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5)
25화
소멸해 가는 검은 빛무리는 크레이온에 서서히 흡수되고 있었다.
검은빛을 흡수하는 크레이온에게선 더욱 섬뜩한 예기가 느껴졌다.
제온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게 이 신전의 주인입니까?”
데이오든이 크레이온을 거둬들이며 대답했다.
“신성을 잃은 신의 잔재에 불과하다. 기껏해야 원래 가지고 있던 힘의 십 퍼센트도 발휘 못 하는 쭉정이지.”
“그러니까 정말 신이라는 겁니까? 신을 죽이는 게 가능한 겁니까?”
“말했잖느냐? 신격을 잃어버린 쭉정이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지구의 존재도 아니고, 쿠라얀의 편린이 던전에 갇혀 겨우 숨을 이어 가던 것에 불과하다. 내가 아니었어도 언젠가는 스스로 소멸했을 존재다. 그러니 호들갑 떨지 마라.”
데이오든의 말에 제온이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엔 여전히 혼란의 빛이 가득했다.
신이라는 존재가 실존한다는 것도 믿기 힘들었는데, ‘쿠라얀’이라는 낯선 단어까지 언급됐기 때문이다.
이제는 어느 정도 데이오든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하나도 몰랐다.
데이오든의 강함은 그의 상상 그 이상이었다.
그가 제온에게 말했다.
“그래도 뒈지지 않고 용케 살아남았구나. 모래도 없었을 텐데.”
“겨우 살아남았습니다.”
“흥! 죽지 않았으면 된 거지.”
츠으으!
마침내 신의 잔재인 검은빛이 크레이온에 모두 흡수됐다.
데이오든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크레이온을 바라봤다.
“이제야 최소한의 준비가 끝났군.”
“무슨 준비 말입니까?”
“…….”
그때였다.
쿠쿠쿠!
갑자기 신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신전의 주인이 소멸하면서 던전 자체가 소멸하는 현상이었다.
거대한 기둥이 힘없이 넘어지고,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공간이 신전 자체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하나의 세계가 소멸하고 있었다.
데이오든은 말없이 바라봤고, 제온은 압도당했다.
제온은 멸망하는 세상을 눈에 담았다.
그 순간 두 사람의 몸이 빛무리에 휩싸여 전이됐다.
잠시 후 두 사람이 다시 나타난 곳은 바로 던전의 입구가 생성됐던 석조 문 앞이었다.
두 사람을 토해 내자마자 석조 문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제온이 주위를 둘러봤지만, 석조 문은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소멸한 것이다.
던전에 들어갔다 온 것이 마치 꿈결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꿈도 착각도 아니었다.
그의 몸에 흡수된 엑시온이 그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엑시온을 흡수하고 한 단계 더 상승해서 그런지 지배력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데이오든이 먼저 몸을 날려 깊이가 백 미터나 되는 모래 구덩이를 빠져나갔다.
제온은 모래 걸음을 펼쳤다.
모래가 알아서 제온을 거대한 구덩이 밖으로 밀어냈다.
모래 구덩이 밖으로 나오자 눈이 부신 햇살이 그들을 맞이해 주고 있었다.
던전 안에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지만, 현실 세상에선 아침이 된 것이다.
던전 안의 시간 흐름은 제각기였다.
어떤 던전은 현실의 하루가 열흘이 되기도 했고, 어떤 던전은 현실과 똑같기도 했다.
그 때문에 직접 시간을 확인해 보기 전에 현실에서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제온과 데이오든 모두 그런 것엔 관심이 없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사막 지하 깊은 곳에 감춰져 있던 던전을 정복했다는 것이다.
이번 던전에서 제온은 엑시온을 완전히 흡수했다.
이제 모래가 없는 곳에서도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구책을 마련한 것이다.
다행히 기가레인을 쓰러트리면서 폭주하던 엑시온은 안정됐다.
언제든지 엑시온을 사용할 준비가 된 것이다.
제온의 등급이 올라갈수록 엑시온의 위력 또한 상승할 것이다.
그가 슬쩍 데이오든을 바라봤다.
자신도 이 정도로 강해졌는데, 데이오든은 또 얼마나 강해졌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신살(神殺).
자신이 가디언인 기가레인을 죽였다면 데이오든은 신을 죽였다.
비록 신성을 잃어 힘이 미약한 신일지라도 말이다.
그것이 얼마나 대단하고 엄청난 위엄인지 제온은 잘 알고 있었다.
‘많이 따라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멀었구나.’
그래도 제온은 실망하지 않았다.
데이오든은 늙었지만, 자신은 어렸다.
살날이 훨씬 많이 남았으니,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데이오든을 따라다니다 보니 제온의 성격이나 마음가짐도 어느새 그를 많이 닮아 가고 있었다.
데이오든은 휴식을 취하지도 않고 걸음을 옮겼다.
제온도 모래 걸음을 펼쳤다.
