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30)
230화
쩌저적!
시엘라의 화로 표면이 갈라지고 있었다.
마치 허물을 벗어 버리듯 화로를 감싸고 있던 녹들이 벗겨졌다.
녹을 벗어 버린 화로는 더욱 강렬한 빛을 발산했다.
시엘라의 화로에서 발산되는 새하얀 빛에선 성스러운 느낌이 났다.
마치 빛을 쐬는 것만으로도 모든 죄가 사라질 것 같았다.
브리엘은 빛에 휩싸여 있었다.
눈을 감은 채 시엘라의 화로를 껴안고 있는 브리엘의 모습은 신성하기까지 했다.
제온은 그런 브리엘을 말없이 바라봤다.
시엘라의 화로에 대해서도 모르고, 화로에서 발산되는 빛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지만, 지금 이 순간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쯤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빛이 사라진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였다.
“하아!”
브리엘이 이제까지 참았던 숨을 크게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여전히 시엘라의 화로를 껴안고 있었다.
시엘라의 화로는 크게 달라져 있었다.
볼품없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고풍스러운 문양이 표면에 가득 새겨져 있었다.
금빛 몸체에서는 은은한 서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희귀한 아이템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시엘라의 화로 본모습이었다.
지구로 넘어오면서 유실된 하이 엘프들의 보물.
시엘라의 화로를 이용하면 연금술의 효율이 최소 두 배 이상 늘어난다. 성공 확률이 그만큼 높아지는 것이다.
브리엘에겐 그야말로 최고의 보물이었다.
시엘라의 화로를 품에 안은 브리엘의 모습도 어딘지 모르게 변해 있었다.
외형은 크게 변한 것이 없지만, 눈빛이나 분위기가 한층 더 깊어졌다. 그 때문에 훨씬 더 성숙하게 보였다.
변한 것은 단지 그뿐만이 아니었다.
‘성장했어.’
제온을 처음 만났을 때 브리엘은 E급 각성자에 불과했다.
지하에 갇혀 매일 마약만 만들다 보니 그녀의 능력은 전혀 성장하지 못했다.
그녀의 능력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은 제온을 만난 후였다.
재료 걱정 없이 마음껏 연구하고 시험하다 보니 능력이 대나무처럼 쑥쑥 성장한 것이다.
조금 전까지 그녀의 등급은 C급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성장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의 등급은 B급이었다.
한순간에 등급이 오른 것이다.
모든 것이 시엘라의 화로 덕분이었다.
시엘라의 화로는 브리엘 덕분에 깨어났고, 브리엘은 시엘라의 화로와 심령이 연결되면서 등급이 상승했다.
시엘라의 화로는 오직 하이 엘프인 브리엘만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브리엘이 제온에게 말했다.
“고마워! 덕분에 하이 엘프의 보물을 되찾았어.”
“네가 찾은 거야. 내가 가지고 있었으면 쓸모없는 고물에 불과했겠지.”
제온은 보물이 임자를 찾아갔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었으면 시엘라의 화로는 절대 본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을 것이다.
한 종족을 상징하는 아이템이었다.
그만큼 주인을 선택하는 기준이 까다로웠다. 엘로이는 그 기준에 부합해 선택된 것이다.
시엘라의 화로로 무엇을 만들지는 브리엘의 선택이었다.
무엇을 만들든 기존의 물건보다 효능이 월등할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되면 네오 서울에서도 그녀를 주목할 수밖에 없겠군.’
C급과 B급은 겨우 한 등급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그 격차는 어마어마했다.
괜히 B급부터 고위 각성자로 분류되는 것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각성자가 이 벽을 넘지 못하고 C급에 주저앉는다.
B급 연금술사는 네오 서울에서도 극히 희귀했다.
시엘라의 화로로 만든 아이템은 일반적인 연금술사가 만든 아이템보다 월등한 성능을 가질 터.
시중에 물건이 풀린다면 네오 서울에서도 분명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골치 좀 아파지겠군.’
제온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골치 아픈 일은 그때 해결하면 된다.
지금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문득 아공간에 넣어 둔 다른 물건이 생각났다.
박만호의 금고에서 가져온 광물이었다.
생각난 김에 아공간에서 광물을 꺼냈다.
