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68)
268화
아르켈론이 거대한 두 눈을 끔뻑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쭉 빼서 제온에게 들이밀었다.
“아르켈론!”
제온이 손을 뻗어 아르켈론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그러자 아르켈론이 두 눈을 감고 제온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앗! 나, 나는…….”
곁에서 클레어가 요란스레 떠들었지만, 아르켈론은 그녀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아르켈론의 모든 감각은 오직 제온을 향해 열려 있었다.
제온이 말했다.
“정말 죽어 가고 있구나.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저주술사가 부리는 검은 말미잘에게 당했다.”
제온의 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자, 안경을 쓴 왜소한 노인과 성숙한 여자가 보였다.
노인의 얼굴엔 주름이 가득했고, 갈색 피부에 푸른 눈의 여자에게서는 사막에 홀로 핀 선인장처럼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졌다.
제온은 단숨에 그들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파빌사 영감님, 케일리 누나!”
“정말 제온이 맞구나. 그 꼬마가 이렇게 훌륭하게 자라다니.”
“오랜만이네, 제온!”
두 사람이 제온에게 다가왔다.
세월은 노인을 더 늙게 했고, 소년과 소녀를 어른으로 성장시켰다.
케일리가 제온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정말 많이 컸구나.”
“누나도요.”
“팔 년 만이지?”
“그 정도 된 것 같아요.”
“좋은 일로 봤어야 하는데, 이렇게 불쑥 불러서 미안해. 생각나는 게 너밖에 없어서…….”
“저주술사가 부리는 검은 말미잘에게 당했다구요?”
“응! 아르켈론이 우리를 지키려다가 대신 당했어. 그래서 죽어 가고 있어.”
케일리가 씁쓸한 표정으로 아르켈론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비겁한 저주술사 놈. 검은 말미잘같이 흉악한 마수로 기습하다니. 갑자기 공격받지만 않았어도 아르켈론이 이겼을 것이다.”
아르켈론의 등껍질은 엄청난 방호력을 지닌다.
어지간한 마수의 공격에는 흠집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단단했다.
“검은 말미잘이라는 마수는 처음 들어 봅니다.”
어지간한 마수는 거의 알고 있는 제온이었다. 그런데 검은 말미잘이라는 마수는 들어 본 적조차 없었다.
파빌사가 말했다.
“그럴 게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마수가 아니니까.”
“그럼…….”
“키메라다. 방법은 모르지만, 저주술사가 키메라를 부렸다.”
“저주술사가 어떻게 키메라를? 상성이 맞지 않잖습니까?”
제온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키메라는 일종의 합성 생명체였다.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이런 식으로 각 생명체의 생체 조직을 끌어모아 합성한다.
재료를 모았다고 해서 모두 합성에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힘으로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 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사실상 생명 창조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제온이 아는 이 중에서는 오직 드래곤 하이엘툰만이 키메라를 만들어 수족으로 부렸을 뿐이다.
인간 중에 키메라를 만드는 데 성공한 자는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저주술사가 키메라를 만들었다고 하니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저주술사는 말 그대로 저주를 뿌리는 데 특화된 각성자이지, 키메라를 만드는 것관 연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파빌사가 대답했다.
“방법은 나도 모른다. 직접 만든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누가 만들어 놓은 것을 우연히 얻은 것일 수도 있지.”
“검은 말미잘이 그렇게 무섭습니까?”
“놈의 본체는 끽해야 십 미터 정도다. 크기만 보면 아르켈론에 비할 수 없지.”
“그런데 아르켈론이 왜?”
“문제는 놈의 촉수다. 머리 위로 수천, 수만 개의 촉수가 나 있는데 그 길이가 무려 수백 미터 이상 늘어난다. 단숨에 상대를 휘감아 체액을 쫙 빨아 버리지. 그나마 아르켈론이니까 놈의 공격을 버틴 거지, 다른 사람이나 마수였다면 단숨에 놈에게 잡아먹혔을 것이다.”
“으음!”
“나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세상에 그런 키메라가 존재한다는 것을.”
파빌사가 검은 말미잘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공포스럽다는 듯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제온이 아르켈론의 머리를 바라봤다.
머리엔 검은 말미잘의 촉수에 당한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혹시 저주술사의 정체가 드래곤일까?’
제온이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 상대가 드래곤이라면 그야말로 최악의 사태였다. 하지만 제온은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했다.
제온이 팔 년 동안이나 사막을 떠돌아다녔어도 보지 못한 드래곤이었다.
