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18)
218화
오크 대군장 오르카는 모래 언덕 위에 서서 사막을 내려다봤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 수천이 넘는 오크들이 있었다.
지금도 사막 곳곳에서 오크들이 속속 합류하고 있었다. 당장은 수천에 불과하지만, 며칠만 지나면 수만 명으로 불어날 것이다.
수만의 오크가 함께한다면 못 할 것이 없었다.
“인간들의 도시를 무너트리고, 차지할 것이다. 이 세상의 주인은 우리 오크족이다.”
자신에겐 오크족을 세상의 주인으로 만들 책임이 있었다.
그것이 오크 대군장인 자신이 탄생한 이유였다.
그때 제사장이 오르카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인가? 제사장!”
“강카라와 연결이 끊겼습니다.”
“강카라가 죽……었단 말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같이 간 강철 오크족은?”
“그들에게서도 아무런 기운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순간 오르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들이 모두 당했다고?”
“그런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새겨 준 문신의 기운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강철 오크족에게 새겨 준 문신을 통해 제사장은 그들의 생사를 알 수 있었다.
조금 전 강철 오크족의 문신과 연결되어 있던 마나의 흐름이 완전히 끊겼다.
마나의 흐름이 끊겼다는 것은 곧 문신을 새긴 오크들이 죽었다는 뜻이었다.
“누가 죽였지?”
“그것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붉은 망치족에 이어 강철 오크족까지 몰살당했단 말이군.”
“죄송합니다.”
제사장은 마치 자기 잘못인 것처럼 고개를 숙여 사죄했다. 하지만 오르카는 제사장에겐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서쪽이었다.
“저곳에서 붉은 망치족과 강철 오크족이 전멸했다. 저곳에 우리 오크들을 위협하는 존재가 있다.”
“대군장이시여.”
“나는 느낄 수 있다. 그는 우리 오크족의 숙적이다.”
“숙적입니까?”
“그렇다. 그가 존재하는 한 우리 오크족에게 미래 따윈 없다. 반드시 그를 죽여야 한다.”
누군가 알려 준 것이 아니었다.
오르카의 본능이 그렇게 말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제사장은 그런 오르카의 본능을 매우 신뢰했다.
오르카에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이 있었다.
예지에 가까운 오르카의 감은 이제까지 오크들이 세를 불릴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지금 당장 강철 오크족이 죽은 곳으로 향한다.”
“알겠습니다.”
제사장이 근처에 있던 오크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오크가 들고 있던 뿔고동을 힘껏 불었다.
뿌우우!
뿔고동 소리가 사막에 울려 퍼지자, 휴식을 취하던 오크들이 일어나 오르카를 바라봤다.
오르카가 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곳에 우리 오크족을 위협하는 자가 있다. 가자! 우리의 적을 죽이러.”
“우오오!”
“죽이자. 우리의 적을.”
오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무기를 치켜올렸다.
그들의 함성에 모래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오크들의 행군이 시작됐다.
선두에 오르카가 있었다.
오르카가 중얼거렸다.
“기다려라, 오크족의 숙적이여. 이 오르카가 너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실 것이다.”
오르카는 강대한 적의 살과 피를 마심으로써 자신도 성장할 수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그는 그렇게 성장하고 강해졌다.
“나는 너를 죽이고, 인간들의 도시를 무너트릴 것이다.”
***
부하와 함께 마을 입구에 도착한 라퓨나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보이지 않는 빛, 환각의 장막, 열리지 않는 문, 거슬러 올라가는 물. 현혹에 가려진 진실의 문이여, 본모습을 내게 보여라.”
팟!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법진에 보호받는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가 생겨났다.
부하와 함께 마을로 들어가자마자 세이나가 그녀를 맞았다.
“괜찮아? 다른 레인저들은?”
라퓨나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세이나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돌아올 수 없는 죽음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단 두 명만 살아 돌아오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레인저들은 모두 세이나와도 막역한 사이였기 때문이다.
장로들의 결정으로 그들이 모두 죽었다고 생각하자 슬픔과 함께 분노가 가슴을 가득 채웠다.
그때였다.
