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58)
258화
삼족오가 있던 지하에서 치솟아 오른 불기둥은 제온 일행이 갇혀 있던 층까지 뚫고 지나갔다.
그 여파로 그들이 갇혀 있던 감옥의 문이 부서졌다.
덕분에 제온 일행은 어떤 제지도 없이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이게 무슨 난리야?”
“왜 지하에서 폭발이……. 하마터면 누워 있다가 죽을 뻔했네.”
레빈과 브리엘이 호들갑을 떨 정도로 폭발은 강력했다.
다행히 직접적인 피해를 입진 않았지만, 폭음에 고막이 충격을 받아 먹먹했다.
맨디 역시 귀가 아파서 인상을 잔뜩 쓰고 있었다.
오직 제온만이 멀쩡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상황을 파악하려 했다.
그가 앞에 뚫려 있는 커다란 구멍을 바라봤다.
마치 화산이 터진 것처럼 강력한 열기에 구멍 주위의 철판이 지글지글 끓고 있었다.
평범한 폭발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었다.
그만큼 메가 타워 지하를 강타한 폭발은 심상치 않았다.
제온이 구멍으로 다가가 아래를 바라봤다.
마치 마정석 광산의 수직 갱도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구멍이 지하로 뻥 뚫려 있었다.
폭발의 근원지.
지하 깊은 곳에서 누군가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서 구역의 지배자인 김현수였다.
“김……현수.”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제온은 본능적으로 그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제온!”
두 사람 사이에는 수십 미터의 거리와 어둠이 존재했다. 하지만 그들의 시야를 방해할 수는 없었다.
김현수의 눈이 어둠 속에서 무섭게 빛났다.
“네가 왜 여기 있는 거냐? 제온!”
“삼족오한테 물어보시죠. 덕분에 서 구역의 감옥에서 푹 쉬고 있었으니까요.”
“삼족오?”
―제온의 동행인 레빈이 우리 구역에서 살인을 저질러 구금하고 있었습니다.
삼족오의 말에 김현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데 왜 보고하지 않은 거지?”
―보고하려는 순간 이수명 연구원이 제 본체가 있는 벙커에 침입했습니다.
그러니까 보고할 시간이 없었다는 의미다.
김현수는 납득하면서도 찜찜한 기분을 느꼈다.
삼족오의 능력이라면 이수명과 현무에 대항하면서도 충분히 자신에게 보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꼬치꼬치 캐묻기엔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가 제온이 있는 층으로 몸을 날리며 삼족오에게 명령을 내렸다.
“지하 전 층을 폐쇄하고 다시 한번 시스템을 점검하라.”
―네! 마스터,
쿵! 쿵! 쿵!
삼족오의 대답과 함께 비상 격벽이 차례차례 닫히며 지하 층이 폐쇄됐다.
그사이 김현수가 제온 앞에 조용히 내려섰다.
기계화 각성자라고 하지만 겉모습만 봐서는 평범한 인간과 구별되지 않는 김현수다. 하지만 김현수에게선 기계화 각성자 특유의 무기질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내 실수군. 귀한 손님을 이렇게 누추한 곳에 모셔 두고 몰랐다니.”
“괜찮습니다. 덕분에 푹 쉬었습니다.”
“공교롭군. 하필 네가 왔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그러게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 같군요.”
“알긴 아는군.”
“그게 삼족오의 본체였군요.”
“지금 고민 중이야. 그 눈깔을 파 버려야 할지, 아니면 혓바닥을 잘라야 할지 말이야.”
김현수의 눈은 붉게 빛나고 있었다.
어지간한 각성자는 눈빛을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릴 만큼 살벌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제온은 위축된 기색 하나 없이 태연히 대꾸했다.
“그냥 입 꾹 다물고 있으면 안 될까요?”
“비밀을 아는 자는 적을수록 좋은 법이지.”
“그럼 이쪽도 최대한 발버둥을 치는 수밖에요.”
“감히 저항하겠다는 건가?”
“저도 목숨이 아깝거든요.”
“이지령을 죽였다고 기고만장한 모양이군. 난 그와 다르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덤비겠다?”
“그냥 앉아서 죽을 수는 없으니까요. 뭐, 필사적인 발버둥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고맙겠네요.”
