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14)
214화
불은 예로부터 사람에게 안도감을 줬다.
비록 조그마하긴 하지만 모닥불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각성자들은 안정을 찾았다.
비록 하루뿐이긴 하지만 차를 잃고 정처 없이 사막을 헤매고 다닌 것만으로도 그들은 엄청난 압박감을 받았다.
“휴우!”
“살았다.”
모닥불 주위에 모인 각성자들이 절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 갑작스럽게 수많은 각성자들과 합석하게 된 브리엘은 입술을 삐죽였다.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오붓한 피크닉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그냥 도깨비 시장 한가운데 서 있는 기분이었다.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에 머리가 다 지끈거릴 정도였다.
그때 장용범이 제온에게 말했다.
“불청객들을 받아 줘서 고맙긴 한데, 이제 그쪽도 정체를 밝혀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공평할 것 같은데.”
그때 엘로이가 앞으로 나섰다.
“오랜만이네요.”
“오랜만?”
“저 맨디예요.”
“혹시 시청 소속 슈퍼바이저?”
“맞아요.”
장용범의 정체를 확인한 순간 맨디의 인격이 튀어나왔다.
다행히 장용범은 맨디를 알고 있었다.
“당신이 왜 이곳에? 페가수스 공략대와 함께 던전 공략에 나섰다고 들었는데.”
“거기까지 알고 있나요?”
“그런데 당신은 던전 공략 도중 죽지 않았나?”
“네오 서울은 그렇게 알고 있나 보군요.”
“페가수스 공략대가 그렇게 보고했으니까.”
“그 개새끼들!”
“쯧! 더러운 사정이 있었던 모양이군.”
장용범이 혀를 찼다.
하지만 그렇게 크게 놀라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 정도 야료는 각성자 세계에서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온갖 음모와 협잡질이 판치는 곳이 바로 각성자 세계였다.
페가수스 공략대 규모의 단체를 이끄는 자라면 분명 온갖 협잡질에 능할 것이다.
장용범 자신처럼 말이다.
“페가수스 공략대는 무사히 귀환한 모양이군.”
“엄청난 전리품들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 때문에 한동안 네오 서울이 떠들썩했습니다.”
“이지령의 기분이 하늘을 찔렀겠네요.”
“공식적으로 S급 각성자로 인정받았어. 이젠 정말 거물이 되었어.”
담담히 말하는 장용범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분명 질투의 빛이었다.
장용범은 A급 각성자였다.
이지령과 달리 규모가 큰 단체를 이끄는 것이 적성에 맞지 않아 소수의 파티만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항상 이지령에게 경쟁심을 가지고 있었다.
대외적으로 똑같은 A급 각성자였기 때문이다.
본인은 의식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비교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각성자 세계에서 비교는 피할 수 없었다.
대부분은 이지령의 우세를 점쳤다.
개인의 능력에 상관없이 거대 공략대를 이끄는 것만으로 후한 점수를 준 것이다.
그것이 늘 불만스러웠던 장용범이었다.
그럼에도 표를 내지 않았던 것은 실제로 싸우면 자신이 이길 거라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지령은 S급 각성자가 되었다.
장용범과 넘을 수 없는 격차가 생긴 것이다.
겨우 한 등급 차이라고 하지만, S급과 A급엔 결코 넘을 수 없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D급에서 C급으로 되는 것이 바가지에서 세숫대야로 커지는 거라면, A급에서 S급이 되는 것은 연못에서 저수지로 커지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마나의 총량, 스킬의 경험치, 전투 감각 그 모든 것이 극한까지 도달한 후에 높다란 벽에 균열을 내야만 간신히 엿볼 수 있는 경지인 것이다.
장용범은 아직 S급이 될 어떤 가능성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이지령은 한계를 돌파해 S급이 됐다.
장용범이 아직도 연못 수준이라면 이지령은 커다란 저수지가 된 것이다.
당연히 장용범이 열등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장용범이 물었다.
“던전에서 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놈이 S급이 된 거지?”
“그게 중요한가요?”
