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38)
238화
사람의 눈에서 뇌전이 명멸할 수 있다는 것을 이지령의 눈을 보고 처음 알았다.
착각이 아니었다.
실제로 이지령의 눈에서는 뇌전이 쉴 새 없이 명멸하고 있었다.
‘뇌전을 쓸 수 있는 각성자가 S급이 되면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구나.’
몰랐던 사실을 처음 알았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뇌전이 명멸하지만, 멀리서 보면 새하얀 안광이 불을 뿜는 것 같았다.
보는 사람을 질식하게 할 정도의 위압적인 모습이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이런 이지령의 눈빛을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혀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그런 강렬한 눈빛을 제온은 아무렇지 않게 마주 봤다.
이지령이 물었다.
“공략이 끝난 던전에서 어떻게 빠져나온 거냐?”
“글쎄요.”
제온이 모호한 미소를 지었다.
공략이 끝난 던전은 그대로 소멸된다.
말 그대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지령이 제온과 브리엘 등이 던전에서 못 빠져나가게 공격한 것이다.
당연히 제온과 일행이 모두 던전과 함께 소멸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죽었어야 할 제온 일행이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이지령은 얼마나 놀랐는지 몰랐다.
살면서 그렇게 놀란 적은 처음이었다.
쓰레기 같은 동생이 죽었을 때도 그렇게 동요하진 않았던 것 같다.
동행했기에 제온의 능력이 얼마나 사기적인지 잘 알고 있었다.
사막에서 제온은 거의 무적에 가까운 존재였다.
평범한 각성자나 마수는 제온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사막 전체가 제온의 무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지령조차 사막에서 제온을 상대하는 것을 포기하고 던전을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정면으로 상대하면 부담이 너무 컸으니까.
그렇게 부담스러운 존재가 그와 같은 공간에 있었다.
제온이 물었다.
“내가 어떻게 던전을 빠져나온 게 궁금한가요? 아니면 네오 서울에 왜 돌아온 건지가 궁금한가요?”
“복수를 원하는 거냐?”
“빚을 갚으려는 거죠. 알잖아요? 빚을 지고 갚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우습게 본다는 걸. 우습게 보인 사람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
이지령이 미간을 찌푸렸다.
제온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구보다 그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악착같이 강해졌고, 페가수스 공략대의 덩치를 키웠다.
그 누구도 그를 우습게 볼 수 없게 말이다.
한동안 침묵하던 이지령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이쯤에서 그만하겠다면 모든 것을 없었던 일로 해 주지.”
“모든 것?”
“내 동생을 죽인 것. 최상급 마정석을 탈취한 것. 던전에서 페가수스 공략대를 배신한 것.”
“첫 번째는 인정! 그런데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전혀 사실이 아닌데요?”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그렇다고 말하면 그런 거니까.”
“여전히 자존 광대하군요.”
“그래서 받아들일 건가? 말 건가?”
순간 제온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누가 봐도 명백한 조소였다.
“한 번은 당할 수 있어요. 방심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똑같은 상대에게 두 번 당하면 그건 지능이 없는 거죠.”
“그러니까 내 제안을 거절한 거군.”
“같은 말 두 번 하게 하지 말아요.”
“그럼 지금부터 너는 내 적이다.”
“정말 자기중심적인 분이군. 당신이 던전에서 뒤통수를 쳤을 때부터 우리는 이미 적이었어요. 배신자가 그런 말을 해 봤자, 딱히 마음에 와닿지는 않는다는 거죠.”
제온이 피식 웃었다.
사실 이지령과는 처음부터 적이었다.
그의 동생을 죽인 그 순간부터 말이다.
누가 원인을 제공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무리 쓰레기 같은 동생이라도 이지령에겐 피를 나눈 형제였다. 형제의 복수는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대의를 위해 동생의 복수를 잊겠다는 말처럼 웃긴 말도 없었다.
잠시 제온을 노려보던 이지령이 몸을 돌렸다.
“기대해도 좋을 거다. 이제부터 너에게 생길 일을…….”
“기대해 보죠. 다만 날 만족시키려면 어지간한 스케일로는 안 될 거예요.”
“실망시키지 않도록 노력하지.”
그때 누군가 이지령에게 다가왔다.
“면회 시간이 끝났습니다.”
