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54)
254화
멸망해 버린 세상에서 네오 서울이 초고도 문명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었다.
던전을 공략하거나 사막을 횡단하다 보면 수많은 문제와 맞닥트린다.
예상치 못한 함정, 전혀 새로운 타입의 마수, 강력한 결계,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가진 마수.
그때마다 네오 서울은 데이터를 축적하고, 문제점을 해결하려 노력했다.
어떤 때는 실패하기도 했지만, 성공하기도 했다.
그렇게 실패와 성공이 반복되면서 수많은 데이터가 축적되고, 연구 결과물이 쌓였다.
살인마가 레스토랑 지하 창고에 펼친 결계도 그중 하나였다.
세상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십 년 전 네오 서울 탐사대는 이름 모를 던전 하나를 공략하다가 몰살당했다.
당시 던전 보스가 바로 스펙터였다.
물리적인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는 새로운 타입의 마수.
스펙터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던 공략대는 몰살당하다시피 했다. 생존자는 단 한 명, 바로 공략대의 말단이었다.
제일 후미에 있었기에 목숨을 겨우 구한 공략대의 말단은 이 참사를 네오 서울에 보고했다.
당연히 네오 서울에선 스펙터를 상대하기 위한 연구에 들어갔고, 수년간의 연구 끝에 스펙터의 움직임을 봉쇄할 결계를 만들어 냈다.
네오 서울이 만들어 낸 결계는 형체가 없는 스펙터의 주위에 무형의 막을 만들어 고정시킨다. 뿐만 아니라 결계 내 마나를 교란시켜 스펙터가 품고 있는 마나와 충돌시킨다.
마나와 마나가 충돌하면서 스펙터 내의 균형이 무너져 붕괴하기 시작한다.
강제로 소멸시키는 것이다.
실제로 이 방법으로 네오 서울은 스펙터를 처치했고, 무사히 던전을 공략할 수 있었다.
이후 스펙터가 보스로 있는 던전은 나오지 않았다. 그때 만든 결계는 네오 서울의 연구실에 봉인되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레빈에게 호되게 당한 후 살인마는 그를 상대할 방법을 연구했다.
원래부터 미친놈이었는데, 원한을 품게 되자 레빈을 상대할 방법을 광적으로 탐구했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바로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 결계였다.
“이까짓 것…….”
결계를 벗어나려던 레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체내에서 마나의 충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유령화한 상태로 움직이려 하면 내외부의 마나가 충돌해 신체에 타격을 줬다.
움직임이 크면 클수록 마나의 충돌도 격렬해졌다.
“크읍!”
레빈의 입술을 타고 붉은 피가 흘러내리는 모습을 본 살인마가 씨익 웃었다.
“어때? 온몸이 찢겨 나가는 것 같지 않아?”
“개새끼!”
“언제 들어도 감미로운 이름이야. 타인이 불러 주는 이름이라니.”
“도대체 어떻게 해야 너처럼 망가지는 거냐?”
“뭘 망가져? 애초 이렇게 만들어졌는데.”
“누구냐? 널 만든 새끼가…….”
“왜, 알면 복수라도 해 주게?”
“그래! 너와 같이 쳐 죽이련다.”
“흐흐! 포부도 크군. 마음에 들어. 어쩌면 나와 가장 닮은 놈이 너일지도 모르겠군.”
“미친 새끼! 헛소리 작작 해라.”
“작작 하라니? 이제 시작인데.”
살인마가 허리 뒤쪽에서 커다란 칼을 꺼내 들었다.
식도를 길게 늘여 놓은 것처럼 뭉툭한 형상에 날 부위엔 톱니가 잔뜩 돋아 있었다.
“이것도 네오 서울에서 만들어 낸 역작이지. 대형종 마수를 사냥하기 위해 만든 무기야. 이름은 타이탄 킬러. 어때, 끝내주지?”
“지랄하고 있네. 개새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레빈은 긴장했다.
유령화한 상태라면 저따위 무기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유령화 능력이 봉인된 지금은 심각한 위협이 됐다.
순간 레빈이 피식 웃었다.
‘씨발! 내가 언제부터 유령화할 수 있었다고?’
각성하기 전에도 수없이 싸웠다.
살인마 같은 괴물과 싸운 것은 아니지만, 인간과의 싸움엔 이골이 났다.
