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65)
265화
제온은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오늘이 바로 강철 요새로 떠나기로 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를 감시하는 시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림자 부대가 완전히 철수했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서는 2팀 전원을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선을 넘는다.
진금호가 정한 선을 넘으면 필연적으로 전쟁이 벌어진다.
제온도 진금호도 그런 최악의 상황은 원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기에 제온도 아슬아슬한 선에서 멈췄다.
다행히 진금호는 그런 제온에게 어떤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지금 두 사람은 한시적인 동맹이나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 모두 모비딕을 찾아야 한다는 공통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제온은 아슬란과 두두얀이 머무는 숙소로 갔다.
마침 두 사람 역시 떠날 채비를 다 끝낸 상태였다.
제온이 들어오자 아슬란이 입을 열었다.
“제온 님! 알아냈습니다.”
“그 여자 말입니까?”
“네! 클레어라는 여자, 테이머더군요.”
“테이머?”
“제가 알아낸 바로는 B급 테이머였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 카지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더군요.”
“카지노라면?”
순간 제온의 뇌리에 어떤 여자가 떠올랐다.
언젠가 카지노에서 만났던 여자. 그녀에겐 여왕 귀신 잠자리의 호르몬 냄새가 몸에 배어 있었다. 그래서 테이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한동안 잊고 지냈는데, 아슬란이 여자가 테이머라고 말하자 그녀가 바로 떠올랐다.
아슬란이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알아낸 게 겨우 그것뿐입니다.”
“아닙니다. 그 정도 알아낸 것으로 충분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제온의 위로에 아슬란의 얼굴이 조금은 펴졌다.
두두얀이 아슬란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말했다.
“이 멍청아! 또 술 마시고 다녀라.”
“내가 또 술을 마시면 네 아들이다.”
“너 같은 아들 필요 없거든.”
“몰라! 아무튼 두 번 다시 술을 마시는 일은 없을 거야. 이제 내 인생에 더 이상 술은 없어.”
“그래 놓고 또 술 마시면 그땐 내 손으로 네 손모가지를 자를 거야.”
“얼마든지.”
아슬란의 호언장담에 두두얀이 사납게 노려봤다.
제온이 나서 그들을 환기했다.
“두 사람 모두 그만하고 약속 장소로 가죠. 그들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네! 제온 님.”
“알겠습니다.”
그들은 빈민가 외곽 공터로 향했다.
던전 공략대나 패스파인더 팀들이 네오 서울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모여 장비를 점검하는 곳이었다.
그곳에 두 사람이 제온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 남 일 녀.
펑퍼짐한 로브를 입은 남자는 바로 이정호였다. 그가 걸친 로브 사이로 검의 손잡이가 보였다.
이정호 곁에는 로브의 모자를 눌러쓴 여자가 있었다. 모자 때문에 얼굴을 알 수는 없었지만, 제온은 그녀를 단숨에 알아봤다,
‘역시 그녀였군.’
아직도 그녀의 몸에는 여왕 귀신 잠자리의 페르몬 냄새가 옅게 남아 있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클레어는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듯했다.
“어? 당신은…….”
클레어가 제온을 보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온이 클레어를 알아봤듯 그녀 역시 알아차린 것이다.
“오랜만입니다.”
“카지노? 맞죠?”
“네!”
“그럼 당신이 모래술사?”
“맞습니다.”
“와! 세상 좁네요. 설마 당신이 동행한다는 모래술사일 줄이야.”
클레어가 눌러썼던 모자를 뒤로 넘겼다, 그러자 풍성한 검은 머리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햇볕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에 검은 눈동자가 인상적인 미인.
클레어는 그렇게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냈다.
“저는 클레어예요.”
“알고 있습니다.”
“그럼 잘 부탁드릴게요. 모래술사님!”
클레어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이정호가 클레어를 보며 말했다.
“이미 아는 사이였던가?”
“아! 전에 임무를 끝내고 카지노에서 쉴 때 만난 적이 있어요.”
“그래?”
“설마 그때 잠깐 스쳐 지나갔던 남자가 그 유명한 모래술사일 줄은 몰랐지만요.”
“잘됐군. 꽤 오랜 여정이 될 텐데 아예 모르는 사람과 동행하는 것보단 편할 테니까.”
