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71)
271화
파빌사가 아르켈론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아르켈론!”
아르켈론은 눈을 감은 채 파빌사의 손길을 느꼈다.
주름이 가득한 노인과 늙은 거북은 그렇게 신체를 맞댄 채 오래도록 교감을 나눴다.
클레어는 두 손을 꼭 쥔 채 파빌사와 아르켈론의 모습을 지켜봤다.
영물이 된 마수와 인간이 교감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녀도 언젠가 저런 마수와 교감을 나누며 나이 들어 가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이 시궁창을 벗어나는 게 먼지지만…….’
그녀는 진금호와 시청에게 큰 빚을 졌다.
평생을 일해도 갚을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그때까지는 노예처럼 진금호가 시키는 일을 해야 했다.
파빌사의 몸에서 푸른빛이 흘러나와 한참 교감을 나누던 아르켈론에게 흡수됐다. 그러자 아르켈론의 눈에 생기가 조금 감돌았다.
파빌사가 큐어 스킬로 아르켈론의 생기를 북돋은 것이다.
고위 테이머만이 펼칠 수 있는 큐어 스킬이었다.
클레어처럼 파빌사 역시 큐어 스킬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다행이다. 둘이 번갈아 치료하면 시간을 더 벌 수 있겠어.’
저 거대한 거북을 혼자 힘으로 돌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파빌사와 클레어 둘이 번갈아 가며 큐어 스킬을 펼쳐야 목적지까지 겨우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가는 동안 별문제가 없다는 가정에서 말이다.
파빌사가 제온에게 말했다.
“아르켈론의 기력이 떨어지기 전에 출발하자.”
“네! 가죠.”
제온 등이 파빌사와 케일리를 따라 아르켈론의 등껍질에 올라탔다.
원래 아르켈론의 등껍질 안 마을에서 살던 모트 일족은 강철 요새로 임시 이주한 상태였다.
아르켈론의 미래를 섣불리 재단할 수 없기에 일단 강철 요새에서 머물면서 귀환하길 기다리는 것이다.
그들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만큼 이번 아르켈론의 여정은 위험했다.
감히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대단하군! 설마 거북이 등껍질 안에 마을이 존재하다니.”
아르켈론 등껍질 내부를 둘러보던 이정호가 절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르켈론이 이동 요새라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마을이 넓을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강철 요새에 들어갔을 때도 놀랐지만, 아르켈론의 내부는 더욱 놀라웠다.
살아 있는 생명체 안에 존재하는 마을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었다.
“괜히 이동 요새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군.”
“모트 일족이라고 했나요? 이들이 수십 년 넘게 아르켈론 등에서 산 게 이해가 되네요. 부럽기도 하고.”
클레어는 진심으로 부러운 표정이었다.
파빌사와 아르켈론은 테이머와 테이밍된 마수의 관계를 뛰어넘어 오래된 친구와 같았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만 봐도 그들의 관계가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었다.
‘언젠가는 나도 아르켈론과 같은 마수와 그런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으면…….’
쿠워어어!
아르켈론이 준비가 되었다는 듯이 크게 울음을 터트렸다.
“그래! 가자.”
파빌사의 말에 아르켈론이 느릿하게 걷기 시작했다.
아르켈론 기준에서 느릿하다는 거지, 인간 기준으로 보면 무척이나 빠른 속도였다.
쿵! 쿵!
아르켈론이 커다란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둔중한 소리와 함께 먼지가 자욱이 피어올랐다.
“살면서 거대 거북이를 타고 다니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군.”
이정호가 의자에 앉아 중얼거렸다.
거대 거북의 등에 타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편안했다. 이런 탈것만 있다면 아무리 먼 사막으로 나가도 힘들지 않을 것 같았다.
제온도 창가에 앉아 밖의 풍경을 바라봤다.
아르켈론의 등껍질엔 창이 여러 개 나 있어 외부의 풍경을 잘 볼 수 있었다.
평상시는 개방되어 있지만, 위기 상황이 되면 등껍질이 움직여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된다.
어떻게 보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면서도 완벽한 운송 수단이었다.
