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72)
272화
쿠워어어!
아르켈론의 울음이 아니었다.
아르켈론을 뒤덮은 모래 폭풍이 내는 소리였다.
마치 초거대 마수의 울음과 같은 소리가 모래 폭풍 속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실제로 모래 폭풍은 초거대 마수와 같은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콰르릉!
모래 폭풍 안에서 번개가 연신 번쩍였다.
푸르고, 붉은 번개가 비처럼 대지에 작렬하는 것이다.
바닥에 꽂힌 번개는 일대를 새까맣게 태우며 파도처럼 퍼져 나갔다.
꾸에엑!
끼엑!
그때마다 모래 아래 숨어 있던 마수들이 비명을 지르며 터져 나갔다.
모래엔 전기가 잘 통하지 않는 게 상식이었다. 하지만 모래 폭풍과 함께 나타난 번개는 그런 상식마저 무시할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이게 무슨?”
이정호의 초점 없는 눈동자가 시계추처럼 좌우로 흔들렸다.
그만큼 당황한 것이다.
콰콰콰쾅! 번쩍!
번개 호우가 쉼 없이 내리치고 있었다.
뇌전계 각성자가 아닌 이상 무시무시한 뇌전 다발 아래서 살아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단지 그 정도였다면 이정호가 이렇게 경악하지 않았을 것이다.
쿠와와왕!
온 세상을 새까맣게 뒤덮은 채 몰아치는 가공할 모래 폭풍은 그 자체로 재앙이었다.
번개를 제외한 그 어떤 사물도 보이지 않았다.
수많은 마수가 모래 폭풍에 휩쓸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단순히 휩쓸려 사라진 게 아니라 모래에 갈려 지워진 것이다.
실제로 이정호와 그리 멀지 않은 곳 지하에 숨어 있던 거대한 전갈이 무섭게 휘몰아치는 모래에 갈려 나가는 것이 실시간으로 보였다.
강철보다 단단한 껍질이 모래 입자처럼 곱게 갈려 흩어지는 모습에 절로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이제까지 이정호가 경험한 모래 폭풍은 이에 비교하면 신생아 수준도 되지 못했다.
이정호는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네오 서울에서 안락하게 보호받으며 살아왔는지 깨달았다.
쿠쿠쿠쿠!
거대한 아르켈론의 몸체가 날아갈 것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다리, 머리 모두 등껍질 안에 집어넣은 채 잔뜩 힘을 주고 있는데도 말이다.
평소의 아르켈론이었다면 역장을 펼쳐 스스로를 보호했을 테지만, 큰 상처를 입은 후라 역장을 펼칠 힘이 없었다. 그래서 맨몸으로 폭풍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아르켈론이니까 이 정도로 버티는 거지, 다른 마수였다면 벌써 날아갔거나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번쩍! 콰르르릉!
아르켈론의 거대한 몸체 위에도 번개 다발이 쉴 새 없이 내리꽂혔다.
쿠워어어!
아르켈론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려냈다.
제아무리 방어에 특화된 마수라도 쉴 새 없이 내리꽂히는 번개 공격은 견디기 힘든 것이다.
만일 아르켈론이 멀쩡했다면 일찍 위험을 감지하고 모래 폭풍의 경로를 아예 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검은 말미잘에게 당한 후 아르켈론의 탐지 범위는 크게 줄어들어 있었다.
그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번개 공격을 맞아야 했다.
클레어가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파빌사를 바라봤다.
“그래도 제온이 있으니까…….”
아르켈론의 등껍질 위엔 제온이 서 있었다.
제아무리 제온이라도 아르켈론에게 꽂히는 번개까지 막아 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수많은 마수들을 갈아 버리는 초고속의 모래 폭풍에서 아르켈론을 보호해 줄 수는 있었다.
가아아앙!
제온과 아르켈론 주위로 모래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괴물 모래 폭풍이 아니었다.
제온의 권능으로 불러일으킨 모래 폭풍이었다.
괴물 모래 폭풍에 비할 수는 없지만, 제온이 일으킨 모래 폭풍도 상당한 힘을 보유하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회전이야.’
자신의 모래 폭풍 속도를 괴물 모래 폭풍의 회전 속도에 정확히 맞춰야 했다.
괴물 모래 폭풍이 십이라는 속도를 가지고 있다면, 자신의 모래 폭풍도 십이라는 속도를 내야 했다.
