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11)
211화
거대한 모래산 위에 모래색과 똑같은 위장 로브를 입은 이들 십여 명이 엎드려 있었다.
그들이 있는 곳에선 제온과 오크들이 격돌하는 광경이 환히 내려다보였다.
위장 로브를 입고 있는 이들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저게 무슨?”
“내가 뭘 본 거지?”
고개를 든 그들의 얼굴엔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이 이곳에 도착한 것은 오 분 전.
제온이 막 오크들과 격돌하기 직전이었다.
처음에 그들은 제온을 비웃었다.
겁도 없이 오크 무리를 향해 홀로 걸어가는 그의 모습이 무모한 객기로 보였던 것이다.
자살하지 못해 안달인 자, 혹은 오크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는 햇병아리.
그들은 제온이 오크 기수들에게 순식간에 찢겨 나갈 거라 예상했다.
많은 엘프와 드워프 들이 그랬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상상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갑자기 모래바람이 불어오더니 오크들을 집어삼키고, 순식간에 갈아 버린 것이다.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광경이었다.
심지어 이런 일이 가능할 거라고도 생각조차 못 했다.
처음엔 자연적으로 일어난 일인 줄 알았다.
가끔씩 불어닥치는 사막의 폭풍은 너무 거세 모든 것을 순식간에 날려 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생명체를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갈아 버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적어도 그들의 상식으로는 그랬다.
그 불가능한 일이 눈앞에서 일어났다.
누가 알려 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오크들을 모조리 갈아 버린 모래 폭풍을 불러일으킨 자가 바로 겁도 없이 앞으로 나섰던 남자라는 것을 말이다.
‘저게 사람이 한 짓이라고?’
‘도대체 각성 스킬이 뭐기에?’
제온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동자엔 공포가 어려 있었다.
오크들을 흔적도 없이 갈아 버린 저 스킬이라면 자신들 역시 이 세상에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질 수 있기에.
모래산에 엎드려 있는 이들 중 유독 날씬한 이와 뚱뚱한 이가 조용히 대화를 나눴다.
“어떡하지? 접촉할까요?”
“인간과 접촉한다고? 장로들이 용납하지 않을 거다.”
“그럼 이대로 철수할까요?”
“오크 기수들도 사라졌으니 물러나자.”
두 사람은 일행을 향해 철수를 의미하는 손짓을 했다. 그러자 모래산에 엎드려 있던 자들이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났다.
제온이 있는 곳에선 절대 이곳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조심해야 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모래산을 내려왔다.
모래산 아래엔 십여 마리의 쌍봉낙타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쌍봉낙타를 타고 바로 모래산을 떠났다.
“이랴앗!”
“차앗!”
그들이 쌍봉낙타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그러자 쌍봉낙타가 더 빠른 속도로 사막을 질주했다.
무리 선두에서 쌍봉낙타를 모는 이가 중얼거렸다.
“인간 중에 저런 자가 있을 줄이야.”
방금 전 봤던 광경이 아직도 뇌리에 선명히 남아 있었다.
곱씹을수록 무서운 광경이었다.
“모래를 다루다니. 설마 모래술사…… 그런 건가?”
“모래술사가 있을 리가. 다른 스킬을 이용해 비슷한 효과를 낸 거겠지.”
곁에서 달리던 뚱뚱한 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우리 눈으로 봤잖아요.”
“인간은 원래 교활해 속임수에 능하다. 분명 그 남자 역시 그럴 것이다. 모래술사라니, 말도 안 되는…….”
뚱뚱한 이는 날씬한 이의 의견을 격렬히 부정했다. 그에 날씬한 이도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거의 반나절을 쌍봉낙타를 달려 도착한 곳은 아무것도 없는 사막 한가운데였다.
이정표 삼을 만한 그 어떤 물체도 없는 곳이었다.
이곳이 바로 그들의 목적지였다.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날씬한 이가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섰다.
“보이지 않는 빛, 환각의 장막, 열리지 않는 문, 거슬러 올라가는 물. 현혹에 가려진 진실의 문이여, 본모습을 내게 보여라.”
순간 그 앞에 푸른빛이 터져 나왔다.
빛의 선은 허공을 무섭게 치달으며 마법진을 만들었다.