“어떻게 되었느냐? 오크들의 행로가 바뀌었느냐?”
“인간들은 모두 죽었겠지?”
드워프와 엘프 장로들이 그녀들에게 다가왔다.
장로들은 라퓨나와 함께 간 레인저들의 생사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오크와 인간들의 전투 결과뿐이었다.
“그게…….”
“왜 그러느냐? 더듬지 말고 어서 말하거라.”
“작전은…… 실패했습니다.”
“실패? 그게 무슨 말이냐? 실패라니.”
“오크들을 인간들에게 유인하는 것엔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왜?”
“오크들이 인간들에게 전멸당했습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인간 따위가 오크들을…….”
“다른 인간들도 강했지만, 특히 그 모래술사는…….”
라퓨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도 제온을 떠올리면 가슴이 미친 듯이 고동쳤기 때문이다. 그만큼 제온이 남긴 기억은 강렬했다.
평생을 가도 그가 남긴 두려움을 떨쳐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우리 마을 위치는 확실히 감췄겠지?”
“그가 왜 너희를 살려 보내 준 것이냐? 혹시 우리 마을 위치를 알아내려는 수작 아니냐?”
“어서 밖을 확인해라. 인간들이 추적해 왔을지도 모르니까.”
장로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 장로들의 모습에 세이나와 라퓨나는 환멸을 느꼈다.
그 누구도 함께 돌아오지 못한 레인저의 안위를 묻지 않았다.
이제까지 마을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레인저들의 희생 덕분이었다. 하지만 장로들의 모습을 보니 무엇 때문에 그렇게 희생을 한 것인가 싶었다.
‘차라리 솔직히 인간들에게 속내를 터놓고, 도움을 구했어야 했어. 그랬다면 그들도 죽지 않았을 텐데.’
그때였다.
인간들이 따라왔는지 살피기 위해 나갔던 엘프들이 급히 달려왔다.
“큰일 났습니다.”
“왜? 인간들이 따라온 거냐?”
“그, 그게 아니라…….”
“속 터지겠구나. 어서 빨리 말하지 못하겠느냐?”
“오크들이 나타났습니다.”
“뭣이?”
“오크 대군이 우리 마을 방향으로 오고 있습니다.”
“대군이라고?”
“네! 적어도 수천 명은 되어 보였습니다.”
엘프의 보고에 장로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맙소사!”
“오크 대군이 우리 마을로 향하다니.”
장로들은 급히 마을 입구로 달려갔다.
마법진을 살짝 열고 외부를 살폈다. 그러자 저 멀리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오크 대군단이 보였다.
“진짜라니. 어떻게 해야?”
장로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었다.
이제까지 마을을 숨기기 급급했지, 위협하는 존재와 맞서 싸운 적이 없는 장로들이었다.
그들은 결국 최악의 패를 꺼내 들었다.
“레인저들은 출동하라.”
“네?”
“오크들을 다른 곳으로 유인하란 말이다. 그래, 그 인간들에게 유인하면 되겠다.”
“하지만 그 작전은 이미 실패했습니다.”
“그렇다고 가만 앉아서 마을 사람들을 모두 죽일 생각이냐? 어떻게든 마을은 살려야지.”
“알……겠습니다. 레인저들 모두 출동하겠습니다.”
결국 세이나와 라퓨나는 레인저들을 모두 이끌고 마을 밖으로 나왔다.
그새 오크 군단은 더 가까워져 있었다.
세이나가 명령을 내렸다.
“가자! 오크들을 최대한 마을에서 먼 곳으로 유인해야 한다.”
“옛!”
대답과 함께 레인저들이 오크들의 눈에 띄게 행동했다.
당연히 오크들은 그런 엘프 레인저들을 발견했다.
“엘프다.”
“취잇! 죽이자.”
오크들이 흥분해 소리쳤다.
제사장이 명령을 내렸다.
“저들을 쫓아가 죽여라. 단 한 명의 엘프도 살려 두지 마라.”
“크와와!”
“죽여라!”
흥분한 오크들 일부가 바로 레인저들을 추적했다.
오르카는 추적하는 오크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돌렸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바로 엘프 레인저들이 나타난 방향이었다.
