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66)
266화
이십 분.
수백 마리 화염 늑대 무리가 전멸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이정호가 검을 크게 털어 피를 털어 냈다.
화염 늑대의 피가 흩뿌려지며 검신이 원래의 매끈한 모습을 되찾았다.
화염 늑대 수백 마리를 베었음에도 이정호의 검은 멀쩡했다.
마수의 뼈와 근육은 인간과 비교도 할 수 없이 단단하다. C등급 마수 정도 되면 강철보다 강한 내구도를 가지고 있다고 봐야 했다. 그런 마수 수백 마리를 베었음에도 멀쩡한 검이 평범한 무기일 리 없었다.
‘아이템이군.’
그것도 고등급 던전에서 구한 아이템이 분명했다.
제온은 최소 서너 가지의 옵션이 덕지덕지 붙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스릉!
납검하는 이정호의 얼굴엔 땀 한 방울 맺히지 않았다.
이 정도 마수 무리를 처리하는 건 이정호에게 식전 운동도 되지 않았다.
“와! 정말 사기라니까.”
클레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정호와 몇 번 임무를 같이해 봤기에 그의 강함은 알고 있었지만, 볼 때마다 소름이 끼쳤다.
시청엔 이정호와 같은 강자가 최소 여섯 명이 더 존재했다.
거기에 숨겨진 전력이 얼마나 더 있는지 몰랐다.
시청의 저력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절대 알지 못한다.
그들의 힘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감히 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지금 클레어처럼 말이다.
클레어는 제온을 바라봤다.
제온의 얼굴에도 자신처럼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조금은 담겨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예상과 달리 이정호를 바라보는 제온의 얼굴엔 그 어떤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두려운 마음을 애써 숨기는 게 아닌가 싶어서 주의 깊게 관찰했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정말 이 남자는 이정호가 무섭지 않은 건가? 그 정도로 자신의 능력에 자신이 있는 건가?’
클레어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때 이정호가 제온에게 말했다.
“나 때문에 시간이 허비되어서 미안하군. 이제 떠나지.”
“네! 수고하셨습니다.”
제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겼다.
두두얀과 아슬란이 급히 제온의 곁으로 따라붙었다.
이정호에게서 조금이라도 멀어지기 위해서였다.
그만큼 이정호가 보여 준 무력은 충격적이었다.
‘심지어 어떤 스킬도 사용하지 않았어.’
스킬을 사용하지 않고도 저렇게 마수들을 무참히 베어 넘길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리고 무서웠다.
아슬란이 중얼거렸다.
‘내가 두 번 다시 네오 서울에 들어오면 개새끼, 아니 마수 새끼다. 이쪽으론 오줌도 싸지 말아야지.’
왠지 제온의 곁에서 떨어지면 이정호에게 베일 것 같은 느낌에 더욱 바싹 붙게 됐다.
제온은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히 걸음을 옮겼다.
이정호가 쓰러트린 화염 늑대 사체들을 지나쳐 한참을 걸었다.
이정표 하나 없는 사막이었다.
어딜 봐도 비슷한 풍경이 계속되고 있었다.
거대한 모래 산과 언덕이 파도처럼 이어져 있었다.
보통 사람은 이런 환경에 노출되는 순간 패닉 상태에 빠져 방향 감각을 잃게 된다.
이정호와 클레어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당연히 두려운 감정 따윈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막막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정호가 품 속에서 나침반을 꺼냈다.
나침반의 바늘이 미친 듯이 회전하고 있었다.
네오 서울 가까이서는 잘 작동하지만, 멀리 떨어지면 이렇게 무용지물이 된다.
‘역시 먼 사막으로 나오면 내비게이터가 필수겠군.’
이정호가 코끝을 찡그렸다.
내비게이터의 존재는 극히 귀하다.
먼 거리에서도 정확하게 방향을 잡고, 마수들의 서식지를 피할 수 있는 내비게이터는 더더욱 귀하다.
내비게이터의 부재는 네오 서울이 더 이상 영역을 확장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래서 제온이란 존재가 더 부각됐다.
전문 내비게이터보다 뛰어난 길잡이가 바로 제온이었다.
심지어 그는 내비게이터보다 마수를 더 잘 감지한다.
“일 킬로미터 밖에 마수가 한 마리 있습니다.”
“위험한 마수인가?”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걸 어떻게 알지?”
