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56)
256화
철컹!
삼십 센티미터 두께의 문이 닫혔다.
특수 합금에 마법 처리까지 한 문은 대형 마수의 돌진도 견딜 만큼 튼튼했다.
문뿐만이 아니었다.
이 방 전체가 문과 똑같은 소재로 만들어져 있었다.
당연히 탈출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잠시 방 안을 둘러보던 제온이 쓴웃음을 지었다.
“또 이런 곳에 갇혔군.”
NSSC 감옥에 갇혔을 때와 똑같은 상황이었다.
제온이 무기로 사용할 만한 모래는커녕 먼지 한 톨 유입되지 않는 완벽한 폐쇄형 구조였다.
레빈이 제온에게 사과했다.
“미안해요, 형! 괜히 저 때문에…….”
“아니야. 그보다 무사히 복수해서 다행이다.”
“복수했는데 왜 이렇게 찜찜할까요?”
오랫동안 꿈꿔 왔던 복수였다.
단 하루도 복수를 꿈꾸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였다.
눈만 감으면 엄마와 동생의 고통스러운 얼굴이 떠올라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도 티 내지 않고 분노를 곱씹었다.
그렇게 인고한 끝에 결국 복수를 끝낼 수 있었다. 그런데도 개운하지 않았다.
“그 새끼…… 네오 서울에서 만든 거죠?”
“그런 것 같더라.”
제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이도 아닌 처형 부대의 일원인 이정호가 동원된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정호 정도의 인물이 동원되어 마무리할 정도라면 네오 서울에서도 꽤나 신경 썼던 프로젝트라는 뜻.
맨디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 일은 내가 시청에 복귀하는 대로 알아볼게.”
“고마워요, 누나!”
“아니야. 내가 미안하지.”
레빈 가족의 죽음에 시청이 관계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맨디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시청에는 그녀가 모르는 수많은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제아무리 슈퍼바이저라고 해도 그 모든 프로젝트에 관여할 수는 없었다.
특히 개별 단위의 연구실에서 이뤄지는 실험은 알 방법이 없었다.
다른 슈퍼바이저나 고위 공직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자신이 개입하는 것 외엔 알 도리가 없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알고 조율하는 이는 오직 한 명뿐이다.
시장 진금호.
네오 서울의 정점에 존재하는 유일한 남자.
그 외의 모든 인물들은 네오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의 부속품에 불과할 뿐이다.
맨디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그녀가 엘로이라는 강력한 무력을 지닌 존재와 함께한다지만, 진금호나 네오 서울에 비하면 겨우 티끌만큼의 존재감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브리엘이 방 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굉장히 기분 나쁜 곳이네.”
기이잉! 철컥!
두꺼운 벽 뒤에서 기계음이 들려왔다.
평범한 사람은 듣지 못할 정도로 미약한 소음이었지만, 이 안에 있는 사람 중 이 소음을 듣지 못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벽 뒤에서 쉼 없이 기계가 돌아가고 있었다.
지금 그들이 갇혀 있는 건물은 메가 타워였다.
메가 타워는 서 구역의 중심에 있는 건물이었다.
시청보다 약간 낮지만, 그래도 서 구역에서는 가장 높다.
메가 시티 최상층에 서 구역의 지배자인 김현수의 거처가 있고, 지하 깊은 곳엔 AI인 삼족오의 본체가 존재한다.
삼족오는 메가 시티의 모든 것을 관리한다.
문을 개방하는 사소한 일부터 전체적인 운영까지 모두 삼족오가 개입해 처리한다.
그 때문에 쉴 새 없이 기계음이 울려 퍼지는 것이다.
하이 엘프인 브리엘에겐 이 소음이 굉장히 거슬렸다.
생명력이라곤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금속음이 마치 고문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 순간 제온이 안쪽 벽으로 걸어갔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벽 모서리 천장이었다.
천장에 렌즈가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제온이 렌즈를 빤히 들여다봤다. 그러자 렌즈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제온이 입을 열었다.
