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24)
224화
제온 일행과 장용범 파티는 오크들과 싸웠던 격전지를 떠나 네오 서울로 향했다.
오르카의 깃발 아래 모여들었던 오크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흔적조차 찾기 힘들었다.
덕분에 제온 일행과 장용범 파티는 며칠 동안 별다른 위협 없이 편히 걸을 수 있었다.
해가 지자 제온이 말했다.
“오늘은 이곳에서 쉬죠.”
“그렇게 하지.”
장용범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일행의 길잡이는 제온이었다.
제온이 방향을 잡고, 쉬어 갈 타이밍을 정했다.
장용범은 제온의 결정에 무조건 따랐다.
그것이 편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사막에서 제온보다 뛰어난 길잡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어떤 내비게이터도 제온을 따를 수 없었다.
제온이 쉬자고 하는 곳에서 쉬면 절대 마수의 습격을 받지 않는다.
간단히 식사하고, 그들은 따로 모여 앉았다.
함께 가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서로를 믿는 것은 아니었다.
사막에서 누군가를 완전히 믿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따로 행동해도 서로에게 섭섭한 감정 따위는 느끼지 않았다.
“후우!”
엘로이가 모래 언덕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시선이 손목으로 향했다.
남들이 보지 못하게 꼭꼭 숨겨 뒀던 붉은색 계급장이 보였다.
무투계를 증명하는 붉은색 다섯 개 선.
그녀가 B급 각성자라는 증거였다.
충분히 자부심을 가져도 될 만큼 높은 등급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 정도로 만족할 수 없었다.
“맨디를 지키려면 이보다 더 강해져야 해.”
당연한 말이지만 그녀와 맨디는 한 몸이었다.
맨디의 불완전한 정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격이 엘로이였다. 네오 서울에 들어가면 이제 맨디의 인격이 튀어나올 것이다.
네오 서울의 모든 일은 엄청난 심기를 요한다.
단순한 엘로이가 처리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렇기에 그녀는 기꺼이 맨디에게 육체를 양보한다.
맨디가 대표적인 인격으로 활동하지만, 그렇다고 엘로이가 완전히 잠든 것은 아니다.
맨디의 뒤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본다.
다만 나서지 않을 뿐이다.
멘디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더 강해져야 한다. 하지만 그녀의 성장은 한계에 도달했다.
각성자라고 해서 성장 폭이 모두 똑같지는 않다.
어떤 이는 낮은 등급으로 각성해도 빠른 속도로 높은 등급에 도달하고, 시작을 높은 등급으로 했지만,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이도 수두룩했다.
노력한다고 해서 모두 고등급 각성자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각성자마다 그릇이 다르다.
그릇이 큰 자는 S급이 된다.
이지령이나 장용범 같은 자 말이다.
그릇이 작은 자는 아무리 노력해도 E급이나 F급에서 성장이 멈추기 마련이다.
다행히 엘로이가 타고난 각성자의 그릇은 결코 작지 않았다. 하지만 겨우 B급 정도가 한계였다. 그 이상은 아무리 노력해도 올라갈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벽을 깰 수 있는 거지?”
너무 막연해 어떻게 방향을 잡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마치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 갇혀 있는 느낌이었다.
그때 한 줄기 등불과도 같은 음성이 들렸다.
“벽을 깨고 싶습니까?”
“언제?”
엘로이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그녀의 시야에 조용히 서 있는 제온이 보였다.
그가 기척도 없이 그녀의 등 뒤로 다가온 것이다.
제온이 적이었다면 이미 그녀는 죽은 목숨이었다.
그가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도대체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단순히 모래술사로서의 능력뿐 아니라 무투가로서의 능력까지 그녀보다 뛰어났다.
이런 각성자는 처음이었다.
엘로이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벽을 깨고 싶다고 내 마음대로 깰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은 당신도 알고, 나도 알잖아.”
“당신의 각오를 묻는 겁니다.”
“가능하다면 당연히 깨고 싶지. 왜, 나도 레빈처럼 성장시켜 줄 수 있어?”