마침내 마법진이 완성되자 앞에 커다란 문이 나타났다.
일행은 쌍봉낙타를 끌고 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들어간 직후 문은 닫혔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원래의 풍경으로 돌아갔다.
문안에 들어선 직후 이들은 위장 로브의 모자를 벗었다.
그러자 드러나는 본모습.
금빛 머리카락, 뾰족한 귀, 구릿빛으로 그을린 피부.
그들은 바로 사막 엘프들이었다.
유독 뚱뚱한 이만 종족이 달랐다.
땅딸막한 체형에 불뚝 나온 배, 가슴까지 가리는 풍성한 수염.
남자는 바로 드워프였다.
엘프와 함께 쿠라얀에서 지구로 넘어온 이종족이었다.
드워프가 어깨에 묻은 먼지를 털어 내며 투덜거렸다.
“썩을! 밖에 나갔다 오면 이렇게 더러워진다니까. 정찰은 너희 귀쟁이들만 하면 되는 것 아냐? 왜 나까지 끌고 나가는 건지 모르겠네.”
“장로들의 명령이니 우리도 어쩔 수 없죠. 투덜거리는 것은 그쯤 하고 어서 장로들께 우리가 본 광경을 보고하죠.”
“흥! 그러지 않아도 그럴 참이다. 빨리 말씀드리고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 마을이 위험해질 테니까.”
드워프가 콧방귀를 뀌며 걸음을 옮겼다.
얼굴엔 불만이 가득했지만, 그래도 보고할 것은 해야 했다.
그것이 그들의 임무였기 때문이다.
그들 눈앞에 거대한 마을이 있었다.
광장의 모습은 강철 요새와 거의 흡사했다.
수많은 집들이 길을 따라 쭉 늘어서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은 이곳이 지하가 아니라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모래 위라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이곳에 사는 이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대부분이 엘프였고, 간혹 드워프들이 보였다.
이곳은 사막 엘프와 드워프들이 합작해 만든 마을이었다.
드워프가 사막 한가운데 마을을 만들고, 엘프들이 힘을 합쳐 보호 마법진을 펼쳐 보호했다.
보호 마법진엔 환각, 은신, 그리고 보호의 기능이 담겨 있었다.
외부에서는 마을 대신 끝없이 펼쳐진 모래만 보이는 것이다. 또한 누군가 가까이 접근하게 되면 감각이 교란되며 주위를 헤매다가 자연스럽게 마을 반대편으로 나가게 되어 있었다.
그 덕분에 지난 백 년 동안 마을은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유지될 수 있었다.
외부에서 거대한 충격이 가해지지 않는 한 보호 마법진은 깨지지 않는다. 이 마법진 덕분에 엘프와 드워프 들은 순수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마을은 엘프와 드워프 장로들 여섯 명의 합의로 운영되었다.
두 사람이 향하는 가장 큰 집에 장로들이 모여 있었다.
늙은 엘프 넷에 드워프 둘이었다.
“다녀왔습니다.”
“그래! 오크들은 어떻게 되었느냐? 진격 방향이 이쪽 맞느냐?”
인사하기 무섭게 늙은 여자 엘프가 다그쳐 물었다.
그에 정찰을 다녀온 엘프가 차분히 대답했다.
“당장은 오크들이 진격을 멈춰서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진격을 멈췄다고? 왜?”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멈춰 서 있습니다.”
“그거 다행이군.”
늙은 엘프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을을 보호하는 마법진은 무적이 아니다.
평범한 인간들, 마수들의 눈을 속일 수는 있지만, 감각이 유독 예민한 생명체까지 속일 수는 없다.
오크들이 그런 존재였다.
무식하고 호전적인 주제에 감각은 더럽게 예민해서 이질적인 것이 있으면 금방 눈치챈다. 그래서 오크 대군장이 탄생해 오크들을 규합했을 때 마을에 비상이 걸렸다.
혹시라도 이 근처를 오크들이 지나가기라도 하면 마을의 존재를 눈치챌 수 있기 때문이다.
소규모 오크 무리라면 두려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무려 오크 대군장이 이끄는 대군이었다.
그들이 들이닥치면 보호 마법진 따윈 순식간에 깨지고, 마을의 모든 엘프와 드워프 들이 쓸려 나갈 것이다.
