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77)
277화
콰가가각!
고속 회전하는 모래는 베시의 표면을 갉아 냈다.
제아무리 엄청난 재생력을 가진 키메라라도 순식간에 깎여 나가는 가죽을 금방 재생시킬 수는 없었다.
푸스스!
갈려 나간 베시의 가죽 입자가 먼지처럼 허공에 흩날렸다.
그 모습을 본 판트시가 절규했다.
“안 돼! 나의 베시가…….”
키이이!
베시가 고주파 비명을 터트렸다.
판트시에게도 베시의 아픔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마치 자신의 살이 뜯겨 나가는 것 같은 아픔에 판트시가 눈물을 흘렸다.
베시는 샌드 믹서의 영역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몸부림을 칠수록 베시의 몸은 중력에 의해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
모래에 파묻힌 부위가 많아질수록 고통은 커졌다.
베시의 고통에 판트시가 피눈물을 흘렸다.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그의 가슴에서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제온이 만든 상처였다. 하지만 자신의 상처 따윈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판트시가 마나를 끌어모으며 소리쳤다.
“끝나지 않는 혼돈의 감옥에서 영원히 배회하거라. 프리즌 오브 카오스(Prison of Chaos).”
순간 제온의 머리 위가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검은 기운은 제온이 피할 사이도 없이 뒤덮었다.
제온은 순간 시야가 암전되는 것을 느꼈다.
몸이 허공에 뜬 것 같은 아찔한 부유감이 엄습했다.
그 때문에 제온이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잠시 후 균형을 회복한 제온이 고개를 들었을 때는 주변의 풍경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빛 한 점 보이지 않는 완벽한 암흑 세상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어디가 바닥이고, 어디가 천장인지 알 수조차 없는 완벽한 암흑 세계는 제온의 감각을 교란했다.
제온은 본능적으로 판트시의 저주에 당했음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그에겐 저주술사의 저주에 특효약인 물건이 있기 때문이다.
제온은 아공간을 열어 사신의 낫을 꺼내려 했다.
“응?”
제온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공간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온이 오른팔을 바라봤다.
오른팔에 차고 있어야 할 초열의 건틀렛이 보이지 않았다.
초열의 건틀렛뿐만 아니라, 엘루라의 눈물, 레비아탄의 가죽으로 만든 로브까지 모두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뜻밖의 상황 앞에서 제온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빠르게 이성을 회복했다.
‘내가 느끼지도 못한 사이에 아이템이 사라질 리 없다. 그렇다면 여긴 내 육체와 격리된 심상 공간이구나.’
제온은 자신이 방심했음을 인정했다.
저주술사인 판트시에게 큰 상처를 입혔으니, 그다지 위협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거기에 사신의 낫까지 보유하고 있으니 판트시의 저주 따윈 신경 쓰지 않고, 키메라인 베시를 제거하는 데만 집중했다.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역시 방심하면 안 돼.’
제온은 큰 교훈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이런 느슨함과 안일함이 결국 목숨을 잃게 만드는 것이다.
제온은 칠흑처럼 어두운 공간을 노려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시간의 흐름도 느껴지지 않는다.
암흑 공간에 갇힌 지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찰나일 수도 있고, 며칠이 지난 걸 수도 있었다.
그 때문에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황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제온은 이런 상황에 매우 익숙했다.
그래서 당황하지도, 이성을 잃지도 않았다.
‘저주를 깨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현실을 직시하는 것.’
저주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육체에 위해를 가하는 저주가 있고, 오직 정신에만 관여하는 저주가 있었다.
지금 제온이 겪고 있는 저주는 후자였다.
육체는 내버려 두고, 오직 정신에만 저주가 작용하고 있었다.
지금 보고 있는 것, 경험하는 것 모두 실제가 아니다.
두뇌가 만들어 낸 환각에 불과했다.
다만 환각치곤 너무 정교하다는 게 문제였다.
자칫하다가는 진짜라 믿고 평생을 이곳에서 보내게 된다.
평생 보내는 대가는 당연히 죽음이다.
제온은 정신을 집중해 저주의 실체를 파악하려 했다.
그때 제온의 앞 어둠이 갈라지더니 누군가 저벅저벅 걸어 나왔다.
