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67)
267화
썬더 버펄로를 테이밍한 덕분에 강철 요새로 가는 여정이 편해졌다.
사막을 오가다 보면 마수를 흔하게 만난다.
사막의 모래알만큼이나 마수가 많이 서식하는 게 아닌가 싶은 정도다.
이정호가 제아무리 A급 각성자라고 하지만, 가진 힘에는 한계가 있다.
이정호의 능력은 대인전에 특화되어 있었다.
일 대 다의 대결보다는 일대일의 싸움에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화염 늑대 무리를 쉽게 학살할 수 있었던 것은 놈들이 겨우 C급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무리를 지은 B급 이상 마수는 그 역시 상대하기 버겁다.
이른바 상성이 맞지 않는 것이다.
만일 그 혼자 사막을 횡단했으면 수많은 마수를 상대하느라 벌써 지치거나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썬더 버펄로 등에 올라타니 직접 마수를 상대할 일이 거의 없었다.
어지간한 소형종 마수는 썬더 버펄로의 모습만 보고도 피해 갔기 때문이다.
강철보다 단단한 비늘은 이빨이 들어가지 않는다.
괜히 공격해 봐야 자신의 이만 상하기에 아예 마수들이 공격하길 포기하는 것이다.
덕분에 제온 일행은 굳이 마수를 상대할 필요 없이 편하게 강철 요새로 향할 수 있었다.
오죽 편했으면 경계심이 많은 두두얀마저 썬더 버펄로의 등에 누워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좋네! 일상이 매일 오늘 같으면 얼마나 좋아.”
“그러게.”
아슬란이 그녀의 의견에 동의했다.
비록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강철 요새로 향하는 요 며칠이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한가한 시간이었다.
그때 제온이 말했다.
“곧 해가 질 겁니다. 오늘은 저기서 쉬죠.”
그가 가리킨 곳은 커다란 모래 언덕 아래였다.
마치 화산 분화구처럼 움푹 꺼져 있어 바람을 막아 주기 좋은 지형이었다.
“그렇게 하자.”
이정호가 제온의 의견에 동의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제온의 의견을 반대한 적이 없었다.
사막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게 제온이니만큼 믿고 맡긴다는 의미였다.
제온이 가리킨 곳에 썬더 버펄로가 멈춰 섰다.
일행은 모두 썬더 버펄로의 등에서 내려와 머물 준비를 했다.
식사 준비는 아슬란의 몫이었다.
빈민가에 있는 동안 부지런히 식재료를 구해 커다란 배낭을 가득 채웠다.
두두얀이 땀을 뻘뻘 흘리며 식사 준비하는 아슬란을 보고 중얼거렸다.
“개똥도 약에 쓸데가 있다더니.”
두두얀은 굳이 아슬란을 도와주지 않았다.
그녀는 요리에 재능도 없었고, 음식을 가리지도 않았다.
다크 엘프인 그녀에게 요리는 움직일 에너지를 공급하는 원천에 불과했다.
먹고 힘을 낼 수 있으면 그만이지, 골치 아프게 맛을 따지는 법이 절대 없다. 그러니 요리 자체에 흥미가 없는 것이 당연했다.
결국 이래저래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아슬란의 몫이었고, 그는 훌륭히 자신의 몫을 해냈다.
“다 됐습니다. 모두 식사하시죠.”
음식이라고 해 봐야 커다란 솥에 잡다한 재료를 집어넣고 끓인 스튜였다. 그래도 꾸덕꾸덕하게 말린 고기를 많이 집어넣어 풍미가 제법 느껴졌다.
일행은 그렇게 스튜로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한 후 각자 잠자리에 들었다.
사막에서 자는 것에 익숙한 두두얀과 아슬란은 머리를 바닥에 대자마자 곯아떨어졌다.
제온도 모래 아래 간이 쉘터를 만들어 잠을 청했다.
그 모습을 본 클레어가 투덜거렸다.
“정말 탐나는 능력이네. 누구는 모래바람 맞으며 자는데, 누구는 모래 속에서 편하게 잠을 자고…….”
“투덜거릴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잠을 자 두는 게 좋을 거다.”
“당신은 탐나지도 않나요?”
“내 능력을 갈고닦는 것만 해도 시간이 부족한데, 굳이 남의 능력을 탐낼 이유가 없지.”