클레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정호의 시선이 제온의 뒤에 서 있는 두두얀과 아슬란을 향했다.
“그쪽이 강철 요새에서 왔다는 사람들이군. 그럼, 안내 잘 부탁하지.”
이정호는 강철 요새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어제 그림자 부대에게 일어났던 일을 이미 알고 있었다.
제온이 자신을 감시하던 그림자 부대 각성자들을 모조리 제압한 사건은 이정호에게 큰 충격을 안겨 줬다.
그림자 부대의 실체를 아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말 그대로 그림자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그림자 부대의 감시를 받지만, 그런 사실조차 모르고 살아간다.
이정호처럼 심안이 열리지 않는 이상 그들의 존재를 감지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제온은 너무 쉽게 그들의 존재를 알아내 습격했다. 그리고 완벽하게 제압했다.
만일 제압한 이들을 죽였다면 문제가 커졌겠지만, 숨은 붙여 놓았다. 일종의 경고를 한 셈이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반격이었다.
이에 가장 크게 놀란 이는 진금호의 비서인 서태란이었다.
최근 수년간 그녀가 이렇게 당황했던 적은 처음이었다.
그만큼 제온의 반격은 그녀의 예상을 벗어난 것이었다.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서태란의 얼굴을 보는 것도 꽤 재미있었다.
물론 그녀 딴에는 표정을 숨긴다고 했지만, 심안이 열린 이정호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결코 방심할 수 없는 자.’
그렇다고 두렵지는 않았다.
온 사막이 제온의 무기라고 하지만, 자신은 대인전에 특화된 각성자였다.
자신이 마음먹어 죽이지 못할 각성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진금호가 믿고 즐겨 사용하는 것이다.
자신의 임무는 바로 육지 고래의 심장을 무사히 네오 서울에 가져오는 것.
이를 위해 진금호가 특별히 아공간 목걸이를 내줬다.
차 한 대가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아공간이었다.
출발하기 전 클레어가 제온에게 물었다.
“그런데 정말 차는 안 타고 가실 건가요?”
“며칠 지나지 않아 망가질 겁니다. 고쳐 탈 수도 없으니 차라리 걸어가는 게 편해요.”
“하아! 고생문이 열렸군요.”
클레어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평생을 네오 서울에서 살아왔다. 임무 때문에 잠깐 네오 서울을 떠난 적이 몇 번 있었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 정도가 전부였다.
이렇게 오래 사막에서 보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두려웠다. 하지만 그녀와 달리 제온의 발걸음엔 망설임이 없었다.
“가죠!”
그의 뒤를 두두얀과 아슬란이 따라붙었다.
평생을 사막에서 살아온 사람들답게 그들은 거침없었다.
오히려 답답한 네오 서울을 떠나 즐겁다는 표정이었다.
‘역시 네오 서울보다는 강철 요새가 나아. 네오 서울은 너무 삭막해. 그런 곳에선 더 머물고 싶지 않아.’
예상치 못한 혹을 두 개나 달고 강철 요새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니 어쩔 수 없었다.
강철 요새엔 우르티안이 있으니 어떻게든 해결해 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후우웅!
사막에 발을 딛자마자 강력한 모래바람이 그들을 맞이했다.
빈민가에도 모래바람이 자주 불어오지만, 사막의 모래바람은 차원이 다르다.
위력이나 강도 면에서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온 세상이 누렇게 보였다.
두두얀과 아슬란은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고 로브를 꽉 동여맸다.
예상치 못한 모래바람에 잠시 당황했던 이정호와 클레어도 곧 두 사람을 따라 고개를 푹 숙이고 걸었다.
오직 제온만이 고개를 꼿꼿이 세운 채 걸었다.
“좋네!”
빈민가에서의 안온한 삶도 좋지만, 역시 이렇게 사막 위에 있을 때 살아 있음을 느낀다.
다른 사람들에겐 그저 고통만 주는 모래였지만, 그에겐 어미의 자궁과 같은 포근함을 느끼게 해 준다.
***
강철 요새로 가는 여정은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이게 무슨?”
이정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일행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엄청난 수의 마수 무리.
크르릉!
늑대를 닮았지만, 그보다 몇 배는 큰 덩치.
