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28)
228화
팔 년 전 박만호는 도박장에서 돈을 잃어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제온을 구백칠십이 번 갱도에 강제로 집어넣었다.
구백칠십이 번 갱도에서 이미 몇 명이나 죽어 나갔음에도 말이다.
제온이 각성하지 못했거나, 데이오든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때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때는 죽을 만큼 힘들어 복수를 다짐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흘렀고, 그동안 제온은 수많은 일을 겪었다.
박만호가 그에게 행한 일 따윈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일을 겪으면서 제온은 강해졌다.
당연히 그날의 기억은 퇴색되었고, 박만호라는 존재는 더 이상 제온의 복수 대상이 아니게 됐다.
복수심을 불태우기엔 박만호가 너무나 하찮은 존재였던 것이다. 그래서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박만호가 제온을 알아보고 접근한 것이다.
박만호는 눈알을 부라리며 제온을 노려봤다.
인상이 제법 험상궂었지만, 제온에겐 아무런 감흥도 줄 수 없었다.
박만호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미친 새끼! 반갑다고? 완전히 돈 거 아냐?”
“왜요? 정말 반가워서 그런 건데?”
“네가 정말 제대로 돌았구나. 네가 멋대로 사라져서 내가 얼마나 곤란했는지 알아?”
“거짓말!”
“뭐?”
“내가 뭐라고 당신이 곤란을 겪어요? 그때의 나는 아무 비중 없는 엑스트라 같은 존재였는데.”
“이 씨벌 새끼가 혓바닥에 기름을 칠했나? 말은 청산유수구나.”
할 말이 없어진 박만호가 인상을 썼다.
당시 제온이 없어졌다고 해서 그가 곤란을 겪을 일 따윈 없었다. 제온의 말처럼 극히 미미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가 이렇게 제온을 보고 화내는 것은 오늘 도박장에서 제법 큰 돈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는 마정석 광산의 책임자였다.
당연히 마정석을 빼돌려 꽤 많은 뒷돈을 챙겼다.
문제는 그렇게 챙긴 뒷돈을 고스란히 도박장에 갖다 바쳤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제온을 만나게 되니 가슴속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제온이 왜 다시 이곳에 나타났는지, 그동안 어디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제온이 그의 눈앞에 있다는 것이고, 그에겐 화를 풀 대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너, 이리 와 새끼야! 너 같은 새끼는 갱도에 집어넣고 평생 마정석을 캐게 해야 해.”
“저는 이제 광부도 아닙니다만?”
“웃긴 새끼네. 한번 광부는 영원한 광부야. 광부인 이상 내 명령을 들어야 하고.”
“기적의 논법이네요. 확실히 그런 논법은 배울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새끼가 쪼개네? 웃냐?”
“웃겨서요.”
“이 씨벌 새끼가……. 너 한번 죽어 봐라.”
계속 이죽거리는 제온에게 화가 폭발한 박만호가 커다란 주먹을 휘둘렀다.
명색이 E급 각성자인 박만호였다.
평범한 사람은 그의 주먹 한 방에 목숨을 잃을 만한 파괴력이 담겨 있었다.
박만호는 정말 제온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
가볍게 훈계해 제온의 주머니를 털 생각이었다. 덤으로 갱도에 집어넣어 골수까지 쪽쪽 빨아먹는 것이 그의 계획이었다.
콱!
하지만 그의 기분 좋은 상상은 갑작스레 느껴진 통증에 깨지고 말았다.
제온의 얼굴을 박살 내야 했을 주먹이 허공에 멈춰 있었다.
그의 주먹을 멈춰 세운 것은 제온의 손바닥이었다.
마치 바위를 친 것처럼 제온의 손바닥을 때린 주먹이 아팠다.
생각지도 못한 고통에 박만호가 눈을 크게 떴다.
“너?”
그그극!
그 순간 제온이 손바닥을 오므렸다.
압착기에 끼인 것처럼 박만호의 주먹이 우그러들었다.
“끄으으!”
박만호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는 제온의 손바닥에서 주먹을 빼기 위해 용을 썼다. 하지만 그의 힘으로 제온의 손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그가 큰 비명을 지르며 말했다.
“아악! 아파, 아프다고. 어서 놔줘!”
“다시 한번 말해 봐요. 나를 어떻게 하겠다구요? 갱도에 가둬 영원히 곡괭이질을 시키겠다고 했나요?”
“크윽! 그, 그건 말이 헛 나와서…….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박만호가 급히 도리질했다.
제온에게 잡힌 주먹이 으스러질 것 같았다.
