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19)
219화
장용범이 인상을 썼다.
팔이 잘린 왼쪽 어깨에서 지독한 통증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힐링 포션으로 상처를 치료했지만, 고통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장용범을 힘들게 하는 것은 균형 감각이었다.
인간은 팔 두 개로 생활하는 데 익숙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갑자기 팔 하나가 사라졌으니 낯선 신체 조건에 적응해야 하는데, 말처럼 쉬울 리 없었다.
장용범이 제아무리 A급 각성자라도 적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후!”
한참을 걷던 장용범이 한숨을 내쉬었다.
지젤이 그런 장용범이 걱정되었는지 물었다.
“괜찮아? 대장!”
“네오 서울에 돌아가는 대로 쓸 만한 의수부터 구해야겠어.”
“내가 괜찮은 마공학자를 알고 있어. 기계화 각성자만큼 최적화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일상생활하는 데 불편함 없는 의수 정도는 만들어 줄 거야.”
“그 정도면 충분해. 어차피 클레이모어는 오른팔 하나로 충분히 휘두를 수 있으니까.”
“대장이라면 훌륭하게 극복해 낼 수 있을 거야.”
“물론이지.”
장용범이 씨익 웃었다.
갑자기 멀쩡하던 팔 하나를 잃은 건 가슴 아프지만, 기계 의수라는 대체재를 충분히 구할 수 있다.
거기다 언제부턴가 그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 쪼는 느낌이 있었다.
마치 새가 알을 깨고 나오기 전 죽을힘을 다해 껍질을 쪼는 것처럼 그의 가슴 깊은 곳에서도 무언가 온 힘을 다해 쪼고 있었다.
말로는 모두 설명할 수 없는 이 기묘한 느낌이 장용범을 설레게 했다.
A급 능력자가 되기 전까지 장용범은 몇 번이나 이런 느낌을 받았다. 지금처럼 강렬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무언가 변화가 일어날 것 같았다.
문제는 그 시기였다.
새가 알껍데기를 깨고 나오는 파각.
파각의 시기가 언제일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당장일 수도 있지만, 먼 미래일 수도 있는 것이다.
‘다시 한번 강자와 싸우면 껍질을 깰 수 있을지도…….’
강카라와 같은 강자와 싸워 보고 싶었다.
설령 그 대가가 자신의 죽음일지라도 말이다.
‘이런 흥분 진짜 오랜만이군.’
그의 입가에 어느새 미소가 어려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장용범의 시선이 제온의 뒷모습으로 향했다.
언제나 그렇듯 제온은 선두에서 일행을 이끌고 있었다.
모래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면서 말이다.
모래는 제온의 앞에서 양쪽으로 갈라져 흘렀다. 덕분에 그의 뒤를 따르는 이들은 모래를 흡입하지 않고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아무리 봐도 사기적인 능력이군. 내가 다른 누군가의 능력을 부러워할 줄이야.’
제온과 함께라면 사막에서 몇 년이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네오 서울의 그 어떤 각성자에게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저놈도 신기하긴 마찬가지야.’
이어 그의 시선이 향한 이는 유령화한 채 부유하는 레빈이었다.
물리력이 전혀 통하지 않는 저 능력은 제온만큼이나 사기적이었다.
오히려 활용도는 제온의 능력보다 나아 보였다.
만일 저 능력이 네오 서울의 권력자들에게 알려지면 앞다퉈 영입하려 할 것이다.
레빈의 유령화를 이용하면 못 빼내 올 정보가 없었고, 심지어 암살도 손쉽게 할 수 있었다.
어떤 방어막도 무력화시키며 유령처럼 침투하는 레빈을 무슨 수로 막을 것인가?
제아무리 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잠자는 중에 암습당하면 죽는 것은 매한가지다.
‘암살에 최적화된 능력이야. 거기다 연금술을 사용할 줄 아는 꼬맹이에, 네오 서울의 슈퍼바이저까지 모두 그를 따르고 있어. 이 정도면 거의 조그만 세력급 전력이야.’
중요한 것은 이들이 모두 제온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회유는 불가능해 보였다.
‘세상 불공평하군. 나도 이 멤버를 모으는 데 몇 년이나 걸렸는데, 저자는 일 년도 안 돼서 모으다니.’
미치도록 탐이 났다.
