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60)
260화
집으로 돌아온 레빈은 며칠 동안 자신의 방에 처박혀 잠만 잤다.
브리엘은 그런 레빈을 보고 겨울잠 자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굳이 레빈을 끌어내려거나, 방으로 들어가는 행동 따윈 하지 않았다.
레빈의 마음을 어느 정도 짐작하기 때문이다.
“복수하는 데 에너지를 모두 쏟아부었으니, 다시 채우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거야. 뭐, 에너지가 다 차면 알아서 나오겠지.”
제온이 미소 지었다.
브리엘이 꽤 어른스럽게 말했기 때문이다.
레빈이 성장한 만큼 브리엘도 성장했다.
이젠 예전처럼 마냥 철없이 굴지도 않았고, 제법 남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도 알았다.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을 한 것이다.
덕분에 편해진 것은 제온이었다.
예전처럼 일일이 챙겨 줄 필요가 없으니, 제온의 일상에도 여유가 생겼다.
“나 좀 나갔다 올게.”
“응! 다녀와.”
제온은 브리엘과 레빈을 남겨 두고 집을 나왔다.
그가 향한 곳은 도깨비 시장이었다.
언제 와도 도깨비 시장은 활기찼다.
제온은 거리 한쪽에 멍하니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렇게 한참 멍을 때리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왔다.
“팔자 좋네. 뭘 보는 거야?”
제온이 고개를 들어 곁에 다가온 사람을 올려다봤다.
“아!”
“아?”
“아, 오랜만이라고요.”
“뭐가 오랜만이야? 얼마 전에도 만났는데.”
“그만큼 반갑다는 이야기예요.”
“말이나 못 하면…….”
코를 찡그리며 제온 옆에 앉는 여자는 바로 도깨비 시장의 주인인 유세희였다.
그녀의 뒤에는 언제나 따라다니는 흑사자가 있었다.
제온은 그와 눈인사를 한 후 유세희를 바라봤다.
“안 바쁘십니까?”
“바빠!”
“근데…….”
“그렇다고 빈민가 최강자를 방치할 수는 없잖아.”
“최강자? 누가요?”
“너.”
“네?”
“겸손 떨 거 없어. 이곳에 사는 모두가 인정하는 바니까. 아마 네오 서울 각 구역의 지배자도 그렇게 생각할걸. 김현수도 네가 부담스러우니까 레빈이 그 난리를 피웠는데도 순순히 보내 준 거 아냐.”
“아우!”
자신을 치켜올리는 말에 제온이 끔찍하다는 듯이 진저리를 쳤다.
유세희가 그런 제온을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제온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는 누구나 인정하는 강자였다. 오죽했으면 그렇게 무서운 기세로 신촌을 침략해 오던 요한과 동대문이 모두 철수했을까?
자신의 목숨을 아무렇지 않게 버릴 수 있는 광신도들까지 두려워하는 존재가 바로 제온이었다.
그러나 정작 제온은 그런 사실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내가 그런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벌써 빈민가 전체를 장악했을 텐데.’
그랬다면 아마 빈민가 전체에 피바람이 불었을 것이다.
유세희는 제온이 온건한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제온 정도의 초강자가 야심마저 크면 네오 서울 전체가 큰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그래서 제온이 좋았다.
힘을 가진 자가 균형을 잡고 있기에 그녀는 도깨비 시장의 운영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럼 균형의 수호자인가?’
잠시 엉뚱한 생각을 하던 그녀가 무릎을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제온과 달리 할 말이 많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앉아서 시간을 버릴 정도로 한가하지 않은 것이다.
이제 일하러 갈 시간이었다.
그녀가 자리를 뜨려 할 때였다.
“씨발! 저 새끼 잡아!”
“어서 쫓아!”
갑자기 도깨비 시장 한쪽에서 큰 소란이 일어났다.
무언가 추격전이 벌어진 듯 상인들과 가드들이 요란법석 뛰어다니는 것이 보였다.
