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75)
275화
자신이 활동하기 편하게 영토를 재구축하는 것을 영역화라고 부른다.
영역화는 일종의 권능이었다.
S급 마수라고 다 영역화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S급 마수 중에서도 극소수.
태생부터 남다른 마수들만이 펼칠 수 있는 권능이었다.
영역화가 진행되는 일대는 마수에게 가장 적합한 환경으로 변화한다.
즉 지금 지평선에 펼쳐진 검은 영역 안에서는 모비딕의 힘이 극대화된다.
모비딕이 가지고 있는 힘이나 스킬을 알진 못했지만, 어쨌거나 저 안에선 능력이 뻥튀기처럼 증가하는 것만은 분명했다.
제온이 팔짱을 낀 채 중얼거렸다.
“골치 아프게 됐군.”
“뭐가 골치 아프다는 거지?”
“말 그대로입니다. 영역화된 곳에서 마수의 전력은 배가되는데, 이쪽은 제대로 된 힘을 쓸 수 없으니까요.”
“하긴, 너는 모래가 없으면 전력이 반감되지?”
“뭐, 어느 정도는요.”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내 힘은 환경에 구애받지 않는다.”
이정호가 검의 손잡이를 잡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의 무기는 오직 검 한 자루뿐이다.
그 외 어떤 무기도 잡아 본 적 없다.
각성자이지만 무인의 길을 걸어왔다.
스킬에만 의지하는 게 아니라, 끝없이 실력을 갈고닦아 지금의 경지에 이르렀다.
스킬이나 특별한 무기에만 의지하는 다른 각성자와는 차원이 다르다.
마수의 권능이 극대화되는 영역이라도 그의 실력엔 변함이 없다.
그것이 이정호가 자신감을 가지는 이유였다.
“아무리 강한 마수라도 숨통에 검이 박히면 죽는 것은 매한가지. 모비딕도 마찬가지다.”
“자신감이 대단하네요. 당신 말처럼 그렇게 쉽게 모비딕을 잡을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그렇게 될 거다.”
이정호의 말에도 제온의 표정은 쉽게 펴지지 않았다.
그는 이정호와 다르게 영역화를 할 수 있는 마수들과 싸워 본 적이 있었다.
그들과의 싸움이 쉽게 끝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영역화를 할 수 있는 마수는 말 그대로 특별한 존재들이었다.
마수라는 한계를 넘어서 영물에 가까워진 존재.
모비딕도 아마 그런 존재일 것이다.
그런 존재와의 싸움은 생각처럼 쉽게 풀리지 않는다.
제온이 뚫어져라 검은 영역을 바라봤다.
언뜻 보기엔 가까운 것처럼 보이지만, 적어도 삼사일은 더 걸어가야 저곳에 도달할 수 있다.
그사이 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경험상 꼭 이럴 때 사건이 일어나기 마련이었다.
제온이 파빌사에게 물었다.
“아르켈론의 컨디션은 어떻습니까?”
“좋지 않아.”
“저기 도착할 때까지 견딜 수 있겠습니까?”
“그 정도는 견딜 걸세.”
파빌사의 말은 소망에 가까웠다.
아르켈론이 어떻게든 견뎌 주길 바라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미리 큐어를 펼쳐 체력을 최대한 보존해 주십시오. 아마 저 영역에 들어선 순간부터 큐어가 통하지 않을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영역화가 진행된 곳에서 어지간한 스킬은 잘 통하지 않습니다. 마수의 권능이 법칙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영역화된 곳에 들어가기 전에 큐어 스킬을 펼쳐 주십시오.”
“알겠네.”
파빌사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 마수의 영역화를 경험해 본 사람은 제온뿐이었다.
아르켈론과 함께 백 년을 사막을 떠돌아다닌 파빌사도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없었다.
당연히 제온의 말을 따라 단단히 대비해야 했다.
그러려고 제온에게 도움을 요청한 거니까.
케일리가 제온에게 말했다.
“나는 뭘 하면 될까?”
“영역화된 곳에 들어간 그 순간부터 마수의 기운이 침식해 올 거예요. 아르켈론이 침식당하지 않도록 준비해야 해요.”
“침식이라……. 알았어!”
케일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고위 인챈터였다.
아이템의 성능을 업그레이드하거나 새로운 옵션을 붙이는 데 그녀를 따라올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새로운 재료를 얻을 때마다 그녀는 쉬지 않고 능력을 펼쳤다.
실패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간혹 대성공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성공했을 때는 예상치 못한 옵션이 붙기도 한다.
제온의 건틀렛에 아공간 옵션이 생겨난 것처럼 말이다.