제온만 끌어들이면 나머지는 줄줄이 사탕처럼 알아서 딸려 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장용범 파티는 순식간에 네오 서울 최강의 파티가 될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될 확률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가 본 제온은 누군가의 위에 설 사람도 아니지만, 누군가의 밑에 있을 사람도 아니었다.
그런 이를 강제하려 했다가는 오히려 역효과만 날 뿐이다.
장용범이 제온의 본성을 꿰뚫어 본 이유는 자신도 그와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제온을 끌어들인다는 계획은 깔끔하게 포기했다.
장용범이 그렇게 나름 생각을 정리했을 때였다.
“끄아악!”
어디선가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뭐냐?”
“제기랄!”
그렇지 않아도 긴장의 촉을 잔뜩 곤두세우고 있던 각성자들이 급히 전투 태세를 갖췄다.
레빈이 말했다.
“제가 먼저 갈게요.”
유령화한 상태이기에 누구보다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레빈은 무서운 속도로 비명이 들려온 곳으로 날아갔고, 그 뒤를 제온과 각성자들이 따랐다.
당연하지만 레빈이 제일 먼저 현장에 도착했다.
엘프들이 오크들에게 학살당하는 모습이 보였다.
마을에서 오크들을 유인하기 위해 도주했던 레인저들이 기어이 따라잡힌 것이다.
엘프 레인저들은 뛰어난 전사였다.
그들은 꽤 많은 오크들을 죽였지만, 결국 물량 공세를 이기지 못하고 하나 둘 오크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남은 엘프는 단 두 명.
세이나와 라퓨나였다. 하지만 그녀들 역시 엄중한 상처를 입고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레빈은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그녀들에게 달려갔다.
“제기랄!”
빠지직!
순식간에 엘프들 곁으로 다가간 레빈이 그대로 퍼플 라이트닝을 발산했다.
“뀨잇!”
“꿰에엑!”
보랏빛 전류에 감전된 오크들이 돼지 멱따는 소리를 지르며 쓰러졌다.
“괜찮아요?”
레빈이 급히 두 엘프의 상태를 살폈다.
하지만 세이나와 라퓨나의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둘다 회생하기 힘든 치명상을 입은 것이다.
“우리 마을을 구해 주세요.”
“제발!”
그 지경이 되어서도 그녀들은 마을의 안위를 걱정했다.
레빈이 잠시 망설이는 사이 그녀들의 숨이 끊어졌다.
“후!”
레빈이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날 때였다.
쐐애액!
고막을 찢는 듯한 날카로운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
위기를 직감한 레빈이 즉각 유령화했다.
슈우욱!
직후 커다란 창이 그를 뚫고 지나갔다.
레빈은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유령화하는 것이 조금만 늦었다면 저 커다란 창에 꿰뚫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레빈이 창이 날아온 방향을 바라봤다.
창을 든 오크 전사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사막을 새까맣게 뒤덮으며 몰려오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레빈이 급히 제온이 있는 곳으로 물러나며 소리쳤다.
“오크 대군이에요.”
그때였다.
쐐애액!
또다시 날카로운 파공성이 하늘에 울려 퍼졌다.
퍼억!
“크악!”
각성자 하나가 창을 피하지 못하고 정면으로 맞았다.
창은 각성자를 꿰뚫은 채 한참을 더 날아가 뒤쪽의 모래 벽에 처박혔다.
그야말로 가공할 위력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참극에 각성자들이 모두 말을 잃었다.
순간 장용범이 소리쳤다.
“정신 차리지 않고 뭐 해? 멍하니 있다가 다 뒈질 거야?”
“아!”
“씨발!”
그제야 정신을 차린 각성자들이 전투태세를 갖췄다.
각성자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 자체가 사치였다.
자신들부터 살아날 궁리를 해야 했다.
어느새 사방에서 오크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사막을 개미 떼처럼 뒤덮으며 달려드는 오크들의 기세에 그들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장용범이 제온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대군장의 본진과 만난 것 같군.”
“그런 것 같습니다.”
제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오크들을 바라봤다.
이제까지 만난 오크들의 복장과 무기는 중구난방이었다.
반면 지금 달려오는 오크들은 무거운 중갑주와 창, 그리고 큰 칼로 무장을 통일하고 있었다.