이것만 봐도 제온이 각성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도 자신보다 상위의 각성자.
제아무리 박만호가 도박에 정신을 팔아 먹었더라도 상위 각성자를 감히 갱도에 처박을 수는 없었다.
박만호는 아예 무릎을 꿇었다.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살려 줘.”
“살려 주면 저에게 뭘 해 줄 건데요?”
“뭐?”
“그렇잖아요? 대가 없는 용서가 어딨어요? 팔 년 전 당신은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나를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갱도에 처박았잖아요?”
“그래도 살았잖아?”
“그건 내가 운이 좋아서구요. 당신은 아무 도움이 안 됐죠. 이제 그에 대한 대가를 받아야겠는데.”
은혜는 절대 잊어서 안 되지만, 원한은 더더욱 잊으면 안 된다.
이렇게 제 발로 알아서 찾아온 경우엔 더더욱 말이다.
박만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설마 제온이 이런 요구를 해 올 줄은 몰랐다.
그 순간에도 제온의 손은 더욱 강하게 그의 주먹을 조이고 있었다.
뿌드득!
뼈에 금 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대로 가다가는 주먹 뼈가 모조리 부러지고 말 것이다.
박만호가 다급히 말했다.
“자, 잠깐! 내가 숨겨 둔 게 있어.”
“도박에 모든 것을 탕진한 사람이 숨겨 둔 게 있다고요? 지금 그 말을 나보고 믿으란 건가요?”
“크윽! 진짜야! 처분하기 애매한 물건이라서 놔두고 있었는데, 분명 너도 마음에 들 거야.”
“그래요?”
“그래! 진짜야.”
“흠!”
제온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손에 힘을 슬쩍 풀었다.
그제야 박만호의 얼굴에 혈색이 돌아왔다.
“그래서 그 물건은 어디 있는데요?”
“도박장 비밀 금고에 넣어 놨어.”
“그 말을 지금 나보고 믿으라구요.”
“진짜야! 도박장에서 처분하려고 했는데, 너무 후려쳐서 금고에 처박아 놓은 거야.”
박만호는 필사적으로 변명했다.
“금고에 소중히 보관한 물건의 정체는요?”
“나도 몰라.”
“모른다고요?”
“그래! 마정석 광산에서 채굴한 광물인데, 마정석은 아니야. 하지만 특별해.”
“지금 그 말을 나보고 믿으라구요?”
“진짜야! 너도 보면 믿게 될 거야. 그건 정말 특별하다고.”
“좋아요. 안내해 봐요.”
그제야 제온이 박만호의 주먹을 놔줬다.
부러지기 직전까지 갔던 주먹을 붙잡고 박만호가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제온은 그의 궁상을 봐줄 생각이 없었다.
“어서 안내해요.”
“알았어. 나를 따라와.”
박만호가 비칠거리면서 걸음을 옮겼다.
그가 향한 곳은 마정석 광산 외곽에 있는 허름한 거리에 있는 집이었다.
집 앞엔 각성자로 보이는 이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이 박만호를 알아보고 말을 걸었다.
“여, 박만호! 벌써 돈 빌려 온 거야?”
“흐흐! 이번엔 부디 잃지 말고 좀 따라고.”
그들의 조롱에 박만호가 입술을 질겅 깨물며 말했다.
“시끄러우니 문이나 열어.”
“옆에 있는 혹 덩어리는 누구야? 새로운 물주야?”
“물주는 언제나 환영이지. 흐흐!”
그들은 제온의 이름조차 물어보지 않았다.
박만호가 어디서 물정 모르는 애송이 하나 물어 왔다고 생각했다. 그런 일이 이곳엔 비일비재했다.
도박에 중독된 인간들은 자금이 떨어지면 새로운 물주를 물어 와 도박의 세계로 이끈다. 그럼 도박장에선 일정의 커미션을 주는 구조였다.
끊임없이 희생자가 양산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박만호가 각성자들을 욕하며 도박장 안으로 들어갔다.
“흡혈박쥐보다 지독한 새끼들.”
제온이 그를 따르며 미소 지었다.
박만호도 만만치 않은 악당이었는데, 그가 다른 이들을 악당이라고 욕하는 것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나는 것이다.
“우와아! 떴다.”
“씨발!”
“열 배다. 열 배라고…….”
집 안으로 들어가자 밖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수많은 이들이 눈이 충혈된 채 도박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주사위를 던지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카드에 집중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룰렛판이 돌아가고 있었고, 또 한쪽에서는 투견 비슷한 마수들끼리 싸움을 붙여 판돈을 걸고 있었다.