마침 그녀에겐 그런 아이템이 하나 더 존재했다.
케일리는 급히 창고로 달려갔다.
***
쿵! 쿵!
아르켈론은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모비딕의 영역을 발견한 것이 사흘 전이었다.
그동안 아르켈론은 꾸준히 걸어왔다.
그런데도 아직 모비딕의 영역엔 도달하지 못했다.
“이제 하루 정도면 도착할 수 있겠군.”
제온은 아르켈론의 등껍질 위에 서서 거리를 가늠했다.
파파팟!
그와 아르켈론 주위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아직 영역과 거리가 많이 남았는데도 벌써 영향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영역 자체가 아르켈론과 제온을 거부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때 제온의 눈에 묘한 광경이 들어왔다.
“이건?”
그와 아르켈론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햇빛을 가릴 만큼 거대한 무언가가 제온과 아르켈론 머리 위에 떠 있는 것이다.
고개를 들자 날개를 활짝 펼친 채 창공을 활공하고 있는 거대한 마수가 보였다.
드래곤을 닮았지만, 그보다는 훨씬 작았다. 하지만 와이번보다는 크고 강맹한 외형을 지닌 마수.
“드레이크군.”
그것도 핏빛 비늘을 가진 거대한 드레이크였다.
저렇게 거대한 드레이크는 절대 흔하지 않다.
전신이 피처럼 붉은 드레이크는 더더욱 흔치 않다.
하지만 제온은 이미 저런 드레이크를 본 적이 있었다.
“크림슨 드레이크.”
하늘이 자기 영토인 것처럼 날아다니는 녀석은 던전의 보스급 마수인 크림슨 드레이크가 분명했다.
제온이 크림슨 드레이크를 알고 있는 것은 이미 만나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각성 직후 첫 던전에서 말이다.
제온이 처음 딸려 들어갔던 유령 던전의 보스가 바로 크림슨 드레이크였다.
그곳에서 죽을 뻔했고, 데이오든을 만났다.
데이오든을 만나지 않았다면 크림슨 드레이크의 먹이가 되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크림슨 드레이크의 핏빛 몸체에는 어울리지 않게 푸른 역장이 어려 있었다.
제온이 던전에서 만났던 보스와 똑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다만 덩치가 훨씬 크고, 역장도 더 선명한 것으로 보아 훨씬 더 강한 개체가 분명했다.
‘최소 A급 마수. 저런 녀석이 왜 이곳에 나타난 거지?’
한 던전의 주인 정도 되는 마수면 영역 개념이 확실하다.
자신의 영역에 다른 존재가 들어오는 것도 용납하지 않지만, 다른 마수의 영역에도 쉽게 침범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자기보다 상위 마수의 영역엔 얼씬도 하지 않는다.
그것이 제온이 아는 마수 생태계의 법칙이었다.
이 법칙이 통용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제온이 경험한 한도 내에서는 말이다.
더군다나 이곳은 크림슨 드레이크가 서식하기에 적합한 환경이 아니었다.
크림슨 드레이크는 화산 지대에서 서식한다.
용암 속에서 유영하며 사는 존재가 바로 크림슨 드레이크였다. 그런 크림슨 드레이크가 서식지를 떠나 이곳에 나타난 것은 확실히 이례적인 일이 분명했다.
제온이 미간을 찌푸렸다.
크림슨 드레이크 말고도 또 다른 거대 마수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쿵! 쿵!
어슬렁거리며 걷는 거대한 이족 보행 마수.
손에는 커다란 몽둥이를 들고 있는 근육질 이족 보행 마수는 바로 오우거였다.
그것도 오우거 중에서 가장 강력하다고 알려진 그레이 오우거였다.
그레이 오우거는 체고만 칠 미터에 달하는 중형 마수였다.
체급은 중형이었지만, 힘이나 능력은 대형종 마수 못지않았다.
오히려 인간처럼 교활한 면까지 있어 어지간한 대형종 마수보다 상대하기 더 까다로웠다.
A급 마수인 그레이 오우거의 역장은 어지간한 마법은 모조리 튕겨 내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마법계 각성자에겐 재앙인 마수가 바로 그레이 오우거였다.
놈들에게 걸리면 어지간한 마법계 각성자는 대항 한번 변변히 해 보지 못하고, 놈들의 먹이가 되고 만다.
그레이 오우거도 좋아하는 서식지가 따로 있었다.
이곳은 그레이 오우거가 좋아하는 지형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레이 오우거가 나타났다.
“저놈도 모비딕의 영역에 끌렸군.”
모비딕은 제온이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한 마수였다.
