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1)
21화
엘프 사건이 있었지만, 데이오든과 제온의 사이는 달라진 게 없었다.
원래도 그렇게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기에 데면데면한 분위기가 낯설지 않았다.
데이오든은 앞서 걸어가고, 제온은 그 뒤를 따른다.
어떤 때는 온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이제 데이오든은 제온에게 조언을 하지 않았다.
그만큼 해 줬으니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라는 의미였다.
제온도 데이오든에게 묻지 않았다.
스스로 궁구하고, 어떻게 하면 자신의 능력을 더 잘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모래를 활용할 수많은 방법을 고민하고, 간혹 습격해 오는 마수들을 상대로 시험했다.
이제 하급 마수들은 제온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펑펑!
제온이 날린 샌드 미사일에 하급 마수들의 머리가 연신 터져 나갔다.
뇌수와 피가 모래 위에 떨어졌다.
제온은 잠시 마수들의 시체를 바라보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데이오든은 저 멀리 걸어가고 있었다.
제온이 마수들과 싸우는 것을 알고서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 것이다.
이젠 데이오든도 알고 있는 것이다.
하급 마수 따위에 제온이 죽을 일은 없다는 것을 말이다.
이제 제온은 그 어떤 경우에도 방심하지 않았다.
그만큼 데이오든에게 혹독하게 단련받은 덕분이다.
그때였다.
저만치 앞서가던 데이오든이 갑자기 멈춰 섰다.
제온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꽤 오랜 시간을 함께했지만, 데이오든이 해가 지지 않았는데도 멈춰 선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데이오든이 중얼거렸다.
“분명 이쯤이었던 것 같은데?”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그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어린아이 손바닥만 한 크기의 나침반이었다.
일반적인 나침반은 아니었다.
네오 서울의 과학과 마법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아이템으로, 일종의 위치 저장기 역할을 했다.
한번 들렀던 곳을 저장해 두면 기억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수십 년도 전에 이곳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하도 오래전의 일인지라 기억도 가물가물했다.
나침반의 바늘이 몇 바퀴 팽그르 돌더니 어느 한 방향을 가리켰다.
데이오든이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한참을 걸어가던 데이오든이 마침내 멈춰 섰다.
“이곳이군.”
탁!
그가 나침반을 닫은 후 품에 집어넣었다.
제온이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이곳에 뭐가 있습니까?”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똑같은 모래사막이었다.
이제까지 그들이 지나온 풍경과 똑같았다.
데이오든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안 느껴지느냐?”
“뭐가 말입니까?”
“아직도 멀었구나.”
순간 제온의 가슴 깊은 곳에서 화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이내 화를 억누르고 차분히 주위를 둘러봤다.
데이오든이 이렇게 말할 정도면 근처에 무언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딱히 눈에 띄는 것이 없었다.
‘혹시 모래 안쪽인가?’
제온은 지배력을 끌어올려 모래와 감응했다.
십 미터, 이십 미터까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제온은 포기하지 않고 지배력을 이용해 모래 속을 살폈다.
칠십 미터, 팔십 미터, 그리고 백 미터까지 들어갔을 때 마침내 무언가 느껴졌다.
“이건?”
분명히 모래 안에 이질적인 무언가가 존재했다.
데이오든이 물었다.
“찾았느냐?”
“네!”
“깊이는?”
“지하 백 미터 정도입니다.”
“생각보다 깊군. 그새 더 모래가 쌓인 모양이구나.”
예전에 이곳을 발견했을 때는 그렇게 깊은 곳에 있지 않았다. 오랜 세월이 지나 모래가 더 높이 쌓인 것이 분명했다.
“파라.”
“알겠습니다.”
제온이 대답과 함께 모래를 움직였다.
츠으으!
산더미처럼 쌓인 모래가 좌우로 흘러내렸다.
제온은 흘러내린 모래를 저 멀리 밀어냈다.
그의 얼굴에 굵은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그만큼 마나의 소모가 심했기 때문이다.
말이 좋아 지하 백 미터지, 덮은 모래를 모두 파내면 거대한 산을 이룰 것이다.