그는 NSSC의 대장인 케빈이었다.
이지령이 차가운 눈으로 케빈을 바라봤다.
그의 위압감에 케빈이 이를 악물며 버텼다.
“규정입니다.”
“규정이라…….”
“용건이 끝났으면 이만 나가 주시죠.”
“그러지.”
이지령이 무심히 케빈을 스쳐 지나갔다.
굴욕감에 케빈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그가 어디서 이렇게 무시당할 사람은 아니었다.
NSSC의 대장이라면 각 구역의 지배자라도 어느 정도 존중을 해 줬다. 그런데 이지령은 시종일관 개무시로 일관했다.
심지어 NSSC에 찾아온 것도 정당한 절차를 밟은 것이 아니었다.
한밤중에 그냥 쳐들어와 제온을 면회해야겠다고 압박한 것이다.
케빈은 이지령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이지령은 이미 네오 서울의 거물로 인정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외로 면회를 허용해 준 것이다.
하지만 너무 오래 면회를 허용할 수 없기에 조심스럽게 말했는데, 돌아온 것은 싸늘한 눈빛과 개무시였다.
‘이 씨발 새끼가…….’
케빈이 이빨을 뿌득 가는지도 모르고 이지령은 밖으로 나갔다.
복도에 덩그러니 남은 케빈이 창문으로 보이는 제온에게 말했다.
“제온!”
“네!”
“정말 우리 애들 당신이 죽인 거 아냐?”
“이미 알겠지만, 난 그들을 죽일 이유가 없다니까요.”
“씨발!”
케빈이 발로 감방 문을 걷어찼다.
NSSC 3팀이 복수하겠다고 감방으로 쳐들어왔다가 제온과 엘로이에게 개처럼 얻어터졌다.
마나의 흐름을 방해하는 감옥의 특성 때문에 순수 육체 능력만으로 싸웠다지만, 어쨌거나 진 쪽은 3팀이었다.
3팀을 쓰러트리고 탈출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제온은 그러지 않았다.
그때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제온이 정말 범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말이다.
만일 자신이 범인이었다면 3팀을 쓰러트린 즉시 감옥을 빠져나갔을 것이다.
그때부터 찝찝한 마음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당신이 아니면 누가 우리 애들을 죽였지?”
“이미 당신도 의심하고 있잖아요? 자신의 감을 믿어 보세요.”
“씨발!”
쾅!
케빈이 다시 한번 철문을 걷어찼다. 하지만 특수한 금속으로 만든 철문엔 흠집도 나지 않았다.
잠시 혼자 씩씩거리던 케빈이 제온을 바라봤다.
“무죄가 밝혀지지 않은 이상 너를 풀어 줄 수는 없다. 그게 NSSC의 규칙이니까.”
“이해합니다.”
“단 이렇게 쓸데없는 놈들이 찾아와서 귀찮게 하지 않도록 해 주마.”
“버거울 겁니다. 연관된 이들이 보통 사람들이 아니라서.”
“상관없다. 나도 보통 독종은 아니니까. 무죄가 밝혀질 때까지 편히 쉬다 가도록 해.”
“그러죠.”
밖으로 나온 케빈이 소리쳤다.
“씨발! 더러운 새끼들! 감히 내 뒤통수를 쳐? 경계 강화하고, 방문객 받지 마.”
***
이지령이 NSSC 본부를 돌아봤다.
거대한 창고 형태의 본부에 푸른 막이 형성되는 것이 보였다.
방어 결계가 발동된 것이다.
네오 서울 주요 건물엔 저런 방어 결계가 존재했다.
평상시엔 꺼져 있지만, 비상 상황이 벌어지면 발동한다.
NSSC 건물에 방어 결계가 펼쳐졌다는 것은 케빈이 이지령과 페가수스 공략대를 위협적인 존재로 판단했다는 의미였다.
“어리석은…….”
그때였다.
밖에서 기다리던 회색 머리 여자가 그에게 다가왔다.
이지령의 비서이자, 구조팀장인 켈다였다.
그녀가 물었다.
“어떻게 되셨습니까?”
“협상 결렬이다.”
“역시 그렇군요. 동대문에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거긴 또 왜?”
“침입자가 최상급 마정석을 탈취해 달아났답니다.”
“병신 같은…….”