무엇보다 드래곤의 크기는 백 미터를 훨씬 넘었다. 아르켈론보다 거대하다.
거대한 크기만큼이나 자아와 자존심도 커서 한낱 인간으로 폴리모프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차라리 키메라로 분신을 만들어서 부리면 부렸지 말이다.
‘키메라로 키메라를 부린다? 드래곤의 스타일이 아니야.’
드래곤이라고는 하이엘툰밖에 만나지 않았지만, 그들의 성향, 속성은 어느 정도 파악했다.
‘드래곤이 아니라면 던전에서 키메라와 관련된 아이템을 얻은 건가?’
차라리 이편이 훨씬 가능성이 컸다.
던전에서는 간혹 뜬금없는 아이템이 발굴되곤 했다.
개중에는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물건들도 다수 있었다.
던전에서 키메라와 아이템을 얻었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제온이 저주술사에 대해 한창 생각하고 있을 때 누군가 말을 걸었다.
“왔군!”
뒤를 돌아보자, 우르티안이 아내인 데보라와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설마 이렇게 빨리 다시 볼 줄은 몰랐군.”
“그러게 말입니다.”
강철 요새를 떠나 네오 서울로 돌아간 것이 엊그제 같았다. 그런데 다시 이곳에 서 있으니 기분이 좀 이상했다.
제온은 우르티안 등에게 같이 온 두 사람을 소개했다.
“이쪽은 네오 서울에서 온 이정호, 클레어입니다.”
“반갑소.”
“잘 부탁드리지.”
“안녕하세요.”
우르티안과 두 사람이 간단히 인사했다.
그때 파빌사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미안하다. 우연히 이곳에 도착해서 우루티안 님에게 네 이야기를 들었다. 너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면서…….”
“그랬군요.”
검은 말미잘에게 당한 아르켈론은 필사의 탈출을 감행했다.
몸을 휘감은 촉수를 힘으로 모조리 끊어 버리고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내디뎠다.
검은 말미잘은 촉수를 내뻗는 동안에는 움직일 수 없는지 그런 아르켈론을 추적해 오지 않았다.
덕분에 아르켈론은 검은 말미잘의 마수에서 벗어나 사막을 헤매다 우연히 이곳에 도착했다.
거대한 거북이 쿵쿵거리며 강철 요새에 다가오는 모습을 본 우르티안은 얼마나 놀랐는지 몰랐다.
그는 강철 요새의 전력을 동원해 아르켈론을 공격하려 했다. 그때 그를 말린 이가 데보라였다.
데보라는 테이머였기에 아르켈론이 공격 의사가 없다는 사실을 금방 눈치챘다.
아르켈론은 큰 상처를 입은 채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데보라는 그런 아르켈론의 요청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르켈론과 그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아슬란과 두두얀을 제온에게 보냈다.
사태의 전말을 들은 제온이 파빌사에게 물었다.
“아르켈론을 낫게 하기 위해선 모비딕을 찾아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맞네!”
“그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모비딕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이름밖에 모릅니다.”
“모비딕은 말 그대로 거대한 고래라네. 하늘과 땅속을 제 마음대로 유영하는 거대한 고래.”
“잠깐만요. 하늘을 난다구요?”
“그래! 하늘도 날 수 있네.”
파빌사의 말에 제온이 이정호를 바라봤다.
이정호가 고개를 저었다.
그도 모비딕이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안 것이다.
제온이 파빌사에게 물었다.
“그게 가능한 겁니까?”
“불가능할 것도 없지. 어차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아니지 않은가? 모비딕은 모래를 유영하기도 하고, 하늘을 헤엄치기도 하네. 어떻게 그런 생명체가 탄생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런데 놈을 찾을 방법이 있는 겁니까? 모래와 하늘 양쪽을 유영한다면 찾기 힘들 텐데. 그리고 굳이 놈을 찾으려는 이유가 뭡니까?”
“내 눈으로 똑똑히 봤네. 상처 입은 거대한 매머드를 치료하는 것을.”
파빌사의 눈엔 아직도 그날의 광경이 선했다.
백 미터 가까운 거대한 생명체가 하늘 높은 곳에서 신비로운 빛을 뿌리던 그 모습이 말이다.
지상에는 상처 입은 매머드가 있었다.
어떤 마수의 공격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매머드는 깊은 상처를 입은 채 죽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모비딕이 뿌린 빛을 받자, 매머드는 순식간에 상처를 회복했다.
사막 한가운데서 기적이 펼쳐진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어찌 가만히 있겠는가? 난 아르켈론을 몰아 모비딕을 쫓아갔네. 그리고 놈의 둥지를 발견했네.”
