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62)
262화
제온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침부터 예상치 못한 손님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지지 않고 단정히 빗어넘긴 머리, 몸의 굴곡이 드러나는 붉은 정장을 입은 여자가 그의 집 문 앞에 서 있었다.
네오 서울에 이렇게 강렬한 인상을 주는 여자는 흔치 않았다.
‘서태란?’
아침에 제온의 집 문을 두드란 여자는 바로 진금호의 비서인 서태란이었다.
서태란의 뜬금없는 등장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침부터 무슨 일인가요?”
“시장님이 제온 님을 뵙고 싶다네요.”
“이 시간에요?”
“같이 아침이나 하자고 하십니다.”
“아침이라…….”
“꼭 같이 식사하셨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후!”
제온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말이 좋아 권유지, 협박이나 다름없는 제안이었기 때문이다.
“가죠.”
제온이 겉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건물 밖에는 서태란이 타고 온 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차에 탄 제온이 서태란에게 물었다.
“시장님이 아침부터 저를 찾는 이유가 뭡니까?”
“저는 모릅니다. 그저 시장님의 명만 전할 뿐이죠.”
“그런가요?”
“전 일개 비서일 뿐이니까요.”
제온은 서태란의 말을 믿지 않았다.
서태란에게서 풍기는 기운과 눈빛, 존재감은 결코 일개 비서가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진금호의 비서가 평범한 사람일 리 없었다.
진금호의 사람 보는 눈은 데이오든도 인정하던 바였다.
제온은 미간을 찌푸린 채 진금호가 자신을 찾을 이유를 생각했다.
그가 자신을 찾을 일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모비딕.’
진금호는 제온에게 모비딕의 심장을 구해 달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지금 빈민가에 들어온 두두얀과 아슬란도 제온에게 모비딕을 말했다.
이 세상에 공교로운 우연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예고 없이 발생하는 모든 일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제온이 서태란의 얼굴을 바라봤다.
서태란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전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제온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도 모른 척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후!”
제온이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부류의 인간들이 제일 상대하기 어렵다.
차라리 힘으로 눌러 버리면 편한데, 그런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는다.
이런 이들을 상대하려면 이쪽에서도 그만큼 머리를 써야 한다. 그래서 제온은 네오 서울 일엔 될 수 있으면 개입하지 않으려 했다. 네오 서울 안에는 서태란이나 진금호 같은 부류의 인간들이 득실거리기 때문이다.
시청에 도착하는 것은 금방이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시청 최상층 시장실로 향했다.
진금호는 음식이 차려진 테이블에 앉아 제온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게. 아침부터 피곤하게 해서 미안하군.”
“아닙니다.”
“자리에 앉게.”
“네!”
제온이 진금호 맞은편에 앉았다.
“차린 건 별로 없네. 그래도 오늘은 자네와 함께 식사하고 싶었네.”
“감사합니다.”
진금호의 말처럼 테이블 위의 음식은 소박했다.
갓 구운 빵과 스프, 그리고 샐러드가 전부였다.
소박하다 못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는 아침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현재 네오 서울에서 가장 구하기 힘든 재료가 테이블 위에 올려진 신선한 채소였다.
네오 서울에서도 극히 일부의 사람들에게만 신선한 채소와 빵이 공급되고 있었다. 그러니 양이 조금 부족하다고 성의가 없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이 정도 상차림이면 진금호가 제온에게 충분히 성의를 베푼 셈이었다.
“일단 식사부터 하지.”
“네!”
두 사람은 식사를 시작했다.
포크로 소스가 가득 뿌려진 샐러드부터 찍어 먹었다.
입안에서 각종 채소가 아삭아삭 부서졌다.
생전 처음 느껴 보는 신선한 풍미에 제온이 눈을 감았다.
사막 어떤 콜로니에서도 이런 신선한 채소를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네오 서울, 그것도 진금호처럼 높은 신분을 가진 사람들만이 맛볼 수 있는 최고급 식재료였다.
비록 원해서 합석한 것은 아니었지만, 제온은 지금 이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갓 구운 빵도 맛있었다.
빈민가에 공급되는 질 나쁜 재료와는 차원이 달랐다.
