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59)
259화
최초의 모래술사.
어쩐지 어감이 껄끄럽게 느껴졌다.
제온 이후에도 모래술사가 태어날 거라고 예언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제온은 알고 있었다.
모래술사는 자신이 최초이자 마지막이라는 것을.
너무 강하고 무서운 힘이기에 오직 한 사람에게밖에 허용되지 않는다.
누군가 알려 줘서가 아니었다.
그냥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마치 DNA에 각인된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김현수의 말이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김현수는 자신과 같은 신념으로 동족들을 지키는 자들이 늘어나길 바랐다.
그런 그의 바람이 기계화 각성자들의 각성을 촉발했는지 몰랐다. 하지만 제온에겐 김현수와 같은 열망이 없었다.
세력을 늘리고 싶은 생각도, 자신과 같은 힘을 가진 자가 늘어나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그는 김현수와 본질적으로 달랐다. 하지만 굳이 그런 사실을 말하지는 않았다.
그 순간에도 김현수의 말은 이어졌다.
“삼족오를 얻은 이후 기계화 각성자들의 효율적인 관리와 업그레이드가 가능해졌다. 그렇기에 우리에겐 삼족오를 지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삼족오가 없더라도 기계화 각성자들이 태어나고 성장할 것이다. 하지만 삼족오는 그들의 성장을 가속화시킬 수 있었다.
그것이 삼족오가 중요한 이유였다.
“이제 알겠지? 네가 왜 비밀을 지켜야 하는지. 삼족오에 관한 소문이 거리에 나도는 순간 나는 너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네오 서울에서 지워 버릴 것이다.”
김현수의 경고는 결코 헛소리가 아니었다.
실제로 그럴 능력을 가지고 있는 자의 위협이었다.
제온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우리 쪽에서 삼족오에 관한 일이 새는 일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쪽에서 말이 퍼지는 것은 우리 책임이 아닙니다.”
잠시지만 지하 백 미터에 있던 벙커가 부서지며 삼족오가 모습을 드러냈다. 분명 몇몇 사람은 삼족오의 실체를 목격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까지 제온이 책임질 수는 없었다.
김현수가 말했다.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다.”
“그럼 됐네요. 우리 쪽도 절대 없을 테니까.”
“듣던 대로 건방지군. 하지만 자격이 있으니까 이번엔 넘어가 주지.”
김현수는 강자를 존중했다.
강한 자는 오만해도 봐줄 수 있었다.
제온도 강자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약간의 시건방 정도는 용납할 수 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고 몸에 딱 달라붙는 옷을 입은 여자가 음식이 담긴 카트를 끌고 왔다.
여자는 테이블 위에 음식을 올려놓고 밖으로 나갔다.
한밤에 급하게 준비한 것치곤 꽤 푸짐했다.
“그럼 먹지.”
김현수가 포크를 들어 먼저 음식을 들었다.
기계화 각성자라고 하지만, 얼굴을 비롯한 몇몇 부분은 인간이었다. 그 때문에 소량이라도 음식을 먹어야 했다.
제온도 묵묵히 음식을 먹었다.
예상외로 음식이 꽤 맛있었다.
재료도 신선하고, 간도 잘돼 있었다.
제온은 음식을 조금씩 음미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음식만 먹었다.
조용한 실내에 두 사람이 음식 먹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먼저 식사를 끝낸 김현수가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할 건가?”
“집으로 돌아가야죠.”
“빈민가?”
“네!”
“원한다면 이곳에 네 집을 줄 수도 있다. 빈민가와 비교도 할 수 없이 크고 화려한 집을.”
“그렇게 큰 집은 필요 없습니다.”
“네오 서울에 들어올 생각도 없겠군?”
“네!”
“빈민가에 남을 이유라도 있나? 여러모로 불편할 텐데.”
“네오 서울보단 편하게 느껴집니다.”
“통제받는 것을 싫어하는군.”
“천성이 자유로워서 그런가 봅니다.”
“앞으로도 그 생각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내 제안을 거부한 뒤 다른 구역에 정착하면 내 빈정이 상할 것 같거든.”
김현수 같은 강자에게 중요한 것은 권위와 위신이었다.
누군가 권위를 침범하면 반드시 찢어 죽여야 했고, 위신이 떨어지게 한 자는 가족까지 모두 죽여 체면을 세워야 했다.