당연히 단번에 파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제온은 조금씩 천천히 모래를 파냈다.
데이오든은 제온을 채근하지 않았다.
그 역시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래는 응집력이 없어서 일단 파내도 주위의 모래가 무너져 다시 메운다.
그나마 제온이 모래를 다루는 능력을 갖고 있으니 이 정도나마 진도가 나가는 거지, 보통 사람이 모래를 파려 했다면 백 년이 지나도 불가능할 것이다.
데이오든이 도와줄 일은 없었다.
그는 멀리 떨어진 곳에 앉아 제온의 작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모래를 파내는 작업은 거의 사흘 가까이 이어졌다.
마나가 고갈되면 쉬고, 회복되면 다시 파내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한계까지 혹사한 끝에 제온은 지하 백 미터 지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건?”
제온이 미간을 찌푸렸다.
지하 백 미터 아래 존재하는 것은 사막과 어울리지 않는 석조 건축물이었다.
정확하게는 돌로 이뤄진 문이었다.
사막 깊은 곳에 이렇게 큰 돌이 있는 것도 이상한데, 더군다나 문 형상으로 생겼다.
데이오든이 제온 곁으로 내려왔다.
“찾아냈군.”
“이게…… 뭡니까?”
“던전이다.”
“던전? 그럼 이 문이 던전으로 연결되었다는 말입니까?”
“그럴 거라 짐작한다.”
“짐작? 확실히 모르는 거군요?”
“수십 년 전 우연히 이곳을 발견했다. 내가 들어가기도 전에 모래 속으로 사라졌다.”
“굳이 다시 찾아온 이유가 있습니까?”
“강해져야 하니까.”
“거기서 더 강해지겠다는 말입니까?”
제온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B급 마수도 종잇장처럼 찢어발기는 데이오든이었다.
추정 능력치만 S급 이상.
이미 그렇게 강한데 더 강해지겠다고 오래전에 발견한 던전을 찾아오다니.
이 정도면 아예 양심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수준이었다.
제온의 상식으로는 데이오든의 행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하기를 포기했다.
어차피 자신이 재단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데이오든은 석조 문을 잠시 어루만졌다.
문의 표면에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자들이 잔뜩 새겨져 있었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문자였다.
제온은 아공간에 보관하고 있던 엘프들의 책을 떠올렸다.
의미는 알 수 없지만, 책에 적혀 있는 문자와 똑같았다.
‘엘프들과 관계있는 건가?’
그때 데이오든이 석조 문을 어루만졌다. 그러자 석조 문에서 갑자기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며 문이 활짝 열렸다.
데이오든은 제온에게 들어오라는 말도 없이 석조 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다고 들어오지 말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온전히 제온의 결정에 맡긴다는 의미였다.
‘그래!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
이미 충분히 강한 데이오든도 더 강해지기 위해 정체불명의 던전으로 들어갔다.
강해지기로 마음먹은 제온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제온은 문이 닫히기 전에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쿵!
그가 들어간 직후 다시 석조 문이 닫혔다.
던전 안에 들어오자마자 제온은 마치 허공에서 뚝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예전에 마정석 광산에서도 던전에 입장한 경험이 있기에 이내 적응할 수 있었다.
제온은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봤다.
아득히 높은 천장을 거대한 돌기둥들이 떠받치고 있었다.
돌로 된 벽에는 석조 문에서 봤던 문자와 함께 신을 찬양하는 듯한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신……전 같은 곳인가?”
내부의 분위기나 크기로 보아 어떤 신을 모시는 신전인 것이 분명했다.
석조 건축물로 이뤄진 던전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상할 게 하나 없었다.
어차피 던전 자체가 인간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제온은 문득 데이오든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데이오든은 다른 곳으로 떨어진 건가?”
던전 입구가 하나라고 해서 모두 같은 곳으로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간혹 이렇게 전혀 다른 곳에서 시작하는 경우도 있었다.
“보스가 있는 곳에 가야 만날 수 있겠군.”
