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7)
27화
펑! 펑!
제온의 바로 앞에서 연신 폭발이 일어났다.
폭탄벌이 모래 벽에 부딪혀 터져 나가는 것이다.
벌써 수십 마리의 폭탄벌이 자폭했다. 하지만 제온과 고두원은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그들 주위에 일어나는 모래 장벽 덕분이었다.
폭탄벌은 모래 장벽을 뚫지 못하고 폭발했다.
때문에 두 사람은 어떤 상처도 입지 않았다.
“이……럴 수가!”
고두원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폭탄벌이 얼마나 무섭고, 골치 아픈 존재인지는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한두 마리는 무서울 게 없었다.
화살을 날려 죽이면 되니까.
문제는 검은 숲에 서식하는 폭탄벌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헤아릴 수조차 없다는 것이다.
고두원이 한 번에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화살은 기껏해야 수십 대 정도, 하지만 폭탄벌의 숫자는 족히 수백, 수천 배는 넘어섰다.
폭탄벌은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고 자폭했다.
그런 폭탄벌의 위용 앞에선 고두원의 능력 따윈 아무 소용이 없었다. 폭탄벌과 고두원은 그야말로 최악의 상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검은 숲 외곽만 맴돌 뿐 안으로 들어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데이오든 정도의 각성자가 아니면 감히 검은 숲 안으로 들어올 생각도 하지 말아야 했다.
제온과 함께 들어온 것도 물에 빠진 놈 지푸라기라도 잡자는 심정이었지,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보여 주는 제온의 위용은 그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펑펑! 퍼엉!
마치 소나기가 지붕을 두드리듯 폭탄벌은 모래 장벽을 연신 두들겼고, 장렬히 산화하고 있었다.
모래 장벽 너머로 폭발하는 폭탄벌이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폭탄벌이 자신과 최악의 상성이라면, 제온은 폭탄벌 최악의 상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 광오 한 데이오든이 데리고 다니는 이유가 있구나.’
그는 딸이 검은 숲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제온을 바라봤다.
동요가 어느 정도 가라앉자 제온의 로브가 낯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거 엘프들의 로브인가?”
“어떻게 알았습니까?”
“내 아내에게도 그와 비슷한 로브가 있었거든.”
“그렇군요.”
“그거 어디서 구했는가? 엘프들은 절대 자신들의 물건을 인간에게 내주지 않는데.”
“그게…….”
“데이오든이 또 어디서 엘프 마을을 학살한 모양이군.”
고두원은 단번에 진실을 파악했다.
제온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난감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고두원은 제온을 탓하지 않았다.
제온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데이오든이 왜 그렇게 이종족들을 증오하는지 아십니까?”
“후우!”
“지구가 이렇게 된 것이 이종족 때문이라는 것이 맞습니까?”
“그건…… 사실일세.”
고두원이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 괜히 변명이나 한답시고 시간을 헛되이 보내면 딸을 구하는 것이 늦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데이오든이 그렇게 증오하는 모양이군요.”
“이종족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닐세. 내 아내는 그들의 결정을 반대했었지. 그래서 낙오됐고, 나와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됐지.”
“이종족이 어떻게 했기에 지구가 이 지경이 된 겁니까?”
제온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주워듣기론 지구는 굉장히 큰 행성이라고 했다.
네오 서울은 지구의 크기에 비하면 조그만 점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렇게 거대한 행성이 어떻게 해야 한순간에 사막이 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거기까지는 나도 모르네. 내 아내도 이야기해 주기를 꺼렸거든. 자신들의 원죄라면서…….”
“음!”
“미안하네.”
“알겠습니다. 일단 하르를 구하는 데 집중하죠.”
“고맙네!”
그 순간에도 폭탄벌은 연신 모래 장벽에 부딪혀 자폭하고 있었다.
콰콰쾅!
검은 숲 중심으로 들어갈수록 폭발은 더 격렬해졌다. 그만큼 많은 폭탄벌이 자폭 공격해 오는 것이다.
굳건하던 모래 장벽이 거세게 흔들리고 있었다.
위이잉!
하늘이 온통 시꺼멨다.
폭탄벌이 하늘을 가득 뒤덮은 것이다.