“중요해! 내게는 무엇보다…….”
“모두가 듣는 앞에서 할 말은 아닌 것 같군요. 나중에 조용히 말씀드리죠.”
맨디의 대답에 장용범이 잠시 미간을 찌푸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S급이 된 이지령의 위상은 이전과 차원이 달랐다.
네오 서울의 지배자들도 이젠 감히 그를 무시하지 못할 정도였다.
던전 공략 중에 수많은 각성자가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그보다 많은 각성자가 페가수스 공략대에 지원했다.
그 때문에 오히려 던전 공략 전보다 세력이 크게 늘었다.
그런 엄청난 위상을 가진 자의 뒷담화를 모두가 보는 앞에서 할 수는 없었다.
장용범이 제온을 바라봤다.
“아까 돼지 닮은 마수 이름이 오크라고 했나?”
“맞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어디서 그런 놈들이 나온 건지 아는 게 있나?”
“본래는 사막 곳곳에 흩어져 사는 종족입니다. 네오 서울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아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놈들이 갑자기 왜 저렇게 무리 지어 나타난 거지?”
“오크 대군장이라는 마물이 탄생했습니다.”
“대군장?”
“던전의 보스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오크 대군장이 탄생하면서 사막 곳곳에 흩어져 있던 놈들을 규합하고 있습니다.”
제온의 말에 장용범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소규모 무리라면 그리 무서울 것 없었다.
오크가 강하긴 했지만, D급 정도 각성자라면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군장이 탄생해 거대 무리가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람이든 마수든 세를 불리면 더 위험해지기 마련이다.
“대군장의 등급은?”
“아직 보지 못해 정보가 없습니다.”
“그런가?”
“곧 알게 되겠죠.”
“우리가 대군장을 만날 거라 생각하는 건가?”
“아마도요.”
“흥미롭군.”
장용범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는 네오 서울에서 꽤 유명한 각성자 중 한 명이었다.
A급 각성자인 데다가 냉혹하고 파괴적인 성격으로 유명했다. 때문에 그를 직접 만난 이들은 모두 두려워했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제온은 그를 두려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마치 동네 친구와 대화하듯이 편하게 말을 하는 것이다.
자신이 분명 장용범인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장용범은 제온이 보통 각성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아직 너의 이름도 모르고 있군. 이름이 어떻게 되지?”
“제온입니다.”
“제온?”
순간 장용범이 미간을 찌푸렸다.
한번 들어 본 이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서 들은 건지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장용범 곁에 있던 에이든이 제온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네가 그 모래술사구나.”
“모래술사?”
“네오 서울에 모래술사가 나타났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자의 이름이 제온이었습니다.”
“제온? 그렇군! 모래술사였어. 그래서 사막에서 모닥불을 피워 놓고도 태연했던 거였어.”
장용범은 그제야 지금의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됐다.
평범한 각성자였다면 사막에서 이렇게 태연하게 야영하지 못했을 것이다.
“모래술사…… 너도 페가수스 공략대에 참여했던 건가? 대체 던전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슈퍼바이저와 함께 이곳에 나타난 거지? 페가수스 공략대가 공략한 던전은 이곳에서 수백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하죠. 피곤할 텐데 쉬십시오.”
제온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용범은 멀어져 가는 제온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다른 자가 그의 앞에서 이렇게 건방을 떨었다면 당장 클레이모어로 두 쪽 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모래술사였다.
오크가 가득한 사막에서 생존하려면 그의 도움이 필수였다.
시건방을 떤다고 죽일 만한 대상이 아닌 것이다.
지젤이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우리와 동행한 적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니까요. 분명 본 것 같은데,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네.”
“같이 가다 보면 자연히 알게 되겠지.”
“꽤 잘생겼는데 확 내가 자빠트려 볼까?”
지젤이 빨간 혀로 입술을 핥았다.
그에 에이든이 피식 웃었다.
“어떻게? 벌써 계집을 둘이나 끼고 있는데.”
“저깟 것들이 내 상대가 될 거 같아?”
“너보다 나은 것 같은데.”
“죽을래?”
