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17)
217화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일대의 모래가 제온을 중심으로 회전했다.
“뭐야?”
“우와앗!”
간신히 샌드 믹서의 전권에서 벗어난 각성자들이 경호성을 내뱉었다.
수십 미터 반경의 모래가 마치 믹서기처럼 회전하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오크들이 있었다.
평범한 오크가 아니다.
문신의 버프를 받은 광전사 상태의 오크였다.
고통도 두려움도 느끼지 못하는 미치광이 오크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오크들의 얼굴엔 극심한 공포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모래가 오크들의 무릎까지 덮여 있었다.
오크들은 힘으로 모래를 뚫고 나오려 했다. 하지만 모래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는지 요지부동이었다.
그사이 모래는 그들의 발목과 정강이를 갉아내고 있었다.
산채로 갈려 나가는 고통은 끔찍했다.
“쿠워어어어!”
“취잇! 살려…….”
“크엑!”
어지간한 고통 따윈 코웃음 치며 버틴다는 오크들이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오크들의 몸이 점점 깊이 모래에 파묻혀 갔다.
이젠 허리까지 모래에 잠겼다.
덩달아 오크들의 절규도 증폭됐다.
“뀌이익!”
“끄악!”
말 그대로 돼지 멱따는 소리가 사막에 울려 퍼졌다.
각성자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오크들의 고통이 마치 자신들의 고통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만큼 오크들의 비명은 처절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아나고, 모골이 송연해졌다.
이런 느낌은 난생처음이었다.
늘 죽음과 함께하는 각성자들이었다.
마수, 인간의 위협에 언제든 죽을 각오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온이 펼치는 샌드 믹서는 그런 각성자들마저 두렵게 만들 정도로 끔찍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오크들은 더 이상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이미 가슴 부위까지 갈려 나갔기 때문이다.
폐와 장기가 사라진 생명체가 비명을 지를 수 있을 리 없었다.
무섭게 회전하는 모래는 오크들의 남은 상체마저도 집어삼켰다.
가아앙!
숨 막히는 고요 속에서 오직 모래만이 맹렬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그 중심에 제온이 있었다.
각성자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입을 열었다가는 제온의 스킬이 자신을 대상으로 펼쳐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각성자들에겐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그들이 참았던 숨을 토해 낸 것은 마침내 모래의 회전이 완전히 멈췄을 때였다.
“푸하!”
“크허어!”
숨을 참느라 각성자들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들이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제온을 바라봤다. 하지만 정작 제온은 평온한 표정으로 모래 위를 걷고 있었다.
그가 향한 곳에 장용범이 있었다.
“괜찮습니까?”
“끄떡없다. 이 정도 상처 따윈 아무것도 아냐.”
“팔 하나를 잃었는데요?”
“네오 서울에 돌아가면 의수라도 하나 달아 놓지. 기계화 각성자들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쓸 만한 기계 의수가 있을 거야.”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흐흐! 살아만 있으면 네오 서울에서 고쳐 주지. 특히 나 같은 귀중한 전력은 각별히 신경 써 치료해 준다. 그러니까 그딴 표정으로 바라보지 말라고.”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움직이겠습니다. 그때까지 몸 상태를 끌어올리십시오.”
제온이 몸을 돌릴 때였다.
“잠깐! 대장은 충분히 휴식을 취해야 해. 바로 움직이는 것은 무리야.”
에이든의 목소리가 제온을 붙잡았다.
“저도 그러고 싶지만, 오크들이 언제 추격해 올지 모릅니다.”
“으음!”
에이든이 침음성을 흘렸다.
자신들을 공격했던 오크들이 전멸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분명 다른 오크들이 추적해 올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제온의 말을 듣기엔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말했다.
“당신의 능력으로 막으면 되지 않나? 아까 그 스킬을 쓰면 아무리 많은 오크가 와도 정리할 수 있잖아?”
“그렇게 함부로 남발할 만한 스킬이 아니라서요. 마나가 많이 소비되어 저에게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음! 그렇겠군.”
에이든이 납득했다.
강력한 스킬일수록 많은 마나가 소비되기 마련이다.