“하여간…….”
클레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심안을 얻기 위해 스스로 눈을 멀게 한 남자였다. 그런 남자에게 다른 이들의 능력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클레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심안으로 보는 세상은 어떤가요? 눈으로 보는 것만큼 선명한가요?”
“눈으로 보는 것과 똑같다면 굳이 장님이 될 이유가 없지.”
“그럼 다른가요?”
“다르다.”
“어떻게요?”
“…….”
“앗! 죄송해요. 남의 비밀을 함부로 물어서…….”
“비밀이어서가 아니다. 설명할 수가 없어서 대답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심안으로 보는 세상은 마치 투명한 유리 같았다.
금방이라도 깨질 것처럼 위태위태하게 지탱되고 있는 불완전한 세계.
어쩌면 그가 보고 있는 광경이 세계의 본모습일지도 몰랐다.
그 속에서 인간은…….
이정호가 고개를 저어 쓸데없는 상념을 지웠다.
클레어는 아무 말 없는 이정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하늘을 바라봤다.
어느새 하늘엔 짙은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다.
별빛조차 보이지 않는 시커먼 하늘.
클레어의 어깨가 절로 움츠러들었다.
“후우!”
***
다음 날 일행은 다시 썬더 버펄로를 타고 강철 요새로 향했다.
썬더 버펄로의 등 위로 내리쬐는 뜨거운 태양에 클레어가 제일 먼저 지쳤다.
“하아! 진짜 차가운 물 틀어놓고 실컷 샤워하고 싶다.”
“조금만 참아라. 강철 요새에 도착하면 마음껏 씻을 수 있으니까.”
“정말? 정말 찬물을 마음껏 쓸 수 있어?”
두두얀의 말에 클레어가 두 눈을 크게 떴다.
놀란 것은 이정호도 마찬가지였다.
“콜로니에 물이 그렇게 풍족하지 않을 텐데 어떻게 마음껏 샤워한다는 거지?”
“다른 콜로니는 어떤지 모르지만, 우리 요새는 물이 조금 여유 있는 편이에요. 제온 님 덕분에요.”
“그게 무슨 말인가?”
“그냥 그렇게만 알아 두세요.”
그 말을 끝으로 두두얀이 입을 굳게 다물었다.
강철 요새 지하에 호수가 있다는 것은 비밀이었다.
물이 풍족한 것을 속일 수 없으니 말했지만, 호수가 있다는 것은 절대 숨겨야 했다.
지하 호수가 알려지면 스캐빈저뿐 아니라 네오 서울에서도 욕심낼 것이 분명했다.
이정호가 나름 납득했다.
“지하수를 끌어 올리는 데 성공한 모양이군.”
대부분의 콜로니가 그렇게 물을 확보한다.
네오 서울도 그렇게 이천만 명이 마실 물을 얻으니 전혀 이상한 게 아니었다.
강철 요새에 들어가면 샤워를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클레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정호가 제온에게 물었다.
“물도 탐지할 수 있는 건가?”
“지하 깊은 곳에 있는 건 불가능해요.”
“지표 가까운 곳의 지하수는 탐지 가능하단 이야기군.”
“지하수를 탐지하는 게 아니라 모래가 젖은 것을 감지하는 거지만요.”
“그게 그거지. 아무튼 유용한 능력이군.”
처음으로 제온의 능력이 부러워졌다.
저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사막에서 물을 마시지 못해 죽을 일은 없을 테니까.
죽이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자신과 달리 제온의 능력은 여러 사람에게 도움이 됐다.
‘왜 시장님은 제온을 포섭하지 않는 거지? 여러모로 유용하게 쓰일 자인데…….’
문득 진금호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자신이 본질을 보는 심안을 가지고 있다면, 진금호는 세상의 이치를 꿰뚫어 보는 천안의 소유자였다.
그가 심안이라는 스킬을 얻은 것도 진금호의 조언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진금호가 아니었다면 절대 심안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진금호는 자신과 네오 서울에 도움이 되는 자라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포섭했다. 그가 탐나는 능력을 가진 자를 포섭하지 않는 것은 딱 한 가지 경우뿐이었다.
‘설마 시장님은 제온이 네오 서울에 해가 된다고 본 건가? 그렇다면 포섭하지 않은 것도 이해가 돼.’