“또 뭐야?”
유세희가 신경질 어린 표정으로 소동이 난 곳을 바라봤다.
도깨비 시장에 있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보는 광경이었다.
원래 돈과 사람이 모이는 곳에 소란이 끊이지 않는 법이지만, 볼 때마다 신경질이 났다.
“하여간 분탕 종자들이 끊이지 않는다니까.”
“제가 처리할까요?”
“됐어! 마수 잡는 칼로 닭 잡는 것은 아니잖아. 알아서 잘 처리하겠지.”
흑사자의 말에 유세희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흑사자는 도깨비 시장 최고의 전력이었다. 그런 전력을 좀도둑이나 잡는 데 동원할 수는 없었다.
도깨비 시장의 가드들도 꽤 유능한 편이었다.
어지간한 각성자들은 그들 선에서 모두 정리됐다.
“우와앗!”
“씨발! 이쪽이다.”
“저쪽으로 튀었어.”
그런데 이번엔 상대가 만만치 않았다.
얼마나 날쌘지 가드들이 도저히 상대의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이다.
우당탕!
“씨발!”
“뭐가 이렇게 빨라?”
오죽했으면 당황한 가드들이 발이 꼬여 넘어질 정도였다.
제온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도깨비 시장을 제 집처럼 누비는 사람의 복장이 꽤 눈에 익었기 때문이다.
“설마?”
“왜, 아는 사람이야?”
제온의 반응에 유세희가 눈을 빛냈다.
“잠시만요.”
“진짜 아는 사람이야?”
“확인해 봐야죠.”
제온이 가드들을 피해 도주하는 사람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엇? 제온 님!”
그때 도주하던 사람이 제온을 발견하고 달려왔다.
평범한 옷차림에 평범한 얼굴을 한 남자였다.
시장을 걷다 보면 한 시간에 수십 명은 만날 것 같은 그런 남자였다.
제온에게 달려오는 남자의 얼굴엔 반가운 기색이 가득했다.
“헉헉! 저 좀 살려 주세요.”
그는 재빨리 제온의 뒤에 숨었다.
제온을 발견한 가드들은 섣불리 다가오지 못하고 멈춰 섰다.
그들의 얼굴엔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혹시 제온 님 아시는 분입니까?”
“예!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저자가 출입증을 위조해 들어왔습니다.”
“아!”
제온은 그제야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아차렸다.
그가 뒤에 숨어 있는 남자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그, 그게 제온 님을 만나려다 보니까.”
“나를요?”
“네!”
“조용한 곳으로 가죠. 가도 될까요?”
제온이 유세희를 바라봤다.
유세희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깨비 시장에 불법 침입한 자는 용서하지 않지만, 제온의 손님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제온이 유세희에게 감사의 눈인사를 한 후 남자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주위에 사람들이 없는 것을 확인한 제온이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아슬란 님!”
제온을 찾아온 남자의 이름은 아슬란.
강철 요새의 주인인 우르티안의 심복이었다.
우르티안이 스캐빈저를 이끌던 시절, 아슬란이 먼저 목표물에 접근해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임무였다.
“아슬란 님이 여긴 웬일입니까? 설마 네오 서울을 약탈하려는 것은 아닐 테고…….”
“아이고! 그럴 리 있습니까? 강철 요새를 어디 네오 서울에 비합니까?”
아슬란이 황급히 두 손을 내저었다.
그때 아슬란의 뒤쪽에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로브의 모자를 눌러쓴 유난히 피부가 새까만 여자였다.
여자가 아슬란의 뒤통수를 신경질적으로 후려치며 말했다.
빡!
“조용히 있으라고 했더니 그새를 못 참고 또 말썽을 부려?”
“으악! 내 잘못이 아니라니까.”
“제온 님을 못 만났으면 어쩌려고 했어?”
“어쨌거나 이렇게 만났잖아.”
“멍청이!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다니까.”