거대한 검을 바닥에 질질 끌며 걸어 나오는 이를 본 순간 제온의 눈이 크게 떠졌다.
공간을 찢고 나타난 이는 거대한 덩치에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산하는 노인이었다.
자신의 몸보다 거대한 검을 쥔 노인을 보는 순간 제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가끔씩 그리워했던 유일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데……이오든?”
이 세상에 검을 쓰는 각성자는 많지만, 저렇게 보는 것만으로 전신이 위축되게 만드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산하는 이는 데이오든이 유일했다.
그의 손에 들린 저 거대한 검은 크레이온이 분명했다.
무려 팔 년 만에 보는 데이오든의 모습에 제온이 살짝 몸을 떨었다.
진짜가 아니란 것은 알고 있었다.
저주가 자신의 두뇌에 깊이 각인된 존재를 찾아 구현한 것이란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몸이 떨리고, 심장이 격렬하게 고동쳤다.
같이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존재가 바로 데이오든이었다.
데이오든이 없었다면 지금의 제온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만큼 깊이 각인된 것이 당연했다.
데이오든이 크레이온을 들어 제온을 겨누며 말했다.
“병신아!”
“하하!”
제온이 대답 대신 웃었다.
어이없어 웃었고, 기분 좋아 웃었다. 마지막으로 기분 나빠 웃었다.
이런 상황 자체를 만든 저주술사에게 화가 났다.
그나마 추억이라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를 이렇게 소환해 엉망으로 먹칠하는 판트시에게 살의가 치솟았다.
그 전에 이 공간에서 벗어나야 했다.
그러려면 저 데이오든을 쓰러트려야 했다.
데이오든이 이 혼돈의 공간을 깨는 키가 분명했다.
“조금 쓸 만해졌느냐? 병신!”
“아마 많이 쓸 만할 겁니다.”
“주둥이로 떠드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
“하하!”
“덤벼라. 병신아!”
“기꺼이…….”
어차피 한 번은 넘어야 할 존재였다.
비록 그것이 실체가 아니라 그의 마음이 그려 낸 환상일지라도 말이다.
그가 알고 있는 최강의 남자.
그 어떤 각성자보다 크고 강한 등을 가진 남자가 자신을 향해 크레이온을 겨누고 있었다.
한 번쯤 상상해 봤다.
처음 데이오든을 만났을 때처럼 애송이 시절이 아니라, 지금과 같은 전성기에 그와 싸웠으면 어땠을까 하는.
절대 이룰 수 없는 꿈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머릿속에서나마 이루게 됐다.
“병신, 누굴 눈앞에 두고 딴생각을 하는 거냐? 그러니까 네가 저주 따위에 당하는 거다.”
츄화학!
데이오든이 비웃음과 함께 제온을 공격해 왔다.
제온이 고개를 들었을 때는 크레이온이 어느새 목에 도달해 있었다. 하지만 제온은 당황하지 않았다.
“누가 딴생각을 했다는 겁니까?”
콰앙!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모래 벽이 나타나 크레이온을 막았다.
크레이온에 부딪친 모래 벽이 산산이 터져 나갔다.
모래 벽이 잠시 막아 준 덕분에 제온은 무사히 크레이온을 피할 수 있었다.
칠흑 같은 공간에서 모래가 나타났음에도 제온은 놀라지 않았다.
저주에 의해 격리된 공간일지라도, 결국은 그의 머리, 혹은 심상 속이다.
가장 깊이 각인된 존재가 데이오든이라면, 그의 DNA와 연결된 존재가 모래다.
아무리 저주에 당해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모래를 끌어 쓸 수 있다. 그것이 비록 심상 속일지라도 말이다.
“어디 해 보자고.”
푸화하학!
수십 줄기의 모래가 어둠을 찢고 데이오든에게 날아갔다.
제온이 샌드 블라스터를 펼친 것이다. 하지만 샌드 블라스터는 데이오든에게 도달하기도 전에 크레이온에 분쇄됐다.
쿠콰콰쾅!
폭음이 터지고, 모래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한 줄기 검광이 어둠을 가르고, 제온이 서 있던 공간이 잘려 나갔다. 하지만 그때는 제온이 이미 모래를 타고 이동한 후였다.
그런 제온을 쫓아 데이오든이 무섭게 달려왔다.
