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78)
278화
눈을 뜬 제온의 시야에 판트시가 놀란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제온에게 저주를 쏟아붓던 모습 그대로였다.
꽤 오랜 시간 데이오든과 싸웠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에서는 불과 1초 정도밖에 흐르지 않은 것이다.
제온과 판트시의 시선이 마주쳤다.
제온의 눈에 초점이 돌아온 것을 확인한 판트시가 소리쳤다.
“어, 어떻게? 분명 프리즌 오브 카오스(Prison of Chaos)가 제대로 들어갔는데?”
프리즌 오브 카오스는 이름 그대로 혼돈의 감옥에 정신을 집어넣는 저주였다.
저주를 건 자가 해주(解呪)하기 전에는 절대 빠져나올 수 없었다.
이 저주에 걸리면 의식을 찾지 못해 육체가 말라 죽는다.
하지만 저주를 쓴 자도 막대한 반동을 감당해야 했다.
원래 저주라는 것은 양면의 동전이었다.
대가 없이 함부로 저주를 뿌릴 수 있을 만큼 세상은 만만하지 않았다.
제대로 된 저주를 뿌리려면 시전자도 대가를 치러야 했다.
판트시는 프리즌 오브 카오스를 쓰기 위해 젊음을 포기했다.
실시간 그의 얼굴에 깊은 주름이 패고, 피부가 푸석푸석하게 변해 가고 있었다.
순식간에 수십 년의 세월을 정통으로 맞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렇게 막대한 희생을 치르고 펼친 프리즌 오브 카오스였다.
판트시는 당연히 제온이 이 저주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제온이 저주에 빠져 있는 사이 베시에게 잡아먹게 하는 것이 판트시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베시가 미처 모래를 빠져나오기도 전에 제온이 저주를 부수고 정신을 차렸다.
“너, 너?”
예상외의 상황에 판트시가 말을 잇지 못하고 더듬거렸다.
제온이 팔뚝을 바라봤다.
초열의 건틀렛이 멀쩡하게 있었다.
저주에서 벗어나 현실로 복귀했다는 증거였다.
현실로 돌아온 그의 눈에 당황한 판트시와 모래에서 빠져나오려는 베시가 보였다.
놈은 아직도 모래에 반쯤 파묻힌 채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제온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샌드 믹서에 갈려 나갔던 가죽이 재생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엄청난 재생력이었다.
이대로 놔두면 금방 본래의 위용을 되찾을 것이다.
제온은 그렇게 되게 놔둘 생각이 없었다.
“샌드 게헤나.”
심상에서 데이오든에게 펼쳤던 그 스킬을 펼쳤다.
모래의 권능과 초열의 건틀렛 권능이 결합된 사기적인 스킬이 베시 주위의 모래를 용암으로 만들었다.
순식간에 모래가 녹아내리더니 용암처럼 지글지글 끓었다.
키이이!
온몸을 익히는 가공할 열기에 베시가 몸부림쳤다.
베시는 버둥거리며 용암을 빠져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제온이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샌드 믹서!”
가아아앙!
용암이 된 모래들이 격렬히 회전했다.
말 그대로 베시에게 샌드 게헤나가 펼쳐졌다.
도망갈 수도, 숨을 수도 없었다.
초고열의 용암은 격렬하게 회전하며 베시의 가죽을 갉아 내고, 외부에서부터 익혀 나갔다.
제아무리 수많은 마수의 장점을 결합해 만들어 낸 키메라라지만, 이런 공격을 견딜 수는 없었다.
키에에에!
베시의 하체부터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가죽이 갈려 나가는 것과 차원이 다른 고통에 베시가 크게 울부짖었다.
“으아악!”
베시와 감정을 공유하는 판트시도 비명을 내질렀다.
촤하학!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 베시가 촉수를 날려 제온을 공격했다. 하지만 촉수가 제온의 몸에 닿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파이어 레인!”
제온이 불비를 내려 촉수들을 요격했기 때문이다.
퍼버버버버벙!
폭음과 함께 제온을 덮쳐 오던 수많은 촉수가 불길에 휩싸였다.
몸이 타들어 가는 고통에 베시가 미친 듯이 요동쳤다. 하지만 한번 붙은 불은 꺼질 줄 몰랐다.
“베……시!”
판트시가 멍하니 베시를 바라봤다.
자신의 베시가 죽어 가고 있었다.
