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47)
247화
마치 찬물로 샤워를 한 것처럼 강한 한기와 청량감이 제온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이런 느낌은 또 처음이었기에 제온은 아공간 속 광물을 유심히 바라봤다.
“최상급 마정석이 채굴된 갱도에서 발견했다고 했던가?”
마정석 광산에서 채굴되었으면 당연히 마정석이어야 했다. 하지만 정체불명의 광석은 일반적인 마정석이 갖는 특징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았다.
광물은 언제 강력한 파장을 발산했었냐는 듯이 원래의 평범한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착각은 아니었고, 왜 하필 이 타이밍에 변화를 보인 거지?”
제온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유 없는 변화는 없는 법이었다.
분명 무언가 광물을 자극한 요인이 있기에 저런 변화를 보였을 것이다.
“내 마나 때문인가?”
제온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광물에 자신의 마나를 주입해 봤다. 하지만 광물은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때가 돼서 변화를 보인 건가? 아니면 외부 요인이…….”
주위를 둘러봐도 보이는 것은 온통 모래뿐이다.
특별히 눈에 띄는 요소는 없었다.
“모르겠군.”
제온이 고개를 저었다.
광물의 비밀이 궁금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지금 당장 파고들고 싶지는 않았다.
지난 며칠 충분히 휴식을 취한 덕분에 육체적, 정신적 피로는 풀렸지만, 아직 무언가를 능동적으로 시도해 볼 의욕이 돌아오지 않았다.
광물이 계속 파장을 발산했다면 모르지만, 잠잠하니 ‘굳이 지금 비밀을 파헤쳐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됐다.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
제온이 아공간을 닫으며 중얼거렸다.
그는 다시 네오 서울로 향했다.
빈민가에 들어서자 레빈이 그를 불렀다.
“형!”
“어?”
“밖에 나갔다 오는 거예요?”
“응! 너는?”
“저는 오랜만에 친구들 좀 만나고 있어요.”
레빈이 웃으며 옆쪽에 있는 친구들을 가리켰다.
그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소년들이 제온을 보고 호들갑을 떨었다.
“저분이 그 모래술사 형님?”
“형님! 저 팬입니다.”
레빈 친구들의 호들갑에 제온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레빈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 이 녀석들이 형 팬이라서 그래요. 다들 형이 싸우는 것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나.”
“진짜입니다, 형님!”
“존경합니다.”
레빈 또래 아이들이 ‘형님’이라는 극존칭 하는 것이 웃기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해서 제온이 손을 내저었다.
“그렇게 ‘님’ 자를 안 붙여도 돼.”
“그래도…….”
“편하게 형이라고 불러.”
“네!”
결국 레빈 친구들이 제온을 형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제온이 레빈에게 물었다.
“나는 집으로 갈 건데 너는?”
“저는 이 친구들하고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그래? 그럼 먼저 들어간다.”
“네! 형. 나중에 봬요.”
레빈이 웃으며 제온이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봤다.
제온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레빈의 표정이 차갑게 변했다.
그가 친구들에게 물었다.
“그래서 놈이 또 살인을 저질렀다고?”
“응! 다들 쉬쉬하고 있지만, 놈이 살인을 저지른 게 분명해.”
“어딘데?”
“그게…….”
웬일인지 친구가 말하는 것을 망설였다.
“왜?”
“살인을 저지른 곳이 서 구역이야.”
“서 구역? 그럼 네오 서울이란 말이야?”
“응!”
“씨발!”
레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네오 서울은 그의 활동 영역이 아니었다.
빈민가 사람들에게 네오 서울은 문을 잘 열어 주지 않는다.
레빈이 아무리 희귀 능력을 각성했다고 하지만, 네오 서울에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자신의 각성 능력을 밝힌다면 정식으로 신분증을 발급받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각 구역의 영입 타깃이 될 수도 있었다.
각성 능력인 유령화로 몰래 들어갈 수도 있지만, 혹시라도 들키면 문제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질 것이다.
그것은 레빈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레빈이 다시 한번 물었다.