순간 브리엘의 품에 있던 시엘라의 화로가 반응했다.
우웅!
갑자기 공명음을 터트린 것이다.
그에 반응해 광물에서 옅은 빛이 흘러나왔다.
제온이 미간을 찌푸린 채 광물을 바라봤다.
빛이 약해졌다 강해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꼭 심장이 박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브리엘이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게 무슨?”
“이 물건의 정체를 알겠어?”
“아, 아니! 이런 물건은 처음 봐. 그런데 시엘라의 화로가 이 물건에 반응하고 있어.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기뻐하고 있어.”
브리엘이 시엘라의 화로에서 느끼는 기운은 환희였다.
마치 오랜만에 어미를 만나는 새끼 새처럼 시엘라의 화로는 그렇게 기뻐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체를 알 수는 없었다.
광물의 박동은 어느새 멈췄고, 원래의 평범한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시엘라의 화로도 더 이상 반응하지 않았다.
“뭐가 됐든 평범한 물건은 아니군. 네가 보관할래?”
“아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닌 것 같아. 그냥 제온이 가지고 있는 게 나을 것 같아.”
“후회하지 않겠어?”
“응!”
“그럼 당분간 내가 가지고 있을게.”
제온은 광물을 다시 아공간에 수납했다.
브리엘이 물었다.
“그런데 이 물건들은 다 어디서 얻은 거야?”
“도박장!”
“제온도 도박해?”
“아니, 도박장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챙겨 줬어.”
“그래?”
“좋은 친구들이야. 알아서 이런 걸 다 챙겨 주고.”
“고마운 친구들이네. 감사해야겠어.”
“어! 그저 고마울 뿐이야.”
브리엘과 제온이 서로의 얼굴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
그그긍!
둔중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철문이 열리고 있었다.
개방된 문으로 들어오는 것은 거대한 장갑차와 호위하는 버기카들이었다.
시청 직속 각성자 부대 중 하나인 NSSC(Neo Seoul Service Corps)였다.
NSSC는 전원 B급과 C급 각성자로 이뤄진 정예 부대였다.
시장 직속의 처형 부대인 넘버즈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들 역시 무시 못 할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네오 서울은 NSSC에 최상의 장비와 무구를 지급했다.
넘버즈와 달리 필요할 때 언제든 투입할 수 있다는 것이 NSSC의 장점이었다.
시청은 최상급 마정석을 운송하는 데 NSSC를 투입했다.
그들이 가져온 장갑차는 네오 서울의 과학력과 마법이 집약된 물건으로 무려 A급 마수의 공격에서도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NSSC는 세 개 팀으로 이뤄져 있었다.
아무래도 전원 B, C급으로만 이뤄져 있기에 숫자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 파견된 NSSC는 그중에서 2팀이었다.
2팀의 팀장은 지상우.
짧게 자른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가 인상적인 남자였다.
어깨엔 마수용으로 제작된 특수 총기를 걸치고 있었고, 양쪽 허벅지엔 주무기인 60cm 길이의 단검을 차고 있었다.
두 개의 단검으로 펼치는 검투 스킬은 대인전에서 특히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다.
장갑차에서 내린 지상우가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러자 NSSC의 다른 각성자가 손가락을 담배에 갖다 댔다.
화르륵!
순식간에 불이 붙은 담배.
지상우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인마! 누가 너보고 불붙이래?”
“하하! 팀장의 고물 라이터보다 제 마법이 훨씬 빠른 걸 어쩝니까?”
“씨발! 귀한 화염 계열 각성자를 겨우 담뱃불 붙이는 데 쓰다니. 대장이 알면 날 죽이려 할 거다.”
“네오 서울에 있는 대장이 어떻게 알겠습니까?”
“됐고 최상급 마정석부터 확인해.”
“넵!”
각성자가 장난스럽게 경례한 후 부하들과 함께 창고로 향했다.
혼자 남은 지상우가 마정석 광산을 둘러봤다.
NSSC의 등장에 놀란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다.
광부들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상인들은 탐욕 어린 시선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개중에 각성자로 짐작되는 이들도 섞여 있었다.
‘기회만 있으면 스캐빈저로 돌변할 새끼들.’
개중에는 진짜 스캐빈저들과 연락을 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마정석 광산에 있는 모든 이들이 잠재적인 약탈자였다.
