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4)
24화
엑시온은 지구의 물건이 아니었다.
지구가 이렇게 변했을 때 이종족들과 함께 넘어온 물건이었다.
다만 그 누구도 용도를 몰라 단순한 모래시계 취급을 받았을 뿐이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던 모래시계는 수많은 주인을 거쳐 운명처럼 제온의 손에 들어왔다.
엑시온은 평상시 모공에 보관해 두다가 필요할 때 꺼내 사용할 수 있었다.
모래가 없다면 힘을 쓸 수 없는 모래술사의 약점을 완벽하게 보완해 주는 최고의 무기인 것이다.
엑시온을 몸에 흡수한 순간부터 제온은 몸 안에서 가공할 열기를 느꼈다.
엑시온이 제대로 융합하지 못하고, 몸에 부담을 가하는 것이다.
전형적인 폭주 증상이었다.
제대로 된 과정을 거쳐 흡수된 것이 아니다 보니 폭주를 하는 것이다.
그 덕분에 제온의 몸이 순식간에 정상으로 회복되었지만, 이대로 놔두면 오히려 붕괴할 수도 있었다.
넘치는 에너지를 안정시키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바로 폭주하는 에너지를 쏟아 내는 것이다.
제온이 지배력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그의 모공에 흡수되었던 엑시온이 모공에서 흘러나왔다.
엑시온은 마치 구름처럼 제온의 몸 주위에서 일렁였다.
입자 하나하나가 마치 자신의 신경과 연결된 듯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때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기가레인이 제온을 공격해 왔다.
번쩍!
또다시 체인 라이트닝이 펼쳐진 것이다.
전격의 그물이 실내를 가득 채우며 퍼져 나갔다.
눈을 멀게 할 정도로 강렬한 전류의 향연에도 제온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엑시온을 움직여 몸 주위에 조그만 돔 형태로 만들었다.
빠지직!
체인 라이트닝이 엑시온을 강타했다. 하지만 그 안에 있는 제온에겐 어떤 충격도 가해지지 않았다.
모래는 기본적으로 전류가 통하지 않는다.
모래술사의 전용 무기인 엑시온은 그보다 훨씬 강력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었다.
실내를 가득 채웠던 전류의 그물이 사라지자 제온도 엑시온의 돔 형태를 해제했다.
“후우! 대단하군.”
제온이 엑시온의 위력에 감탄했다.
저 강렬한 전류의 물결에서 자신을 이렇게 완벽하게 보호하다니.
활용하기에 따라서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쿵 쿵!
체인 라이트닝이 통하지 않자 기가레인이 직접 달려왔다.
그렇지 않아도 거대한 동체를 가진 기가레인이 속도를 높여 달려오는 모습은 실로 공포스러웠다.
하지만 제온은 공포에 잠식당하지 않았다.
엑시온을 쓰지 못할 때도 기가레인에 용감히 맞서 싸웠던 제온이었다. 엑시온까지 얻었는데 두려워 움츠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팟!
제온이 바닥을 박차고 기가레인에 달려 나갔다.
엑시온이 마치 유성처럼 꼬리를 흩날리며 제온을 감쌌다.
몸에 가득 느껴지는 고양감과 활력.
“챠앗!”
제온이 주먹을 뻗었다.
그러자 엑시온이 그의 주먹을 따라 드릴처럼 맹렬히 회전하며 기가레인에 작렬했다.
쾅!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폭음이 터져 나오며 기가레인의 거대한 몸뚱이가 흔들렸다.
기가레인의 단단한 몸체에는 커다란 흠집이 나 있었다. 하지만 기동을 멈출 정도는 아니었다.
골렘의 가장 큰 장점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두려움도 없기에 어지간한 상처 따윈 무시한다.
제온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 수많은 골렘들을 상대하면서 약점을 파악한 것이다.
‘놈의 약점은 관절 부위다. 그중에서도 무릎.’
제온은 정신을 집중하며 기가레인을 날렸다.
심상에 그림을 그린다.
엑시온을 마치 실처럼 가느다랗게 응축하는 그림을.
이젠 엑시온을 기가레인의 관절에 침투시킬 차례다. 하지만 아직 난관이 남아 있었다.
바로 기가레인의 전신에 어려 있는 검은색 역장이다.
역장은 일종의 보호막이었다.
물리적인 충격과 마법 공격을 어느 정도 완화하거나 막아 준다.