그만큼 정예라는 의미다.
오크들에게 정예가 흔하지 않을 테니, 이들은 오크 대군장 직속의 부하들이 분명했다.
“쉽게 빠져나가긴 그른 것 같네요.”
“아무래도 다 죽여야 벗어날 수 있을 것 같군.”
그때였다.
저 멀리 모래 언덕 위에서 유독 거대한 오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장용범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한낱 오크 따위가 어떻게 이런 기운을……. 저놈이 오크 대군장인가?’
수백 미터나 멀리 떨어져 있는데 피부가 저릿저릿하고, 심장이 바늘로 찔린 것처럼 아팠다.
그만큼 거대한 오크의 기세는 압도적이었다.
놈의 투기가 이곳까지 전해지고 있었다.
장용범의 짐작처럼 거대한 오크는 대군장 오르카였다.
오르카의 시선은 제온에 고정되어 있었다.
“찾았다. 오크들의 숙적!”
“놈을 죽여야 합니다. 대군장이시여.”
제사장도 제온을 알아보고 몸을 떨었다.
본능적으로 제온이 붉은 망치와 강철 오크족을 몰살시킨 원흉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의 몸에 새겨진 문신이 제멋대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문신이 먼저 위협을 감지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오르카가 한 걸음 나서며 말했다.
“저자는 내 몫이다. 나머지는 알아서 처리하도록.”
“그리하겠습니다.”
제사장이 고개를 조아렸다.
그가 오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곳에 있는 인간들을 모두 죽여라. 그들의 피로 목욕하고, 그들의 살로 배를 채울 것이다.”
제사장의 목소리엔 오크들의 흥분과 살의를 돋우는 힘이 담겨 있었다.
단지 외침만으로도 오크들에게 버프를 전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우워어억!”
“죽여라!”
“가자!”
흥분한 오크들이 제온 일행에게 달려들었다.
“제기랄! 아무래도 오늘 여기가 우리 무덤이 될지도 모르겠군.”
“씨발! 죽을 때 죽더라도 내가 꼭 오크 열 마리 정도는 데리고 지옥으로 간다.”
“죽더라도 오크 먹이가 될 수는 없지.”
각오를 다진 각성자들이 오크들에게 달려갔다.
쾅!
서걱!
오크와 인간 들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각성자들은 스킬을 연거푸 쏟아 내며 오크들과 맞서 싸웠다.
장용범이 클레이모어를 꼬나쥐며 제온에게 말했다.
“조무래기들을 아무리 죽여 봤자 소용없어. 우두머리를 잡아야 한다. 내가 대군장을 맡겠다.”
“무리입니다.”
“뭐?”
“미안하지만 당신의 힘으로는 대군장의 털끝 하나 어쩔 수 없습니다.”
“크윽!”
장용범의 얼굴이 보기 싫게 일그러졌다.
하지만 어떤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스스로 대군장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제온이 오르카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은 그 옆에 있는 오크를 맡으십시오. 주술사 비슷한 것 같은데 느낌이 심상치 않습니다.”
“알았다. 그렇게 하지.”
“그 전에 길을 열어야겠군요.”
스르륵!
제온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모래가 소용돌이치며 그의 몸을 허공으로 띄운 것이다.
제온의 신형은 허공 수십 미터 높이에 도달했다.
이제야 대군장과 눈높이가 맞았다.
오르카는 팔짱을 낀 채 제온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전신엔 강자의 여유가 어려 있었다.
제온은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언제까지 그렇게 여유로울 수 있을지 볼까?”
자신과 오르카 사이에 너무 많은 오크가 존재했다.
일단 그들을 치워야 했다.
딱!
“샌드 웨이브!”
제온이 손가락을 튕기며 중얼거렸다.
순간 바닥의 모래가 불쑥 일어나 파도처럼 대군장을 향해 밀려갔다.
문제는 파도의 높이가 무려 십 미터에 달하고, 폭이 오십 미터나 된다는 것이다.
쿠콰콰콰!
집채만 한 파도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대군장을 향해 밀려갔다.
모래 파도는 엄청난 질량과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오크들의 육체가 아무리 단단해도 거대한 모래 파도의 질량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꾸웨엑!”
“크악!”
오크들의 비명이 모래 파도에 파묻혀 사라졌다.
죽음의 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