“제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레빈은 S급까지 도달할 수 있는 재능을 타고났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알아! 기껏해야 B급 정도가 내 한계지. 잘하면 A급까지 될 것은 같은데,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아.”
엘로이는 솔직히 자신의 한계를 인정했다. 그러자 속이 한결 후련해졌다.
그런 엘로이에게 제온이 조그만 돌을 내밀었다.
“이게 뭐야?”
“오크 대군장에게서 나온 마정석입니다.”
“이게?”
엘로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마수에게서도 마정석은 나온다.
당연히 광산에서 채굴하는 마정석보다 품고 있는 마력의 양이나 질이 월등히 뛰어나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선명하면서 붉게 빛나는 마정석은 본 적이 없었다.
“아마도 어떤 스킬을 품고 있을 거라고 예상됩니다.”
“스킬을 품은 마정석이라고?”
“정확히는 스킬을 개화시킬 씨앗, 혹은 방아쇠를 품고 있다는 표현이 맞겠죠.”
“그게 가능한 일이야?”
엘로이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가능해요. 나도 그렇게 스킬을 하나 얻었으니까요.”
“맙소사!”
제온의 설명에 엘로이가 자신도 모르게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지 않았다가는 환희의 비명을 지를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정석 광산에서 채굴되는 마정석과 달리 마수에게서 나오는 마정석 중엔 간혹 녀석의 기운을 품고 있는 경우가 있다.
때문에 마수에게서 나온 마정석의 기운을 흡수해 스킬을 얻는 경우도 있었다.
당연히 등급이 높은 마수일수록 좋은 스킬을 품은 마정석이 나올 확률이 높다. 하지만 그 확률은 극악해서 각성자가 좋은 스킬을 가지고 있는 마정석을 얻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지금 보고 있는 마정석이 스킬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정말 좋은 스킬을 얻을 수도 있지만, 쓰레기 스킬을 얻을 수도 있었다.
상성이 맞는 좋은 스킬을 얻으면 다행이지만, 자칫 쓰레기 같은 스킬을 얻게 되면 기존의 스킬까지 망가질 수 있었다.
제온이 말했다.
“선택은 당신의 몫입니다. 어떻게 할래요?”
“마정석을 흡수할게.”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정말 쓰레기 같은 스킬을 얻을 수도 있어요. 그럼 당신이 이제까지 성장시켜 온 스킬이 모두 망가질 수 있어요.”
“알고 있어. 그래도 마정석을 흡수할 거야.”
“좋아요. 당신의 각오가 그렇다면…….”
제온이 그녀에게 마정석을 넘겼다.
엘로이가 마정석을 쥔 손을 꽉 움켜쥐었다.
손바닥에서 불처럼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제온이 알려 주지 않아도 이 뜨거운 기운을 어떻게 흡수해야 할지 알 것 같았다.
그녀는 눈을 감고 마정석에 담긴 기운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크읍!”
마정석과 맞닿은 손을 통해 엄청난 기운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불같이 뜨거운 기운이 엘로이의 내부를 헤집고 돌아다녔다.
엘로이는 어떻게든 기운을 통제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악!”
엘로이가 쓰러져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녀의 비명이 장용범 파티에게 들리는 일 따윈 없었다.
제온이 마나를 둘러 그녀의 비명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잡아 뒀기 때문이다.
전신이 타는 고통에 엘로이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마정석에서 손을 떼고 싶었지만, 마치 자석에 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엘로이는 마정석을 잡은 채로 기절하고 말았다.
그녀가 기절한 후에도 마정석에서 엄청난 기운이 그의 내부로 쏟아져 들어왔다.
제온이 기절한 엘로이를 말없이 바라봤다.
그 역시 엘로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스킬을 얻은 적이 있기에 그녀가 얼마나 큰 고통을 느끼고 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제온은 골드 드래곤의 가디언인 히드라의 마정석을 흡수해 A급이 되었다.
그때 얻은 스킬이 바로 초재생이었다.
덕분에 아무리 큰 상처를 입어도 얼마 지나지 않아 회복됐다.
제온이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사막에서 팔 년이나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초재생이라는 스킬 덕분이었다.