근육이 찢기고, 뼈가 부러지기도 여러 차례.
그 모든 고통을 맨정신으로 견뎠다.
유령화 능력을 얻고 나서 그런 험한 일을 겪을 일이 없어서 잠시 잊고 있었다.
자신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말이다.
“개새끼! 너 오늘 뒈졌다고 복창해라. 절대 살려 보내지 않을 테니까.”
레빈이 유령화를 풀었다.
실체를 갖추는 레빈을 보며 살인마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상대의 가장 큰 무기를 봉인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가 레빈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이쁘게 썰어 장식해 주마.”
“지랄도 풍년이다.”
레빈이 이죽거리며 살인마에게 마주 걸어갔다.
다행히 결계는 실체를 갖춘 사람에겐 작동하지 않는지, 그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다.
이제 조건은 대등했다.
더 강하고, 독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무대가 만들어진 것이다.
“히히! 시작하자, 예쁜아!”
쐐애액!
살인마가 히죽 웃으며 타이탄 킬러를 휘둘렀다.
레빈은 고개를 숙이며 간발의 차이로 타이탄 킬러를 피했다. 타이탄 킬러가 지나간 뒤통수가 서늘했다.
조금이라도 스쳤으면 그 즉시 살이 뜯겨 나갔을 것이다.
그야말로 흉악한 무기였다.
레빈은 즉시 반격했다.
빠지직!
그가 퍼플 라이트닝을 터트리자 살인마의 몸에서도 전류가 흘러나왔다.
의수에 달린 전기 발생장치가 작동한 것이다.
퍼버버벙!
보랏빛 전류와 백색 전류가 격돌하며 지하 창고의 전기 장치가 모두 터져 나갔다.
레빈은 B급 각성자였다.
반면 살인마는 겨우 D급 정도에 불과했다.
자기 입으로 등급이 올랐다고 했으니 C급일 것이다.
당연히 레빈이 압도해야 옳았다. 그런데도 살인마는 레빈의 퍼플 라이트닝을 상대로 잘 버티고 있었다.
레빈은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아이템으로 도배했구나.”
“흐흐! 그걸 이제 알았냐?”
살인마가 레빈을 비웃었다.
그가 입고 있는 모든 것이 공방에서 만든 특수 아이템이었다. 마수의 부산물과 첨단 소재를 합성해 만들어 전류에 엄청난 저항력을 가진다.
그 때문에 레빈의 공격에 타격이 거의 없었다.
‘이 미친 새끼가…….’
레빈이 이를 악물었다.
제대로 미친놈이 똑똑하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최악의 적이었다.
이런 존재를 만들어 낸 연구소가 어딘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푸화학!
그 순간 엄청난 고통이 허벅지에서 느껴졌다.
살인마가 휘두른 타이탄 킬러가 상처를 낸 것이다.
허벅지 근육이 어린아이 주먹만큼이나 뜯겨 나가면서 엄청난 양의 피가 쏟아졌다.
‘멍청한…….’
방심했던 자신을 탓하며 레빈이 뒤로 물러났다. 옷을 뜯어 지혈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살인마는 레빈이 지혈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살인마는 한번 약점을 잡으면 집요하게 물어뜯는 하이에나 같은 습성을 가지고 있었다.
더군다나 레빈에게 호되게 당했던 기억이 있는지라 절대 방심하지 않았다.
“흐흐! 뒈져랏!”
살인마가 타이탄 킬러로 레빈을 공격했다.
레빈은 바닥을 구르며 퍼플 라이트닝을 터트렸다. 하지만 이번에도 살인마에겐 어떤 타격도 입히지 못했다. 그래도 레빈은 실망하지 않았다.
덕분에 약간의 시간을 벌었기 때문이다.
빠지직!
레빈이 아예 뇌전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지져 버렸다.
고압 전류에 살이 타서 메케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정상적으로 지혈할 수 없게 되자 아예 스스로 살을 지져 지혈한 것이다.
살인마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미친 새끼가…….”
“미친놈을 잡으려면 나도 미쳐야지.”
어느새 레빈의 얼굴엔 광기가 어려 있었다.
광기가 얼마나 지독한지 살인마조차 질릴 정도였다.
“지독한 새끼!”
“칭찬 고맙다. 개새끼야!”
레빈이 살인마를 공격했다.
쾅!
두 사람이 다시 격돌했다.
***
쿵! 쿠우웅!