D급으로 오르면서 모래를 활용하는 능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덕분에 데이오든과 거의 비슷한 속도로 움직일 수 있었다.
데이오든은 해가 뜨는 방향으로 쉬지 않고 걸어갔다.
제온도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동쪽으로 그렇게 몇 날 며칠을 걸었을 때 이질적인 풍경이 나타났다.
처음엔 환각이나 착시인 줄 알았다.
그만큼 눈앞의 풍경은 제온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맙소사! 숲이라니.”
그가 보고 있는 것은 분명 거대한 숲이었다.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엄청난 규모의 숲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세상이 이 지경으로 망가진 후 나무로 이뤄진 숲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네오 서울 안에도 나무와 숲은 존재한다.
역장으로 사막의 건조한 기후에서 완벽하게 보호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빈민가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지 못한다.
빈민가와 네오 서울을 가르는 높은 장벽 때문이다.
제온도 나무와 숲이 있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직접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제온의 걸음이 점점 빨라져 나중에는 데이오든을 앞섰다.
그만큼 나무를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이 큰 것이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제온은 숲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분명 나무가 군집해 숲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초록의 생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잎은 하나도 달리지 않았고, 줄기와 가지가 모두 검게 변색되어 있었다.
어렸을 때 들었던 나무의 모습과 매우 달랐다.
“이게 나무?”
“탄화되어 형체만 남은 거다. 나무로서의 삶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
데이오든이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탄화된 나무숲을 바라봤다.
“사람들은 이곳을 검은 숲이라고 부른다.”
“사람들?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습니까?”
“미련의 끈을 놓지 못하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이들이 있지.”
데이오든은 퉁명스럽게 말하며 커다란 나무 아래 앉았다.
비록 줄기와 가지밖에 남지 않았지만, 햇볕을 막아 줄 만큼의 그늘이 드리워졌다.
뜨거운 햇볕을 막아 줘서 그런지 검은 숲 안에서는 시원한 기운이 느껴졌다.
“와아!”
서늘하기까지 한 냉기에 제온이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던전이나 지하를 제외하고, 어떤 곳에서도 이만큼의 냉기를 느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제온은 멍하니 검은 숲을 올려다봤다.
하늘을 온통 뒤덮고 있는 검은 나무들.
탄화된 것이 아닌 진짜 살아 있는 나무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때였다.
위잉!
제온의 귀에 미세한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작은 것이 날갯짓하는 소리였다.
제온은 본능적으로 바로 앞에 모래 장벽을 세웠다.
펑!
직후 무언가 날아와 모래 장벽에 부딪혔다.
모래 장벽에 부딪힌 물체는 그대로 폭발했다.
다행히 폭발 범위가 그리 넓지 않아 제온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때 데이오든이 말했다.
“깊이 들어가지 마라. 검은 숲 안쪽은 폭탄벌의 영역이니까.”
“폭탄벌? 벌이 폭발한다는 말입니까?”
“그렇다. 놈들은 자신의 영역에 침입자가 들어오면 스스로 몸을 날려 폭발한다.”
제온이 바닥을 바라봤다.
폭탄벌의 잔해가 널려 있었다.
잔해로 미뤄 보아 원래 크기가 어린아이 주먹만 하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었다.
“안쪽이 모두 폭탄벌의 영역입니까?”
“그렇다. 그 선만 넘어가지 않으면 별일 없을 거다.”
“혹시 사람들이 이곳에 살지 않는 게 폭탄벌 때문입니까?”
“제법 눈치가 빠르구나. 정확하다.”
“폭탄벌을 모두 잡으면 되지 않습니까?”
“그게 쉬울 것 같았으면 진즉 처리했겠지. 제아무리 폭탄벌을 많이 죽여도 여왕벌이 살아 있으면 금세 번식해 군집한다. 그러니 쓸데없이 힘을 소모할 생각하지 말고, 이곳에서 쉬어라.”
“네!”
데이오든이 이렇게까지 말할 정도면 보통 귀찮은 존재가 아닌 듯싶었다.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귀찮아서 피하는 느낌이었다.
어차피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었기에 제온도 데이오든 근처의 나무 아래 앉았다.
지금은 그저 골치 아픈 일을 모두 잊고 이 풍경을 즐기고 싶었다.
제온은 탄화된 나무에 등을 기댄 채 앞을 바라봤다.
그늘이 드리워진 검은 숲과 달리 햇볕이 쨍하게 내리쬐는 사막에선 강한 열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무리 제온라도 맨몸으로 사막을 횡단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새 로브를 구해야…… 아!’
제온은 문득 아공간에 여분의 로브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데이오든에 의해 파괴된 엘프 마을에서 활을 비롯해 여러 가지 물건을 챙길 때 로브도 함께 넣어 뒀다.
아공간을 열자 엘프들의 로브가 보였다.
제온은 로브를 몸에 걸쳤다.