“둥지?”
“쉼터일 수도 있고. 이름이야 뭐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은가? 어쨌거나 모비딕이 휴식을 취하는 신비한 곳을 발견했네. 하늘을 부유하던 모비딕이 처음으로 땅에 내려와 휴식을 취하는 것을 내 눈으로 확인했지.”
“거기가 어딥니까?”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네. 나는 자네처럼 사막에서 길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이 없거든.”
“그럼 어떻게?”
“아르켈론이 있지 않은가? 아르켈론이 둥지로 가는 길을 대략이나마 기억하고 있다네.”
아르켈론은 공기 중의 냄새로 방향을 잡는다.
모비딕 둥지의 공기 냄새를 맡았으니, 대략이나마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다음부터는 제온의 도움을 받아야겠지만.
“하지만 지금 저 상태로는…….”
“마지막 여정을 위해 힘을 비축하고 있는 거라네. 기력을 쥐어짜면 어떻게든 모비딕의 둥지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그때까지 아르켈론이 어떻게든 버티길 기도할 수밖에 없겠군요.”
거대한 늙은 거북은 힘겹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 모습이 꼭 마지막 전투를 앞둔 백전노장처럼 보였다.
그때 아르켈론의 옆에 있던 클레어가 말했다.
“아르켈론이 쓰러지지 않게 제가 잘 돌볼게요.”
“혹시 테이밍한 마수를 치료하는 스킬을 가지고 있나요?”
“네! 비록 등급이 낮은 데다가 아르켈론이 워낙 거대해서 큰 도움은 되지 않겠지만, 중간중간 기력을 북돋아 주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 거예요.”
“다행이다.”
데보라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 역시 테이머였기에 아르켈론의 상태가 위태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파빌사는 어떻게든 모비딕의 둥지에 도착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그녀가 보기엔 쉽지 않았다.
지금 아르켈론은 꺼지기 직전의 촛불처럼 위태위태한 상태였다. 언제 훅 하고 꺼질지 몰랐다.
고등급 테이머에겐 테이밍한 마수를 치료할 수 있는 큐어 스킬이 있었다. 데보라도 지금보다 등급이 오르면 큐어 스킬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직접 테이밍한 마수가 아니라서 효과가 반감될 거예요.”
“그 정도로도 충분할 거예요. 워낙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어서…….”
데보라가 손을 뻗어 아르켈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늙고 큰 거북은 그녀의 따스한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클레어의 얼굴에 근심이 어렸다.
“아르켈론의 컨디션을 제가 관리해 줄 수 있다지만, 큰 충격이나 공격을 받으면 저도 어떻게 할 수 없어요.”
“그건 제온 님에게 맡기면 돼요.”
두 여자의 시선이 자연스레 제온을 향했다.
제온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데보라의 믿음은 굳건했다.
“이 사막에서 제온 님이 지키고자 마음먹어서 못 지킬 것은 없습니다.”
“그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가 보네요.”
“클레어 님도 알게 되실 거예요. 사막에서 제온 님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요.”
“저는…….”
“그러니까 제온 님이 아르켈론을 데리고 모비딕의 둥지에 도착할 수 있도록 클레어 님이 잘 도와주세요.”
데보라가 따스한 눈빛으로 클레어를 바라봤다.
클레어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다 잘될 거예요, 제온 님이 함께하니까.”
“부디 그러길 빌게요.”
“후후! 믿어요. 그럼 좋은 결과가 나올 거예요.”
데보라가 클레어의 등을 잠시 다독여 준 후 자리를 떴다.
클레어는 우두커니 서서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짝!
그때 우르티안이 손뼉을 쳐서 사람들의 정신을 일깨웠다.
“자,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모두 안으로 들어갑시다. 오늘 저녁은 내가 대접할 테니까.”
모두의 시선이 사암산 중턱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커다란 바구니가 내려오고 있었다.
이정호가 중얼거렸다.
“저곳이 강철 요새의 입구? 천혜의 지형에 콜로니를 만들었군.”
이곳이라면 수천 마리의 마수가 한꺼번에 몰려와도 충분히 방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좋군!”
“뭐가 좋다는 겁니까?”
곁에 있던 제온의 물음에 이정호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모든 것이…….”
“내버려두십시오”
“뭐를 말인가?”
“때가 되면 알아서 네오 서울과 교역을 할 겁니다. 그 전에 강제로 병합해서 문제를 키우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경고인가?”
“부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