네오 서울에서 만든 각종 차량도 이렇게 내구성과 방호력이 좋지 않았다.
제온이 아르켈론의 등껍질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끝까지 버텨 주면 좋겠는데.”
“버틸 거야.”
대답한 이는 케일리였다.
제온과 눈이 마주치자 케일리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아르켈론은 강해. 분명 끝까지 버텨 다시 살아날 거야.”
언젠가 아르켈론도 늙고 병들어 쓰러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쿵! 쿵!
지금도 아르켈론은 힘내서 걷고 있었다. 그런 아르켈론이 중간에 쓰러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
초거대 마수답게 아르켈론의 머리통은 매우 컸다.
어른 서너 명이 둘러앉아서 식사해도 될 정도였다.
덕분에 제온은 아르켈론의 머리에 앉아 편히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아르켈론도 자신의 머리 위에 제온이 앉아 있는 것이 싫지 않은지 눈만 끔뻑여 가끔 올려다봤다.
마수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순하면서 맑은 눈망울.
제온은 아르켈론의 얼굴에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를 저 멀리 치워 주고 싶었다.
문득 그의 시선이 아르켈론의 얼굴에 나 있는 흉터로 향했다.
검은 말미잘에 당한 상처였다.
어지간한 마수의 공격에는 끄떡도 하지 않을 만큼 단단한 표피가 쭈글쭈글해져 있었다.
체액을 빨린 흔적이었다.
그나마 아르켈론이 방어에 특화된 마수이기에 견딘 것이지, 평범한 마수나 인간이었다면 단숨에 미라 꼴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많이 아팠겠구나.”
꾸워어어!
아르켈론이 나직하게 울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이 꼭 자신은 괜찮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 우리 함께 힘을 내자.”
꾸우우!
이번에도 아르켈론이 특유의 울음소리를 냈다.
그때 클레어가 아르켈론의 머리 위로 올라왔다.
“여기 있는지 모르고 한참 찾았네요.”
불청객의 등장에 제온이 눈을 게슴츠레 뜨고 물었다.
“무슨 일인가요?”
“아! 아르켈론에게 큐어 스킬을 펼치려니까 놀라지 말라구요.”
“벌써 그럴 시간이 됐나요?”
“강철 요새를 떠난 지 꽤 됐어요. 저에겐 이 아이가 힘들어하는 게 느껴져요.”
“그렇군요. 그럼, 치료하세요.”
“네!”
제온의 허락이 떨어지자, 클레어가 아르켈론의 정수리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파빌사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의 몸에서도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와 아르켈론에게 흡수됐다.
반면 클레어는 많이 지친 모습이었다.
거대한 아르켈론을 치료하기 위해서 모든 기력을 쏟아부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레인보우 팬던트의 힘을 빌리면 더 강한 치유력을 발휘할 수 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르켈론의 등껍질에 나 있는 창에서 이정호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인보우 팬던트는 그녀의 소유가 아니었다.
시청에서 임시로 빌려준 아이템이었다.
그녀 뜻대로 함부로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닌 것이다.
그 때문에 본연의 힘만으로 아르켈론을 치료해야 했다. 당연히 모든 힘을 쏟아붓고도 겨우 현상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미안해! 지금은 겨우 이 정도 힘밖에 발휘할 수 없네.”
클레어의 사과에 아르켈론이 괜찮다는 듯이 큰 눈을 끔뻑였다.
클레어가 아르켈론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고마워! 위로해 줘서. 넌 정말 좋은 친구야. 우리가 조금만 더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 나도 모트 일족이었으면…….”
클레어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는 것을 제온은 말없이 바라봤다.
클레어의 사정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녀도 쉽지 않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뭐, 사연 없는 삶이 어디 있겠냐마는…….’
제온은 고개를 돌려 사막을 바라봤다.
사막의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삶이 존재한다.
마수, 인간, 이종족, 그 어느 것 하나 사연 없는 존재는 없다.
그 많은 사연을 헤아려 보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삶의 주체는 자신이었다.
어떤 선택을 하든 결과도 책임도 자신의 몫이었다.
클레어는 네오 서울에서 어떤 선택을 했고, 그에 따르는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제온이 관여할 일은 아니었다.