다른 오크들이 무작정 엘프 레인저들을 쫓을 때 그는 왜 엘프들이 불쑥 튀어나왔는지 의심했다.
자세히 바라보자 이상한 점이 보였다.
“마나의 흐름이 이상하군.”
“마법진입니다.”
“역시 그런가?”
“어디 보자.”
제사장이 전방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 어떤 이능도 내 눈을 속일 수 없을지니, 숨겨진 진실이여. 내 눈앞에 본모습을 드러내라. 신비를 보는 눈!”
제사장의 눈에서 붉은빛이 터져 나왔다.
마나의 흐름이 꼬인 곳을 바라보던 제사장의 눈에 마법진의 실체가 드러났다.
“실체를 감추는 보호 마법진입니다.”
제사장의 입술이 뒤틀리며 누런 송곳니를 드러냈다.
오르카가 웃었다.
“저런 곳에 마을을 숨겨 두고 있었나 보군.”
그렇지 않아도 자신을 따르던 두 부족이 전멸한 것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오르카에겐 지금 화를 풀 곳이 필요했다.
그리고 마침 좋은 대상이 나타났다.
오르카가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오크 대전사 하나가 거대한 창을 공손히 받쳤다.
대형 마수를 사냥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대한 창이다.
십 미터가 넘는 대형 마수도 단숨에 꿰뚫을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창이 오르카의 손을 가득 채운다.
오르카가 창대를 힘껏 움켜쥐며 팔을 뒤로 젖혔다.
활처럼 휘어지는 그의 등과 팔.
늘어난 근육이 끊어질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을 때 오르카는 힘껏 팔을 휘둘렀다.
쐐애액!
마치 유성처럼 거대한 창이 무서운 속도로 하늘을 갈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대지 저편에 도달한 창이 그대로 마을을 보호하고 있는 마법진에 적중했다.
파캉!
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드워프와 엘프 들의 마을을 지켜 오던 마법진이 오르카가 날린 창 한 방에 산산이 부서진 것이다.
보호 마법진이 부서지자 마을의 실체가 드러났다.
사막 한가운데 움푹 팬 커다란 분지 위에 수백 채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집들 사이로 보이는 수많은 엘프와 드워프 들.
그들의 얼굴엔 공포와 두려움이 범벅이 되어 있었다.
이제까지 마을을 보호해 주던 마법진이 사라진 데다가 오랜 세월 그들을 지켜 주던 레인저들마저 오크들을 유인하기 위해 마을을 떠났다.
무방비 상태로 위험에 노출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오르카가 씨익 웃으며 명령을 내렸다.
“모두 죽여라. 이 사막에 엘프나 드워프 따위가 설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워어억!”
“크아아!”
그의 명령에 오크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마을을 향해 달려갔다.
“제, 제기랄!”
“공격해! 놈들이 마을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해.”
뒤늦게 정신을 차린 장로들이 명령을 내렸다.
마을에 있는 엘프 중에도 마법 스킬을 펼칠 줄 아는 자들이 꽤 있었다.
“윈드 커터!”
“매직 미사일!”
엘프들이 허둥지둥 마법을 펼치고, 드워프들이 마수 사냥용으로 만든 대형 석궁을 날렸다.
몇몇 오크가 그들의 공격을 정면으로 얻어맞았다.
“취잇! 간지럽다.”
“겨우 이 정도냐? 귀쟁이들아!”
오크의 강력한 육체는 어지간한 공격 따윈 그냥 튕겨 냈다.
몇몇 오크가 쓰러졌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돌격했다.
오크들은 결국 마을로 쏟아져 들어왔고, 남은 것은 무자비한 학살이었다.
“아악!”
“컥!”
오크들이 휘두른 무기에 엘프와 드워프 들이 죽어 갔다.
장로라고 예외는 없었다.
오크들은 보이는 모든 것을 죽였다.
엘프고, 드워프고 가리지 않고 말이다.
그것이 엘프와 드워프가 공존해 온 마을의 최후였다.
오르카가 서쪽을 바라봤다.
“다음은 네 차례다.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