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45)
245화
이지령은 S급 각성자였다.
그것도 가장 파괴력이 강한 뇌전계 마법을 사용하는 초강자.
그렇기에 요한은 기꺼이 이지령과 손을 잡았다.
이지령은 네오 서울에서 입지를 넓히고, 요한은 그런 이지령을 지원한다. 이지령이 네오 서울에서 영역을 확보하면 포교해도 좋다는 협약까지 맺었다.
요한은 이지령이 성공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기에 기꺼이 최상급 마정석을 약탈하는 일에 동참했다.
이지령이 건재한 이상 동대문에 별문제가 없을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믿었던 이지령은 제온에게 목숨을 잃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그의 머리가 핑핑 돌아갈 때였다.
“저자다.”
“요한 님께 불경한 자를 잡아들여라.”
후문 쪽에서 성기사들이 뛰어 들어왔다.
그들은 요한과 대치하고 있는 중년인을 향해 전력으로 검을 휘둘렀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요한이 미처 그들을 말리지도 못했다.
그 순간 중년인의 입가에 어려 있던 미소가 짙어졌다.
“이런? 아직 서 있는 친구들이 남아 있었네.”
쿠웅!
그 순간 보이지 않는 거대한 해머에 맞은 것처럼 중년인을 공격하던 성기사들의 몸이 주저앉았다.
“크으!”
“커흐흑!”
성기사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엄청난 압력과 무게가 그들의 몸을 짓눌렀기 때문이다.
그그극!
힘을 주고 버티려 해도 소용없었다. 그들의 허리가 꺾이고, 고개가 내려앉았다.
수십, 수백 톤의 압력이 그들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성기사들의 방어 스킬인 홀리 실드를 펼쳐도 소용없었다.
개미가 아무리 껍질이 단단해도 사람의 손가락에 눌려 터지는 것처럼 한계를 초월한 압력과 힘엔 대항할 수 없었다.
뿌드득!
성기사들의 몸에서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전신에 혈관이 지렁이처럼 불거져 나왔다.
조금만 더 압력이 가해지면 그들의 몸이 풍선처럼 터져 나갈 것이다.
그때까지 침묵을 지키던 요한이 입을 열었다.
“중력의 마법사 그레인이었군.”
“정답입니다.”
중년인, 그레인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레인.
처형 부대의 이인자이자 중력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S급 각성자.
그의 무력은 각 구역의 지배자들에게 절대 뒤지지 않는다.
이지령이 살아 있었다고 해도 승리할 수 있을 거라 장담할 수 없는 괴물이 바로 그레인이었다.
그렇다고 그레인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요한도 그에 필적할 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레인과 정면으로 싸우면 진금호를 적으로 두게 된다.
네오 서울 그 자체인 사람을 말이다.
머리를 굴린 요한이 어렵게 말했다.
“그만하게.”
“네?”
“신촌에서 물러나겠네.”
“그건 당연한 거구요.”
“도깨비 시장에서도 손을 떼지.”
“좋네요. 그리고요?”
“최상급 마정석 가치에 상응하는 물건을 사과의 의미로 보내지.”
“그거 마음에 드네요.”
그그극!
성기사들에게 가해지는 중력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그레인이 원하는 바를 아직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의미였다.
요한이 이를 악물었다.
“당분간 성기사들의 활동 영역을 동대문으로 국한하지.”
“와우!”
그제야 그레인이 성기사들에게 가하던 중력을 풀고 박수를 쳤다. 드디어 만족할 만한 답변을 얻은 것이다.
“크허허!”
“허윽!”
중력에서 해방된 성기사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레인이 푸른 보석이 박힌 지팡이를 장난감처럼 흔들며 말했다.
“그럼 약속 잘 지킬 거라 믿으며 물러가겠습니다. 다음에 좋은 자리에서 다시 뵙죠.”
이를 뿌득 가는 요한을 뒤로하고 그레인이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는 통로 곳곳에 성기사들이 쓰러져 있었다.
모두 그의 중력에 당한 것이다.
쓰러져 있는 자들 중 죽은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레인이 섬세하게 중력을 조절했기 때문이다.
원한다면 동전만 한 공간에 수십 톤의 중력을 집중시킬 수 있는 그레인이었다.