어떤 수를 써서 이렇게 고급스러운 밀을 키웠는지 모르지만, 갓 구운 빵은 입안에 고소한 풍미를 남기며 살살 녹았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레빈이나 브리엘과 함께 먹지 못한다는 사실이 미안해질 정도였다.
제온이 빵을 수프에 찍어 먹는 것을 본 진금호가 말했다.
“옥수수로 만든 수프라네. 어떤가?”
“맛있네요.”
“예전에는…… 대멸망 전에는 옥수수가 매우 흔한 식물이었지. 평원에 끝도 없이 펼쳐진 거대한 옥수수밭을 봤을 때의 충격이란 정말 말도 못 하게 대단했지.”
“거대한 옥수수밭이라? 상상이 안 가네요.”
“그렇겠지. 직접 보지 못한 사람에겐 와 닿지 않을 거야. 나는 미국에서 처음 그 광경을 봤었네.”
“미국이라면…….”
“대멸망 이전 지구를 지배하던 초강대국이었지. 이젠 멸망했다고 들었지만…….”
“완전히 멸망한 것은 아닙니다. 네오 서울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거대 콜로니 몇 개를 건설해 명맥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그런가?”
제온의 말에 진금호가 눈을 빛냈다.
현재 네오 서울에서 미국까지 가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제온밖에 없었다.
모래술사인 제온이기에 가능한 일이지, 다른 각성자들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네오 서울을 벗어나면 통신도 잘 안 된다.
쉘터를 만들어도 금방 마수들의 공격을 받기에 원정을 떠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사막의 모래와 마수들은 결코 인간이 편하게 오가는 것을 두고 보지 않는다.
끝없이 괴롭히고, 공격해 결국은 쓰러지게 만든다.
설령 어떻게 미국까지 도착하더라도 돌아오기는 더더욱 쉽지 않았다.
괜히 콜로니를 오가는 카라반이 귀한 대접을 받는 게 아니다.
각 콜로니 간의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유일한 소통 창구가 바로 카라반이었다. 하지만 어떤 카라반도 감히 미국에 있는 콜로니까지 진출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미국까지 원정을 떠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다.
네오 서울의 공략대 역시 미국 진출은 꿈도 꾸지 못할 정도였다.
당연히 미국의 상황이 어떤지 알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굳이 지구 반대편에 있는 미국에 신경 쓸 이유도 없었다.
네오 서울을 신경 쓰는 것만으로도 벅차기 때문이다.
“미국의 콜로니 상황은 어떤가?”
“거기도 딱히 좋지 않습니다.”
“많이 안 좋은가?”
“근처에 대형 마수들이 많이 자리 잡고 있어서 좋지 않습니다.”
“대형마수라면?”
“최소 A급 마수들이 곳곳에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당연히 S급 마수도 있겠군.”
“네!”
“음!”
진금호가 침음성을 흘렸다.
콜로니 근처에 S급 마수가 있으면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
S급 마수는 A급과 차원이 다른 힘을 가지고 있다.
예전 표현으로 따지면 국가급 전력을 가진 놈이 바로 S급 마수였다.
말 그대로 국가급 전력이 콜로니를 노리는 셈이다.
한 마리만 둥지를 틀어도 부담스러울 판인데, 콜로니 근처에 많이 서식하고 있다면 그만큼 행동반경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외부 진출은 꿈도 못 꾸겠군.”
“네! 각 콜로니끼리 완벽하게 고립되어 있습니다.”
“역시 그렇군.”
진금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생각이 깊어졌는지, 진금호는 그 후로 한참이나 움직임이 없었다.
이미 식사는 끝난 상태였다.
제온은 이제부터 진금호가 자신을 초대한 용건을 꺼낼 거라고 생각했다.
“전에 내가 했던 말 기억하는가?”
“어떤?”
“모비딕!”
제온에게 대비할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듯이 진금호는 바로 치고 들어왔다.
이미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에 제온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네! 기억합니다.”
“그럼 말하기 편하겠군. 모비딕이 발견되었네.”
“어디서 말입니까?”
“그건 자네가 더 잘 알겠지. 그렇지 않은가?”
진금호가 제온을 빤히 바라봤다.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눈빛이었다.
여기서 발뺌을 해 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제온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내가 어떻게 알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네. 모비딕을 찾을 방법을 자네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진금호의 눈은 기묘하게 빛나고 있었다.