이 역시 데이오든이 알려 준 사실이었다.
데이오든을 만나려면 서둘러 보스가 있는 곳으로 가야 했다.
문제는 어떤 통로를 택하느냐였다.
그가 있는 대전에는 네 개의 통로가 존재했다.
그중 어느 통로가 보스가 있는 곳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쯧!”
제온이 혀를 찼다.
정보도 이정표도 없었다.
냉철히 판단할 근거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제온이 가장 싫어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곳에서 머뭇거릴 수만은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데이오든은 보스를 향해 전진하고 있을 것이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가장 작은 통로로 간다.”
제온이 선택한 것은 네 개의 통로 중 가장 입구가 작은 곳이었다.
그곳을 선택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통로가 크면 클수록 큰 마수가 나올 확률이 높아.”
덩치가 큰 마수일수록 강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렇게 덩치 큰 마수에겐 걸맞은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조그만 통로를 선택했다.
통로의 크기가 작다면 나오는 마수도 덩치가 작을 테니까.
제온은 거침없이 조그만 통로로 들어갔다.
통로 안은 매우 어두웠다.
등불은커녕 조그만 불빛 하나 없었다.
제온은 칠흑처럼 어두운 통로를 오직 감각에 의지해 걸어가야 했다.
“후우!”
마정석 광산 지하로 들어갔을 때도 이렇게 어둡지 않았다.
마치 신전 자체가 의지가 있어 외부의 빛을 거부하는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눈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실제로 눈에 마나를 집중했음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시야는 포기한다.”
제온은 미련을 버리고 청각과 후각, 촉각에만 집중했다.
휘잉!
미세한 바람이 느껴졌다.
꽉 막혀 있는 공간의 공기는 움직이지 않는다.
바람이 분다는 것은 어딘가 연결된 공간이 있다는 의미였다.
제온은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신전 형태의 던전이라니? 도대체 이런 던전이 왜 생기는 걸까?’
각성자가 된 지 제법 되었지만, 던전의 생성 원리나 유래에 대해서는 하나도 알지 못했다.
데이오든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지만, 그는 입을 꾹 다물고 말하지 않았다.
데이오든의 분위기로 보아 분명 아는 것 같은데 말이다.
‘혹시 던전의 생성이 지구가 이렇게 파괴된 원인과 관계있는 건가?’
짐작만 할 뿐 현재로서는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때였다.
쿵! 쿵!
갑자기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무거운 물체가 움직일 때 나는 소리였다.
제온이 멈춰서 귀를 기울였다.
쿵! 쿵! 쿵!
둔중한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뭐지?”
사실 결론은 이미 나와 있었다.
신전 형태의 던전에서 움직일 만한 물체는 마수밖에 없었다.
제온은 지배력을 끌어올리며 전투에 대비했다.
“뭐야?”
한참 마나를 움직이던 제온의 얼굴에 낭패한 기색이 떠올랐다.
근처에서 느껴지는 모래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모래술사.
모든 권능은 모래에서 나온다.
모래가 없으면 반쪽짜리 각성자에 불과했다.
“정말 모래가 하나도 없다고?”
그의 지배력이 미치는 범위 안엔 모래 한 알갱이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기에 제온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미친!”
쿵! 쿵! 쿠웅!
그 순간에도 둔중한 발소리가 가까이 접근했다.
이어 어둠 속에서 수많은 눈들이 나타났다.
제온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그가 지나온 통로에도 눈들이 나타났다.
어둠을 밝히는 은은한 안광에 그들의 실루엣이 드러났다.
눈의 주인들은 인간과 똑같은 형태를 하고 있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들의 육체가 돌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제온과 키는 비슷하지만 덩치가 훨씬 크고, 투박했다.
이런 종류의 마수는 하나밖에 없었다.
“골렘인가?”
그것도 무려 돌로 만든 골렘이었다.
정상적으로 모래를 사용해도 승산이 있다고 자신할 수 없는 최악의 상대다.
그런 골렘들이 무려 수십 기나 제온을 포위하고 있었다.
“제기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