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51)
251화
“건방진…….”
엘로이의 도발에 넘어간 각성자가 주먹을 날렸다.
기계로 이뤄진 주먹은 그 자체로 무시무시한 흉기였다. 하지만 엘로이는 겁도 없이 달려들어 각성자의 주먹을 양팔로 휘감았다.
두 팔을 꽉 조이고, 다리로 각성자의 옆구리와 목을 지지대 삼아 힘을 줬다.
뿌드득!
“크악!”
기계화 각성자의 팔이 어깨에서 뽑혀 나갔다.
금속 골격이 종잇장처럼 찢어지고, 끊어진 전선이 어지럽게 흩날렸다. 어깨가 뽑힌 단면에선 각종 오일이 피처럼 왈칵 쏟아져 나왔다.
엘로이가 들고 있는 기계 팔을 흔들며 말했다.
“뭐야? 기계 부위에도 고통을 느끼는 거야?”
“이 씨발 년이…….”
“앵무새냐? 할 줄 아는 말이 그것밖에 없나 보네.”
“죽인다.”
팔이 뽑힌 기계화 각성자가 들소처럼 엘로이에게 돌진했다.
“흥!”
엘로이가 코웃음을 쳤다.
예전이었다면 조금 위협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제아무리 하프 엘프에다 무투계 각성자라고 하지만, 기계화 각성자의 육탄 공격은 부담스러우니까.
하지만 지금 그녀는 예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제온의 도움으로 등급이 상승한 그녀에게 이 정도의 돌진은 아무런 위협이 될 수 없었다.
엘로이가 손을 뻗어 기계화 각성자의 머리를 잡았다.
덜컥!
“큭!”
압도적인 체급 차이임에도 각성자의 돌진이 막혔다.
머리를 잡힌 각성자의 얼굴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인간과의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체급이었다.
압도적으로 체급이 크다면 가벼운 인간 따윈 힘으로 누를 수 있었다.
괜히 헤비급이 라이트급을 압도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때문에 각성자는 어지간한 등급 차이는 체급으로 커버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의 믿음이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호리호리한 여자 때문에 말이다.
아무리 용을 써도 엘로이의 팔은 요지부동이었다.
순간 엘로이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왜, 기계 덩어리를 주렁주렁 달면 나 따윈 쉽게 짓밟을 수 있을 줄 알았어? 그런데 어쩌나? 내가 조금 무거워서 말이야.”
지금 엘로이의 몸무게는 평소보다 열 배는 더 나갔다.
질량 증가.
오크 로드의 마정석을 복용한 후 얻은 스킬이었다.
그녀의 몸무게가 금속으로 이뤄진 기계화 각성자보다 훨씬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이익!”
기계화 각성자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그 순간 엘로이의 손바닥이 가슴을 강타했다
쩌엉!
엄청난 충격이 기계화 각성자의 가슴을 강타했다.
특수 금속으로 만든 몸체가 고철처럼 우그러들고, 마나를 공급하던 엔진이 박살 났다.
“크억!”
각성자의 거대한 몸이 그대로 고꾸라졌다.
엘로이는 자신에게 무너지는 각성자의 머리를 옆으로 밀어냈다.
쿵!
각성자가 둔중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엘로이는 그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 다른 두 각성자를 바라봤다.
“뭐 해? 안 싸울 거야?”
“씨발!”
“너, 뭐야?”
각성자들이 섣불리 덤벼들지 못하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 순간 엘로이가 뛰어올랐다.
빠각!
그녀의 무릎이 왼쪽 각성자의 얼굴에 작렬했다.
열 배의 질량 증가가 걸려 있었기에 각성자의 얼굴이 완전히 함몰됐다.
엘로이는 허공에서 그대로 몸을 회전해 팔꿈치로 다른 각성자의 관자놀이를 날렸다.
쾅!
폭음과 함께 각성자가 무너졌다.
눈을 까뒤집은 것이 이번 일격에 의식이 날아갔다.
그만큼 엘로이의 공격은 강력했다.
A급으로 승급한 데다가, 거기에 질량 증가라는 사기적인 스킬까지 더해졌다.
일격, 일격이 어지간한 각성자의 스킬에 맞먹는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제아무리 기계화 각성자라도 그녀의 공격에 맞으면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그녀는 유일하게 기계화할 수 없는 부위인 머리를 집중적으로 노렸다.