“맙소사!”
고두원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가 막연히 추측했던 것보다 몇십 배는 더 많은 폭탄벌이었다.
이렇게 많은 폭탄벌이 검은 숲 안에 서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고두원이 제온에게 물었다.
“괜찮은가?”
“괜찮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놈들의 수를 줄여 보죠.”
“본격적?”
“네! 시험해 보고 싶은 스킬이 있거든요.”
제온이 슬쩍 미소 지었다.
폭탄벌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무기였다.
그런 무기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하지만 제온은 그런 폭탄벌에게 겁먹지 않았다.
“이쪽에도 그 정도의 무기는 충분하거든요.”
쿠우우!
제온이 지배력을 끌어 올리자 방원 수십 미터 안에 있는 모래들이 일제히 허공으로 떠올랐다.
폭탄벌의 숫자가 제아무리 많아도 온 세상을 뒤덮고 있는 모래보다 많을 수는 없었다.
물량 공세엔 물량 공세로 대응한다.
문제는 마나와 지배력뿐.
아직은 충분하다.
제온은 그동안 고민하고 그려 왔던 이미지를 검은 숲 안에 풀어 놓기 시작했다.
허공을 부유하던 모래들이 제온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그 모습이 흡사 거대한 원통 같았다.
모래로 이뤄진 거대한 원통.
머릿속의 이미지가 고스란히 현실에 구현되었다.
남은 것은 방아쇠를 당기는 것뿐.
“간다.”
제온은 마나를 원통에 주입했다.
가아아앙!
순간 거대한 모래 원통이 무서운 속도로 회전했다.
모래 원통은 주위의 모든 것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분쇄했다.
모래 원통에 빨려 들어온 폭탄벌이 무서운 속도로 갈려 나갔다.
콰과과광!
거대한 모래 원통에서 폭탄벌들이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힘든 장관이었다.
제온이 중얼거렸다.
“일종의 샌드 믹서기라고나 할까?”
그래서 스킬의 이름도 샌드 믹서였다.
장점은 모래를 고속으로 회전시켜 수많은 마수를 단번에 갈아 버릴 수 있다는 것.
단점은 마나가 많이 소모되어 그리 오래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직은 등급이 낮아 범위가 그리 넓지 않았지만, 나중에 등급이 올라가고 마나가 늘어나면 위력이 극대화될 것이다.
S급이 되면 모래폭풍을 부리는 것도 꿈만은 아닐 것이다.
고두원이 넋을 잃고 샌드 믹서를 바라봤다.
“미친!”
새까맣기만 하던 하늘이 조금씩 본모습을 찾고 있었다.
고야 일족을 그렇게 애먹인 폭탄벌들을 저렇게 쉽게 처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의 아내도 세상에 저런 스킬이 있다는 이야기는 해 준 적이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이 세상에 처음 출현하는 스킬과 권능이라는 의미였다.
벌써 폭탄벌 무리가 반수 이상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제온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쓰읍! 마나가 역시 달리는군.”
“마나가 부족하단 말인가?”
“아무래도 폭탄벌 숫자를 줄이는 것은 이쯤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서 하르를 찾아 데리고 나가지요.”
“자, 잠깐! 이걸 주겠네. 이거라면 자네의 마나 부족을 어느 정도 커버해 줄 거야.”
고두원이 품에서 꺼낸 것은 푸른빛이 감도는 목걸이였다.
보기만 해도 청량해지는 것이 보통 아티팩트가 아닌 것 같았다.
“뭡니까?”
“내 아내의 유품인 엘루라의 눈물이라네. 그녀의 고향에서 가져온 물건인데, 하루에 한 번 소비한 마나를 원래대로 회복시켜 주는 효능이 있네.”
순간 제온의 얼굴에 탐욕이 어렸다.
“빌려주는 겁니까? 주시는 겁니까?”
“주겠네. 단, 오늘 하루 마나가 허용하는 만큼 폭탄벌의 숫자를 줄여 주는 조건일세.”
“좋습니다.”
“부탁하네.”
고두원이 엘루라의 목걸이를 제온에게 건네줬다.
엘루라의 목걸이는 아내의 고향에서도 구하기 힘든 귀한 아티팩트였다. 하지만 고두원에겐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었다.