이지령이 경멸 어린 표정을 지었다.
세를 불리기 위해 요한과 손을 잡았다.
그는 네오 서울을, 요한은 빈민가를 장악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렇다고 끝까지 함께 갈 생각은 없었다.
동대문 같은 광신도 집단을 품고 가는 것은 이지령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당히 쓰다 버리려 했는데 이 사달이 생긴 것이다.
“누가 마정석을 탈취해 갔지?”
“벽을 투과해 훔쳤다고 하니…….”
“놈이군! 레빈.”
“그런 것 같습니다.”
이지령이 입술을 질겅 깨물었다.
레빈의 능력이 탐 나 몇 번이나 자신 휘하로 끌어들이려 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다행히 동대문 전체에 결계가 발동되어 아직 빠져나가지 못한 것 같습니다.”
“결계를 오래 유지할 수 없을 거야. 그 안에 잡으면 좋겠지만, 아니라면…….”
“저희가 큰 타격을 입겠죠.”
동대문과 결탁해 시청 직속의 부대인 NSSC를 습격해 최상급 마정석을 탈취했다는 비밀을 알게 되면 시장인 진금호도 가만있지 않을 거다.
각 구역끼리 세력 다툼을 벌이는 데는 관대한 진금호였지만, 자신이나 시청의 권위를 위협하는 자들에겐 일말의 자비도 없었다.
S급이 되어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 이지령조차 진금호를 상대할 자신은 없었다.
더 성장하고, 더 세력을 키워야 했다.
그에게 부족한 것은 성장할 시간이었다.
“두 번째 플랜을 시행한다.”
“지금 당장 말입니까?”
“지금이 아니면 영영 기회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알겠습니다.”
켈다가 품에서 휴대 전화를 꺼냈다.
사막으로 나가면 먹통이 되지만, 네오 서울에서 이보다 좋은 통신 수단은 존재하지 않았다.
켈다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난데, 계획대로 진행해.”
그녀는 간단하게 용건을 말한 후 전화를 끊었다.
이지령은 팔짱을 낀 채 네오 서울 전경을 바라봤다.
쾅!
그 순간 높은 건물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은 건물 상층부를 완전히 날려 버렸다.
“뭐야?”
“테러인가?”
깊은 밤 잠들어 있던 사람들이 놀라 밖으로 뛰쳐나왔다.
왜애앵!
급박한 사이렌이 네오 서울 전역에 울려 퍼졌다.
이지령이 중얼거렸다.
“네오 서울에 테러가 일어나면 시청 직속의 무력 집단은 모조리 출동하게 되어 있지.”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NSSC에서 각성자들이 뛰쳐나왔다.
NSSC를 지키고 있던 각성자 1팀과 3팀이었다.
테러가 발생했다는 소식에 최소한의 병력만 남기고 전원 출동하는 것이다.
이지령과 대립각을 세우던 NSSC의 대장 케빈도 보였다.
그들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이지령이 미소를 지었다.
“이제 빈집 털이를 시작해 볼까?”
이지령의 등 뒤로 검은 그림자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페가수스 공략대의 각성자들이었다.
수백 명이나 되는 각성자들이 은밀히 NSSC 본부에 모여든 것이다.
공략팀장 브론슨이 NSSC 본부를 보며 중얼거렸다.
“흐흐! 드디어 모래술사를 사냥하는 건가?”
“시간을 길게 끌면 안 된다. NSSC 놈들이 돌아오기 전까지 제온을 죽여야 한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장! 사막에선 놈이 무적일지 모르지만, 이곳에선 아니니까. 모래도 없고, 마나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감옥 안에서 놈이 무슨 힘을 쓰겠습니까?”
NSSC 감옥의 별칭은 클린룸이다.
모래는커녕 먼지 한 톨 유입될 수 없는 구조.
제온 같은 모래술사에겐 최악의 환경이었다. 그래서 이곳을 전장으로 선택했다.
이지령이 각성자들에게 말했다.
“제온의 머리를 가져오는 자에겐 페가수스 공략대의 부대장 자리를 주겠다.”
“우오오!”
“놈의 목은 내 거다.”
“가자!”
흥분한 각성자들이 앞다퉈 NSSC 본부로 달려갔다.
그들의 목표는 제온의 머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