보이는 능력이 전부가 아니다.
같은 능력이라도 어떤 자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바뀐다.
결국 능력이 아니라 제온이라는 인간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인간성이나 능력은 차치하고, 제온이라는 인간 자체가 진금호의 계획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진금호의 조치가 이해됐다.
‘더 이상은 생각하지 말자. 임무만 생각하자. 제온이야 어떻든 나는 모비딕의 심장만 구해 가면 된다.’
그때였다.
“잠깐! 이대로 가면 이 킬로미터 앞에 마수 무리가 나올 거야. 썬더 버펄로를 오른쪽으로 몰아. 크게 돌아갈 거야.”
“네!”
클레어가 바로 썬더 버펄로에게 제온이 가리킨 방향으로 갈 것을 부탁했다.
썬더 버펄로는 그녀의 명령대로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이정호와 클레어는 제온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제온이 몇 번이나 자신의 능력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제온이 말한 방향으로 가면 마수가 나오지 않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혹시나 해서 기감이라는 스킬을 쓰니 저 멀리 무수한 생명 반응이 느껴졌다. 제온의 말처럼 마수들이 존재하는 것이 분명했다.
‘여지없군.’
이정호가 혀를 찼다.
그렇게 제온이 마수들을 감지해 준 덕분에 일행은 강철 요새가 보이는 모래 언덕 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모래 언덕에 올라서자, 저 멀리 사암으로 이뤄진 거대한 산이 보였다.
붉은 사암산의 위용에 클레어가 침음성을 흘렸다.
“으음!”
설마 사막 한가운데 이렇게 거대한 붉은 산이 존재할 줄은 몰랐다.
두두얀이 놀라는 클레어에게 말했다.
“저곳이 바로 우리의 터전인 강철 요새야.”
“강철…… 요새.”
“그래! 그리고 저게 아르켈론이야.”
그녀의 손가락이 붉은 사암산 옆쪽의 거대한 동산을 가리켰다.
“어? 맙소사!”
“으음!”
클레어는 물론이고, 어지간한 일에는 동요하는 법이 없는 이정호조차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이 단순히 모래산이라고 생각했던 동산이 사실은 거대한 거북이의 등껍질이었기 때문이다.
조그만 마을 하나가 송두리째 들어갈 정도로 거대한 등껍질이었다.
실제로 저 안에 마을이 존재한다는 것을 제온은 알고 있었다.
“이동 요새 아르켈론. 이렇게 다시 보는구나.”
제온의 말을 들은 클레어가 물었다.
“저걸 이동 요새라고 부르나요? 맙소사! 저걸 어떻게 길들인 거죠? 저렇게 큰 아이는 처음 봐요.”
마치 첫사랑을 만난 것처럼 그녀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르켈론을 본 순간 사랑에 빠져 버리고 만 것이다.
“어서 저 아이를 보고 싶어요.”
클레어는 누가 말릴 사이도 없이 썬더 버펄로의 등에서 내려 아르켈론에게 뛰어갔다.
제온은 썬더 버펄로를 몰아 아르켈론으로 가려 했다. 하지만 겁먹은 썬더 버펄로가 움직이는 것을 거부했다.
C급 마수인 썬더 버펄로조차 거대한 아르켈론의 위용에 겁을 집어먹은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제온과 다른 사람들도 썬더 버펄로 등에서 내려 아르켈론에게 걸어갔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갈수록 아르켈론의 엄청난 위용에 사람들은 압도당했다.
제온도 오랜만에 보는 아르켈론의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새 더 큰 것 같구나.”
불과 팔 년 사이에 아르켈론은 더욱 커진 것 같았다.
아르켈론에게 무한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네오 서울보다 커질 것 같았다.
클레어는 이미 아르켈론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마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그녀가 제온을 바라봤다.
“이 아이, 죽어…… 가고 있어.”
그녀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흘러내렸다.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테이머인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이 거대한 거북이 조금씩 죽어 가고 있음을.
그녀의 감정을 느끼기라도 한 듯이 등껍질 속에 숨어 있던 아르켈론이 머리를 내밀었다.
사람보다 큰 눈망울에 혼탁한 기운이 가득했다.
제온이 아르켈론에게 말을 걸었다.
“오랜만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