제 아이템이라고 하지만, 제때 손질해 주지 않으면 상하기 마련이다.
엘로이에겐 미친 구미호가 신체 일부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손질해 항상 최상의 상태로 유지했다.
“후우! 더럽게 덥네. 이 더위는 도대체 익숙해지지 않아.”
미친 구미호 손질을 끝낸 엘로이가 이마의 땀을 훔쳤다.
그녀의 얼굴에선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쌍봉낙타를 탄 덕분에 편히 이동하는 것은 좋았지만, 이 지독한 더위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반면 브리엘은 그리 더운 표정이 아니었다.
모래 아귀의 가죽으로 만든 로브 덕분이었다.
사막의 열기를 완벽하게 막아 주고, 항상 쾌적한 상태로 유지해 준다. 덕분에 브리엘은 뜨겁게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서도 연금술에 몰두할 수 있었다.
“으음! 여기에 몇 가지 물건만 더 조합하면 될 것 같은데…….”
“꼬맹아! 뭘 그렇게 구시렁대는 거냐?”
“시끄럽거든. 심심하면 낙타에서 내려 혼자 창이나 휘두르라고.”
“그러지 말고 언니한테 말해 봐. 혹시 알아? 언니가 고민을 해결해 줄지.”
“웨액!”
브리엘이 목을 붙잡고 토악질하는 시늉을 했다. 그래도 엘로이는 기분 나쁜 표정을 짓지 않았다.
하이 엘프와 하프 엘프.
물과 기름처럼 어울릴 수 없을 것으로 보이던 두 엘프는 여정을 함께하면서 꽤 친해졌다.
물론 아직도 소소한 일로 티격태격하지만 서로를 완전히 무시하던 예전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엘로이가 브리엘의 곁에 바싹 붙어 앉으며 말했다.
“좋으면서 또 이런다.”
“더우니까 떨어지라고.”
“하나도 안 덥잖아? 꼬맹아!”
“네 몸뚱이가 뜨겁다고.”
“뜨겁긴 뭐가 뜨거워?”
엘로이가 아예 브리엘을 꽉 껴안았다.
브리엘이 진저리를 치며 벗어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브리엘은 울상이 된 채 제온을 바라봤다.
제온이 구해 주길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제온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엘로이가 브리엘에게서 떨어졌다.
“왜 그래?”
“보입니까?”
“뭐가?”
제온의 손끝이 향하는 곳을 무심코 바라보던 엘로이가 미간을 찌푸렸다.
제온이 가리킨 곳은 허공이었다.
저 멀리 허공에서 무언가 선회하고 있었다.
엘로이의 표정이 대번에 일그러졌다.
“제기랄! 설마 저거 와이번이야?”
“그런 것 같습니다.”
“와이번이 왜?”
허공에서 선회하는 물체는 바로 와이번 무리였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와이번은 같은 장소를 맴돌고 있었다.
와이번은 하늘의 폭군이었다.
B급 마수로 위험도도 높을뿐더러 성격도 포악해 하늘에 다른 무언가 있는 꼴을 두고 보지 못한다.
설령 그것이 같은 마수일지라도 말이다.
특히 영역에 대한 집착이 강해서 침범한 생명체는 절대 살려 두지 않기로 유명했다.
엘로이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혹시 여기가 와이번의 영역인가?”
“어지간하면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 놈들이니까 그렇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돌아가면 안 될까?”
“그러기엔 늦은 것 같습니다.”
허공을 선회하던 와이번이 제온 일행이 있는 곳으로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자신들의 영역에 제온 일행이 침입한 것을 알아차린 것이 분명했다.
“제기랄!”
“아우! 와이번이라니.”
엘로이와 레빈이 전투를 준비했다.
그들의 얼굴엔 긴장의 빛이 역력했다. 반면 제온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와이번 무리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와이번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한번 날갯짓할 때마다 수백 미터를 쭉쭉 뻗어 나갔다.
와이번 무리는 순식간에 제온 일행 근처까지 다가왔다.
