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55)
255화
툭! 떼구르!
몸통에서 분리된 살인마의 머리가 바닥을 구르다가 누군가의 발에 부딪혀 멈춰 섰다.
조금 전 레빈에게 ‘거기까지만 하지’라고 말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레빈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타이탄 킬러를 휘둘렀고, 살인마의 머리는 몸에서 완전히 분리됐다.
머리와 몸이 분리된 자는 어떤 수를 써도 되살릴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었다.
일말의 여지조차 주지 않겠다는 레빈의 의지였다.
반대로 레빈에게 경고를 날렸던 남자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는 후드가 달린 품이 넓은 로브를 입고 있었다.
로브 사이로 검의 손잡이가 슬쩍 보이는 것이 무투계 각성자임을 알 수 있었다.
남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레빈은 오싹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목에 칼날이 닿은 것 같은 위기감을 느낀 것이다.
그만큼 남자에게서 풍기는 기운은 무서웠다.
남자가 허리를 숙여 살인마의 머리통을 주워 들었다.
머리가 잘렸는데도 살인마는 웃는 표정 그대로였다.
남자는 그런 살인마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사람의 머리통을 들고 바라보는 모습이 자못 괴기스러웠다.
“아깝군! 살아 있었다면 데이터를 더 많이 뽑아낼 수 있었을 텐데.”
그가 살인마의 머리를 널브러진 몸통 앞에 던졌다.
레빈이 남자를 노려봤다.
“당신 뭐야? 개새끼랑 무슨 관계야?”
“개새끼? 301호를 그렇게 부르나 보군.”
“301호? 숫자로 사람을 부르는 거야? 그 말은 저런 새끼가 최소 300명은 더 있다는 거고.”
“당돌하군.”
“뭐?”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는 법이다.”
“그런데?”
“지금 넌 그 선을 넘고 있다.”
“씨발! 뭐라는 거야?”
레빈의 눈에 핏발이 섰지만,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301호의 시체는 내가 가져가지.”
“웃기지 마. 놈은 내 거야. 발가락 하나도 내 허락 없인 가져갈 수 없어.”
“네 허락을 구하는 게 아니다. 착각하지 마라, 소년!”
남자의 목소리가 한층 차가워졌다.
덩달아 공기도 차갑게 변했다.
레빈은 온몸에 소름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본능적으로 남자가 자신보다 강자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머리보다 몸의 반응이 훨씬 빠르고 정직한 법이다.
손끝이 떨리고, 이마에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눈가가 파르르 떨리고, 입안이 바싹 말랐다.
이성은 여기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남자가 말한 선을 넘으면 자신이 결코 무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물러설 수 없었다.
살인마 때문에 자신의 가족이 죽었다.
그런 살인마를 누가 무슨 목적으로 만들어 낸 건지 알아내야 했다.
레빈이 두려움을 애써 억누르며 소리쳤다.
“씨발! 분위기만 무섭게 잡으면 누가 겁먹을 줄 알고? 개새끼 시체는 내 거야.”
“후! 똑똑한 줄 알았더니 무모한 거였군.”
남자가 고개를 숙이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그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는 눈빛이 바뀌어 있었다.
순간 레빈의 척추를 따라 뇌리까지 전류가 치달았다.
생각은 사치였다.
레빈은 본능적으로 유령화했다.
레스토랑이 폭발할 때 결계도 파괴됐기에 유령화는 순식간에 이뤄졌다.
서걱!
직후 한 줄기 검광이 그의 몸을 가르고 지나갔다.
남자가 레빈이 인지하지도 못한 사이에 검을 휘두른 것이다.
소름 끼치는 발검술이었다.
레빈의 모골이 송연해졌다.
유령화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그대로 목숨을 잃을뻔했다.
레빈이 반투명하게 된 것을 본 남자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순식간에 기체처럼 변하다니. 재밌는 능력이구나.”
수많은 각성자를 봤지만, 이런 능력을 가진 각성자는 처음이다. 그래서 호기심이 살짝 동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너도 연구 대상이구나.”
남자의 입술이 비틀리며 새하얀 이빨이 드러났다.
그 모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레빈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북 구역의 엘프들이나 죽은 이지령이 그랬듯 남자 역시 레빈의 능력을 욕심내는 것이다.
우웅!
남자의 검에서 강한 진동이 느껴졌다.
진동이 검이 우는 소리 같았다.
순간 레빈은 이제까지와 비교도 할 수 없는 강렬한 위기감을 느꼈다.