내뱉는 숨결에 지독한 열기가 담겨 있었다.
클레어가 단번에 놈들의 정체를 파악했다.
“화염…… 늑대 무리네요.”
“나도 놈들이 화염 늑대라는 것 정도는 안다. 내가 궁금한 것은 화염 늑대가 왜 이곳에 있느냐는 것이다.”
“그거야…….”
“이곳은 네오 서울에서도 오십 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아!”
클레어는 그제야 이정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오십 킬로미터라면 네오 서울의 항마력 영향권이다.
어지간한 마수는 감히 접근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화염 늑대 무리가 제법 강한 축에 속하지만, 네오 서울의 항마력을 이길 정도는 아니다.
적어도 매머드 정도는 되어야 항마력을 견디고 어느 정도 접근할 수 있었다.
화염 늑대의 개체 등급은 D급.
하지만 무리를 짓는 놈들의 특성상 C급으로 분류된다.
제아무리 C급이라도 네오 서울 가까이 이렇게 접근한 것은 말이 안 됐다.
“설마 네오 서울의 항마력이 작동하지 않는 걸까요?”
“그건 아닐 거다. 그저 조금 약해진 거겠지.”
이정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네오 서울의 항마력이 어디에서부터 나오는지 알고 있는 극소수의 한 명이었다.
네오 서울 지하에 존재하는 거대한 화이트 드래곤.
바로 타뮬라스의 시체가 항마력의 근원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타뮬라스의 시체는 조금씩 해체되고 있었다.
힘들게 뜯어낸 부속물은 네오 서울의 발전을 위한 밑거름이 된다. 하지만 타뮬라스의 사체를 해체할수록 네오 서울의 항마력은 약해진다.
타뮬라스의 본체에서 떨어진 부속물은 항마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이정호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예상한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항마력이 약해지고 있어. 화염 늑대가 이곳까지 접근할 수 있다면 대형 마수들은 더 가까이 접근할 거야.’
대형 마수일수록, 또 고등급 마수일수록 더 강한 힘을 가진다.
어지간한 항마력으로는 놈들의 접근을 막을 수 없다.
다행히 주기적으로 이 근처를 토벌해 네오 서울 일대엔 대형 마수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러란 법은 없었다.
‘시간과의 싸움이군. 최대한 빨리 천벌을 완성시켜야 해. 그러자면 반드시 육지 고래의 심장이 필요해.’
반투명한 그의 동공에 강한 빛이 어렸다.
“헙!”
숨 막히는 존재감에 클레어가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테이머인 그녀가 감당하기엔 버거운 살기였다.
그것은 두두얀과 아슬란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마치 전신이 칼로 난자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고 기겁했다.
오직 제온만이 이정호의 영역 안에서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제온이 말했다.
“굳이 그들을 상대하지 않아도 됩니다. 피해 가면 별문제 없을 겁니다.”
“내버려두면 무리를 불려서 언젠가 네오 서울을 위협하겠지. 화근은 작을 때 제거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야.”
스릉!
그의 허리춤에 꽂혀 있던 검이 뽑혀 나왔다.
이정호의 손에 검이 들리는 그 순간 그의 기세가 변했다.
숨이 막힐 듯한 예기가 흘러나온다.
인간이 아닌 검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것도 한없이 날카롭게 벼려진 검.
숨결마저 베어 버릴 것 같은 날카로운 예기가 화염 늑대 무리를 향했다.
맹인 검객의 살기에 화염 늑대 무리가 반응해 하울링을 터트렸다.
크롸라!
크와아앙!
화염 늑대들이 불길을 뿜으며 미친 듯이 달려왔다.
이정호가 홀로 화염 늑대 대군에게 걸어갔다.
스가악!
그의 검이 허공을 긋는 순간 십여 마리의 화염 늑대가 두 동강이 나서 바닥을 굴렀다.
이정호가 다시 검을 긋자, 반경 수 미터 안에 있던 화염 늑대들이 양단되어 우수수 쓰러졌다.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맹인 검객의 자비 없는 칼부림은 화염 늑대 무리들을 궤멸시키고 있었다.
이정호의 위용에 두두얀과 아슬란이 진저리를 쳤다.
“미친!”
“끔찍할 정도로 강하구나.”
제온도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이정호의 학살을 지켜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