무리의 선두엔 유독 거대한 와이번이 있었다.
다른 와이번보다 족히 두 배는 큼직한 체구에 하늘을 가득 뒤덮을 것처럼 거대한 날개.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놈의 거대한 몸채 주위에 넘실거리는 은은한 붉은 기운이었다.
브리엘이 소리쳤다.
“역장이다. A급 이상이야.”
B급 이상의 마수에게 역장이 존재한다는 것은 상식이었다. A급 마수의 역장은 B급보다 훨씬 선명하면서 강력하다.
지금 선두에서 날아오는 거대한 와이번처럼 말이다.
사막에서 역장을 가진 마수를 만나면 죽었다고 봐야 했다.
같은 A급 각성자라고 할지라도 역장을 가진 마수를 일대일로 상대하는 것은 힘들었다.
무엇보다 와이번은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녔다.
삼차원의 기동이 가능한 것이다.
어지간한 각성자들은 놈들의 기동에 대응조차 못 하고 발기발기 찢겨 나갈 수밖에 없었다.
“씨발! 하필 와이번이야.”
“제기랄!”
엘로이와 레빈이 전투 태세를 갖췄다. 하지만 제온은 여전히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크와아아!
와이번 무리가 포효했다.
놈들의 포효에 엘로이 등은 몸이 굳는 것을 느꼈다.
와이번의 피어에 당한 것이다.
브리엘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아!”
온몸이 굳어 꼼짝할 수 없었다.
그사이 와이번 무리가 도착했다.
놈들이 입을 벌려 네 사람을 공격하려는 순간 제온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모래가 그의 몸을 들어 올린 것이다.
순식간에 와이번과 같은 눈높이가 됐다.
그 순간 와이번의 공격이 딱 멈췄다.
무언가 무서운 것을 본 것처럼 와이번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역장을 두른 우두머리도 예외가 아니었다.
우두머리는 마치 봐서는 안 될 것을 본 것처럼 허공에 멈춰서 눈을 크게 떴다.
제온이 허공에 뜬 채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다. 많이 컸네.”
와이번이 대답 대신 제자리 비행을 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 모습이 마치 도망갈 곳을 찾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내 체념한 표정으로 제온을 바라봤다.
제온이 손짓하자 놈이 힘없이 다가왔다.
그 모습이 꼭 겁먹은 강아지 같았다.
제온이 우두머리의 머리를 만지며 말했다.
“네 둥지는 이곳이 아니잖아?”
크롸라!
와이번이 변명이라도 하듯이 울음을 터트렸다.
제온이라고 와이번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느낌으로 대충 짐작할 뿐이다.
“혹시 적을 피해 도망 온 거냐?”
크롸라!
“그런가 보구나.”
제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에 있는 거대한 와이번을 처음 만났던 것은 사 년 전이었다.
그때 거대 와이번은 우두머리가 되기 전이었고, 등급도 B급에 불과했다.
그때 놈은 큰 상처를 입고 있었다.
다른 와이번에게 공격당해 죽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왜 그랬는지 이유는 모르지만, 불쌍하게 느껴져 치료해 줬다.
제온의 치료를 받은 덕분에 놈은 죽지 않고 살아났고, 얼마 후 제온의 곁을 떠나갔다.
놈을 다시 만난 것은 일 년 후였다.
제온에 대한 기억을 깡끄리 잊어버렸는지 공격해 왔다.
그때 제온은 깨달았다.
마수에게 은혜를 배풀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이성보다 본능이 앞서는 마수에겐 은혜를 갚는다는 개념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죽일 각오로 놈을 공격했다.
겨우 B급 마수 따위가 제온을 감당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놈은 빈사 상태에 빠졌고, 제온의 무자비한 매타작이 이어졌다. 그런데 웃긴 것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다 보니 와이번이 A급으로 승급했다는 것이다.
A급이 되었어도 제온의 손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또 죽을 만큼 맞았다.
그렇게 초주검이 되었을 때야 비로소 놈은 제온에게 굴복했다.