“그냥 압니다.”
“그렇군.”
어떻게 보면 성의 없는 대답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정호는 그러려니 넘어갔다.
그 자신도 고위 각성자였다.
고위 각성자에겐 그들만의 감각이 있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감각이.
보통 사람은 평생을 가도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제온의 말처럼 일 킬로미터쯤 가자, 거대한 마수가 보였다.
체고가 족히 오 미터는 될 것 같은 거대한 소였다.
머리 양쪽으로 난 나선형의 뿔은 어지간한 마수의 몸을 그대로 꿰뚫을 것처럼 날카로워 보였다.
근육질의 동체는 두꺼운 비늘로 덮여 있었다.
두두얀이 마수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썬더 버펄로네.”
“저 녀석을 여기서 보네.”
아슬란이 썬더 버펄로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이정호와 클레어가 그들 곁으로 다가왔다.
“특별한 마수인가?”
“희귀한 마수입니다. 사막의 방랑자라고 불리는 녀석이죠.”
제온이 대답했다.
그 역시 아는 마수였기 때문이다.
“뭐가 그렇게 특별한 거지?”
“희귀하게 초식성이거든요.”
“초식? 사막에 먹을 풀이 있나? 저 거대한 덩치를 유지하려면 보통 양으로는 안 될 텐데.”
“선인장이 놈의 주식입니다. 선인장을 찾아서 온 사막을 유랑하죠. 그래서 사막의 방랑자라고 부릅니다.”
“음! 역시 사막엔 내가 모르는 것투성이군.”
“잘됐네요.”
“뭐가?”
제온이 대답 대신 클레어를 바라봤다.
“테이머죠?”
“그걸 어떻게?”
클레어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가 테이머라는 사실은 비밀이었기 때문이다.
제온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테이머라면 저놈을 쉽게 테이밍할 수 있을 겁니다. 저놈은 보이는 것과 달리 인간에게 적대적이지 않거든요.”
“그래요?”
놀란 것도 잠시, 클레어의 눈이 반짝였다.
테이머에게 저렇게 거대한 마수를 테이밍할 수 있는 기회가 흔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정호가 제온에게 물었다.
“굳이 저 마수를 테이밍할 이유가 있나? 시간도 없는데.”
“썬더 버펄로의 등은 무척 거대하고, 편하죠. 놈을 타고 가면 강철 요새로 가는 시간이 많이 단축될 겁니다.”
“음!”
제온이 클레어를 바라봤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해 볼게요.”
클레어가 썬더 버펄로에게 다가갔다.
인간이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썬더 버펄로가 고개를 들어 바라봤다.
커다란 두 눈이 진짜 소처럼 맑고 순해 보였다.
“안녕!”
클레어가 손을 흔들며 친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순간 그녀의 목에 걸린 목걸이가 빛났다.
목걸이의 이름은 레인보우 팬던트.
무려 S급 아이템이었다.
레인보우 팬던트는 그녀의 부족한 능력과 지배력을 순식간에 강화시켜 준다.
워낙 사기적인 아이템인지라 하루에 한 번만 쓸 수 있다.
그마저도 한 번 쓰고 나면 마나가 고갈되어 최소 이틀 정도는 탈진 상태에 이른다. 그 때문에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클레어 역시 그 사실을 알기에 어지간한 대상이 아니고서는 레인보우 팬던트의 힘을 빌리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그녀와 동행하는 이들의 저력을 확인했는지라 탈진해도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테이머라고 해서 단숨에 마수를 테이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이들은 강제로 굴복시켜 테이밍하기도 하지만, 클레어 스타일은 아니다.
물론 그녀도 때에 따라서는 강제력을 행사하지만, 평상시에는 교감을 나누는 것을 선호한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썬더 버펄로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너와 친구가 되고 싶어.”
푸륵!
썬더 버펄로가 두 귀를 펄럭이며 클레어를 지그시 응시했다. 마치 그녀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우리는 너를 헤치지 않아. 그저 너와 친구가 되길 바랄 뿐이야. 내 마음을 받아 주지 않겠니?”
마치 구애를 하듯 클레어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말했다. 그리고 썬더 버펄로는 그녀의 구애를 받아들였다.
“움머!”
적의라곤 한 줌도 담기지 않은 울음으로 화답한 것이다.
클레어가 썬더 버펄로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고마워! 허락해 줘서. 그럼 우리를 태워 주지 않겠니?”
