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74)
274화
저주술사는 정체 모를 마수의 가죽으로 기워 만든 누더기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그는 등이 굽은 꼽추인 데다 외모도 보기 끔찍할 만큼 추악했다.
오랫동안 씻지 않아 머리도 봉두난발이었고, 큰 구멍이 뻥뻥 뚫린 곰보 얼굴엔 시꺼먼 때가 가득 끼어 있었다.
눈가엔 짙은 다크서클이 내려앉아 있는 데다가 분위기 또한 음울해서 마치 그에게만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것처럼 보였다.
저주술사의 이름은 판트시였다.
판트시의 앞엔 정찰을 나갔다 돌아온 각성자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판트시를 바라보는 각성자의 얼굴엔 공포의 빛이 가득했다.
각성자는 스캐빈저였다.
사막을 떠돌면서 약탈로 생계를 이어 가는 약탈자.
그는 늘 남의 것을 빼앗는 입장이었다.
소수의 생존자들이 힘겹게 살아가는 마을 등을 습격해 약탈하는 것이 그들의 생존 방식이었다.
그런 그들의 삶에 변화가 생긴 것이 열흘 전이었다.
유난히 안개가 뿌옇게 끼었을 때 스캐빈저들의 근거지로 찾아온 이는 어두운 분위기의 사내, 판트시였다.
그들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낯선 방문자를 비웃었다.
먹잇감이 알아서 맹수 우리로 찾아온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생각이 바뀌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판트시는 다짜고짜 그들에게 저주를 뿌렸다.
미처 대비하지 못한 동료들이 저주에 당해 몸부림을 쳤다.
판트시의 저주는 지독하면서 무서웠다.
그의 저주에 당한 자는 온갖 고통을 느끼게 된다.
신체 부위가 썩거나, 녹아내리는 것은 기본이었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조차 없었다.
판트시의 저주는 당한 자들의 생명을 끈질기게 붙잡아 놨기 때문이다. 그래서 숨이 끊어질 때까지 온갖 고통을 생생하게 느껴야 했다.
그 때문에 판트시의 저주에 죽은 자들의 얼굴엔 생전 느꼈던 고통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우, 우리에게 왜 이러는 거냐? 우리는 너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는데.”
“너희들은 이유가 있어서 스캐빈저 짓을 하는 건가?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게 편해서 그런 거잖아?”
“그게 이거와 무슨 상관이…….”
“나도 이렇게 사는 것이 편해서 그래.”
살아남은 스캐빈저들의 절규에 판트시가 그렇게 대답했다.
판트시는 살려 둔 스캐빈저들에게 저주를 각인시켰다. 자기 꼭두각시로 만든 것이다.
그 때문에 스캐빈저들은 판트시의 명령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거부하는 그 순간 고통스러운 죽음이 기다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스캐빈저들은 판트시의 꼭두각시가 되어 명령을 따랐다.
판트시가 입을 열었다.
“세 명을 보냈는데, 겨우 하나만 살아서 돌아왔군.”
“놈들이 감시를 눈치채고 공격했습니다.”
“눈치 빠른 놈들인가 보군. 감시자를 붙인 것을 알아차리다니.”
“보통 놈들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동료들이 미처 도망치기 전에 따라잡혔습니다.”
“어떤 놈들인지는 파악했나?”
“그, 그게 죄송합니다.”
쿵!
각성자가 머리를 바닥에 찧었다.
판트시가 그와 동료들을 꼭두각시로 만든 것은 아르켈론의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고 도망쳐 왔기에 목숨의 위협을 느낀 것이다.
“쓸모없는 놈!”
“살려 주십시오. 다음엔 반드시 놈들의 정보를 알아내겠습니다.”
“꼬리 만 개새끼처럼 도망쳐 나온 놈을 또 믿으라고?”
“제, 제발…….”
“첫 명령도 수행 못 하는 놈이 다음 명령은 잘 수행할까?”
판트시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메마른 조소였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각성자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각성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판트시를 공격했다.
“이 개새끼야!”
쐐액!
허리에 늘 꽂고 다니던 대거가 판트시의 숨통을 노리고 날아왔다.
대거가 날아오는 모습을 빤히 보면서도 판트시는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그가 움직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판트시의 뒤에서 사람 몸통만 한 촉수가 튀어나와 대거를 후려쳤다.
“아아!”
촉수를 본 각성자의 얼굴에 지금까지와 비교할 수 없는 공포의 빛이 떠올랐다.
바로 저주술사 판트시가 부리는 키메라, 검은 말미잘의 촉수였기 때문이다.
판트시가 뒤돌아 걸으며 말했다.
“베시(Bessie), 간에 기별도 가지 않겠지만, 먹어 치워라.”
츄화학!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촉수가 각성자를 휘감더니 체액을 빨았다.