크아악!
크에!
마수들의 괴성과 사람들의 환호성이 어우러진 도박장엔 광기가 가득했다.
박만호와 제온이 들어왔음에도 누구 한 명 눈길을 주지 않고 도박에 열중했다.
박만호는 그런 이들을 부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도박장 가장 깊은 곳에 금고가 있는 것이다.
일종의 대여 금고였다.
금고 앞엔 대머리 남자 두 명이 있었다.
어깨까지 드러낸 팔뚝은 돌덩이를 달아 놓은 것처럼 울퉁불퉁했다.
그들이 바로 도박장의 주인인 쌍둥이 형제였다.
쌍둥이 형제는 오래전부터 마정석 광산에서 도박장을 벌여 엄청난 돈을 벌었다.
그들은 모두 C급 각성자로 마정석 광산 안에서는 손꼽히는 강자들이었다. 그 덕에 수많은 위협을 물리치고 오늘날까지 도박장을 지킬 수 있었다.
쌍둥이 중 형이 박만호 뒤에 따라온 제온을 보고 눈을 빛냈다.
“뭐야? 애송이를 물어 왔네. 새로운 물주야?”
“씨발! 물주는 무슨? 이 새끼, 오래전 광산에서 탈출한 새끼야.”
“그래?”
“이 새끼 숨겨 둔 돈 장난 아냐.”
박만호가 언제 겁을 집어먹었었냐는 듯이 쌍둥이 형제 곁에 서서 소리쳤다.
“진짜야?”
“옷 보면 몰라? 질감이 장난 아니잖아. 졸라 비싼 거라고.”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데려왔으니까 칠 대 삼. 물론 내가 칠이야.”
“빈털터리 주제에 웃기네. 육 대 사. 물론 이쪽이 육이야.”
“씨발! 장난해?”
“너야말로 장난하냐? 보아하니 털려다가 얻어맞고 눈물 콧물 다 짠 것 같은데. 우리도 위험 부담이 있으니 더 가져가야지.”
“개새끼들! 그래, 너희들이 육 가져가라. 대신 사는 확실히 내 거다.”
“진작 그랬어야지.”
쌍둥이 형제가 음소를 터트리며 손을 들었다. 그러자 도박장 곳곳에 흩어져 있던 부하들이 제온을 포위했다.
“가진 거 다 내놔라, 꼬마야!”
“그 옷 좋아 보이네. 내가 가져야겠다.”
제온을 포위한 각성자들이 협박했다.
“쯧! 결국 이럴 작정이었군.”
제온이 코를 찡그리며 박만호를 바라봤다.
쌍둥이 형제 뒤에 숨은 박만호가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그럼 내가 너 따위에게 내 보물을 넘겨줄 줄 알았냐? 웃기지 마, 새끼야! 네가 아무리 각성했어도 나에겐 광부 새끼에 지나지 않아.”
“후회할 텐데?”
“좆 까지 마. 내가 너 따위 새끼한테 고개를 숙일 거였으면 이때까지 살아남지도 못했어.”
“쯧!”
제온은 더 이상 대화하기를 포기하고 혀를 찼다.
그 순간 도박장의 각성자들이 제온을 덮쳤다.
“조져!”
“죽엿!”
도끼와 칼 같은 냉병기가 날아왔다.
도박장에서 일하는 각성자들 모두 무투계로 손속에 일말의 사정도 두지 않았다.
이곳에서 일하며 한두 명 담가 본 것이 아니었다.
사람 하나 죽이는 것은 그들에게 일도 아니었다.
그들은 이번에도 손쉽게 목적을 달성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것이 늘 그들의 예상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화학!
갑자기 제온의 주위로 수많은 불덩이가 나타났다.
제온이 파이어 미사일을 소환한 것이다.
망막을 가득 채운 파이어 미사일에 박만호, 쌍둥이 형제, 도박장 각성자들의 움직임이 딱 멈췄다.
그들은 마치 석상이 된 것처럼 냉병기를 휘두른 자세 그대로 굳었다.
설마 제온이 이렇게 많은 파이어 미사일을 소환할 줄은 예상 못 했기 때문이다.
‘씨발!’
‘고위 각성자다.’
그들 머릿속에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 지나갔다.
제온이 그들을 보며 말했다.
“박만호의 금고 안에 있는 물건만 가져가려 했는데, 생각이 바뀌었어요.”
“뭐?”
“가진 거 다 내놔요.”
슈슈슈슉!
수십 개의 파이어 미사일이 각성자들에게 발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