평범한 성기사들은 절대 그의 공격을 감당할 수 없었다.
성전 밖으로 나오자 장갑차 한 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장갑차 앞에는 정복을 차려입은 젊은 여자가 서 있었다.
여자가 손목시계를 보며 말했다.
“예상보다 이 분 정도 늦으셨네요.”
“아! 요한 님과 대화가 길어져서 말이지.”
“대화는 잘 끝난 겁니까?”
“말귀를 잘 알아듣는 분이라서 좋게 끝났어.”
“다행이네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끝까지 말귀가 어두웠으면 이 커다란 교회를 무너트렸어야 하잖아.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거짓말하지 마요. 숨 쉬듯 쉽게 할 수 있으면서.”
“야! 얘가 남 일이라고 쉽게 말하네.”
그레인이 목소리를 높이자 여자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그쯤 하시죠. 다음 임무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벌써? 그건 아니지.”
“뭐가 아니란 겁니까?”
“이렇게 빨리 임무를 주는 게 어딨어? 원래 한 번 임무에 투입되면 충분한 휴식을 주잖아.”
“휴식을 줄 만큼 힘든 일도 아니었잖습니까?”
“레오나! 네 일 아니라고 너무 막말하는 거 아니냐?”
그레인이 레오나라고 부르는 여자는 그의 비서였다.
일정, 임무, 지원, 일상생활 모든 것을 도와줬다.
레오나가 없으면 그레인의 일상생활 자체가 불가능해질 정도였다.
“잔말 말고 장갑차에 타십시오. 빨리 움직여야 하니까.”
“야!”
“왜요?”
“그래도 이건 아니지.”
“뭐가 아닙니까? 차나 타십시오.”
“이건 비서가 아니라 시어머니라니까.”
“억울하면 해고하시든가요?”
“쳇! 친구 딸만 아니었으면 나도 그러고 싶다.”
그레인이 투덜거리면서 먼저 장갑차에 탔다.
피식 웃은 레오나가 곧 장갑차를 운전해 동대문을 빠져나갔다.
***
최상급 마정석은 시청으로 돌아갔고, 신촌에 들어왔던 성직자들은 모두 동대문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제온과 레빈, 브리엘도 집으로 돌아왔다.
“이게 얼마 만이야?”
“우리 집이다.”
레빈과 브리엘이 환호하며 집 안을 뛰어다녔다.
오랜만에 돌아왔지만, 집안은 하나도 망가지지 않았다.
‘지켜보는 눈’이 외부의 침입을 완벽하게 막아 준 덕분이었다.
제온도 변함없는 집의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고생했으니 당분간은 푹 쉬자.”
“네! 형.”
“응!”
레빈과 브리엘이 신이 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들은 각자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어서 빨리 샤워하고 쉬려는 것이다.
제온은 거실에 있는 소파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창문 앞 네온사인 너머로 거대한 시청사가 보였다.
시청사 정상에 진금호가 있을 것이다.
‘동대문이 잠잠한 것은 당신 작품이겠지.’
그렇지 않고서는 그 광신도들이 이렇게 순순히 신촌에서 물러날 리 없었다.
다행이었다.
진금호가 적절한 순간에 개입하지 않았다면 결국 동대문과 마지막까지 싸워야 했을 것이다.
동대문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식의 소모전은 제온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다행히 제온이 원할 때 적절한 수준의 개입이 이뤄졌다.
동대문도 이 이상 진금호의 심기를 건들고 싶지는 않을 테니, 당분간은 자중할 것이다.
“후!”
제온이 한숨을 내쉬었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던전 공략에서 배신당하고, 스캐빈저 무리와 강철 요새를 정상화하고, 다시 네오 서울에 돌아와 이지령과 요한이 결탁한 세력과 싸웠다.
평범한 각성자였다면 이 과정에서 몇 번이나 죽었을 정도로 위험의 연속이었다.
이렇게 무사히 돌아온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었다.
제아무리 제온이라도 정신적인 피로가 쌓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얻은 것이 적잖았다.
“레빈과 브리엘, 엘로이가 성장했고, 나 역시 새로운 스킬을 깨우쳤지.”