거대한 촉수에 체액을 모조리 빨린 각성자가 미라처럼 바싹 말라 숨이 끊어졌다.
판트시의 앞엔 엄청난 촉수를 하늘거리는 원통형의 마수가 서 있었다.
그가 부리는 키메라인 검은 말미잘이었다.
판트시가 손을 뻗어 검은 말미잘의 몸통을 어루만졌다.
“오오! 사랑스러운 나의 베시. 조금만 기다려라. 그 거대한 거북이를 포식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판트시는 검은 말미잘에게 베시라는 이름을 붙였다.
백여 년 전에 멸망한 프랑스라는 나라의 언어로 ‘신성함’을 뜻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는 검은 말미잘의 외모마저도 판트시에겐 신성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베시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베시를 얻은 것은 우연이었다.
저주술사인 판트시는 어떤 생존자 거주지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심지어 스캐빈저마저도 저주술사인 그를 거부했다.
저주술사라는 클래스 때문이 아니라 그의 추악한 외모 때문이었다. 구역질이 날 만큼 못생긴 외모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거부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홀로 사막을 떠돌 수밖에 없었다.
그의 등급이 높았다면 거부한 인간들이나 스캐빈저들에게 저주를 마음껏 뿌렸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그의 등급은 겨우 E급에 불과했다.
E급 저주술사가 제아무리 저주를 뿌려 봐야 겨우 한두 사람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있을 뿐이다.
내성이나 저항력이 강한 각성자에겐 그마저 통하지 않았다.
판트시는 자신을 우습게 본 각성자들에게 복수할 것을 다짐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그렇기에 오랫동안 홀로 사막을 떠돌았다.
그의 인생이 바뀐 것은 이름 모를 협곡에서였다.
사막 한가운데 균열처럼 나 있는 협곡은 들어서는 그 순간부터 음산한 기운이 느껴졌다.
보통의 각성자나 일반인었다면 발을 딛는 그 순간 공포를 느끼고 도망갔을 테지만, 저주술사인 판트시에겐 오히려 이런 음산한 기운이 포근하게 느껴졌다.
그는 마치 홀린 것처럼 협곡 안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누군가의 도살장 같았다.
협곡 안쪽엔 수많은 마수의 사체들이 널려 있었다.
샌드웜, 유령 전갈을 비롯해 수많은 마수들이 해부된 채 널려 있었다.
판트시는 두려움을 꾹 참고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거대한 마수의 사체가 나타났다.
살아 있었다면 판트시가 감히 접근할 수 없을 정도로 고등급 마수 사체들이 즐비했다.
판트시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협곡 가장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발견한 것이 바로 거대한 검은 말미잘 베시였다.
혐오스러운 검은 말미잘을 보는 순간 판트시는 사랑에 빠졌다.
자신 역시 추악한 외모 때문에 평생 고생했기에 알 수 있었다. 저 혐오스러운 생명체를 사랑해 줄 이는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검은 말미잘은 죽어 가고 있었다.
촉수는 힘없이 허우적거리고 있었고, 본체에도 힘이 하나도 없어서 축 늘어져 있었다.
판트시는 온 힘을 다해 밖에 널려 있는 마수 사체를 끌고 와 검은 말미잘의 촉수에 갖다 댔다.
마수의 사체가 닿자 촉수가 반응했다.
본능적으로 마수의 체액을 흡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체액을 흡수한 검은 말미잘이 생기를 조금 되찾았다. 하지만 조그만 마수의 사체로는 검은 말미잘이 원하는 양을 채울 수 없었다.
판트시는 협곡에 널린 마수들의 사체를 계속 날랐다.
온 힘을 다해 끌어온 마수는 검은 말미잘의 양분이 되었다.
수백 마리나 되는 소형종 마수의 체액을 흡수하고 나서야 검은 말미잘은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검은 말미잘은 판트시의 힘으로는 도저히 옮길 수 없었던 중형 마수부터 흡수했다.
그렇게 검은 말미잘은 협곡 안에 있던 모든 마수들을 먹어 치웠다. 그때부터 검은 말미잘은 판트시의 친구가 되었다.
자신을 살려 준 은혜를 갚기라도 하듯이 판트시를 따르는 것이다.
판트시는 검은 말미잘과 영혼의 계약을 했다.
그때 알게 됐다.
검은 말미잘이 자연적으로 탄생한 생명체가 아니란 사실을 말이다.
검은 말미잘은 협곡 안에 널브러져 있던 수많은 사체를 조합해 탄생한 키메라였다.
누군가 수많은 마수들을 협곡에 잡아 와 키메라를 만드는 시험을 한 것이 분명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판트시가 영혼의 계약을 한 검은 말미잘이었다.
누가 이 끔찍한 결과물을 만들어 냈는지 판트시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왜 검은 말미잘을 버리고 갔는지는 알 것 같았다.