그것이 김현수 같은 강자들이 정상에서 군림하는 비결 중 하나였다.
제온이 음식 한 점을 입에 넣으며 말했다.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이미 다른 곳의 제안도 거절했거든요.”
“그런가?”
“잡지 않는다면 식사 끝나는 대로 바로 빈민가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그럼 오늘 중에 돌아가겠군.”
“그렇겠죠.”
“좋군!”
김현수가 마음에 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온은 뜨거운 계륵이었다.
뜯어 먹을 것도 별로 없는데, 억지로 먹으려다간 너무 뜨거워서 입천장이 홀라당 벗겨질 수 있었다.
일단은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게 최선이었다.
***
진금호는 뒷짐을 진 채 창밖을 바라봤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시청 서쪽, 서 구역이었다.
시장실 한쪽에 서 있던 서태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조금 전 서 구역에서 큰 진동이 감지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메가 타워에서 큰 폭발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메가 타워? 김현수의 거처군.”
“네!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악 중에 있습니다.”
“접근하기 쉽지 않을 텐데.”
“이미 포섭한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과 접촉하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략이나마 윤곽을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그 문제는 알아서 해.”
자잘한 일까지 자신이 관여할 필요가 없었다.
이런 일을 처리하라고 비서가 있는 거니까.
서태란은 꽤 유능한 비서였다.
진금호가 굳이 명령하지 않아도 알아서 모든 일을 처리했다.
덕분에 진금호는 신경을 분산하지 않고, 자신의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때 서태란이 귀에 낀 이어폰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귀 기울여 듣던 서태란이 진금호에게 말했다.
“이정호 님이 지하 이십 층에서 시장님을 뵙길 바랍니다. 어떻게 할까요?”
“정호가 보길 원한다면 봐야지. 지하 이십 층이면 폐기된 실험실인가?”
“네!”
“알 만하군. 나 혼자 가지.”
“알겠습니다.”
진금호는 서태란을 뒤로하고 혼자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는 순식간에 그를 지하 이십 층으로 운반했다.
문이 열리자 실험실 전경이 보였다.
이곳은 오래전에 폐쇄된 실험실이었다.
실험실은 연구에 필요한 기자재 대부분이 빠져 휑했다.
실험실 한가운데 품이 넓은 로브를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로브 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검의 손잡이가 보였다.
남자가 초점 없는 눈동자로 진금호를 바라봤다.
“여기까지 내려오라고 해서 죄송합니다. 시장님!”
“괜찮아! 그렇지 않아도 답답했거든.”
진금호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다른 이들은 감히 진금호를 내려오라 청할 수조차 없었다.
네오 서울에서 진금호를 청할 수 있는 존재는 채 열 명이 되지 않는다.
남자는 그중 하나였다.
바로 넘버즈의 일원인 이정호였기 때문이다.
심안을 얻기 위해 스스로의 눈을 멀게 한 남자.
누구보다 진금호에게 충성스러운 남자가 바로 이정호였다.
그런 이정호가 아무것도 아닌 일로 그를 부를 리 없었다.
“그래, 무슨 일이지?”
“이걸 보십시오.”
이정호가 실험실 작업대 위에 놓인 물체를 가리켰다.
작업대 위엔 머리가 잘린 시체가 놓여 있었다.
자신의 죽음을 못 믿겠다는 듯이 눈을 부릅뜬 시체는 바로 살인마였다.
진금호가 살인마의 시체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301호인가?”
“네! 실험실을 탈출한 바이오 솔저 중 하나입니다.”
“꽤 오래 버텼군. 지금까지 도망 다니다니.”
진금호가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래전 시청에서 운영하던 실험실에서 실험체들이 탈주했던 사건이 있었다.
대부분의 실험체들을 잡아들였지만, 몇몇은 끈질기게 도주해 아직까지 잡히지 않았다.
그가 301호라고 지칭한 실험체도 그중 하나였다.
놈은 다른 실험체들과 달랐다.
다른 실험체들은 지하나 사막으로 숨어들었는데, 놈은 빈민가에서 살인을 저질렀다. 그러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최근에 활동 영역을 네오 서울로 바꿔 살인을 저질렀다.
문제가 커질 수도 있기에 이정호에게 명해 놈을 잡아 오게 했다.
“꽤 힘들게 했나 보군. 머리를 자른 것을 보니.”