털썩!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썬더 버펄로가 무릎을 꿇었다,
그 모습을 본 두두얀과 아슬란이 입을 떡 벌렸다.
“저 여자 뭐야? 마수를 저렇게 쉽게 테이밍한다고?”
“데보라 님도 불가능한 일이야.”
강철 요새에도 테이머는 있었다.
바로 우르티안의 아내인 데보라였다.
그녀는 C급 테이머였다.
또 종속의 목걸이라는 강력한 아이템을 소유하고 있었다.
덕분에 자신보다 상위 등급의 마수도 테이밍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조차 클레어처럼 저렇게 쉽게 마수를 테이밍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마수를 테이밍하려면 강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만큼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클레어는 너무 쉽게 썬더 버펄로를 테이밍했다.
“그녀의 능력이 데보라 님보다 월등하거나…….”
“아니면 종속의 목걸이보다 훨씬 강력한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해.”
“네오 서울엔 저런 괴물이 얼마나 많은 걸까? 이정호라는 자도 버거운데 테이머까지 상상 이상이네.”
“제기랄! 저런 괴물들에게 강철 요새를 개방해야 한다니. 내가 술을 처마시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아슬란이 고개를 숙이며 자학했다.
두두얀은 그를 위로하지 않았다.
위로가 소용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기도 하고, 굳이 위로해 주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아슬란이 저지른 잘못은 컸다.
클레어가 먼저 썬더 버펄로의 등에 올라타고, 나머지 사람들도 차례차례 올랐다.
썬더 버펄로의 등은 운동장을 연상시킬 만큼 넓었다.
다섯 명이 앉고서도 자리가 남을 정도였다.
클레어가 제온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면 되죠?”
“서쪽입니다.”
“들었지? 서쪽으로 가 주지 않을래?”
클레어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썬더 버펄로가 서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쿵! 쿵!
썬더 버펄로가 걸을 때마다 둔중한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클레어가 썬더 버펄로의 등에 누우며 이정호에게 말했다.
“별도의 명령을 내리지 않는 이상 서쪽으로 쭉 갈 거예요. 그러니까 저는 누워서 조금만 쉴게요.”
“수고했다. 저녁때까지 푹 쉬도록.”
“네!”
클레어가 눈을 감았다.
불과 몇 분 만에 얼굴이 핼쑥하게 변했다.
제아무리 레인보우 팬던트의 도움을 받아 썬더 버펄로를 테이밍했다지만, 기본적으로 그녀의 힘을 바닥까지 박박 긁어모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덕분에 마나와 체력이 모두 소진됐다.
클레어는 순식간에 깊은 잠에 빠졌다.
이정호는 그런 클레어를 초점 없는 눈동자로 바라봤다.
워낙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 게 익숙했기에 그의 얼굴과 눈빛만 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쿵! 쿵!
썬더 버펄로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둔중한 소리와 함께 모래가 흩날렸다.
다섯 명이나 태웠음에도 썬더 버펄로는 힘든 기색 하나 없이 묵묵히 걸었다.
따로 먹이나 식수를 줄 필요도 없었다.
알아서 선인장을 찾아 배고픔과 갈증을 해결했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이정호가 탄식을 터트렸을 정도였다.
“마수를 타고 다니는 게 이렇게 편할 줄은 몰랐군. 이럴 줄 알았으면 종종 사막에 나와 볼 걸 그랬어.”
“모두가 그런 호사를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겠지. 누구나 가능한 일이었다면 인간의 영역이 겨우 이 정도일 리 없지. 어떻게 생각하나? 모래술사.”
“그렇게 깊은 생각 따윈 하지 않습니다.”
“강자는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 세상에 끼치는 영향력이 큰 만큼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강자의 도리다.”
“뭐, 그럴 수도 있겠죠.”
“제온!”
“저도 나름 충분히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그러니 잔소리는 일 절만 하시죠.”
제온의 가벼운 말대꾸에 이정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만일 상대가 제온이 아닌 다른 이였다면 단숨에 베어 버렸을 것이다.
아직 그에겐 제온이 필요했다.
이 빌어먹을 사막에서 무사히 모비딕의 심장을 가져오려면 반드시 제온의 길 안내를 받아야 했다.
이정호가 검집을 힘껏 움켜잡았다.
필사적으로 인내할 때 나오는 습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