베시를 살리려고 아르켈론을 공격했는데, 오히려 베시의 명줄만 줄이는 셈이 됐다.
“이대로 베시를 잃는다고?”
판트시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베시가 없으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A급 저주술사로서 위용을 떨칠 수 있었던 것도 베시가 함께했기 때문이다.
베시를 잃으면 초라했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것 같았다.
“그럴 순 없어!”
판트시가 크게 소리를 지르며 불길에 휩싸인 베시에게 뛰어들었다.
초고열의 화염이 판트시에게 옮겨붙었다.
그나마 베시는 키메라이기에 조금이나마 버틸 수 있었지만, 인간인 판트시는 달랐다.
그의 몸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그런데도 판트시는 웃었다.
“끝까지 함께하는 거다, 베시! 우린 영원히 하나가 될 거야.”
광기 어린 판트시의 모습에 제온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때였다.
마치 판트시의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베시가 그를 휘감았다.
그렇게 하나가 되어 녹아내리는가 싶더니 베시의 거대한 몸체가 폭발했다.
콰아앙!
마치 핵이 폭발한 것처럼 사막 한가운데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
폭발의 충격으로 수백 미터가 운석이 떨어진 것처럼 거대한 크리에이터가 형성됐다.
제온조차 폭발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급히 모래를 파고 지하로 몸을 숨겼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엄청난 충격파가 전신을 강타했다.
온몸이 해체되는 충격에 제온은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았다.
잠시 후 충격파가 모두 사라지고 제온이 구덩이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베시가 폭발한 장소엔 어떤 잔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엄청난 폭발에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증발한 것 같았다.
제온은 잠시 폭발 장소를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그의 시선이 모비딕의 영역을 향했다.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었어. 빨리 따라가야 해.”
제온은 서둘러 어둠이 잠식한 곳으로 들어갔다.
***
“마치 심해 같군.”
모비딕의 영역 내부를 둘러보던 파빌사가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를 들은 클레어가 자신도 모르게 반문했다.
“심해?”
“지금 태어난 아이들은 모를 수도 있겠군. 예전에 지구가 멀쩡했을 때는 바다란 곳이 있었다. 소금물로 이뤄진 물속엔 온갖 물고기와 생명체들이 살았지. 심해는 바다 깊은 곳으로 빛이 들어오지 않아 항상 이렇게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지. 그곳은…….”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십시오.”
파빌사의 말을 끊은 이는 이정호였다.
그의 신경은 매우 예민하게 곤두서 있었다.
모비딕의 영역에 들어온 그 순간부터 위기감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파빌사의 말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파빌사가 사과했다.
“미안하네. 긴장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주저리주저리 떠들었군.”
“이해합니다만, 지금은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알겠네.”
파빌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전방을 바라봤다.
쿵! 쿵!
아르켈론이 둔중한 발소리를 내며 힘겹게 전진하고 있었다.
파빌사가 방향을 지정해 줄 필요가 없었다.
아르켈론이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알아서 방향을 잡고 걸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르켈론!”
파빌사가 아르켈론을 불렀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아니, 그의 목소리 자체를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르켈론의 눈은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초점이 사라져 있었다.
이정호가 말했다.
“소용없을 겁니다. 노랫소리에 완전히 취한 것 같으니까요.”
“노랫소리?”
“들리지 않습니까?”
“그러고 보니…….”
파빌사가 귀를 기울였다.
언제부턴가 은은한 소리가 고막을 자극하고 있었다.
마치 고래의 울음 같은 소리는 듣기에 따라 노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클레어가 말했다.
“모비딕이 내는 소리가 분명해요.”
“음!”
“너무나 신비한 소리예요.”
그녀는 마치 넋이 나간 것 같은 표정으로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바라봤다.
‘진짜 고래 소리 같군.’
파빌사는 진금호만큼이나 오랜 세월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당연히 지금 시대의 사람들은 듣지 못한 고래의 울음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비록 텔레비전에 나온 영상을 통해서였지만.
지금 들려오는 소리는 영상에서 봤던 고래의 울음소리와 완전히 똑같았다.
‘그럼 모비딕은 진짜 고래가 진화한 건가? 아르켈론처럼?’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세상은 정상이 아니니까.
쿵! 쿵!
그 순간에도 아르켈론은 모비딕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그때였다.
푸드득!
어둠 속에서 갑자기 무언가 날갯짓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불길한 날갯짓 소리는 시간이 갈수록 급격히 커졌다.
