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76)
276화
얼핏 매끈하게 보이는 본체를 자세히 보면 수많은 이음새가 보였다. 이음새마다 가죽의 질감이 다르다.
각기 다른 마수의 가죽을 이어 붙였기 때문이다.
머리 위에 하늘거리는 촉수도 마찬가지였다. 여자의 긴 머리카락 같은 촉수는 각기 다른 마수에게서 뽑아낸 것이었다.
어떤 촉수는 문어의 빨판처럼 우툴두툴했고, 어떤 촉수는 해파리의 촉수처럼 투명했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촉수도 섞여 있었다.
도대체 누가 무슨 생각으로 저런 기괴한 키메라를 만들었는지 몰랐지만, 미적 감각이 끔찍하게 떨어진다는 것만은 쉽게 알 수 있었다.
검은 말미잘 베시는 판트시의 명령에 바로 아르켈론을 공격했다.
츄화하학!
문어의 빨판이 달린 촉수가 순식간에 백 미터 가까이 늘어나 아르켈론을 휘감았다.
쿠워어어!
촉수에 잡힌 아르켈론이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그럴수록 빨판이 더욱 강하게 아르켈론을 휘감았다.
베시의 문어 촉수는 한번 붙잡히면 절대 벗어날 수 없는 파리지옥 같았다.
츄화학!
그때 또 다른 촉수가 날아왔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촉수 수십 다발이었다.
놀란 파빌사가 크게 소리쳤다.
“아르켈론!”
그는 아르켈론이 촉수를 피하길 바랐지만, 불행히도 아르켈론의 움직임은 매우 굼떠서 촉수를 피할 수 없었다.
촤라라락!
수많은 촉수가 아르켈론을 촘촘하게 휘감았다.
판트시가 크게 소리쳤다.
“베시의 양분이 되어라.”
“누구 마음대로?”
그 순간 제온이 차갑게 대꾸하며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츄화학!
베시의 촉수보다 훨씬 많은 모래 줄기가 바닥에서 치솟아 올랐다.
제온의 스킬로 만들어 낸 모래 뱀. 바이퍼였다.
바이퍼는 그대로 아르켈론의 몸을 휘감은 촉수를 물어뜯었다.
촤하학!
칼날처럼 날카로운 촉수들이 바이퍼에 뜯기고, 잘려 나갔다.
남은 것은 문어 빨판이 달린 촉수 하나.
바이퍼의 공격에도 문어 빨판은 아르켈론을 놓아주지 않았다.
다른 촉수와 달리 문어 빨판은 상처를 입어도 금방 재생했다. 평범한 촉수와 달리 강한 재생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제온은 재생력이 강한 마수를 상대하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파이어 레인!”
제온이 손을 휘두르자 수많은 불덩이가 비처럼 문어 빨판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파이어 레인은 바이퍼가 헤집은 상처를 지져 버렸다.
불에 덴 상처는 더 이상 재생하지 못했다.
재생력을 가진 마수에겐 불이 특효약이었다.
상처를 재생하지 못하자 베시가 고통스러운 듯 몸을 크게 들썩였다. 그래도 악착같이 아르켈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아르켈론의 체액을 흡수하려 했다.
“지독하군!”
제온이 나직이 중얼거리며 다시 모래를 움직였다.
그의 의지에 바이퍼 수십 마리가 문어 빨판을 닮은 촉수를 휘감았다.
“크레모아!”
콰앙!
바이퍼가 그대로 터져 나가며 문어 빨판을 강타했다.
키이이!
베시가 고주파 비명을 터트리며 몸부림쳤다.
문어 빨판 촉수가 갈가리 찢겨 나갔기 때문이다.
베시가 절반으로 줄어든 문어 빨판 촉수를 회수하며 제온을 노려봤다.
본체 아래 자리한 수많은 눈이 제온을 향했다.
판트시가 당황해 소리쳤다.
“잠깐, 놈이 아니라 거북이를 흡수해야 해.”
평상시라면 판트시의 말을 들었을 베시가 이번엔 명령을 거부했다.
이성보다 본능이 앞서는 마수였다.
이성적으로는 아르켈론을 흡수해 내부를 안정시키는 것이 맞지만, 본능은 자신에게 큰 고통을 준 제온을 죽여 버려야 한다고 속삭이고 있었다.
베시는 마수답게 본능의 속삭임을 선택했다.
촤하학!