이곳에 들어왔다고 안심하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뒤통수를 맞고 모든 것을 털려 버린다.
마정석 광산은 그런 곳이었다.
한 치의 방심도 용인되지 않는 곳.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했다.
잠시 후 그의 부하들이 장갑차를 끌고 나타났다.
“와! 대박인데요.”
“이렇게 큰 마정석은 처음 봤습니다.”
부하들이 장갑차 뒷문을 열어 최상급 마정석을 지상우에게 보여 줬다.
“씨발! 미쳤네.”
지상우가 압도적인 최상금 마정석의 위용에 입을 떡 벌렸다.
최상급 마정석 하나가 장갑차 내부를 꽉 채우고 있었다. 최상급 마정석에서 흘러나오는 도도한 마나의 흐름에 정신이 다 아찔해질 정도였다.
“겨우 마정석 하나 운반하는 데 왜 우리를 동원하나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군.”
“이거 하나면 네오 서울 일 년 치 전력이 다 해결된다지 않습니까? 분명 탐내는 놈들이 많을 겁니다.”
“하필 아공간 아이템, 각성자 모두 다른 곳에 차출돼서……. 모두 정신 바짝 차려. 분명 날파리가 달라붙을 테니까.”
“예!”
“장갑차를 중앙에 두고 다이아몬드 대형으로 이동한다. 모두 출발!”
지상우의 명령에 2팀원들이 일제히 장갑차와 버기카에 올라탔다.
그들은 미련 없이 마정석 광산을 떠났다.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브리엘이 혀를 내둘렀다.
“번개처럼 왔다가 가네.”
“그게 NSSC의 모토야. 신속하게 움직여 적들이 개입하기 전에 임무를 달성하는 것.”
NSSC의 속성을 잘 아는 엘로이가 친절하게 설명했다.
그녀 역시 몇 번 NSSC와 함께 작전을 나간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NSSC는 효율적으로 작전에 임해 엘로이를 감탄하게 만들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괜히 오래 머물러서 미지의 적들이 습격을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고 빠르게 이동한다. 적들이 미처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움직이는 것이다.
레빈이 뒤통수에 깍지를 끼며 말했다.
“멋지네! 완전 상남자들 아냐.”
“왜, 너도 NSSC에 들어가고 싶어? 원하면 누나가 추천해 줄 수도 있는데.”
“고맙지만 됐어요.”
“왜?”
“저런 곳에 들어가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없잖아요. 그럼 그 ‘개새끼’도 마음대로 못 찾고.”
“아!”
엘로이는 레빈이 말하는 개새끼가 가족을 죽인 살인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괜히 머쓱해진 엘로이가 슬쩍 시선을 돌렸다.
반면 레빈은 그런 엘로이를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 멀지 않았다.’
마정석 광산을 떠나면 네오 서울은 금방이다.
레빈은 네오 서울에 돌아가는 대로 살인마를 다시 추적할 생각이었다.
네오 서울을 떠나기 전에는 C급 각성자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B급이 되었다.
그 어떤 장애물이 나타나더라도 넘어설 자신이 있었다.
레빈의 시선이 문득 제온을 향했다.
제온은 윌이라는 남자와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잠시 후 윌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고, 제온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이에요? 형!”
“도깨비 시장에서 정보를 전해 왔다. 이지령이 내가 돌아온 것을 알았다고 하네.”
“벌써요?”
“어떤 짓을 벌일지 모르니 조심하라고 하더군.”
“그렇겠네요. 던전 안에서 우리에게 한 행위가 알려지면 명성이 땅에 떨어질 테니까요.”
레빈은 코끝이 간질간질해지는 것을 느꼈다.
벌써부터 위기감이 엄습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말을 한 제온은 태연한 표정이었다.
“괜찮겠어요? 형!”
“미리 걱정해 봐야 해결될 일도 아니잖아.”
“그거야 그렇지만…….”
“걱정하지 마. 두 번은 당하지 않을 테니까.”
한 번은 모르고 당할 수 있다.
알고도 두 번이나 당한다면 나사가 빠졌거나,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멍청이가 분명했다.
제온은 나사가 빠지지도 않았고, 멍청이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리고 원한을 쉽게 잊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