그때였다.
죽은 것처럼 미동 하나 없던 엘로이의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스킬을 얻었나 보군.’
잠시 후 엘로이가 크게 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하아! 나 죽지 않은 건가?”
“보다시피 살아 있네요.”
“씨발! 정말 뒈지는 줄 알았네.”
“그런 것치곤 꽤 멀쩡하네요.”
“그래?”
엘로이가 무릎을 손으로 짚으며 몸을 일으켰다.
허리를 편 그녀가 눈을 감으며 자신의 몸 안을 관조했다. 그러자 이제까지와 다른 마나의 흐름이 느껴졌다.
‘이건?’
누구도 그녀에게 설명해 주지 않았지만, 느낌만으로도 어떤 스킬인지 알 것 같았다.
“질량 증가?”
오르카가 쓰던 전투 도끼인 테라탄이 품고 있던 그 스킬이었다.
특이하게 오르카의 본래 스킬이 아닌 무기가 품고 있던 스킬을 엘로이가 계승받은 것이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문제는 질량 증가라는 스킬이 엘로이 본연의 스킬과 상성이 맞느냐였다.
그에 대한 엘로이의 대답은 간단했다.
“좋은데.”
테라탄처럼 열 배의 질량 증가였다.
그 정도라면 미친 구미호의 스킬 위력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문제는 과연 그녀의 육체가 그런 미친 질량 증가를 감당할 수 있느냐였다.
다행히 그 문제도 손쉽게 해결됐다.
그녀의 팔목에서 여섯 번째 선이 빛나고 있었다.
A급 각성자를 의미하는 빛이었다.
엘로이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렇게 쉽게 벽을 넘는다고?”
“쉽게가 아닙니다. 그동안 엘로이 씨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겁니다. 오크 대군장의 스킬은 당신이 쌓아 놓은 화약에 방아쇠를 당긴 것에 지나지 않죠.”
“아!”
“어쨌거나 A급 각성자가 된 것 축하합니다.”
“고마워! 이 은혜 절대 잊지 않을게.”
“모두 기다리고 있으니 이제 내려가죠.”
“응!”
엘로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제온을 따랐다.
***
장용범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시선은 엘로이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뭔가 달라진 것 같은데?’
어젯밤 모래 언덕 위로 올라가 한참을 내려오지 않더니 무언가 분위기가 달라졌다.
눈빛이며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어제와 달랐다.
누가 굳이 말해 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녀에게 큰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등급이 오른 건가? 그렇게 쉽게?’
S급이 되었기 때문인지 다른 각성자의 상태가 보였다.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었지만, 대략 어느 정도 수준인지 느낌이 오는 것이다.
‘그녀에게 무슨 마법을 부린 거지?’
장용범의 시선이 제온을 향했다.
제온은 모래바람을 헤치며 앞서 걷고 있었다.
엘로이의 등급이 변할 이유는 제온밖에 없었다.
장용범은 제온이 어떤 수를 부려 엘로이의 등급을 상승시킨 것인지 궁금했다.
“쯧! 아직도 감추고 있는 게 많은 모양이군. 밑천이 얼마나 남았는지 궁금하군.”
“무슨 말이야? 대장!”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
곁에서 걷고 있던 지젤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 에이든이 소리쳤다.
“어? 마정석 광산입니다.”
“뭐?”
“저기!”
에이든이 손가락으로 저 멀리 삐죽 솟아 나와 있는 돌산을 가리켰다.
익숙한 전경에 모두가 환호성을 터트렸다.
“정말 마정석 광산이다.”
“드디어 도착했다.”
“아우!”
그중에서도 브리엘과 레빈 등이 느끼는 감정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지령의 페가수스 공략대와 함께 던전 공략에 나섰다가 배신당하고, 붉은 폭풍단, 오크 대군세와 맞서 싸웠다.
그렇게 온갖 고난을 겪은 후에야 다시 문명의 세계로 돌아오게 됐으니 그들이 느끼는 감정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제온이 중얼거렸다.
‘곧 만날 수 있겠군. 이지령!’
그는 원한도, 은혜도 절대 잊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