한번 소비된 마나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방금 전 제온이 보여 준 위력의 스킬이라면 더더욱 많은 마나가 소비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하긴 그래야 균형이 맞지. 모래술사라는 직업도 사기적인데, 아무런 제약 없이 스킬을 펑펑 써 대면 누가 저자를 막겠는가?’
에이든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제온이 슬쩍 미소 지었다.
에이든의 생각을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실 하루에 몇 번이고 샌드 믹서를 쓸 수 있었지만, 굳이 그런 사실을 말해 줄 필요는 없었다.
제온이 엘로이에게 향했다.
엘로이 앞에는 엘프 두 명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라퓨나와 그녀의 수하였다.
둘 다 모두 엉망으로 망가져 있었다.
제압 과정에서 엘로이가 심한 폭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감정이 깃들었군.’
그것까지 뭐라고 할 수는 없다.
순혈 엘프들을 향한 엘로이의 증오는 뼛속 깊이 박혀 있었으니까.
제온이 다가오자 라퓨나와 수하가 두려운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바로 눈앞에서 제온이 오크들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보았기 때문이다.
저 저주받은 스킬을 자신들을 향해 펼치면 흔적도 없이 갈려 나갈 것이 분명했다.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저렇게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아무것도 아닌 채로 죽고 싶지는 않았다.
‘이자는 죽음의 신인가? 어디서 이런 인간이…….’
극심한 두려움에 사고가 마비되는 것 같았기에 라퓨나는 정신줄이 끊어지지 않도록 이를 악물어야 했다.
그녀의 수하는 패닉 상태에서 소리쳤다.
“이 저주받을 존재야. 어쩌자고 신은 인간인 너에게 허락받지 않은 힘을 내려 줬단 말이냐? 원망스럽구나.”
눈동자가 회까닥 돌아간 게 정상이 아니었다,
극심한 공포에 미쳐 버린 것이다.
“하아! 얘는 별 쓸모가 없을 것 같네.”
퍽!
엘로이가 창두로 그런 엘프의 뒤통수를 찍었다.
엘프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제온이 한쪽 무릎을 꿇어 라퓨나와 시선을 맞췄다.
“왜 그랬습니까?”
“뭐, 뭐가 말이냐?”
“왜 오크들을 우리에게 유인해 왔냐는 말입니다.”
“그런 적 없다. 오크들이 우리를 추적해 와 어쩔 수 없이 도주했을 뿐이다.”
“그럼 일부러 유인한 게 아니란 말입니까?”
“그렇다.”
라퓨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변명했다.
어떻게든 마을의 존재를 숨겨야 했다.
마을을 살리기 위해 오크들을 유인해 왔다는 사실을 제온이 알게 되면 어떤 짓을 할지 몰랐다.
제온은 라퓨나의 눈동자를 들여다봤다.
라퓨나는 동요를 감추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제온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이 근처에 엘프들의 마을이 있군요. 어딥니까?”
“우리 마을은 이곳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아직 거짓말이 익숙하지 않군요. 사막 엘프 레인저들의 활동 영역은 마을을 중심으로 겨우 수십 킬로미터 정도에 불과할 텐데요.”
“그, 그걸 어떻게?”
제온이 대답 대신 피식 웃었다.
사막 엘프들의 생활 양식과 활동 반경을 자신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엘프들은 원래 거짓말을 잘 못 하는 족속이었다.
순수해서가 아니라 서툴러서였다.
그나마 네오 서울에 정착한 엘프들은 인간들에게 물들어 제법 교활해졌다. 하지만 사막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한 엘프들에겐 그런 영악함이 존재하지 않았다.
갑자기 라퓨나가 바닥에 엎드렸다.
“잠깐! 우리 마을은 건들지 마라. 모든 것이 내 독자적으로 결정한 거다.”
“당신이요?”
“그렇다. 내가 우리 마을을 지키기 위해 오크들을 유인했다.”
“그걸 믿으라구요?”
“진짜다. 맹세해도 좋다.”
“평범한 엘프들의 맹세는 그리 믿음이 가지 않는군요.”