데이오든처럼 규격을 벗어난 자들에겐 종잇장에 불과하겠지만, 제온처럼 하급 각성자에겐 넘을 수 없는 벽이기도 했다.
하지만 제온에게도 생각이 있었다.
‘한 점에 모든 것을 집중시킨다. 그리고 회전시켜 파괴력을 극대화시킨다.’
제온은 전 마나를 엑시온에 집중했다.
위잉!
그러자 실처럼 변한 엑시온이 맹렬히 회전하며 기가레인의 역장을 파고들었다.
마치 실뱀처럼 힘겹게 역장을 통과한 엑시온은 마침내 기가레인의 무릎 관절을 파고들었다.
기계와 골렘의 관절 부위는 모래에 취약했다.
콰가가각!
골렘의 무릎 관절에서 무언가 갈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일반적인 모래라면 그 정도 걸림 따윈 가뿐히 무시했겠지만, 엑시온은 불행히도 보통의 모래가 아니었다.
제온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형태를 바꿀 수 있었다.
기가레인의 관절을 파고든 엑시온은 뭉쳐서 거친 입자로 변했다.
제온은 골렘의 관절 안에서 엑시온이 회전하는 그림을 그렸다.
“고속 회전!”
가아앙!
순간 엑시온이 고속 회전을 했다.
거친 모래 입자가 기가레인의 관절을 갉아 냈다.
원래 강한 금속의 표면을 갉아 낼 때 모래를 고압으로 분사한다.
샌드 블라스터가 그와 같은 원리였다.
고속으로 회전하는 모래는 관절 부위와 최악의 상성을 가지고 있었다.
관절에서 돌가루가 튀었다.
고속 회전하는 엑시온에 돌이 갈려 나오는 것이다.
기가레인은 관절의 이상을 무시하고 움직이려 했다.
빠각!
그 순간 파열음과 함께 기가레인의 몸이 기형적으로 꺽였다.
부하를 견디다 못한 무릎 관절이 마침내 파괴된 것이다.
쿵!
기가레인이 무릎을 꿇었다.
거대한 골렘은 몸을 일으키려 애를 썼지만, 육중한 무게를 한 다리로 지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가레인이 생각이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할 줄 알았다면 다른 방법을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 기가레인은 정해진 대로만 행동하는 인공 생명체.
상정 외의 사태가 발생했을 때 임기응변할 만한 지능이 없었다. 그래서 정해진 방식으로만 움직였다.
제온은 그 점을 파고들었다.
엑시온을 반대편 무릎 관절에 투입했다.
마찬가지로 고속 회전을 시키자 얼마 안 있어 기가레인의 무릎 관절이 완전히 파괴됐다.
쿵!
기가레인의 거대한 동체가 바닥에 엎어졌다.
그래도 제온은 방심하지 않았다.
기가레인같이 높은 등급을 가진 골렘에겐 자가 회복력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당장은 큰 충격에 파괴되었지만, 시간이 흐르면 분명 부서진 부분을 회복해 제온을 공격할 것이다.
그 전에 기가레인을 완전히 파괴해야 했다.
‘빨리 핵을 찾아야 해.’
핵을 부수면 골렘은 기동을 멈춘다.
문제는 이 거대한 몸 어디에 핵이 숨겨져 있느냐다.
확인해 볼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엑시온을 이용하는 것이다.
제온은 기가레인의 무릎 관절을 통해 엑시온을 내부로 이동시켰다.
돌로 이뤄진 골렘이라지만, 기동하기 위해선 핵에서 마나를 받아야 했다. 마나가 흐르는 일종의 통로가 존재하는 셈이다.
이를 ‘마나 회로’라고 불렀다.
너무 미세해서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마나 회로를 감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엑시온은 마나 회로보다 더 미세하고 고왔다.
엑시온은 빠른 속도로 기가레인의 내부를 훑었고, 마침내 마나 회로를 찾아낼 수 있었다.
제온은 정신을 집중해 마나 회로에 엑시온을 침투시켰다.
그때였다.
그그극!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기가레인의 부서진 관절 부위가 다시 회복되기 시작했다.
부서졌던 돌 조각과 가루들이 서서히 제자리로 찾아 들어갔다.
꼭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듯한 모습에 제온은 미간을 찌푸렸다.
기가레인의 무릎은 이미 거의 회복되었다.
놈이 조금씩 몸을 일으켰다.
두 눈에서 붉은빛이 폭사되어 나왔다.