하늘거리는 수많은 촉수가 일제히 제온을 노리고 날아왔다.
촉수 하나하나가 제온의 몸통보다 굵었다.
제온은 모래 걸음을 펼쳐 뒤로 물러났다. 베시의 촉수는 마치 유도 미사일처럼 그런 제온을 쫓아왔다.
쾅! 쾅!
제온을 빗나간 촉수가 바닥에 처박히며 굉음을 터트렸다.
제온이 베시의 촉수를 하나하나 피하며 소리쳤다.
“아르켈론과 함께 어서 모비딕에게 가십시오.”
“하지만…….”
파빌사가 망설였다.
제온에게 저 거대한 마수를 홀로 맡겨 두는 것이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것이다.
제온이 그런 파빌사의 마음을 알고 소리쳤다.
“아르켈론을 보호하면서 싸우는 게 더 힘듭니다. 어서 가요.”
“알았다.”
파빌사는 결국 제온을 위해서라도 빨리 이곳을 떠나는 게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가자, 아르켈론!”
파빌사의 말에 아르켈론이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베시에게 또 한차례 공격을 허용한 후라 기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그래도 아르켈론은 용케 쓰러지지 않고 힘겹게 걸었다.
아르켈론의 등에 타고 있던 클레어가 이정호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가 원치 않을 거다.”
“하지만…….”
“클레어!”
“네!”
“명심해라. 우리 임무가 무언지, 무엇을 위해 이 먼 곳까지 왔는지.”
“알고 있어요.”
“그럼 임무에만 충실해라. 저 키메라는 그가 알아서 처리할 거다.”
제온이 있는 곳을 바라보는 이정호의 표정은 무심했다.
초점 없는 눈동자 때문에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이정호의 안중에 제온의 안위 따윈 없었다.
그에겐 진금호가 내려 준 임무가 우선이었다.
그의 임무는 모비딕의 심장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 외의 어떤 것도 그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제온의 목숨도 마찬가지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검은 말미잘은 대단히 위험했다.
수많은 촉수가 마치 미사일처럼 제온에게 내리꽂히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해졌다.
자신이 검은 말미잘에게 공격당했다면 제온처럼 피하는 대신, 하나하나 모조리 베어 버렸을 것이다.
인간의 눈으로 감지할 수 없는 무서운 속도로 날아오는 촉수였지만, 그에겐 심안이 있었다.
심안은 인간이 인지할 수 없는 속도와 영역의 공격마저 감지해 반응하게 해 준다.
그런 이정호에겐 검은 말미잘의 공격이 위협적이지 않았다. 제온과 협력한다면 보다 쉽게 검은 말미잘을 쓰러트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제온의 힘을 빼 놓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저 키메라를 쓰러트리려면 적잖은 힘을 소모할 것이다.’
제온은 자신과 결이 다른 사람이었다.
특별히 의견 대립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말투, 행동, 눈빛만 봐도 자신과 뜻이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자를 온전한 상태로 놔둘 수는 없었다.
쾅!
촉수 하나가 제온을 강타했다.
다행히 그 순간 제온이 모래 벽을 세워 직접적인 충격을 받는 것은 피했다. 하지만 꽤 힘들어한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 정도면 돼.”
이정호가 모비딕의 영역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치 심해처럼 어두운 영역으로 아르켈론이 한 걸음 또 한 걸음 들어가고 있었다.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서늘함이 그와 아르켈론을 엄습했다.
제온은 곁눈으로 아르켈론이 모비딕의 영역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봤다.
“어딜 한눈파는 거냐?”
판트시의 외침과 함께 제온의 몸이 갑자기 무거워졌다.
‘저주?’
근육에서 힘이 빠지고, 호흡이 가빠졌다. 사물이 서너 개로 겹쳐 보이고, 엄청난 고열에 뇌가 녹아내릴 것 같았다.
베시에 정신이 팔린 사이 판트시가 은밀하게 저주를 뿌린 것이다.
광범위하게 뿌린 거라 위력이 강하진 않았지만, 제온을 순간적으로 무기력하게 만들긴 충분했다.
휘리릭!
잠깐 움직임이 늦어진 그사이 투명한 촉수가 제온을 휘감았다.
“크윽!”
“잡았다. 쥐새끼 같은 놈!”
판트시가 득의양양해 소리쳤다.