유령화 능력을 각성한 이후 이렇게 소름 끼치고 공포스러운 느낌은 처음이었다.
남자의 검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검을 사용하는 고등급 무투계 각성자에게 나타나는 오러 블레이드 같은 현상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레빈은 날카로운 검날이 자신의 몸을 가르고 지나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레빈은 유령화한 상태로 급속 이동했다.
공간의 제약 없이 이뤄지는 삼차원 기동이었다.
고등급 각성자도 미처 따라잡기 힘든 움직임이었는데 남자의 눈은 정확히 레빈을 좇고 있었다.
남자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레빈은 깨달았다.
‘이자 장님이다.’
그의 움직임을 보고 있는 남자의 눈동자엔 초점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의 시선은 정확히 레빈에 고정되어 있었다.
‘무슨?’
슈와악!
그 순간 남자의 검이 다시 레빈을 향해 날아왔다.
피하기엔 늦었다.
레빈은 퍼플 라이트닝을 발출했다.
빠지지직!
보랏빛 뇌전이 남자의 검에 작렬했다.
금속은 전류가 흐를 수 있는 최상의 통로였다.
레빈은 자신의 공격이 검을 타고 남자의 몸을 마비시킬 거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의 자신감은 산산이 부서졌다.
남자가 검을 살짝 털어 버린 것만으로 퍼플 라이트닝을 튕겨 버렸기 때문이다.
보랏빛 뇌전은 애꿎은 바닥에 작렬해 일대를 까맣게 태웠다.
그사이 남자의 검이 궤도를 바꿔 레빈에게 날아왔다.
이번에 도저히 피할 수 없었다.
‘제기랄!’
레빈은 자신의 능력이 남자의 검에도 통하길 빌며 이를 악물었다.
스걱!
그 순간 남자의 검이 레빈의 왼팔을 스치고 지나갔다.
“큭!”
레빈은 왼팔에서 느껴지는 불같은 통증에 그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유령화한 상태라 팔에서 피가 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살이 갈라지는 통증만큼은 생생하게 느껴졌다.
육체뿐 아니라 영혼까지 베는 검이었다.
‘미친! 이게 말이 돼?’
레빈이 눈을 크게 떴다.
한 번도 상상하거나 경험해 본 적 없는 상황이었다.
설마 유령화한 상태로 이런 위기에 직면할 줄은 예상조차 못 했다.
그 때문에 반응이 한 템포 늦어졌다.
남자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쉬리릭!
남자의 검이 허공에서 방향을 바꿔 다시 한번 레빈에게 날아왔다.
이번엔 가슴이었다.
‘씨발!’
레빈은 피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그만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쩌엉!
그 순간 레빈의 가슴 앞에서 강렬한 소성이 터져 나왔다.
고통을 각오한 레빈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레빈이 슬며시 눈을 떴다. 그러자 그의 앞에 꽂혀 있는 커다란 철근이 보였다.
남자의 검은 철근을 꿰뚫은 채 레빈의 코앞에서 멈춰 서 있었다.
레빈의 등골을 따라 땀방울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검이 꿰뚫기 직전 누군가 철근을 날려 그를 구한 것이다.
누가 레빈을 구한 것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다행히 늦지 않았네.”
익숙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레빈은 목소리만 듣고도 주인을 알아차렸다.
“형?”
“뒤로 물러서. 네 상대가 아니니까.”
앞을 막아서는 남자의 등을 보는 순간 레빈은 다리가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다른 각성자들에 비해 크거나 넓지는 않았지만, 유독 단단한 느낌을 주는 등의 주인은 제온이었다.
“괜찮아?”
“아직 살아 있냐?”
뒤늦게 달려온 브리엘과 엘로이가 유령화가 풀린 레빈을 부축했다.
“브리엘, 엘로이? 여긴 어떻게?”
“멍청아! 어서 뒤로 물러나기나 해.”
브리엘과 엘로이가 레빈을 부축해 함께 뒤로 물러났다.
그사이 제온이 검을 들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너는 모래술사구나.”
“모래를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금방 알아보네요.”
“자신의 이름값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는 건가? 아니면 자각하지 못하는 건가?”
“그쪽은 저를 아는데, 저는 그쪽을 모르네요. 좀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데.”
“한번 맞혀 보는 건 어떤가?”
“그럴까요?”
제온이 남자를 유심히 살폈다.
마치 검 그 자체인 것처럼 일체화된 모습.
둘 사이엔 분명 수 미터의 거리가 존재했다. 하지만 살짝 손만 뻗어도 베일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저곳은 남자의 공간이었다.