레스토랑이 입주해 있는 건물 전체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뭐야?”
“제기랄!”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모두 뛰쳐나왔다.
쿠웅!
금방이라도 건물이 무너질 것 같은 모습에 사람들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때였다.
콰앙!
폭음과 함께 정희 레스토랑 벽면이 폭발했다.
다행히 건물 전체가 붕괴하는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정희 레스토랑과 일대 거리가 완전히 초토화됐다.
“으악!”
“폭발이다. 신고해!”
“어서 통제실에 알려.”
갑작스러운 폭발에 사람들이 혼비백산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사이 초토화된 정희 레스토랑 안에서 두 사람이 몸을 일으켰다.
바로 지하 창고에서 싸우던 레빈과 살인마였다.
겨우 일어난 그들의 모습은 처참했다.
온몸이 타거나 찢겨 피로 목욕을 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렇게 큰 상처를 입고도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씨……발!”
풀썩!
레빈을 노려보던 살인마가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그런 그의 가슴을 거대한 칼이 관통하고 있었다.
그가 무기로 사용하던 타이탄 킬러였다.
처절한 사투 끝에 레빈이 살인마의 무기를 빼앗아 가슴을 찌른 것이다.
“하아! 하아!”
그제야 레빈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의 몸 상태도 살인마 못지않게 처참했다. 이렇게 살아 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그는 살인마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살인마가 도주할 것 같은 기분 때문이다.
지하 창고 안에서의 싸움은 처절했다.
살인마는 각종 함정과 무기로 지하 창고 안을 도배해 놨다.
매 순간이 위기였다.
살인마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함정을 발동시켜 레빈을 공격했다. 그때마다 레빈은 죽음의 위기를 맞닥트렸다. 그러나 승자는 결국 레빈이었다.
타이탄 킬러를 빼앗아 살인마의 가슴을 찌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거대한 타이탄 킬러에 관통당한 살인마는 피를 울컥울컥 토해 내고 있었다.
제아무리 살인마가 바퀴벌레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지만, 이런 상처를 입고도 살아남을 수는 없었다.
“크흐흐! 커헉!”
살인마는 그런 자신의 처지가 믿기지 않는지 웃다가 피를 토했다.
토한 피에 살덩이가 섞여 있었다.
레빈이 엉금엉금 기어 살인마에게 다가갔다.
“개……새끼! 어디 또 도망쳐 봐라.”
“흐흐! 이제 더 도망……갈 힘도 없다. 네가 이겼다, 꼬마!”
“이기긴? 내가 이기려고 싸운 줄 알아? 복수를 하는 건데 이기고 지고가 어디 있어? 개새끼야!”
“넌 그럴지 모르지만, 난 아니야. 즐거웠어. 흐흐! 간만에 피가 끓어올랐다고.”
“마지막으로 묻자. 네가 있었다던 연구소가 어디야?”
“왜, 복수라도 해 주려고?”
“복수? 네까짓 게 뭐라고 복수를 해? 궁금해서 그래. 어떤 정신 나간 미치광이 새끼들이 너 같은 괴물을 만들어 낸 건지 말이야.”
“알려…… 줄까? 그럼 살려 줄래?”
그 순간 레빈이 타이탄 킬러의 손잡이를 잡고 비틀었다.
“끄아악!”
전율스러운 고통에 살인마가 처절한 비명을 터트렸다.
“됐어! 개새끼야. 겨우 그거 알려 주면서 용서? 웃기지 마. 내 힘으로 알아내면 돼.”
“흐흐! 씨발.”
“그냥 지옥으로 떨어져.”
푸화학!
레빈이 살인마 가슴에서 타이탄 킬러를 뽑았다. 톱날에 심장이 썰려 나가며 엄청난 양의 피가 쏟아졌다.
살인마가 웃는 얼굴로 레빈을 바라보다가 그대로 고꾸라졌다. 그것이 그의 최후였다.
레빈이 타이탄 킬러를 지팡이 삼아 일어섰다.
잠시 살인마의 시신을 바라보던 레빈이 타이탄 킬러를 높이 치켜들었다.
머리를 자르려는 것이다.
그때였다.
“거기까지만 하지.”
뒤쪽에서 들려온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의 행동을 제지하려 했다.
레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좆 까!”
서걱!
타이탄 킬러가 살인마의 목을 가르고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