흩날리는 머리카락, 먹이를 노리는 사자처럼 번뜩이는 눈동자.
예전이었다면 분명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제온은 그때의 애송이가 아니었다.
수십 기의 샌드 솔저가 일어나 데이오든을 막아섰다. 하지만 샌드 솔저로 데이오든의 돌진을 막는다는 것은 애초 불가능했다.
제온도 그렇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약간의 시간뿐이었다.
“샌드 스톰!”
모래 폭풍이 휘몰아친다.
거대한 모래 폭풍은 데이오든을 휘감은 채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촤화학!
하지만 데이오든은 그마저도 찢어발기며 제온에게 덤벼들었다.
“크하하!”
데이오든의 광소가 어둠에 울려 퍼졌다.
제온은 그런 데이오든을 향해 모든 스킬을 펼쳤다.
바이퍼, 크레모아, 샌드 믹서까지 자신이 펼칠 수 있는 스킬을 모두 동원했다. 하지만 그 어떤 스킬로도 데이오든을 막아 내지 못했다.
푸화학!
오히려 제온의 옆구리가 크레이온에 길게 갈라지며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어떤 스킬을 써도 모두 분쇄하고 달려드는 데이오든의 모습은 차마 꿈에 볼까 두려웠다.
그는 모든 각성자들의 악몽이었다.
그 어떤 각성자도 근접전으로는 데이오든을 이길 수 없었다.
그것이 비록 심상일지라도 말이다.
“정말 지긋지긋하다니까.”
적으로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존재다.
아마 이 순간이 지나면 두 번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거다.
이렇게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마지막 순간만큼은 제대로 장식하고 싶다.
지글! 지글!
데이오든이 딛고 있는 바닥이 녹아내렸다.
제온이 초열의 건틀렛 도움 없이 샌드 게헤나(Sand Gehenna)를 펼친 것이다.
모래가 녹아 용암이 됐다.
거대한 용암의 파도가 데이오든을 덮쳤다.
촤하학!
“소용없다니까. 병신아!”
데이오든이 크레이온으로 용암의 파도를 잘라 내며 그를 비웃었다.
제온도 웃었다.
“소용 있다니까, 노인네!”
또다시 거대한 용암 파도가 일어났다.
일파(一波).
이파(二波)
삼파(三波).
중첩된 용암 파도는 그 자체로 거대한 쓰나미가 되었다.
용암 쓰나미는 그대로 데이오든을 집어삼켰다.
가공할 열기에 데이오든의 머리와 수염이 타고, 피부와 근육이 녹아내렸다.
“크아앗!”
하지만 데이오든은 기합과 함께 용암 쓰나미를 모두 튕겨 내고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그가 제온을 향해 크레이온을 휘두르려는 순간이었다.
푸욱!
갑자기 용암 속에서 거대한 검이 튀어나와 그의 가슴을 관통했다.
“무슨?”
데이오든이 허공에서 자신을 관통한 검을 바라봤다.
흠집 하나 없는 새까만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 검이었다.
길이만 수십 미터에 이르는 다이아몬드가 현실에 존재할 리 없었다.
데이오든이 물었다.
“이건 뭐냐?”
“제 목표입니다.”
“목표?”
“모래와 화염의 권능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마지막 무기.”
“하하! 고온 고압으로 모래를 녹여 다이아몬드 검을 만든다고? 이게 현실에서 만들어질 것 같으냐?”
“그러니까 목표라고 한 겁니다. 아직은 이렇게 꿈속에서밖에 사용할 수 없지만…….”
“병신 새끼! 쓸데없이 상상력만 좋아서…….”
“상상력이야말로 인간을 발전하게 만드는 원동력이죠. 어떻습니까? 아직도 제가 쓸모없는 병신으로 보입니까?”
“아니!”
“…….”
“제법 쓸 만해진 병신으로 보인다.”
“거참 끝까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제온을 보며 데이오든이 하얀 이를 드러냈다.
“꼴사납게 언제까지 처잘 거냐?”
“이제 일어나야죠.”
“크흐흐!”
“안녕입니다, 데이오든!”
제온이 데이오든에게 작별 인사를 고한 그 순간 그를 둘러싼 어둠이 유리처럼 깨져 나갔다.
파카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