“발칙하군.”
“뭐, 천성이라…….”
두 사람의 대화에 레빈과 브리엘, 맨디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제온이 강한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상대는 오래전부터 네오 서울의 서 구역을 지배해 온 김현수였다.
강함의 차원이 달랐다.
더군다나 이곳은 서 구역.
그가 명령을 내리는 순간 서 구역의 모든 각성자들이 제온을 공격할 것이다.
제온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서 구역 전체를 이길 수는 없었다.
더구나 이곳은 모래가 존재하지 않는 네오 서울 안이었다.
제온은 전력을 발휘할 수 없는데, 김현수는 전력을 백 퍼센트 이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제온이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제온은 태연했다.
김현수는 그런 제온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비밀은 지키겠다?”
“네!”
“저들은? 저들도 너처럼 비밀을 지킬까?”
김현수가 바라보는 이들은 바로 레빈, 브리엘, 맨디였다.
엄청난 압박감에 세 사람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같은 S급 각성자라고 해도 이지령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감이었다.
눈빛을 보는 것만으로도 전신이 갈기갈기 찢겨 나갈 것 같았다. 이런 압박감은 처음이었다.
그 순간 제온이 김현수의 앞을 막아섰다. 그러자 세 사람을 짓누르던 압력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제온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들도 물론 비밀을 지킬 겁니다.”
“확실한가?”
“제가 보증하죠. 그들은 믿을 만한 사람들입니다.”
“식사는 했나?”
“보다시피 온종일 구금되어서 아무것도 못 먹었습니다.”
“그럼 내가 음식을 대접하지.”
“그럼 고맙죠.”
그 순간 장내를 짓누르던 압박감이 씻은 듯 사라졌다.
그제야 레빈과 브리엘 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살았다.’
‘미친!’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이 진정이 쉽게 되지 않았다.
그만큼 김현수가 남긴 잔향과 존재감은 어마어마했다.
네 사람은 메가 타워 최상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엘리베이터는 김현수의 거처 아래에서 멈춰 섰다.
김현수가 레빈과 브리엘, 맨디에게 말했다.
“나는 제온과 따로 식사할 테니까 세 사람은 이곳에서 식사하도록. 조금 기다리면 사람들이 식사를 내줄 것이다.”
“하지만…….”
브리엘이 반론하려다가 제온의 눈빛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제온이 눈빛으로 만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세 사람을 내려 주고 제온과 김현수가 최상층에 도착했다.
김현수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말했다.
“이곳에 외부인이 들어온 것은 네가 처음이다.”
“영광입니다.”
“입에 발린 소린 그만하고 자리에 앉아.”
“네!”
제온은 사양하지 않고 의자에 앉았다.
김현수가 제온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삼족오!”
―네! 마스터.
“복구 상황은?”
―지하 격벽은 구십 프로 이상 복구되었습니다. 나머지는 내일 오전까지 모두 해결될 겁니다.
“다른 문제는?”
―점검 결과 다른 보조 AI에 문제점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너는?”
―자체 점검 결과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확실한가?”
―확실합니다.
삼족오의 대답에 굳었던 김현수의 표정이 조금은 풀렸다.
“제온과 식사하겠다. 준비해다오.”
―이미 준비하고 있습니다.
평소와 다름없는 삼족오의 목소리에 김현수가 내심 안도했다.
삼족오에 문제가 생기는 순간 서 구역 전체가 멈춘다.
수백만의 인구가 사는 서 구역이 통제 불능 상태가 되는 것이다.
다행히 삼족오는 건재했고, 그런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제온이 입을 열었다.
“삼족오를 많이 의지하는 모양입니다.”
“삼족오는 내 분신과 같다.”
“그 정도로 신뢰하는 겁니까?”
“신뢰가 아니다. 그와 나는 한 몸이다. 내가 있기에 삼족오가 존재하는 것이고, 삼족오가 존재하기에 내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다.”
삼족오를 향한 무한한 신뢰가 목소리에 담겨 있었다.
제온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기본적으로 그는 기계를 그리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몸을 기계로 대체한 겁니까? 삼족오를 신뢰해서?”
“궁금한가?”