놈의 성향, 특성, 무엇 하나 아는 것이 없는 미지의 존재였다.
때문에 A급 마수들이 모비딕의 무엇에 끌려 이곳에 나타났는지 알 수 없었다.
“문제는 저 둘만 이곳에 나타날 것 같지 않다는 거지.”
당장 보이는 것은 저 두 마리뿐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더 많은 마수가 나타날 수도 있었다.
다른 마수들이 나타나기 전에 저 영역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크림슨 드레이크나 그레이 오우거 모두 모비딕의 영역에 정신이 팔려 아르켈론에겐 눈길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일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저들과 만났다면 목숨을 걸고 싸웠어야 했을 것이다.
“모비딕…… 신화 속 거대 고래를 닮은 마수. 도대체 놈의 어떤 점이 저런 마수들을 끌어들이는 거지?”
동행한 이정호나 클레어 모두 모비딕에 관한 정보는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물론 두 사람 모두 아직 모비딕을 본 적이 없으니 정보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도 네오 서울의 패스파인더 팀에게 얻은 정보가 조금이라도 있을 텐데, 제온에겐 일절 제공하지 않는다.
그만큼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모비딕의 심장으로 무엇을 하려는 걸까?”
이전까지 진금호와 시청의 행사에 별 의문이 없었던 제온이었지만, 이번은 달랐다.
그만큼 모비딕이라는 마수는 너무 특별했다.
금방 만나게 될 테지만, 모비딕의 어떤 점이 이렇게 많은 마수와 인간을 끌어들이는 것인지 궁금했다.
쿵! 쿵!
제온이 고민하는 그 순간에도 아르켈론은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힘들어하면서도 모비딕의 영역을 향해 꾸준히 걸어가는 것이다.
제온은 어쩌면 아르켈론 역시 다른 마수들처럼 모비딕의 영역에 본능적으로 끌리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지금 아르켈론의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때 아르켈론의 등껍질 안에서 클레어와 파빌사가 나왔다.
마지막으로 큐어 스킬을 펼칠 때가 된 것이다.
이제까지는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며 큐어 스킬을 펼쳤지만, 이젠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었다.
둘이 같이 스킬을 펼친다고 효과가 두 배가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혼자 펼칠 때보다 효과가 좋을 것은 분명했다. 그래서 파빌사와 클레어는 같이 큐어 스킬을 썼다.
화하학!
두 사람의 몸에서 강한 빛이 터져 나와 아르켈론에게 흡수됐다.
빛을 흡수한 아르켈론의 얼굴에 한결 화색이 감돌았다.
반면 큐어를 펼친 두 사람은 진이 다 빠진 표정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큐어를 한 번 펼칠 때마다 엄청난 마나를 소비하기 때문이다.
아르켈론이 고맙다는 듯이 고개를 숙여 두 사람과 눈 맞춤을 했다.
파빌사와 클레어가 아르켈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감정을 교류했다.
비록 목적은 다르지만 두 사람 모두 아르켈론을 아끼는 마음만큼은 진짜였다.
파빌사와 클레어가 아르켈론의 머리에서 손을 뗄 때였다.
콰드득!
갑자기 일대의 모래가 크게 들썩였다.
제일 먼저 이상을 감지한 제온이 소리쳤다.
“모두 물러나요.”
외침과 동시에 제온이 모래를 움직여 두 사람 앞에 거대한 벽을 세웠다.
순간 제온이 세운 모래벽을 무언가 강타했다.
콰아앙!
폭음과 함께 모래 벽이 터져 나갔다.
사방으로 흩뿌리는 엄청난 양의 모래.
파빌사와 클레어가 모래를 흠뻑 뒤집어썼다.
두 사람 모두 그때까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얼이 빠졌기 때문이다.
그런 두 사람을 제온이 바닥의 모래를 움직여 뒤로 잡아끌었다.
퍼엉!
직후 두 사람이 있던 자리에 거대한 촉수가 내리꽂혔다.
그제야 파빌사와 클레어가 정신을 차렸다.
“허억!”
“이게 무슨?”
두 사람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앞에서 꿈틀거리는 촉수를 바라봤다.
제온이 아르켈론의 등에서 뛰어내리며 소리쳤다.
“검은 말미잘입니다.”
푸쉬쉬!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래 속에서 수많은 촉수를 하늘거리는 괴물이 솟아올랐다.
말미잘을 닮은 키메라, 검은 말미잘이었다.
검은 말미잘 위에는 저주술사 판트시가 타고 있었다.
판트시가 외쳤다.
“베시! 저 늙은 거북을 먹어 치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