그의 스킬은 마나 소모가 그리 극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제온에겐 엄청난 보물이었다.
지금이야 어떻게든 마나를 관리하고 있지만, 스킬을 발전시킬수록 마나 소모가 엄청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런 보물을 가질 수 있다면 조금 무리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고두원에게도 남는 장사였다.
제온이 폭탄벌의 숫자를 줄여줄수록 검은 숲을 찾을 수 있는 확률이 커지기 때문이다.
하르를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검은 숲을 찾는 것도 그에겐 중요한 일이었다.
두 가지 모두 포기할 수 없기에 고야 일족의 보물인 엘루라의 눈물을 제온에게 넘긴 것이다.
제온이 엘루라의 눈물을 목에 걸었다.
순간 목걸이가 닿은 가슴 부위부터 청량감이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좋았으!”
여분의 마나통을 얻은 거나 다름없기에 제온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떠올랐다.
이제 마나 걱정 없이 샌드 믹서를 운용할 수 있게 됐다.
가아아앙!
샌드 믹서가 더욱 무서운 속도로 회전하며 일대의 폭탄벌을 강타했다.
콰과과광!
엄청난 폭발이 검은 숲을 뒤흔들었다.
어마어마한 수를 자랑하던 폭탄벌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제 조금만 더 하면 모든 폭탄벌을 제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였다.
쿠우우!
갑자기 검은 숲 중심부가 요동쳤다.
순간 두 사람의 안색이 변했다.
“보스구나.”
“여왕인가?”
일족의 궤멸에 가까운 피해에 폭탄벌의 보스가 참지 못하고 나선 것이다.
검은 숲 한가운데가 들썩이더니 폭탄벌 한 마리가 나타났다. 그런데 그 크기가 상상을 초월했다.
머리부터 꼬리에 달린 독침까지 길이가 무려 칠 미터에 달했다.
폭탄벌 무리의 보스인 여왕벌이었다.
여왕벌의 배 쪽에는 수많은 알들이 달려 있었다. 그런데 그중 하나에 조그만 여자아이가 매달려 있었다.
고두원의 딸인 고하르였다.
“하르야! 네가 왜 거기에?”
고두원이 눈을 부릅떴다.
하르가 매달린 알은 다른 알들과 형체와 빛이 달랐다.
여왕벌의 알이 아니라, 알과 비슷한 무언가가 섞여 있는 것 같았다.
하르는 그 물체에 매달려 정신을 잃고 있었다.
“내 딸을 내놔라. 괴물아!”
고두원이 시위에 화살을 걸어서 당겼다.
폭탄벌 무리에겐 별 힘을 쓰지 못하지만, 일대일 대결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는 무투계 각성자였고, 궁수 쪽으로 특화된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화살의 목표는 여왕벌의 머리였다.
“익스플로전 에로우.”
피잉!
화살이 무서운 속도로 날아가 여왕벌의 머리에 격중했다.
콰앙!
화살이 폭발하며 여왕벌의 머리가 살짝 뒤로 젖혀졌다. 하지만 이내 여왕벌의 고개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은 것이다.
“제기랄!”
고두원이 연신 화살을 날렸다.
그의 화살은 정확히 여왕벌의 머리에 격중했다.
위이잉!
여왕벌의 날갯짓이 더 격렬해졌다.
거듭된 고두원의 공격이 여왕벌의 분노를 더욱 크게 키운 것이다.
순간 여왕벌이 고두원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눈으로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고속으로 날아오는 것이다.
“제길! 위험해.”
제온이 먼저 여왕벌의 움직임을 감지했다.
그는 급히 고두원의 앞에 모래 장벽을 세웠다.
콰아앙!
폭음과 함께 모래 장벽이 산산이 박살 났다. 그리고 저 멀리 고두원이 튕겨 나갔다.
여왕벌의 고속 비행에 큰 타격을 입은 것이다.
그나마 제온이 모래 장벽을 이용해 충격을 분산시켜 주지 않았으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제온이 여왕벌을 보며 말했다.
“네 상대는 나다.”
위이잉!
대답이라도 하듯 여왕벌의 날갯짓이 더욱 격렬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