“워워, 진정하라고. 난 네 적이 아니라니까.”
지젤이 도끼눈을 치켜뜨자 에이든이 항복한다는 듯이 양손을 들어 올렸다.
***
새벽부터 모래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제온 일행과 합류한 각성자들은 투덜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더럽게 덥네.”
“씨발! 콧구멍에 모래가 가득해.”
각성자들의 얼굴과 몸에는 모래가 잔뜩 묻어 있었다.
반면 제온 일행은 멀쩡했다.
제온이 지배력으로 모래를 막아 줬기 때문이다.
아직 다른 각성자들은 제온이 모래술사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장용범과의 대화를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온 일행만 모래를 뒤집어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미처 인지하지 못했다.
각성자들은 각자 가지고 온 고열량 에너지 바로 허기를 때웠다.
보관하기도 편하고, 하나만 먹어도 반나절을 움직일 만한 에너지를 공급해 주기에 각성자들은 고열량 에너지 바를 배낭에 가득 채우고 다녔다.
제온 일행도 에너지 바로 허기를 때운 후 자리를 떴다.
그가 움직이자 장용범 파티가 자연스럽게 뒤를 따랐고, 그 뒤를 또 각성자 무리가 따랐다.
장용범 파티야 제온이 모래술사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기에 따르는 거였고, 다른 각성자들은 장용범 파티를 믿기에 따르는 거였다.
선두에서 걷는 제온의 곁으로 장용범이 다가왔다.
“방향은 어떻게 잡는 건가? 태양으로 가늠하는 건가?”
“그냥 압니다.”
“그냥?”
“네!”
“길잡이가 따로 필요 없겠군. 감지 범위는 어떻게 되지? 모래술사라면 당연히 모래를 이용해 감지할 거 아냐? 그래서 마수의 유무도 판단하는 걸 테고.”
“그쪽의 스킬은 뭔가요? 클레이모어의 순수 파괴력을 선호하는 쪽입니까? 오러 블레이드는 만들 수 있는 겁니까?”
“하하!”
제온의 질문에 장용범이 웃음을 터트렸다.
장용범의 질문은 이를테면 영업 비밀을 묻는 것이었다.
제온의 지배력이 미치는 범위를 알면 여러 가지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제온의 등급, 공격 범위 같은 것을 말이다.
나중에 제온과 척졌을 때 중요한 정보가 된다.
제온이 장용범에게 오러 블레이드를 펼칠 수 있냐고 물어본 것도 똑같은 의미였다.
요컨대 이쪽의 약점을 알고 싶으면, 너도 밝히라는 것이다. 그리고 장용범은 절대 자신의 약점을 말할 사람이 아니었다.
“재밌군!”
“저는 별로 재미가 없습니다만.”
“왜 너 같은 자를 기억하지 못할까? 그때도 이 정도였다면 분명 깊이 인상이 남았을 텐데.”
“그때는 제가 별 볼 일 없을 때니까요.”
“각성하기 전인가 보군.”
“네!”
장용범은 집요하게 제온의 정보를 파악하려고 했다. 하지만 제온은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이 녀석도 보통 능구렁이가 아니군.’
장용범이 혀를 찼다.
결국 쓸 만한 정보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그래도 한 가지만은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어린 나이지만 수많은 경험을 한 게 분명해. 연륜이 느껴져.’
그때 제온이 전방을 바라보며 말을 끊었다.
“쓸데없는 잡담은 그만해야겠군요.”
“왜, 나와 이야기하기 싫은가?”
“방해자들이 나타나서 말이죠.”
“방해자?”
그제야 장용범이 제온이 보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의 눈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뭐가 보인다는 거지?”
“오크들입니다.”
“뭐?”
제온의 대답이 끝나는 순간 지평선 근처에서 먼지구름이 일어났다.
순간 장용범의 온몸에 소름이 돋아 올랐다.
‘설마 저 먼 곳의 움직임을 감지했다는 건가? 이 녀석은 대체…….’
그가 막연히 상상했던 것보다 제온의 감지 범위가 광활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