그 순간 이정호가 전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슈와악!
강렬한 섬광과 함께 무언가 두 동강이 나 아르켈론 등에 떨어졌다.
이정호의 검에 잘린 물체를 확인한 파빌사가 급히 뒤로 물러나며 소리쳤다.
“흡혈박쥐다.”
날개 길이만 무려 일 미터가 넘는 거대한 박쥐.
주둥이엔 어지간한 마수의 어금니만큼이나 커다란 이빨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한번 먹잇감에 이빨을 박으면 모든 피를 빨기 전까지 절대 놓지 않는다는 흡혈박쥐가 분명했다.
문제는 흡혈박쥐가 결코 혼자 다니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흡혈박쥐는 대표적인 군집 마수였다.
후와아앙!
파빌사의 불안한 예감은 곧 현실이 됐다.
어둠을 찢고 수많은 흡혈박쥐가 나타난 것이다.
흡혈박쥐들은 그대로 아르켈론과 파빌사 일행을 공격했다.
평상시라면 흡혈박쥐의 공격 따위를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아르켈론의 방호력은 감히 흡혈박쥐 따위가 넘볼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 아르켈론이 너무나 쇠약해져 있다는 것이다.
역장을 펼치지 못해 맨몸으로 흡혈박쥐의 공격을 그대로 감당해야 했다.
흡혈박쥐의 이빨이 아르켈론을 물어뜯었다. 하지만 놈들의 이빨이 아무리 커도 두꺼운 아르켈론의 가죽을 완전히 뚫을 수는 없었다.
결국 놈들은 목표를 바꿔 인간들을 공격했다.
“제기랄! 할아버지, 이리 와요.”
케일리가 파빌사를 뒤로 숨기며 긴 막대기를 들었다.
퍼엉!
막대기가 화려한 불꽃을 발사했다.
마치 폭죽 같은 불꽃은 그대로 흡혈박쥐들을 덮쳤다.
일반적인 불꽃이 아니었다.
한번 붙으면 절대 꺼지지 않는다는 백린 성분이 들어 있는 불꽃이었다.
긴 막대기는 케일리가 만들어 낸 아이템이었다.
한번 마나를 충전하면 열 번은 사용할 수 있었다.
펑! 퍼엉!
케일리가 연이어 불꽃을 발사했다.
그때마다 흡혈박쥐들이 불길에 휩싸여 추락했다. 하지만 흡혈박쥐 무리는 아직도 어마어마하게 남아 있었다.
케일리가 만든 아이템의 위력은 대단했지만, 흡혈박쥐들 전부를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애들아! 진정해.”
클레어가 능력을 발휘해 흡혈박쥐들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썬더 버펄로와 달리 흡혈박쥐들은 인간들에게 전혀 호의적이지 않았다.
당연히 클레어의 말이 먹히지 않았다.
그때였다.
“모두 엎드려.”
이정호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클레어와 파빌사, 케일리는 이유도 묻지 않고 바닥에 바싹 엎드렸다.
쐐애액!
그 순간 섬뜩한 파공음과 함께 날카로운 기운이 그들 등을 스치다시피 지나갔다.
고개를 들자 이정호가 검 한 자루를 들고 흡혈박쥐 무리 사이로 뛰어드는 것이 보였다.
이정호가 종횡으로 검을 그으며 발생한 검광이 어둠 속에서 번쩍였다.
그가 한 번씩 검을 휘두를 때마다 십여 마리가 넘는 흡혈박쥐들이 베어졌다.
심안으로 흡혈박쥐의 움직임을 미리 감지해 검을 휘두르는 그의 모습은 무섭게 섬뜩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세 사람은 넋을 잃고 이정호를 바라봤다.
그를 새까맣게 뒤덮고 있던 흡혈박쥐들이 모조리 사라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채 십 분이 되지 않았다.
서걱!
마지막 한 마리까지 베어 버린 후에야 이정호가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효율이 좋지 않군.”
역시 이렇게 많은 마수를 상대하는 것은 그의 적성에 맞지 않았다. 차라리 거대한 마수 한 마리를 상대하는 게 좋았다.
쿠워어!
크왕!
그 순간 곳곳에서 마수들의 울음이 터져 나왔다.
모비딕의 영역에 들어온 마수들이 자기들끼리 피 터지게 싸우는 것이다.
이정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개판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