“정말 놈이 서 구역에서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 확실해?”
“거기 소속 각성자들에게 들은 말이야. 가정집에 침입해 살인을 저지른 후 사체를 잘라 장식하는 살인마가 활동하고 있다고.”
대답한 친구는 빈민가에서 짐꾼으로 활동했다.
각성자들이 던전 공략이나 마수 사냥에 나서면 짐꾼으로 따라가 허드렛일을 했다.
각성자들의 대화를 주의 깊게 듣다가 쓸 만한 정보가 있으면 친구인 레빈에게 알려 줬다.
그러니까 이번 정보도 진짜일 확률이 높았다.
“그럼 네오 서울에 들어가야 한다는 건데.”
“어떻게 들어가려고? 방법이 없잖아.”
“아냐! 방법이 있어.”
그 순간 레빈의 머릿속에 누군가 떠올랐다.
그녀라면 충분히 그를 네오 서울 안으로 들여보내 줄 수 있을 것이다.
“무슨 방법?”
“나는 어디 좀 가 볼 테니까 너희들은 계속 그 새끼 정보를 수집해 줘. 알았지?”
“응!”
“수고했어. 이거 가지고 맛있는 거라도 사 먹어.”
레빈이 친구들에게 준 것은 겨우 손톱만 한 마정석이었다.
제온과 함께 사막을 돌아다니는 동안 마수를 사냥해서 얻은 것이었다.
꽤 많은 마정석을 모아 놨기에 이 정도는 수고비로 줄 수 있었다.
“진짜? 이걸 준다고?”
“너, 미친 거 아냐?”
친구들이 놀라 레빈을 바라봤다.
레빈에겐 언제든 얻을 수 있는 물건이지만, 빈민가 사람들은 평생을 가도 만질 수 없는 보물이었다.
괜히 마정석 때문에 살인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앞으로도 쓸 만한 정보를 가져오면 더 줄 테니까, 일단 이 정도로 만족해.”
“고마워! 그 살인마에 대한 정보는 계속 모을게.”
“나도 열심히 할게.”
거듭 고마워하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레빈이 걸음을 옮겼다.
문득 그가 품에서 무전기 하나를 꺼냈다.
던전 공략대가 던전 안에서 주로 사용하는 무전기였다. 페가수스 공략대와 함께 던전을 공략하면서 챙겨 놓은 물건이었다.
레빈이 무전기로 누군가에게 연락을 취했다.
“누나!”
―어? 누구?
누군가의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맨디 누나?”
―혹시 레빈?
“네! 저 레빈이에요.”
―네가 이 시간에 웬일이야?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맨디였다.
레빈은 엘로이가 아닌 맨디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엘로이보다는 맨디가 부탁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저 좀 네오 서울에 들여보내 줄 수 있어요?”
―네오 서울엔 왜?
“‘개새끼’ 알죠?”
―네 가족을 죽인 살인마?
“네! 그 새끼가 네오 서울 안에 나타났대요.”
―후! 알았어. 한 달 정도 머물 수 있는 출입증 끊어 줄게. 지금 입구로 와.
“고마워요, 누나!”
―빨리 오기나 해.
“네!”
레빈이 서둘러 걸었다.
삼십 분 정도 걷자 네오 서울로 들어가는 큰 문이 보였다.
문앞에 맨디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레빈이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누나!”
“어서 와.”
“미안해요. 귀찮게 해서…….”
“됐어! 우리 사이에 뭘……. 이거나 받아.”
맨디가 레빈에게 출입증을 건네줬다.
“고마워요.”
“시간이 있었으면 백 일까지 머물 수 있는 출입증을 만들어 줬을 텐데, 지금은 한 달 정도가 최선이야.”
“이것만 해도 충분해요.”
“다른 건 도와주지 않아도 되겠어? 잠은 어디서 자려고?”
“서 구역 쪽 호텔에서 자면 돼요. 마정석도 충분하니까 한 달 정도 머물러도 상관없어요.”
“알았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고.”
“네!”