그 때문에 그들은 정찰대를 보내 오크들의 동향을 감시하게 했다.
“그런데…….”
“왜 그러느냐?”
“귀환하다가 이상한 광경을 봤습니다.”
“응?”
“오크 기수 수백 명이 급히 이동해서 따라가 봤더니 인간 각성자와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인간이 모래를 제 마음대로 부리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같이 정찰 나갔던 드워프가 급히 말했다.
“그 인간이 속임수를 쓴 것이 분명합니다. 모래를 부리는 각성자라니, 말도 안 됩니다.”
“하지만 그는…….”
“쿠라얀에서도 모래술사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낱 인간 따위가 모래를 다루는 권능을 가졌을 리 없습니다.”
정찰을 나갔단 온 드워프는 엘프의 의견에 격렬하게 반응했다.
장로들이 미간을 찌푸리며 드워프의 말을 경청했다.
잠시 후 그들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오크 기수들이 인간에 의해 전멸한 것은 사실이란 말이구나.”
“그렇습니다.”
“그렇게 강한 인간이라니.”
장로들이 신중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그들 여섯은 오랜 시간 동안 이 마을을 지배해 왔다.
그들에게 인간은 못 믿을 존재였다.
“인간들이 이곳으로 올 확률은?”
“현재로서는 어느 것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정찰을 나갔던 엘프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세이나! 실망스럽구나. 너의 임무가 마을에 위협이 되는 모든 것을 파악하는 것인데.”
늙은 엘프가 실망스럽다는 표정으로 정찰을 나갔던 엘프를 바라봤다.
정찰을 나갔던 엘프의 이름이 바로 세이나였다.
그때 같이 정찰을 나갔던 드워프가 입을 열었다.
“그 인간들이 꽤 강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니 오히려 이용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델로루! 좋은 생각이 있는가?”
“인간을 오크 무리가 있는 곳으로 유인하는 겁니다.”
“서로를 공격하게 만들잔 건가?”
“그렇습니다. 그럼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공멸할 거고, 우리 마을도 안전할 겁니다.”
“좋은 생각이군.”
장로들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들은 세이나와 델로루가 듣지 못하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의견을 나눴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세이나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안 돼! 아무리 인간이라도 그렇게 이용해서는…….’
하지만 세이나는 미처 자신의 속내를 말할 수 없었다.
이곳에선 장로들의 권한이 절대적이었다.
그들 덕분에 마을이 아직까지 생존할 수 있었기에 거역한다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마침내 장로들이 결정을 내렸다.
“좋다! 이 일은 둘이 알아서 진행하도록 하라.”
“걱정하지 마십시오.”
“단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 마을에 피해가 가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라.”
“물론입니다. 마을엔 절대 해가 되지 않도록 제 선에서 처리하겠습니다.”
델로루가 자신의 가슴을 쾅쾅 치며 호언장담했다.
장로들이 흡족한 표정으로 델로루를 바라봤다.
“너만 믿겠다.”
***
해가 지는 순간 뜨겁게 달아올랐던 모래는 급속히 식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기온이 하강한다.
낮에 덥다고 얇은 옷만 입고 있다가는 밤에 얼어 죽기 십상이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그렇게 죽었다.
그러나 제온 일행에겐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제온은 모래를 움직여 네 사람이 들어갈 만한 구덩이를 팠다.
네 사람이 구덩이에 들어가자 다시 모래를 움직여 위쪽을 막았다. 순식간에 든든한 쉘터를 만든 것이다.
“아무리 봐도 사기라니까.”
엘로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는 제온이 수많은 오크 기수들을 샌드 스톰으로 갈아 버리던 광경을 떠올렸다.
그것만으로도 팔뚝에 소름이 올라왔다.
아직도 그때의 광경이 잊히지 않았다.
과연 인간의 능력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사막에 과연 저 인간의 적수가 있을까?’
엘로이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사막에서 제온이 누군가에게 무릎을 꿇는 광경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이자가 만일 네오 서울에 악심을 품으면 어떻게 될까?’
부르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절로 진저리가 쳐졌다.
엘로이가 자신도 모르게 미친 구미호를 깊이 껴안으며 제온을 바라봤다.
‘이자가 네오 서울과 인류에게 적개심을 가지지 않길 비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