검은 말미잘은 불완전했다.
너무 많은 마수를 짜깁기해서 만들어 낸지라 에너지의 소모가 쓸데없이 많았고, 내부도 불완전해 끝없이 먹을 것을 공급해 줘야 했다. 먹을 것을 공급하지 못하면 저 스스로 내부에서부터 붕괴되고 만다.
그렇기에 검은 말미잘을 애써 만든 존재도 쓸모없다 판단하고 버렸는지 몰랐다.
하지만 판트시는 달랐다.
한평생 외롭게 사막을 떠돈 그에게 검은 말미잘은 유일하게 마음을 나눠 준 친구였다.
검은 말미잘이 불완전하다고 해서 버리거나 폐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불완전한 영혼과 계약했다.
검은 말미잘과 계약한 이후 그의 인생은 백팔십도 달라졌다.
그를 두렵게 만들었던 거대 마수도 그의 적이 아니었다.
검은 말미잘이 뻗은 촉수에 거대 마수가 모든 체액을 뺏기고 죽는 모습은 그의 쾌감을 증폭시켰다.
마치 자신의 힘으로 거대 마수를 쓰러트린 것 같은 쾌감을 준 것이다.
검은 말미잘이 마수를 쓰러트릴 때마다 그의 등급은 상승했다.
그렇게 그는 A급 저주술사가 됐다.
A급 저주술사는 극히 희귀했다.
거기다 검은 말미잘과 같은 키메라를 부리는 저주술사는 더욱 희귀했다. 아마 판트시가 유일할 것이다.
그때부터 판트시는 닥치는 대로 약탈했다.
마수든, 인간이든 가리지 않고 빼앗고, 죽였다.
자신을 핍박했던 인간들은 모두 검은 말미잘의 양분으로 던져 줬다.
이대로 계속 등급이 오르면 더 이상 사막에서 자신의 적수가 없을 것 같았다.
심지어는 검은 말미잘을 창조한 존재조차도 말이다.
검은 말미잘을 만들어 낸 존재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당신이 버린 키메라를 내가 이렇게 멋지게 만들었다.
당신은 실패했지만, 나는 성공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큰 오산이었는지 곧 깨달았다.
언제부턴가 검은 말미잘과 그는 더 이상 성장하지 않았다.
한계에 달했는지 검은 말미잘은 내부에서부터 서서히 붕괴했다.
검은 말미잘을 안정시키기 위해선 특별한 먹이가 필요했다.
내부의 붕괴를 막을 단단한 특성이.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아르켈론이었다.
이동 요새라 불리는 아르켈론의 특성을 흡수할 수 있다면 검은 말미잘이 한 단계 진화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것이 그가 아르켈론을 공격한 이유였다.
아르켈론은 검은 말미잘의 공격을 뿌리치고, 강철 요새로 도주했다.
아르켈론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검은 말미잘도 적잖은 신체 붕괴가 일어났기에 강철 요새를 쳐들어갈 수 없었다.
그와 검은 말미잘에게 남은 기회는 오직 한 번뿐이었다.
“저번에는 아깝게 놓쳤지만, 이번에는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다. 가자, 베시!”
판트시가 검은 말미잘과 함께 스캐빈저의 소굴을 빠져나왔다.
그들이 나온 자리엔 체액이 모조리 빨린 시체들만이 남아 있었다.
***
저 멀리 보이는 전경에 이정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온갖 경험을 다 했다고 자부하는 이정호였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전경은 그조차 처음 보는 것이었다.
분명 해가 뜬 대낮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햇볕이 강렬하게 내리쬐어 피부가 아플 정도였다. 그런데 저 멀리 보이는 지평선만 마치 칼로 도려낸 것처럼 새까맸다.
마치 그곳에만 밤이 찾아온 것처럼 말이다.
이정호의 곁에 서 있던 파빌사의 목소리가 떨렸다.
“저기는…… 분명 육지 고래의 둥지가 있는 곳인데?”
“그때도 저랬습니까?”
“아니, 다른 곳과 다를 것 없는 풍경이었어.”
“그런데 하필 우리가 온 시기에 저렇게 변했군요.”
이정호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그의 본능이 위험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검은 영역은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었다.
저 검은 대지에 들어서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아무리 강해도 이정호 역시 인간이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미지의 존재에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저게 뭐기에…….”
“영역화입니다.”
그때 뒤에서 제온의 대답이 들려왔다.
“영역화?”
“S급 이상의 고위 마수만이 펼칠 수 있는 권능입니다. 일대를 자기가 활동하기 편한 환경으로 강제로 변화시키는 거죠.”
제온의 목소리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이미 인류는 저와 비슷한 권능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테라포밍.
반작용으로 지구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넣었던 크라시아스의 권능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