남자가 검으로 지배하는 공간.
이제까지 수많은 각성자들을 만나 봤고, 그중엔 검을 사용하는 무투계 각성자도 다수 존재했다.
하지만 그 어떤 각성자도 남자만큼의 존재감과 검술을 보여 주지 못했다.
단순히 검을 사용하는 고등급 무투계 각성자라서 강한 게 아니다. 남자의 검술이 그만큼 높은 경지에 도달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남자의 정체도 이름도 모른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남자에게선 기시감이 느껴졌다.
제온은 분명 저 같은 분위기를 풍기던 사람들을 알고 있었다.
“혹시 넘……버즈인가요?”
“호! 그들을 본 적이 있나 보군.”
“고 노인, 쌍둥이 자매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를 알아보는 것도 이상하지 않군. 내 이름은 이정호다. 넘버즈의 마지막 멤버지.”
S급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스스로의 눈을 멀게 한 A급 무투계 각성자.
눈을 버림으로써 심안이라는 스킬을 얻었다.
심안과 검술의 조화는 형체가 없는 존재도 베어 버릴 수 있을 만큼 날카로우면서도 무섭다.
A급과 S급 사이의 그 어디쯤 존재하는 검객이 바로 이정호였다.
넘버즈라는 말에 레빈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제야 상상을 초월하는 상대의 강함이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제온이 이정호에게 물었다.
“저 살인마의 출처가 시청인 모양이군요.”
“잘못된 연구의 부산물이지. 실패작이야.”
“그래서 회수하려는 건가요?”
“실패작이라고 해도 시청 물건이니까.”
“지금 사람을 물건이라고 하는 겁니까?”
“그럼 네 눈엔 저게 사람으로 보이나?”
이정호가 피식 웃었다.
그는 살인마를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인간처럼 생기고 인간처럼 말했지만, 살인마는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의 태아와 마수의 부산물을 이용해 만들어 낸 실험작.
네오 서울을 위협하는 마수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 낸 바이오 솔저가 바로 살인마의 정체였다.
위험한 임무에 투입할 각성자는 늘 부족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네오 서울에선 바이오 솔저를 만들 계획을 세우고 진행했다.
인간을 베이스로 수많은 마수의 혈액, 부산물이 투입됐다.
수많은 실패 끝에 결국 바이오 솔저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네오 서울에선 애써 만든 바이오 솔저를 폐기하기로 했다.
완성된 바이오 솔저가 불완전했기 때문이다.
형체는 인간이었지만, 놈들은 결코 인간이 아니었다.
언제 폭주할지 모르는 불완전성에 인간의 육체를 상회하는 능력. 거기다 몇몇은 진짜 인간처럼 각성까지 했다.
통제할 수 없는 폭탄 같은 존재가 바로 바이오 솔저들이었다.
결국 시청은 모든 연구 결과물을 폐기하기로 결정하고 실행했다.
한밤중에 이뤄진 대대적인 숙청에 대부분의 바이오 솔저가 폐기됐다. 하지만 몇몇 이들이 연구소를 탈출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레빈의 가족을 죽인 살인마였다.
놈은 바이오 솔저 중에서도 완성도가 극히 높았다. 하지만 뛰어난 육체 능력만큼이나 살인 욕구도 강했다.
살인마는 주체하지 못하는 살인 욕구를 빈민가의 빈민을 대상으로 풀었다.
네오 서울에서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은 후였다.
뒤늦게 시청에선 살인마를 회수하기로 했고, 이정호를 투입했다.
이정호가 살인마의 시체를 어깨에 둘러멨다.
제온이 그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이 난장판을 만들어 놓고 그냥 가려고요?”
“내가 한 일은 아니야.”
“그래서 책임이 없다는 겁니까?”
“그래서 나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그럴 여유가 없을 텐데.”
“…….”
이정호의 뜬금없는 말에 제온이 미간을 찌푸렸다.
서 구역 곳곳에서 각성자들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순식간에 제온 일행을 포위했다.
이정호가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말했다.
“거봐, 여유가 없을 거라고 했잖아.”
이정호가 유유히 서 구역 각성자들 앞을 지나갔다.
“헛!”
“처형 부대?”
넘버즈를 의미하는 신분증을 본 서 구역 각성자들은 감히 그의 앞길을 막지 못했다.
그렇게 이정호는 서 구역 각성자들을 지나쳐 사라졌다.
서 구역 각성자들은 이정호 대신 타깃을 제온 일행으로 바꿨다.
“서 구역에서 이 난리를 피우다니. 모두 체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