“그런…….”
라퓨나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어떻게 해서든 변명을 이어 가야 했지만, 머릿속이 텅 비어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때 나선 것이 브리엘이었다.
“제온!”
“왜?”
“설마 엘프족 마을을 공격할 건 아니지?”
“글쎄!”
“이번 한 번만 봐주면 안 될까? 나를 봐서…….”
“너를 봐서?”
“어떻게 보면 이들도 낙오자잖아. 이렇게 낙오된 자들의 마음은 좁아질 수밖에 없어.”
‘……하이 엘프 마을처럼.’
브리엘은 뒷말을 집어삼켰다.
그녀가 태어난 마을도 정체되어 있었다.
지구로 넘어온 지 백 년이 넘었지만, 초창기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엘프들의 사고방식도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마을에 있을 때는 그것이 순수성을 유지하는 올바른 방법이라 여겼지만, 인간들의 세상에 오래 머물다 보니 자신들이 얼마나 정체되었는지 확실히 깨달았다.
인간들은 지옥 같은 세상에 적응해 무섭게 발전하고 있었다.
반면 엘프들은 시간의 감옥 속에 갇혀 있었다.
어쩌면 세상을 망가트린 형벌을 받는 건지도 몰랐다.
그런 엘프들이기에 시야가 크게 좁아졌고,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 무고한 인간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제온이 굳이 처벌하지 않아도 시간의 흐름 속에 도태되어 사라질 것이다.
극적인 변화가 없으면 말이다.
이제 제온의 결정만 남았다.
제온이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브리엘은 겸허히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마침내 제온이 입을 열었다.
“내가 살육에 미친 살인마도 아니고, 마을을 몰살시킬 수는 없지.”
“그럼?”
“그래도 경고는 해 줘야겠지.”
제온의 시선이 라퓨나에게 향했다.
“마을 장로들에게 똑똑히 전해요.”
“무슨?”
“이번은 그냥 넘어가지만, 다음에도 이런 수작을 부린다면 마을을 통째로 무너트리겠다고요.”
“그런?”
“봐서 알잖아요? 나라면 당신들이 백 년 동안 세운 마을을 순식간에 무너트릴 수 있다는 것을.”
사막 엘프들의 마을이 어딘지 모르지만, 알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분명 모래 속에 커다란 구덩이를 파고 만들었을 테니까.
대부분의 사막 엘프 마을이 그렇듯이 말이다.
모래 속에 있다면 제온의 감각을 벗어날 수 없었다. 모래는 제온의 편이었으니까.
라퓨나가 급히 대답했다.
“그, 그렇게 전할게요.”
“그럼 가 봐요. 내 마음이 변하기 전에…….”
제온의 손짓에 라퓨나가 부하를 어깨에 둘러업고 부리나케 도주했다.
그 모습에 몇몇 각성자들이 분통을 터트렸다.
“아니, 그 엘프들을 그냥 보내 주면 어떡합니까?”
“저들 때문에 몇 명이 죽었는데.”
“이걸 이렇게 독단적으로 결정하다니.”
순간 제온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각성자들은 이게 문제다.
구해 줘도 고마움이 오래 못 가고, 두려움도 금방 잊어버린다.
그들의 분노는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선을 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그럼 이쯤에서 헤어지죠.”
“뭐?”
“내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면, 이쯤에서 헤어져 따로 가자구요.”
“그, 그건…….”
“어차피 엘프들이 유인하지 않았어도 오크들과 마주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다만 그 시기가 조금 앞당겨졌을 뿐이죠. 그래도 내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지금 바로 헤어지죠.”
제온의 차가운 말에 각성자들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장용범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저 멍청이들 말은 다 무시해. 각성자 주제에 겁쟁이니까.”
“그럼 장용범 씨는 제 결정을 받아들이는 겁니까?”
“당연하지. 이 사막에서 살아남으려면 좋으나 싫으나 네 곁에 붙어 있어야 하는걸.”
“그럼 앞으로 제 말을 따르겠습니까?”
“옛썰! 대장.”
장용범이 능글맞게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