산불이 났을 때 맞불을 놓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미리 맞불을 놔서 산불이 넘어오지 못하게 만드는 것처럼 제온도 모래 폭풍을 만들어 괴물 모래 폭풍이 아르켈론을 직접적으로 타격 못 하게 하고 있었다.
제온의 얼굴 위로 굵은 땀방울이 연신 흘러내리고 있었다.
제온이 아무리 강한 모래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지만, 진짜 자연의 힘에 비할 수는 없었다.
다른 각성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뇌전과 중력을 다루는 마법사들이 아무리 강한 힘을 보유하고 있어도, 진짜 자연의 힘에 비하면 개미와 다를 것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힘의 크기가 아니라 효율성이었다.
적은 힘이라도 효율적으로 다루면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지금 제온의 상태가 그랬다.
자신보다 큰 힘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였다.
대항하기보다 순응하면서 파괴력을 분산하고, 흘려버려야 했다.
제온은 집중해 흐름을 조율했다.
그의 감각이 모래를 타고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모래 그 자체가 된 것 같은 고양감이 느껴졌다.
마치 모래의 신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쿠와아아아!
더 이상 괴물 같은 모래 폭풍이 두렵지 않았다.
모래 폭풍의 포효가 절규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영겁 같은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
쿠우우우!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었던 모래 폭풍이 거짓말처럼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보여 줬던 미친 위세가 마치 거짓말이었다는 듯이 모래를 흩뿌리며 옅어졌다.
모래 폭풍 안에서 비처럼 쏟아지던 번개들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바닥에 새까맣게 탄 모래가 깔려 있지 않았다면, 조금 전 그렇게 흉악하게 뇌전 다발이 대지를 때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을 것이다.
클레어가 진땀이 흐르는 이마를 닦으며 중얼거렸다.
“이게 모래 폭풍이라고?”
“진짜 모래 폭풍이죠. 오직 사막 한가운데서만 가끔 나타나는 괴물 같은 모래 폭풍. 우리는 CD라고 불러요.”
“CD?”
“크레이지 드래곤(Crazy Dragon). 미친 드래곤의 지랄 발광? 뭐, 그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네요.”
기존에 있던 단어가 아니다.
파빌사나 케일리처럼 사막에서 오래 생활한 사람들이나 아는 그들만의 은어였다.
“CD급 모래 폭풍이 흔한가요?”
“절대 흔하지 않죠. 그랬다면 지구상에 살아 있는 생명체 따윈 존재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들이 타고 있는 거대한 아르켈론이 요동칠 정도의 모래 폭풍이었다. 어지간한 마수 따윈 하늘로 빨려 올라가 갈가리 찢어졌다.
그나마 제온이 권능을 부려 모래 폭풍의 위력을 상쇄했기에 이 정도로 그쳤지, 맨몸으로 고스란히 모래 폭풍에 노출되었다면 제아무리 아르켈론이라도 치명상을 입었을 것이다.
이정호의 초점 없는 눈동자가 아르켈론의 등껍질 위에 서 있는 제온을 향했다.
제온은 권능을 과다 사용하느라 거칠어진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그의 전신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비틀거리는 것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위태한 모습이었다.
‘어쩌면 지금밖에 놈을 죽일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사막에 나온 제온이 얼마나 가공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말이다.
대자연의 재앙인 모래 폭풍을 상대로도 물러서지 않던 제온의 모습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이대로 임무를 진행하는 게 옳을까? 차라리 지친 지금 제거하는 게 낫지 않을까?’
이정호가 자신도 모르게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지금 제온은 모든 힘이 소진돼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이 없는 상태였다. 그를 죽이는 것은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웠다.
그럼에도 이정호가 망설이는 것은 바로 진금호가 내린 임무 때문이었다.
‘어쩌면 지금 결정을 영원히 후회할지도 모르겠군.’
탁!
그가 살짝 뺐던 검을 조용히 검집에 집어넣었다.
결국 자신의 판단이 아니라 진금호의 명령을 따르기로 한 것이다.
쿠워어!
그때 모래 폭풍을 피해 등껍질 안에 몸을 집어넣고 있었던 아르켈론이 머리를 내밀었다.
모래 폭풍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한 아르켈론이 다리를 모두 내놨다.
아직도 등껍질엔 번개에 얻어맞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위협이었던 모래 폭풍으로부터 제온이 보호해 줘 본체는 무사했다.
아르켈론이 머리를 길게 빼서 제온을 바라봤다.
커다란 눈을 끔뻑이는 모습이 제온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툭툭!