그는 이제까지 모래를 다룰 수 있는 권능과 초열의 건틀렛으로 다룰 수 있는 화염 스킬을 별개로 생각했었다.
초고열의 화염을 다루게 해 주는 초열의 건틀렛이 대단한 아이템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본연의 능력이 아니었기에 그저 보조 수단 정도로만 생각한 것이다.
모래와 화염을 간간이 섞어 사용했지만, 융합은 먼 훗날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지령과의 대결을 통해 다른 계열의 두 스킬을 융화시킬 방법을 찾아냈다.
“샌드 게헤나를 사막에서 펼친다면?”
아공간에 보관해 뒀던 모래만으로도 일대를 용암 지대로 만들었다.
모래가 무한한 사막에서 샌드 게헤나를 펼친다면 엄청난 면적이 용암처럼 녹아내릴 것이다.
인간뿐 아니라 마수를 상대할 때도 무섭도록 효율적일 것이 분명했다.
“좋네!”
제온이 미소를 지었다.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 많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이번처럼 상황에 따라 대응할 수단이 많아진다는 의미였으니까.
“생각은 나중에 하고 지금은 좀 쉬어야겠군.”
***
“모두 정리되었다는 보고입니다.”
“그런가? 모두 수고했군.”
비서 서태란의 보고에 창밖을 보고 있던 진금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금호가 보고 있는 곳은 방벽 너머의 빈민가였다.
잠시 진금호가 보던 곳을 같이 바라보던 서태란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런데…….”
“응?”
“이렇게 마무리 지어도 되는 겁니까? 최상급 마정석 도난 사건에 연관된 자가 비단 동대문만은 아닌데요.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남 구역도 이에 개입한 정황이 포착되었습니다.”
“증거가 없잖아.”
“마음만 먹으면 증거야 얼마든지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으시군요. 혹시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뭐든 과하게 누르면 터지는 법이야. 네오 서울처럼 거대한 도시일수록 더욱 섬세한 조정이 필요해. 적당히 풀어 주고, 또 눌러 주기를 반복해야 해.”
과거처럼 수많은 나라와 도시가 건재할 때는 굳이 이렇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
한 도시나 나라가 망해도 인간이라는 종이 소멸할 일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네오 서울은 다르다.
이 세상에서 초고도 문명을 이룬 유일한 도시다.
이곳이 무너지는 순간 살아남은 인류는 중세 시대로 돌아갈 것이다. 단지 문명만 퇴보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자체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멸종할 수도 있었다.
진금호는 그런 상황이 오길 원치 않았다.
그에겐 인류를 보호하고 번영시킬 책임이 있었다.
당장은 상황이 여의치 않아 네오 서울의 시장에 만족하고 있지만, 언제고 이 조그만 땅을 벗어나 인간의 세상을 다시 만드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지금도 그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 매진하고 있었다.
목표를 이룰 때까지 쉬지도, 멈추지도 않을 것이다.
“골치 아픈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으니, 이제 우리 일을 다시 시작해야지.”
“제온은 그냥 놔두실 겁니까?”
“왜? 제온이 문제가 되나?”
“따지고 보면 제온이 없었다면 이번 일이 터질 일도 없었을 겁니다. 그는 앞으로도 계속 문제가 될 겁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
“차라리 지금 제거하는 게…….”
“자신은 있고?”
“넘버즈를 움직이면…….”
“S급이 된 이지령을 죽였어. 본인의 능력이 S급 이상이라는 거지. 그를 죽이려면 넘버즈에도 희생자가 나올 거야. 나는 그런 상황을 원치 않아.”
“하지만…….”
“태란아!”
갑자기 진금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순간 서태란이 긴장했다.
“나는 그가 필요하다. 그가 없으면 모비딕의 심장을 구할 수 없고, 모비딕의 심장이 없으면 내 계획에 심각한 차질을 빚지. 설마 내가 그런 상황이 되는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겠지.”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주제넘게 선을 넘었습니다.”
서태란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듯한 느낌에 몸을 떨었다.
감히 진금호의 얼굴을 바라볼 수 없어 급히 고개를 숙였다.
“거기까지란다. 내가 너를 예쁘게 봐줄 수 있는 선은.”
“명심……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서태란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떨렸다.
그녀의 등줄기는 어느새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