“솔직히 그렇네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멀쩡한 신체를 자르고, 기계로 대체할 수 있는지…….”
제온이 네오 서울에서 제일 이해되지 않는 부류가 바로 서 구역 각성자들이었다.
아무리 기계에 적합한 능력을 각성했다고 하지만, 그렇게 쉽게 본래의 육체를 버리고 기계 육체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인지 말이다.
그나마 김현수 같은 고위 각성자들은 인간과 거의 비슷한 육체를 가지고 있다지만, 대부분의 하급 각성자들은 싸구려 공구처럼 기계 티가 너무 많이 났다.
인간의 육체보다 기계화된 부분이 더 많은 자들.
과연 그러고도 인간이라 할 수 있는지 말이다.
더군다나 김현수는 순수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자였다.
서 구역 구성원들 대부분이 순수 한국계였고, 순수 혈통을 지키기 위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순수 혈통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자가 기계로 된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
제온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모순이었다.
순간 김현수의 눈빛이 변했다.
“누군가에게 사지가 잘리면 돼.”
“네?”
“팔다리가 잘려져 나가고, 심장에 검이 꽂혀 죽어 가고 있어. 호흡은 점차 가빠져 오고, 시야는 흐려져. 그렇게 죽음이 다가오고 있을 때 네 주위에 잡동사니 부품들이 널려 있어. 그때 운명처럼 각성하는 거야.”
“…….”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 잘려 나간 팔과 다리, 고장 난 심장을 기계가 대신하게 되는 거야. 졸지에 기계 인간이 되는 거지. 그 기계 인간은 어떤 감정을 느낄까? 기계가 되어서 좋을까? 강해져서 행복할까? 어떨 것 같은가?”
“…….”
“그게 시작이었어. 그렇게 최초의 기계화 각성자가 탄생한 거지. 태초의 하나가 출현하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지만, 그 뒤를 잇는 자들이 나타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야.”
김현수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최초의 기계화 각성자가 누군지 말이다.
바로 김현수 자신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애초 선택의 여지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왠지 아느냐?”
제온이 고개를 저었다.
김현수가 그런 제온을 보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나에겐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내 동족과 땅을 지키겠다는 신념이. 네오 서울은 우리 민족이 대대로 살아온 터전이었다. 무려 수천 년 동안이나 말이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어떤가? 한국인이 아닌 자들이 이 땅의 주인을 자처하고 있다. 심지어는 인간이 아닌 것들조차 당당히 한 구역을 차지하고 있지. 사방이 우리를 위협하는 적이다. 적에게서 내 민족을 지키려면 힘이 필요하다. 설령 내 육체가 더 이상 순혈 인간이 아닐지라도 내 영혼, 내 정신은 여전히 한국인이다.”
김현수의 목소리엔 강한 신념이 어려 있었다.
한국인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또 싸웠다.
부상을 입으면 다른 부품으로 갈아 끼우며 끝없이 싸웠다. 나중엔 그나마 남아 있던 인간의 육체마저 기계로 대체했다.
“나는 이것을 진화라고 부른다. 처음 개체의 진화가 어렵지, 일단 한 개체가 진화하면, 동족의 진화를 촉발하지.”
김현수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 기계화 각성자로 각성하기 시작했다.
김현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그들은 스스로의 의지로 사지를 자르고 기계로 전신을 대체했다.
그것이 서 구역의 시작이었다.
동족을 지키기 위해, 순수 인간들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다.
그렇게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자 그 누구도 감히 서 구역을 넘보지 않았다.
부서진 부품을 갈아 끼우며 싸우는 기계화 각성자들의 모습에 기가 꺾였기 때문이다.
“그 후 삼족오를 얻어 급격한 발전을 이뤘지. 하지만 그 기초는 어디까지나 나처럼 인간의 육체를 포기한 이들이 만든 것이다. 순수한 인간을 지키기 위해서 순수한 인간을 포기한 자들. 누가 우리를 욕할 수 있는가? 누가 우리에게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라고 비난할 수 있는가?”
“…….”
“우리는 방패다. 우리 스스로를 버려 순혈 인간을 지키는 최후의 방패. 그래도 우리를 비난할 수 있겠는가? 최초의 모래술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