두 사람은 함께 네오 서울로 들어왔다.
네오 서울 내부를 본 레빈이 잠시 멈춰서 아무런 말도 못 했다.
거대한 도시의 모습에 압도당한 것이다.
밖에서는 많이 봤지만, 안에서 직접 본 네오 서울의 위용은 상상 이상이었다.
맨디가 그런 레빈을 이해한다는 듯이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이 세계 문명의 정점에 들어온 것을 환영해.”
***
북 구역의 지배자인 세리언 올리아나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패 있었다.
“좀 전의 느낌은 분명…….”
“왜 그러십니까?”
“잠깐만요, 보린!”
세리언이 손을 들어 푸른 낙엽 특작대의 대장인 보린의 말을 막았다.
보린은 의아한 표정으로 세리언을 바라봤다.
세리언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조금 전의 느낌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 느낌은 분명……. 아니면 나의 착각인가? 보린은 느끼지 못했나요?”
“무엇을 말입니까?”
“좀 전의 강한 파장 말이에요.”
“파장?”
보린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는 삼십 분 전부터 세리언과 함께 식사하고 있었다. 세리언과 있으면서 특별한 변화나 파장은 느끼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저의 감각이 예민하지 않아서……. 실례지만 어떤 느낌의 파장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따뜻하면서도 그리운 그런 느낌이었어요.”
어느새 세리언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 있었다.
지구로 넘어와선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그런 느낌의 파장이었다.
마치 누군가의 부름 같기도 하고, 따스한 숨결 같기도 한 묘한 파장이 그녀의 마음을 온통 뒤흔들어 놓고 있었다.
“보린!”
“네!”
“이 파장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아야겠어요. 보린이 한번 알아봐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보린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세리언의 명령이니까 따를 수밖에 없지만, 너무 뜬구름 잡기 식이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녀는 세리언이 느끼는 그 파장을 인지조차 못 했다.
그런 상황에서 파장의 근원을 추적한다는 것은 뜬구름 잡기나 다름없었다.
세리언이 그런 보린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조언했다.
“파장은 네오 서울 밖 남쪽에서 일어났어요.”
“남쪽이면 빈민가군요.”
“네! 빈민가 밖 사막인 것 같으니까, 그곳부터 추적하면 될 거예요.”
“알겠습니다.”
보린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사막에서 바늘 찾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인 것은 변함없었지만. 적어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는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원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해요. 최선을 다해 도와줄 테니까.”
“당분간은 푸른 낙엽 특작대만 데리고 찾아보겠습니다. 그 이상 병력을 움직이면 분명 일라이 님이 꼬치꼬치 따져 물을 겁니다.”
일라이는 북 구역의 이인자였다.
그녀는 항상 북 구역의 내부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자칫 잘못해 그녀의 관심을 끌게 되면 골치 아픈 일에 휩쓸릴 가능성이 높았다.
“알았어요. 그 문제는 보린이 알아서 해요.”
“감사합니다.”
“감사하긴요. 이렇게 염치없이 부탁하는 내가 미안하죠.”
세리언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과 일라이가 반목하게 되면 고생하는 것은 북 구역에 모여 사는 이종족들이었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일라이를 안고 가야 했다.
“이럴 땐 정말 세계수의 그늘이 그립군요. 세계수의 그늘에서는 모든 종족이 하나가 되었었는데.”
“세계수……. 저는 어떤 느낌인지 모르겠네요.”
“그럴 거예요. 쿠라얀이 멸망하면서 세계수 역시 고사했으니까.”
세계수는 쿠라얀을 지탱하던 큰 기둥 중 하나였다.
쿠라얀이 무너질 때 세계수도 사라졌다.
지구에서 태어난 엘프와 이종족들은 세계수를 구경해 본 적조차 없었다. 그래서 세계수를 대하는 느낌 자체를 알지 못했다.
그 사실이 못내 아쉬운 세리언이었다.
‘지구에서도 세계수를 볼 수 있다면 내 목숨이라도 기꺼이 버릴 수 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