진실을 꿰뚫어 보는 것처럼 강렬하게 빛나는 그의 눈빛은 제온마저 부담스럽게 만들었다.
“맞습니다. 모비딕을 찾을 방법이 있습니다.”
“그럼 됐군. 모비딕의 심장을 내게 가져오게.”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알고 있네, 그렇게 쉬운 일이었으면 내가 굳이 자네에게 부탁할 이유가 없지. 어려운 일이니까 부탁한 거야.”
“모비딕의 심장이 왜 필요한 겁니까?”
“아까 자네가 그랬지? 각 콜로니가 완벽하게 고립되어 있다고. 모비딕의 심장이 있으면 그런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네.”
“혹시 콜로니 간에 연락할 방법이 생긴다는 겁니까?”
“그냥 그 정도만 알고 있으면 되네. 자세한 것은 모비딕의 심장을 구해 오면 절로 알게 될 걸세.”
“…….”
“네오 서울뿐 아니라 지구에 살아남은 모든 인간들을 위한 일일세.”
진금호가 내세운 명분이 제온을 압박했다.
네오 서울과 인류를 위한 일이라는 명분을 거부하는 순간 네오 서울과 인류의 적이 된다.
제온은 빠져나갈 틈 없이 자신을 옥죄어 오는 진금호를 보며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명분, 논리로 상대를 압박해 오면 대응하기가 곤란해진다.
아무리 힘이 우선인 세상이라도 사람들이 모여 살면 명분이 중요해진다.
명분은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었다.
진금호는 그런 명분을 어떻게 사용해야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지 뼛속 깊이 터득하고 있었다.
이미 진금호가 어떻게 제온만이 알고 있는 정보를 얻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상황이 됐다.
제온이 옅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약속은 지킬 겁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나는 처음부터 자네를 믿고 있었네. 다만…….”
“또 뭡니까?”
“자네 혼자 고생시킬 수는 없으니 조금 도와주겠네. 믿을 만한 전력을 붙여 주지.”
“괜찮습니다.”
“내가 미안해서 그러니 거부하지 말게.”
진금호가 손을 뻗어 제온의 손을 잡았다.
두툼하면서도 꺼칠한 감촉이 느껴졌다.
제온이 슬그머니 손을 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다수를 데리고 갈 수는 없습니다.”
“딱 두 명만 붙여 주지.”
“두 명?”
“내가 장담하건대 큰 도움이 될 걸세.”
진금호의 의미심장한 미소에 제온의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
두 사람은 한참이나 서로를 바라봤다.
***
제온이 떠난 후 서태란이 시장실로 들어왔다.
서태란이 테이블 위에 놓인 음식을 치우며 말했다.
“이야기는 잘되셨습니까?”
“잘되고 말 게 뭐 있을까? 애초 그렇게 정해진 건데.”
“제온은…… 어떻게 정보를 알아냈는지 묻지 않았습니까?”
“후후! 이미 짐작하고 있는데, 굳이 물어볼 이유가 있을까?”
“이미 알고 있다는 말입니까?”
서태란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아슬란 본인도 모르게 빼낸 정보인데 제온이 이미 알고 있다니 놀라운 것이다.
“똑똑한 녀석이야. 어지간한 녀석들을 붙여 놓아 봤자 저놈 손바닥에서 놀아날걸.”
“그래서 이정호 님을 보내는 겁니까?”
“후후! 눈이 보이지 않으니 현혹될 일이 없고, 심지가 굳으니 흔들릴 일도 없지. 그라면 분명 모비딕의 심장을 가져올 수 있을 거야.”
“네!”
“그나저나 네가 수고했다. 덕분에 늦지 않게 대처할 수 있었어.”
“아닙니다. 당연히 제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모두가 너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알아서 하고, 좋은 성과를 내면 굳이 내가 나설 일도 없을 것을.”
“…….”
“그래서 네오 서울엔 내가 필요해.”
“시……장님!”
진금호가 창밖을 바라봤다.
뿌연 먼지가 가득한 누런 하늘이 시야에 들어왔다.
저 누런 하늘 위에도 마수는 날아다니고 있었다.
단지 보이지 않을 뿐이다.
현 지구의 주인은 바로 마수였다.
진금호가 주먹을 힘껏 움켜쥐며 중얼거렸다.
“오직 나만이 다시 인간을 지구의 주인으로 만들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