제온은 놈이 분노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감정이 없는 골렘이 분노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기가레인은 최소 B급 이상의 괴물. 어쩌면 감정을 느끼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놈의 분노가 자신을 향하기 전에 어서 끝장을 내야 했다.
제온은 엑시온의 운용에 더욱 집중했다.
엑시온은 빠른 속도로 마나 회로를 거슬러 올라갔다.
무릎에서 시작해 허리 축, 그리고 가슴까지 도달했다. 그런데도 핵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사이 기가레인은 부상을 완전히 회복해 몸을 일으켰다.
그그극!
거체가 마침내 우뚝 섰다.
기가레인과 제온의 사이는 불과 이 미터 정도.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다.
기가레인이 양팔을 높이 치켜올렸다.
이대로 내리쳐 제온을 완전히 박살 낼 작정이었다.
제온도 그 광경을 똑똑히 봤다. 하지만 피할 수 없었다.
지금 피하면 정신이 흩어져 이제까지의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콰아아!
기가레인이 하늘 높이 치켜든 두 주먹을 그대로 내리쳤다.
그 순간에도 제온은 온 정신을 집중했다.
‘찾았다!’
기가레인의 주먹이 그를 짓뭉갤 찰나 마침내 핵을 찾아냈다.
제온은 엑시온을 이용해 핵을 공격했다.
쩌어엉!
순간 핵이 터져 나가고, 기가레인이 기동을 멈췄다.
기가레인의 두 주먹은 제온의 머리 위에서 멈춰 섰다.
겨우 한 뼘 차이로 목숨을 구한 것이다.
“하아!”
제온이 다리에 힘이 풀려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자신이 해낸 일이었지만, 도무지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엑시온을 흡수했다고 하지만 무려 B급 마수를 잡았다는 사실이 현실 같지 않았다.
“정말 내가 이 골렘을 잡았다고? 하하! 미친…….”
어이가 없어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제온은 알고 있었다.
기가레인을 잡은 것이 온전한 실력 때문이 아니라 상성의 차에 기인한 바가 크다는 것을 말이다.
다른 B급 마수를 상대로 이 정도의 위용을 발휘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츠으으!
기가레인의 핵을 정지시킨 엑시온이 다시 흘러나와 제온의 몸에 흡수됐다.
제온이 대자로 널브러져 가쁜 숨을 몰아쉴 때였다.
갑자기 건틀렛 안쪽 손목에서 오렌지빛이 흘러나왔다.
제온이 깜짝 놀라 건틀렛을 벗으니 손목의 계급장에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세 번째 선이 빛나고 있었다.
D급으로 승급한 것이 분명했다.
“내가 D급이 되었단 말이지?”
가슴이 뿌듯했다.
데이오든의 도움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이룩한 업적이었다.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D급이 되면서 체력과 마나가 완전히 회복했다.
“휴! 아주 죽으란 법은 없구만.”
제온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자신이 쓰러트린 기가레인을 바라봤다.
기가레인은 그에게 두 주먹을 내리치던 자세 그대로 멈춰 있었다.
핵이 파괴된 골렘은 그냥 돌덩이 불과했다.
모래 아귀 가죽이나 여왕 늑대 개미의 사체처럼 제온이 이용할 수 있는 부분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제온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건너편 입구로 향했다.
지금은 쓰러트린 골렘에 신경을 쓸 때가 아니었다.
어서 데이오든에게 가야 했다.
다행히 기가레인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다른 골렘은 나타나지 않았다.
덕분에 제온은 무사히 통로 막다른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기가레인이 있던 방보다 더 큰 문이 존재했다.
제온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문이 이 정도라면 안에 있는 존재는 얼마나 큰 거야?’
문득 두려움이 왈칵 밀려들어 왔다. 하지만 제온은 애써 두려운 감정을 지웠다.
“여기까지 와서 돌아갈 수도 없잖아. 가자.”
제온이 거대한 문을 힘주어 밀었다.
문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럽게 열렸다.
문안의 전경을 본 순간 제온이 눈을 부릅떴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거대한 빛무리가 소멸해 가고 있었다.
그 앞엔 데이오든이 크레이온을 든 채 서 있었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저 소멸해 가는 빛이 이 신전의 주인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럼 신을 죽인 건가?’
제온의 전신에 소름이 올라왔다.
그때 데이오든이 고개를 돌려 제온을 바라봤다.
“늦었구나. 병신!”
꿀꺽!
제온이 대답 대신 마른침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