“제가 자른 것이 아닙니다.”
“그럼?”
“레빈이라는 꼬마입니다. 특이한 능력을 각성한 아이입니다. 301호에게 가족을 잃었습니다.”
“가족의 복수라. 그런데 어디서 들어 본 이름 같은데?”
“제온과 같이 사는 꼬마입니다.”
“하하! 그래? 그것참 공교롭군.”
진금호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하지만 미소와 반대로 눈빛은 사막의 밤처럼 차갑고 어두웠다.
“그러니까 301호와 제온과 같이 사는 꼬마가 엮였단 말이지?”
“네! 놈은 몸을 유령처럼 변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습니다.”
“희한한 재주군. 그래서 그게 문제가 되나?”
“특이한 능력이지만 저에겐 문제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나를 부른 거지?”
“301호의 머리 단면 좀 보십시오.”
“단면?”
진금호가 살인마의 머리통을 들어 잘린 면을 들여다봤다.
잠시 후 그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호!”
“네! 조직이 달라졌습니다. 뼈가 금속처럼 변하고, 근 다발이 유리 섬유처럼 촘촘해졌습니다.”
이정호의 말 그대로였다.
“다른 실험체는 이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네! 탈주한 개체들이 변화를 일으킨 것 같습니다.”
“그럼 진화한 건가? 재밌군! 이런 경우는 예측하지 못했는데.”
바이오 솔저는 진금호가 그리는 큰 계획의 일부일 뿐이다.
실패라고 판단해 전원 폐기 결정을 내렸는데, 살아남은 개체들이 이렇게 진화하다니. 예상 밖의 성과였다.
“어떻게 할까요?”
“살아남은 개체가 더 있다고 했지? 전부 다 잡아들이라 해.”
“알겠습니다.”
“이로써 흐름이 또 바뀌었군.”
진금호가 연구실 천장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제온이 출현한 그 순간부터 세상의 흐름이 급격히 바뀌기 시작했다.
“역시 네가 이 세상의 변곡점인 것 같구나.”
***
제온이 김현수와의 식사를 마치고 일 층 로비로 내려오자 그를 기다리고 있던 브리엘, 레빈, 맨디가 보였다.
“제온!”
“형!”
“괜찮아요?”
세 사람이 서둘러 제온에게 다가왔다.
제온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보다시피 멀쩡해.”
“죄송해요, 형! 괜히 나 때문에…….”
“괜찮으니까 어서 돌아가자. 집에 가서 푹 쉬고 싶으니까.”
“네! 형.”
레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닌 게 아니라 레빈도 얼른 집에 가서 쉬고 싶었다.
서 구역에 온 이후 한 번도 제대로 잔 적이 없었다.
살인마를 추적하는 데 온 신경을 집중했기 때문이다.
어서 자신의 침대에 누워 푹 자고 싶었다. 지금 같아서는 사흘 밤낮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제온이 맨디를 바라봤다.
“당신은요?”
“난 내 집으로 돌아가야죠.”
“오늘 있었던 일은…….”
“알아요. 절대 비밀이란 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내가 말 안 해도 시장님은 알고 있을 거예요.”
“그럴까요?”
“그가 모르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네오 서울 안에서 벌어지는 조그만 일까지도 손금 보듯 파악하고 있죠.”
“그가 알고 있는 것은 상관없어요. 당신이 말하지만 않으면요.”
“걱정하지 말아요. 이제까지 입이 싸단 이야기는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으니까.”
“그럼 됐어요. 일단 각자 집에서 쉬고, 나중에 다시 만나 이야기하죠.”
“네! 고생했어요. 너희들도 잘 가.”
맨디가 제온 일행에게 작별 인사를 고한 후 중앙 구역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제온과 브리엘, 레빈도 네오 서울 입구로 향했다.
문득 제온이 뒤를 돌아봤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삼족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지?’
삼족오는 지하 백 미터 아래 벙커에 있었다. 그런데 지상까지 통로가 생길 정도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평범한 폭발로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었다.
마법 아이템이 관여한 것이 분명했다.
“김현수가 알아서 해결하겠지.”
궁금한 것은 많았지만, 자신이 관여할 일은 아니었다.
궁금하다고 선을 넘는 순간 문제는 커지기 마련이었다.
제온은 이 이상 일이 확대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제온은 궁금증을 묻어 두고 레빈, 브리엘과 함께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