그는 일부러 클레어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때 그의 시야에 이질적인 풍경이 보였다.
저 멀리 지평선을 누런 먼지가 뒤덮고 있었다.
얼핏 보기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란 것을 제온은 잘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강력한 모래 폭풍이 몰려오는 것 같네요. 모두 준비 단단히 하라고 이르세요.”
“무슨?”
클레어가 의아한 표정으로 제온이 가리킨 지평선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에는 그저 조금 더 누런 빛으로 보일 뿐, 사막의 평소 모습과 달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게 뭐라고 이 사람이 긴장하는 거지?’
사막에 나온 이후로 제온이 이렇게 긴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도 제온의 말이기에 무시할 수 없어 이정호와 파빌사에게 그대로 전했다.
잠시 후 파빌사와 이정호, 케일리가 아르켈론의 머리 위로 올라왔다.
이정호의 반응은 클레어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아득한 지평선에 보이는 누런 먼지가 뭐 문제 있냐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파빌사와 케일리의 반응은 달랐다.
“색이 미쳤군.”
“큰 놈이야?”
“아주 큰 놈입니다. 제가 본 것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제온의 대답에 두 사람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단단히 대비해야겠어. 아르켈론만 멀쩡했다면 피할 수 있었을 텐데. 위력이 어느 정도나 될까?”
“CD급입니다. 일대가 다 뒤집혀 지형이 완전히 바뀔 겁니다. 등급이 낮은 소형종 마수 따윈 모두 흔적도 없이 쓸려 갈 거예요.”
“CD급? 그 정도라고?”
케일리가 너무 놀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정호는 그런 케일리의 반응이 이해되지 않았다.
“저게 그렇게 위험한 건가?”
“위험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데?”
심안을 연 이정호였다.
멀쩡한 눈을 포기하고 얻은 감각이니만큼 당연히 감각보다 훨씬 예민하고, 감지할 수 있는 범위도 넓었다.
저 누런 먼지가 위험하다면 당연히 위기감을 먼저 느껴야 하는데 아직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았다.
제온이 물었다.
“심안으로 볼 수 있는 영역이 얼마나 됩니까?”
“그건…….”
이정호가 입을 꾹 다물었다.
심안으로 감지할 수 있는 영역은 철저한 비밀이었다.
그의 공격 영역과도 관계있는 일이기에 제온에게 말해 주는 것은 불가능했다.
다행히 제온도 그 이상 캐묻지 않았다.
“저 모래 폭풍은 이곳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저게 모래 폭풍이라고? 단순한 누런 먼지가 아니라?”
“너무 멀리 있어서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이정호 님의 심안으로 감지할 수 있는 영역에서 아득히 벗어나 있죠.”
“하지만 모래 폭풍 따위가 아르켈론 같은 거대 마수를 어찌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평범한 모래 폭풍이라면 그렇겠죠. 하지만 저건 괴물입니다.”
“괴물?”
“간혹 괴물 같은 모래 폭풍이 나타나곤 합니다. 그런 놈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을 발휘합니다.”
“네 능력으로도 막기 힘든가?”
“저 혼자라면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저 혼자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으음!”
이정호가 침음성을 흘렸다.
제온이 그렇게 말했어도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표정이었다.
제온의 말처럼 그의 심안이 감지할 수 없는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이다.
심안은 만능이 아니었다.
심안은 전투에 특화된 스킬이었다.
전투와 흐름을 파악하는 데는 어떤 스킬보다 유용하지만, 이렇게 먼 거리에서 일어나는 자연 현상을 보고 위기를 감지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었다.
무엇보다 이정호는 제온이 경고하는 모래 폭풍의 위험을 실감하지 못했다.
그 역시 모래 폭풍을 꽤 경험했다.
네오 서울에도 모래 폭풍이 수시로 불어닥치기 때문이다.
모래 폭풍이 위험하긴 하지만, 자신 같은 고위 각성자가 위기감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었는지 깨닫는 데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쿠후우우웅!
수백 킬로미터나 먼 곳에서 불어온 폭풍이 불과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아르켈론을 덮쳤을 때 이정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미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