둔한 기계화 각성자들이 엘로이를 감당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둔중한 소리와 함께 정신을 잃은 기계화 각성자들이 무너졌다.
엘로이가 힘없이 널브러진 각성자들을 내려다보며 싸늘히 말했다.
“아까 말했잖아. 시청의 슈퍼바이저라고.”
그녀가 주위를 둘러봤다.
세 명의 각성자에게 동조했던 기계화 각성자들이 어정쩡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엘로이의 무력에 압도당한 것이다.
엘로이가 그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또 덤빌 사람?”
“…….”
“그래! 그렇게 조용히 찌그러져 있어. 쇳덩이를 주렁주렁 몸에 달았다고 해서 너희들이 죽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몇몇 기계화 각성자들이 발끈하는 듯했지만, 먼저 달려들지는 않았다.
엘로이의 무력에 압도당한 것이다.
그때였다.
짝짝짝!
박수 소리와 함께 누군가 호텔 계단을 내려왔다.
정장을 멋지게 차려입은 신사였다.
짙은 눈썹과 깊은 눈매가 인상적인 신사는 머리카락 한 올 삐져나온 곳 없이 완벽하게 빗어 넘겼다. 그래서 더 차갑게 보였다.
신사가 손뼉을 치며 엘로이에게 다가왔다.
“대단하시군요. 최씨 삼 형제는 이 일대에 알아주는 유명한 무법자인데 그리 쉽게 제압하다니. 정말 인상적입니다.”
“당신은 누구지?”
“아,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전 이 호텔의 사장인 김무영이라고 합니다.”
“사장? 이 호텔의?”
“네!”
“당신은 기계가 아닌데?”
엘로이의 도발적인 말에도 김무영은 기분 나쁜 표정 하나 짓지 않았다.
“네! 저는 순수한 인간입니다.”
“아니, 순수한 인간이 어떻게 서 구역에서 호텔을 운영하지?”
“호텔 운영은 각성과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까요.”
“그럼 운영 제대로 해. 저런 인간들을 들이니까 호텔 질이 떨어지지.”
“죄송합니다. 하필 제가 다른 일에 신경 쓰는 사이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앞으론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신경 쓰겠습니다. 사죄의 의미로 저녁은 제가 대접하죠. 시청의 슈퍼바이저님.”
김무영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하자 오히려 엘로이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서 구역에서 이런 인간을 만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신사는 개판인 상황에서도 격식과 예를 차림으로써 오히려 상대를 당황하게 만드는 타입이었다.
그때 제온이 나섰다.
“그렇게 하죠.”
“그러고 보니 그쪽 분 성함을 모르는군요. 괜찮다면 저에게 이름을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제온!”
“제온 님이라면…….”
순간 김무영의 눈매가 날카롭게 변했다.
제온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정체를 파악한 것이다.
김무영이 언제 긴장했었느냐는 듯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이거 영광입니다. 설마 저희 호텔에서 제온 님을 뵙게 될 줄은 정말 몰랐네요.”
“저야말로 감사할 뿐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저희가 식사할만한 곳이 있나요? 아무리 봐도…….”
명색이 기계화 각성자들을 위한 호텔이었다.
인간이 먹을 만한 음식 따윈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았다.
김무영이 크게 웃었다.
“하하! 서 구역도 인간이 사는 곳입니다. 기계화 각성자보다 순수 인간이 수백, 수천 배는 더 많죠. 당연히 인간이 먹을 음식이 언제든 대기하고 있답니다.”
“그건 다행이네요.”
“가시죠. 호텔 최상층에 사람을 위한 식당이 있으니까.”
김무영이 세 사람을 엘리베이터로 이끌었다.
그들을 태운 엘리베이터는 순식간에 호텔 최상층으로 올라갔다.
김무영의 말처럼 호텔 최상층엔 인간들을 위한 식당이 있었고, 실제로 몇몇 사람들이 맛있게 음식을 먹고 있었다.
김무영은 세 사람과 함께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았다.
서 구역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창가 자리였다.
김무영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저희 호텔은 특히 스테이크가 맛있습니다. 배양육이 아닌 진짜 소고기를 사용하죠.”
“그럼 그걸로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김무영이 지배인을 불러 스테이크 사 인분을 주문했다.
식당 지배인도 김무영처럼 순수 인간이었다.