“감시 카메라 같은 건가 보군.”
“어, 진짜네?”
“그럼 누군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거 아냐?”
브리엘과 맨디가 기분 나쁜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봤다. 그러자 카메라의 불빛이 더 강해졌다.
그때였다.
키이잉! 킹!
벽 너머에서 소음이 더 강렬해졌다.
기분 나쁜 주파수가 발생했다.
제일 먼저 반응한 이는 브리엘이었다.
“제기랄!”
브리엘이 양손으로 귀를 막으며 인상을 찡그렸다.
맨디의 반응도 그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비록 반쪽이지만, 그녀 역시 엘프였다.
소음에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까지 수많은 소리를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기분 나쁜 고주파는 처음이었다.
마치 엘프들을 고문하기 위해 만들어진 소리 같았다.
반면 제온과 레빈의 반응은 덤덤했다.
엘프에겐 고통스러운 고주파도 그들에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이다.
순간 주파수가 변했다.
지이잉!
고주파에서 저주파로 단계적으로 변해 가는 것이다.
“크윽!”
이 과정 중에 레빈이 인상을 썼다.
어떤 주파수가 그의 청각과 뇌를 기분 나쁘게 자극한 것이다.
반면 제온은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었다.
그 역시 레빈처럼 자극받았지만, 이 정도로는 그의 반응을 끌어낼 수 없었다.
제온이 주파수에 반응하지 않자, 이번엔 기분 나쁜 냄새가 흘러들어왔다.
“크윽! 이게 뭐야?”
“무슨 시체 썩는 냄새가…….”
역시 브리엘과 맨디가 격렬하게 반응했다.
감각이 인간보다 예민하다 보니 당연한 결과였다.
제온이 카메라를 노려보며 생각했다.
‘마치 우리의 약점을 파악하기 위해 실험을 하는 것 같군.’
인간의 약점은 여러 가지다.
아무리 강한 인간이라도 약점은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시각, 청각, 후각 같은 감각 기관이나 육체의 결손 부위, 혹은 반응 속도 등 다양하다.
브리엘은 아직 어려서 자신의 약점을 감추는 데 능숙하지 못했다. 맨디 역시 엘로이와 달리 이런 실험에 쉽게 흥분해 약점을 드러냈다.
그나마 레빈이 이를 악물며 반응하지 않으려 했지만, 모든 것을 숨길 수는 없었다.
반면 제온은 철저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마치 무생물인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제온의 반응이 답답했는지 카메라 렌즈의 불빛이 더 강렬해졌다.
강렬한 불빛은 제온의 망막을 아프게 자극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이러다 눈멀겠어.”
“씨발!”
브리엘, 맨디, 레빈이 차례로 반응했다.
그들은 연이은 실험에 계속해서 약점을 노출하고 있었다.
반면 제온은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렌즈를 바라봤다.
“장난이 심하네.”
파직!
순간 렌즈가 박살 났다.
제온이 파이어 미사일을 날려 부순 것이다.
그러자 다른 모서리에서 카메라 렌즈가 튀어나왔다.
이어 기계음이 들려왔다.
―기분 나쁘다면 죄송합니다. 호기심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누굽니까?”
―저는 삼족오라고 합니다.
“삼족오?”
―김현수 님을 보조해 서 구역 전체를 관리하는 AI입니다.
“AI면 인공 지능인가요?”
―조금 더 복잡하지만, 그렇게 이해하시면 무리 없을 겁니다.
삼족오의 대답에 제온이 미간을 찌푸렸다.
서 구역 고위 각성자들이 보조 AI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본체인 삼족오와 대면하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절로 긴장이 됐다.
제온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김현수 님의 명령입니까?”
―김현수 님은 그런 명령을 내릴 정도로 한가하지 않습니다.
“그럼 당신의 순수 의지라는 거군요.”
―그 정도의 자율성은 가지고 있습니다.
분명 기계음인데도 묘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마치 인간처럼 말이다.