제온은 그런 아르켈론의 콧잔등을 두어 번 두들겨 줬다. 그러자 아르켈론이 크게 콧김을 뿜은 후 걷기 시작했다.
쿵! 쿵!
둔중한 발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파빌사가 등껍질 안으로 들어오는 제온을 급히 부축했다.
“괜찮으냐?”
“좀 쉬어야겠습니다.”
“그래! 힘을 쓰느라 피곤할 텐데, 어서 쉬거라.”
“네!”
제온이 고개를 끄덕인 후 빈집으로 향했다.
그의 걸음이 잠시 이정호 앞에서 멈춰 섰다.
“보다시피 저는 당분간 힘을 쓸 수 없습니다. 아르켈론의 보호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알았다.”
이정호가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제온은 그런 이정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곧 빈집 안으로 들어갔다.
쿵!
문이 닫힌 것을 확인한 이정호가 아르켈론 머리 위로 올라갔다.
산들바람이 불어왔다.
조금 전 그렇게 무섭게 모래 폭풍이 휘몰아쳤던 것이 거짓처럼 느껴질 정도로 바람은 부드러웠다.
“후!”
이정호가 옅은 한숨을 내쉬며 전방을 주시했다.
모래 폭풍은 그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뿐만 아니라 어떤 각성자도 모래 폭풍을 상대로 저런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위축되거나, 자신의 능력을 비하할 필요가 없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된다.
예를 들면 모래 폭풍이 지나간 후 뒤집힌 땅속에서 슬쩍 고개를 내미는 전갈 무리들 말이다.
모래 속에 은신해 있다가 독침으로 공격하는 유령 전갈이었다.
사막에 서식하는 마수들 중에서는 하급에 속했다.
놈들은 모래 속에 기척도 없이 숨어 있다가 기습하기에 미리 감지하지 못하면 극히 위험했다.
이 일대는 유령 전갈의 서식처였다.
유령 전갈 상당수가 CD급 모래 폭풍에 갈가리 찢겨 죽임을 당했다. 하지만 아직도 유령 전갈은 많이 남아 있었다.
땅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놈들이 아르켈론의 발소리에 반응해 모습을 드러냈다.
유령 전갈은 이성보다 본능으로 움직이는 마수였다.
놈들은 아르켈론이 부상을 입어 역장을 펼칠 수 없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평소라면 감히 덤빌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만, 상처 입은 늙은 마수는 한번 도전해 봄 직한 먹잇감이었다.
사사사삭!
모래 깊은 곳에서 수많은 유령 전갈이 올라왔다.
놈들이 마치 해일처럼 아르켈론을 향해 밀려왔다.
쿠워어어!
아르켈론이 포효하며 유령 전갈을 짓밟아 터트렸다.
한 번에 수십 마리씩 유령 전갈이 터져 나갔다. 보통의 생물이었다면 공포를 느끼고 도주했겠지만, 유령 전갈에겐 그런 감정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놈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식욕이었다.
많은 동족이 죽었기에 번식을 해야 했다.
빠른 번식을 위해서라도 배부르게 먹어야 했다. 그것이 유령 전갈이 미친 듯이 아르켈론에게 달려드는 이유였다.
아르켈론 한 마리만 쓰러트리면 최소 일 년 이상을 먹이 걱정하지 않고 마음껏 포식할 수 있었다.
유령 전갈 무리는 아르켈론의 다리를 타고 본체로 올라오고 있었다.
파빌사와 케일리, 클레어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그 순간 이정호가 검을 빼 들었다.
쉬가악!
그가 검을 휘두르자 본체에 거의 올라왔던 유령 전갈들이 두 동강 나서 우수수 떨어졌다.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면 될 일이지.”
이정호가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때마다 아르켈론을 새까맣게 뒤덮었던 유령 전갈들이 죽어 나갔다.
유령 전갈들이 대상을 바꿔 이정호를 공격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공격한 유령 전갈이 성둥성둥 잘려 나갔다.
그렇게 단단한 껍질도, 꼬리에서 발출되는 침도, 거대한 집게발도 소용없었다.
이정호의 검은 가차 없이 유령 전갈을 베고, 또 베었다.
그 모습을 본 파빌사가 입을 떡 벌렸다.
그의 팔뚝에 소름이 오소소 돋고 있었다.
“죽음의 칼춤이 따로 없구나. 그나마 같은 편이라서 다행인 건가?”
후와앙!
이정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검풍이 태풍처럼 휘몰아친다.
그는 모래 폭풍을 상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울분을 유령 전갈을 상대로 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