비루하게 목숨을 구걸하는 놈의 모습에 제온의 마음이 약해졌다.
아무리 은혜를 몰라도, 그래도 놈의 목숨을 구해 준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구하고, 또 죽인다는 것이 영 께름칙했다. 그래서 또 한번 살려 줬다.
와이번은 제온의 마음이 변할까 쏜살같이 도주했다.
그렇게 놈과의 인연이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놈과의 인연은 질겼다.
엘로이의 또 다른 인격인 맨디가 싸이클롭스에게 잡혔을 당시 다시 놈과 조우한 것이다.
놈은 한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어 있었다.
명실상부한 하늘의 지배자가 된 것이다. 그러나 지배자가 되었어도 제온을 향한 뿌리 깊은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제온을 알아보고 먼저 피했다.
그 후 다시 볼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이곳에서 만나게 됐다.
우두머리는 감히 도주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제온의 시선을 피했다.
그만큼 제온에 대한 두려움이 큰 것이다.
제온이 놈에게 물었다.
“뭐가 너를 영역에서 쫓아낸 거냐?”
어지간해서는 영역을 벗어나는 일이 없는 와이번이었다.
그런 와이번이 둥지를 포기하고 이 먼 곳까지 이주했다는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였다.
크라아!
우두머리 와이번이 구슬픈 울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결국 제온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 그게 뭐가 중요하겠냐? 너도 사정이 있으니까 둥지를 포기했겠지. 기왕 이곳으로 이주했으니 인간을 공격하는 것은 자제해라.”
와이번이 마치 제온의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제온은 그런 와이번의 목덜미를 두들겨 줬다.
“이제 가라.”
와이번이 기다렸다는 듯이 날갯짓하며 제온에게서 멀어졌다.
다른 와이번들이 우두머리를 따라 멀어져 갔다.
그 모습을 본 레빈과 엘로이가 입을 떡 벌렸다.
“와아!”
“저게 무슨 일이야? 와이번이 도망간다고?”
그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브리엘이 뭘 그리 놀라냐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제온이잖아.”
“그래도 저건…….”
“그는 이 땅의 유일한 모래술사인걸.”
제온을 바라보는 브리엘의 눈동자엔 일말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만큼 제온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 것이다.
마치 광신도 같은 브리엘의 모습에 엘로이가 잠시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봤으니 반박할 도리가 없었다.
하늘의 폭군이라는 와이번 무리가 꽁지가 빠지도록 도망가고 있었다.
도대체 제온이 얼마나 무서우면 저렇게 도망가는 건지 궁금할 정도였다.
“아휴! 됐다. 말을 말지.”
엘로이가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제온은 바로 모래 위로 내려오지 않고, 와이번들이 선회하던 곳으로 날아갔다.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날아가는 제온의 모습은 한 마리 새처럼 보였다.
잠시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세 사람은 곧 제온이 날아가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한참을 달려간 끝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곳엔 이미 제온이 도착해 있었다.
“이건?”
“맙소사!”
“제기랄!”
뒤늦게 도착한 세 사람이 눈을 크게 떴다.
그들이 도착한 곳엔 목불인견의 참상이 펼쳐져 있었다.
부서진 수레 잔해와 수많은 쌍봉낙타와 사람 들의 시체. 그리고 시체를 뜯어먹는 큰 뿔 하이에나들.
와이번 무리도 쌍봉낙타와 시체 냄새에 끌려 날아왔던 것이다.
크르르!
낯선 이들이 나타나자 한참 시체를 뜯어먹던 큰 뿔 하이에나들이 이빨을 드러내고 경계했다.
퍼버버벅!
그 순간 수많은 모래 뱀이 큰 뿔 하이에나들을 공격했다.
제온이 바이퍼를 펼친 것이다.
깨갱!
모래 뱀에 관통당한 큰 뿔 하이에나들이 구슬픈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살아남은 놈들은 깜짝 놀라 도망갔다.
제온이 착 가라앉은 눈빛으로 시체들을 바라봤다.
“사막의 유랑민들이다. 모두 오크에게 당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