투명한 촉수는 무서운 압력으로 제온을 조여 왔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촉수에서 빠져나가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판트시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실제로 제온이 몸부림쳤지만, 투명한 촉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베시는 그대로 제온의 체액을 빨아들이려 했다. 하지만 판트시가 베시를 말렸다.
“잠깐! 베시야, 놈을 가져와라. 얼굴을 한번 보고 싶으니까.”
제온을 잡으면서 화가 풀렸는지, 베시가 이번엔 판트시의 명령을 순순히 따랐다.
투명한 촉수가 제온을 판트시 앞까지 데려왔다.
판트시가 제온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넌 뭐냐? 어디서 툭 튀어나와 나를 방해하는 거냐?”
“그러는 당신은 왜 아르켈론을 노리는 겁니까?”
“아르켈론? 아! 그 거북이. 놈은 양분이다. 우리 베시를 성장시킬 양분.”
“역시 불완전한 키메라군요.”
“닥쳐랏! 우리 베시는 완전하다. 그 어떤 생명체보다 아름답고 완전한 존재다.”
“저게 아름답다고요?”
“그래! 이 얼마나 완벽한 생명체란 말인가? 지구를 통틀어 봐도 이보다 아름다운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내 눈에는 누더기로 보이는데요.”
“감히 나의 베시를 모욕해?”
판트시의 얼굴에 분노의 빛이 떠올랐다.
자신을 욕하는 것은 참을 수 있어도, 베시를 모욕하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판트시가 소리쳤다.
“놈을 흡수하라, 베시!”
제온을 휘감은 촉수가 크게 꿈틀거렸다.
제온처럼 조그만 생명체의 체액 따윈 일 초면 흡수한다.
판트시는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촉수가 아무리 용을 써도 제온의 몸에서 체액이 빠져나가는 일 따윈 발생하지 않았다.
레비아탄의 가죽으로 만든 로브가 촉수에서 제온을 완벽히 보호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제온의 초재생 능력까지.
베시의 능력이 아무리 대단해도 제온에게서 체액과 생명력을 모조리 뽑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제온이 그렇게 내버려둘 리도 없었다.
화르륵!
제온의 몸에서 갑자기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엄청난 고열에 촉수가 멋대로 풀렸다.
자유를 찾은 그 순간 제온이 아공간을 열었다.
그가 아공간에서 꺼내 든 것은 거대한 낫이었다.
그림리퍼를 죽이고 얻은 사신의 낫이었다.
제온은 아직 사태 파악을 하지 못한 판트시를 향해 사신의 낫을 휘둘렀다.
사신의 낫이 판트시의 목에 떨어지기 직전 베시가 촉수를 휘감아 보호했다.
서걱!
촉수가 잘리고, 판트시의 가슴에 긴 자상이 생겼다.
“크아악!”
판트시가 비명을 지르며 급히 뒤로 도망갔다.
“얕았군.”
제온이 혀를 찼다.
촉수 때문에 판트시의 숨통을 끊는 데 실패한 것이다. 그래도 상관없긴 했다.
덕분에 자신에게 쏟아졌던 저주가 모두 사라졌으니까.
제온은 사신의 낫을 다시 아공간에 수납했다.
사신의 낫은 오래 잡고 있을 물건이 아니었다. 저주술사가 아닌 이상 엄청난 반작용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허겁지겁 베시의 뒤에 숨은 판트시가 소리쳤다.
“놈을 죽여라, 베시!”
츄화학!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베시가 제온을 공격했다.
수백 개가 넘는 촉수가 제온을 향해 일제히 쏘아졌다. 이제까지와 달리 제온은 촉수를 피하지 않았다.
제온 주위로 샌드 솔저 수십 기가 소환됐다.
모래로 만들어진 병사들이 날아오는 촉수들을 육탄으로 방어했다.
쾅! 콰앙! 쾅!
폭음과 함께 샌드 솔저들이 터져 나갔지만, 제온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샌드 솔저로 저 촉수들을 막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샌드 솔저는 잠시 시간을 벌어 주는 용도에 불과했다.
“진짜는 이제부터지.”
제온의 눈이 베시가 딛고 서 있는 대지를 향했다.
스르르륵!
언제부턴가 베시를 중심으로 모래가 회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베시는 촉수를 날리느라 그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렇게 냉정하게 판단할 만큼의 이성도 없었다.
그런 베시에게 제온이 죽음의 선고를 내렸다.
“샌드 믹서!”
가아아앙!
모래가 고속 회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