제온이 물었다.
“그럼 우리도 풀어 줄 수 있습니까?”
―그건 곤란합니다.
“왜죠?”
―아직 사건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때문에 건물 한 층이 날아갔습니다. 이건 중대 범죄입니다.
“시청에 확인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텐데요. 원인을 제공한 자는 우리가 아닙니다.”
―진상 파악 중입니다. 파악되는 대로 판단해 합당한 조치를 할 겁니다.
“여기에 시청의 슈퍼바이저가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맨디 시스테인, 시청의 주요 슈퍼바이저 중 한 명으로 파악됩니다.
“그런데도 구금하겠다구요? 시청에서 문제 삼을 텐데요?”
―시청의 절차상 하루 정도는 괜찮습니다.
그러니까 하루 정도는 구금해도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의미였다.
각 구역에는 꽤 많은 자율성이 주어졌다.
일종의 자치구나 다름없는 정도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어지간한 사건이 아니면 시청은 각 구역의 권한을 침범하지 않는다.
아마 맨디가 구금당했다는 사실을 알아도 하루 정도는 지켜볼 것이다. 그 후에도 계속 구금한다면 분명 문제로 삼을 것이다.
이를 알기에 삼족오도 하루 정도는 문제 될 것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 분명했다.
“영악하군요.”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죠? 차진철 때문인가요?”
―그는 그리 중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중요 인물은 당신이죠. 제온!
“영광이군요. 서 구역의 실질적인 권력자에게 그런 이야기를 듣다니요.”
―저는 권력자가 아닙니다. 김현수 님을 보좌하는 AI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서 구역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당신이죠. 삼족오 님.”
―…….
말문이 막혔는지 삼족오의 말이 잠시 끊겼다.
삼족오가 가진 자율성은 상상 이상이었다.
놈이 독자적인 판단으로 제온 일행의 약점을 파악하려는 것만 봐도 그랬다.
평범한 AI였다면 감히 그런 판단을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삼족오는 제온이라는 존재를 위험 요소로 판단해 효율적으로 제거할 방법을 스스로 찾고 있었다.
파삭!
렌즈가 부서졌다.
제온이 파이어 미사일로 날려 버린 것이다.
방 안에 설치되었던 두 대가 전부였는지, 더 이상 새로운 카메라가 나타나지 않았다.
레빈이 양어깨를 문지르며 말했다.
“형, 나 지금 소름 돋았어요.”
“응?”
“아니, AI가 저렇게 악의를 가지고 판단하잖아요. AI가 저렇게 똑똑해도 되는 거예요? 서 구역에서는 어떻게 저런 AI를 만들어 낸 거죠?”
제온과 삼족오가 대화하는 것을 직접 보지 않았다면 믿기지 않았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
제온이 갇혀 있는 감옥 지하 백 미터 아래 벙커에 거대한 투명관이 존재했다.
투명관 안에는 거대한 돌덩이가 들어 있었다.
돌덩이엔 수많은 전선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 모습이 꼭 두뇌에 연결된 신경 다발처럼 보였다.
얼핏 보기엔 평범한 돌덩이처럼 보이는 물건이 바로 삼족오의 실체였다.
에이션트 골렘의 두뇌에 슈퍼컴퓨터가 우연히 결합되어 만들어진 산물이 바로 삼족오였다.
삼족오는 제온을 경계하고 있었다.
―극도의 위험 요소. 현재로서는 뚜렷한 약점을 파악하기 어려움. 약점을 파악하려면 조금 더 직접적인 행동을 해야 함. 이를 김현수 님이 허락해 줄지는 미지수. 차라리 허가 없이 진행하는 것이 나을 듯함. 감옥에 합법적으로 가둬 둘 수 있는 지금이 유일한 기회로 판단됨.
삼족오가 그렇게 제온에 대한 대책을 한창 세울 때였다.
갑작스러운 이상 신호가 감지됐다.
―보조 AI 현무, 이상 동향 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