한숨을 내쉬는 여자는 아슬란과 함께 정찰 임무를 맡는 다크 엘프 두두얀이었다.
두두얀이 제온에게 인사했다.
“이런 일로 귀찮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온 님!”
“두두얀 님도 왔군요. 강철 요새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강철 요새는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그게…….”
두두얀이 잠시 맘을 끊고 주위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사실 제온 님이 떠나고 어떤 자들이 강철 요새를 찾아왔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그들이 꽤 곤경에 처해 있습니다.”
두두얀의 말에 제온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곤경에 처한 자들과 자신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제온 님을 찾습니다. 제온 님이야말로 자신들을 구해 줄 유일한 사람이라면서요.”
“그래서 두 분이 여기 오신 겁니까? 그 말을 전하려고?”
“네!”
“대체 그들이 누구기에?”
“그들은…… 거대 거북이를 타고 왔습니다.”
“거대 거북?”
“네! 등껍질 안에 커다란 마을이 존재하는 그런 거북이였습니다.”
두두얀의 말에 제온은 자신을 찾는 이들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초거대 거북 아르켈론을 타고 사막을 유랑하는 일족.
“모트 일족이군요.”
***
서태란의 방은 밤늦게까지 불 꺼지는 법이 없다.
사람들은 서태란을 단순히 진금호의 비서로만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실제 업무는 그보다 훨씬 강대했다.
진금호를 대신해 시청의 업무 전반을 살펴보고 진행했다.
어지간한 일은 진금호에게 보고하지 않고 진행해도 될 만큼 그녀의 권한은 막강했다.
한참이나 보고서를 살펴보던 서태란이 안경을 벗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후!”
진금호는 보고서를 보지 않는다.
각 조직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읽는 것은 서태란의 몫이다.
그녀는 수많은 보고서를 읽고 간단하게 정리해 진금호에게 보고한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서태란의 사생활이 아예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그래도 서태란은 단 한 번도 피곤하다거나, 지겹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진금호를 위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잠시 미간을 문지르던 서태란이 다시 안경을 쓰려던 순간이었다.
“서 비서님!”
누군가 그녀의 방문을 두드렸다.
다른 사람이라면 절대 이 시간에 방에 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목소리의 주인은 매우 신중한 사람이었고, 결코 함부로 그녀를 찾아오는 이가 아니었다.
반드시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을 때만 찾아오는 인물.
서태란이 안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들어와요.”
“네!”
목소리의 주인이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였다.
포마드 스타일로 머리를 단정히 빗어넘긴 백칠십 센티미터 정도 키의 남자.
체구도 작고, 얼굴도 평범하다. 하지만 남자의 눈빛은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
눈동자가 잘 보이지 않을 만큼 가늘었다.
흔히들 말하는 실눈이었는데, 간혹 번뜩이는 눈빛이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서태란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
“어서 와요, 호 대장님.”
“미안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바쁠 텐데 번거롭게 해 드려서.”
“아닙니다. 조금 쉬고 있었던 중이에요.”
“다행이군요. 급히 보고할 일이 있어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무슨 일인가요?”
서태란이 긴장했다.
밤늦은 시간에 직접 보고를 하겠다고 찾아온 남자의 이름은 호청연. 시청의 정보 조직인 그림자 부대의 대장이었다.
네오 서울뿐 아니라 빈민가까지 그의 손이 뻗지 않은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어지간한 일은 부하를 시켜 보고하지, 이렇게 직접 찾아올 인물이 아니었다.
이 시간에 직접 찾아왔다는 것 자체가 보통 사안이 아니란 증거였다.
호청연이 말했다.
“넘버 파이브가 외부에서 온 이와 접촉을 했습니다.”
“넘버 파이브?”
시청에서는 인물의 위험도에 따라 별도의 넘버를 부여한다.
각 구역의 지배자들이 당연히 넘버 포까지 차지하고 있다.
넘버 파이브는 최근에 합류한 인물이었다.
“제온이 외부인과 접촉했다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