모래 아귀의 가죽으로 만든 로브만큼은 아니지만, 엘프들의 로브도 열기를 어느 정도 차단해 주었다.
‘당분간은 이 로브를 입으면 되겠군.’
데이오든은 이종족을 끔찍이도 싫어했지만, 제온이 엘프들의 물건을 사용하는 것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데이오든은 크레이온을 또다시 앞에 꽂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었다.
하도 많이 본 광경이라 제온은 그러려니 했다.
한때 데이오든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 건지 알고 싶어 귀를 기울이기도 했지만, 음파를 차단했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그 후부터는 엿듣기를 포기했다.
그럴 시간에 새로이 얻은 능력을 점검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었다.
‘엑시온 덕분에 지배력이 한층 강화되었어.’
밖에 나와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엑시온을 운용한 채 지배력을 끌어올리면 모래를 한결 수월하게 부릴 수 있었다.
예전에는 겨우 방원 십 미터 정도의 모래만 부릴 수 있었지만, 지금은 수십 미터로 확대됐다.
이대로만 성장해 간다면 결국엔 시야가 닿는 곳에 있는 모든 모래를 부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골렘과 상성이 좋지 않아 고전했어. 이번엔 운 좋게 이겼지만, 더 연구를 철저히 해야 해.’
데이오든의 말대로 신전의 신이 신격을 잃어 약해진 거라면, 가디언인 기가레인도 원래보다 훨씬 약해진 것이 분명했다.
기가레인이 정상이었다면 엑시온을 사용하고도 당했을 확률이 높았다.
제온은 차분히 기가레인과의 싸움을 복기하며 문제점을 파악했다.
이렇게 전투를 되짚어 보는 것은 제온의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됐다.
‘블링크와 체인 라이트닝. 모두 위력적이었어. 만일 이 두 가지 스킬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각성자를 만나면 내가 당할 확률이 높아.’
골렘과 인간의 다른 점은 바로 사고의 유연함이었다.
골렘은 정해진 대로만 행동하지만, 인간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현재 제온은 대 마수전에 특화되어 있었다.
데이오든을 따라 마수들만 상대하다 보니, 그쪽으로 스킬이 발달한 것이다.
언젠가 네오 서울로 돌아갈 것을 생각한다면 지금부터라도 대인전을 염두에 두고 스킬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옳았다.
일단 화두를 잡자 사고가 알아서 가지를 뻗쳐 나갔다.
‘흐음!’
제온은 아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사고에 몸을 맡겼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조차 몰랐다.
제온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어느새 저 멀리 여명이 터 오고 있었다.
밤을 꼬박 지새운 것이다.
“휴!”
제온이 자리에서 일어나 두 다리를 두들겼다.
밤새 꼼짝도 안 하고 앉아 있었더니 온몸이 쑤셨다.
“응?”
한참 굳은 몸을 풀고 있던 제온이 갑자기 전방을 바라봤다.
저 멀리 모래 위에서 생명체의 움직임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혹시 폭탄벌인가 해서 자세히 바라봤더니 전혀 다른 존재가 있었다.
‘아이?’
저 멀리 열두어 살 정도로 보이는 소녀가 모랫바닥에 바싹 엎드려 제온과 데이오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데이오든이 입을 열었다.
“고야 일족의 잡종이군.”
“네?”
“불가능한 일에 목을 매는 어리석은 자들의 집안에서 태어난 더러운 잡종이다. 그새 저렇게 컸군. 그때 죽였어야 했는데.”
소녀를 바라보는 데이오든의 얼굴엔 짙은 경멸의 빛이 어려 있었다.
“이 아이는 잡종이 아닙니다. 분명히 이 땅의 미래가 될 겁니다.”
그때 차분한 목소리와 함께 소녀의 곁에 중년 남자가 나타났다.
중년 남자의 등에는 커다란 활과 화살이 든 전통이 걸려 있었다. 전형적인 사냥꾼의 복장이었다.
중년 남자의 갑작스러운 등장에도 데이오든이 놀라지도 않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궤변은 여전하군. 그년이 그리 가르쳤나?”
“그녀는 얼마 전 죽었습니다.”
대답하는 중년 남자의 얼굴엔 슬픔의 빛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데이오든의 눈빛은 여전히 냉혹하기만 했다.
“죽어? 이 손으로 죽였어야 했는데.”
“당신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군요. 데이오든. 언제까지 그들을 그렇게 경멸하고 원수처럼 대할 겁니까? 이 땅이 이렇게 된 것은 결코 그들의 뜻이 아…….”
“거기까지. 그 이상 지껄이면 너와 너의 잡종 새끼. 그리고 일족 모두를 죽여 주지.”
데이오든이 가공할 살기를 폭사했다.
그의 살기에 노출된 소녀가 벌떡 일어나 중년 남자의 뒤로 숨었다.
그 순간 제온은 보았다.
소녀의 귀가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른 형태를 한 것을.
“엘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