브리엘이 호기심에 말했다.
“여긴 기계화 각성자들이 없네?”
“하하! 아까도 말했다시피 순수 인간 손님들을 위한 식당이니까요. 기계화 각성자들이 서비스하면 이용하는 분들도 불편하실 겁니다. 그래서 이곳에 있는 직원은 모두 순수 인간입니다.”
“그건 마음에 드네.”
“다행이네요, 브리엘 님!”
“엉? 나도 알아?”
“그럼요. 제온 님 곁엔 항상 브리엘 님이 있지 않습니까? 모르는 게 이상하죠.”
“그렇구나. 히히!”
브리엘이 배시시 웃었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본다는 사실이 웃기면서도 기쁜 것이다.
김무영은 사람을 대접하는 데 매우 익숙했다.
그는 능수능란하게 대화를 주도하며 분위기를 이끌어 갔다.
한참을 영양가 없는 대화를 하던 김무영이 드디어 본론을 꺼냈다.
“그런데 세 분이 서 구역엔 어쩐 일이십니까? 이곳에 여러분의 흥미를 끌 만한 게 없을 텐데요?”
“사람을 찾으러 왔습니다.”
“사람?”
“네! 레빈이라고…….”
“아! 레빈 님? 들어 본 적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을 왜 서 구역에서 찾으시는 겁니까?”
김무영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이었다.
“레빈이 누군가를 찾아 서 구역에 들어왔습니다.”
“아, 그래서 호텔부터 뒤지는 거군요.”
“혹시 이곳에 레빈이 머물렀는지 알 수 있을까요?”
“지배인에게 알아보라고 하죠. 하지만 제 기억으로는 없을 겁니다. 순수 인간이 머물렀다면 제가 모를 리 없기 때문이죠.”
“그런가요?”
“이 호텔 주 사용자가 기계화 각성자다 보니 순수 인간이 숙박하면 눈에 띌 수밖에 없죠.”
“그렇겠군요.”
제온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잠시 후 지배인이 숙박 명부를 가져왔다.
그곳에 레빈의 이름은 존재하지 않았다.
“역시 없군요. 제가 다른 호텔에 머물렀는지 연락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희한테 이렇게 친절하게 해 주는 이유가 궁금하군요.”
“하하! 한 분은 모래술사, 또 한 분은 시청의 슈퍼바이저, 그리고 아름다운 꼬마 숙녀까지. 친절하게 대할 이유는 차고 넘치죠.”
김무영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제온은 그런 김무영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순수 인간에 집착하는군.’
아까부터 김무영은 몇 번이나 ‘순수 인간’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기계화 각성자가 대부분인 서 구역에서 지나칠 정도로 순수 인간에 집착을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김무영은 그런 사실을 인지조차 못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김무영은 자신이 순수 인간이라는 것에 굉장히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대화 중에 그런 감정이 드러났다.
제온이 김무영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사장님은 어떻게 이 호텔의 대표가 되신 거죠?”
“어떻게 순수 인간이 이 자리에 올랐느냐? 그게 궁금한 거죠?”
“맞아요.”
“서 구역의 대표인 김현수 님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습니다.”
“같은 ‘김’씨인데 혹시 형제입니까?”
“하하! 한국인에게 가장 흔한 성이 ‘김’씨입니다. 성만 같을 뿐 완벽한 타인이죠.”
“그런데 어떻게 친분이 있을 수 있죠?”
“저희 어머니가 힐러셨습니다. 김현수 님이 다쳤을 때 치료해 드린 적이 있죠. 그게 인연이 되어 저를 돌봐 주고 계십니다.”
“힐러? 기계화 각성자에게 힐러의 힐이 통하나요?”
제온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기계화 각성자가 상처를 입으면 부상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파손이라고 부른다.
파손당한 파츠는 멀쩡한 파츠로 교체하면 되기에 힐러가 따로 필요 없다.
가뜩이나 귀한 게 힐러였지만, 서 구역에서는 더더욱 보기 힘들었다.
김무영이 대답 대신 와인 잔을 들었다.
투명한 유리잔 안에서 붉은 와인이 출렁였다.
김무영은 깊은 눈빛으로 피처럼 붉은 와인을 들여다봤다.
그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맺혔다.
“그의 혈관에 붉은 피가 흐를 때, 아직 인간의 육체를 버리기 전의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