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79)
279화
쾅!
쿠우오!
폭음과 함께 거대한 마수가 쓰러졌다.
B급 마수인 폭렬 하마였다.
폭렬 하마는 체고만 십 미터에 달하는 거대 마수로 특이하게 붉은 땀을 흘렸는데, 이 붉은 땀이 다른 마수의 공격을 받으면 폭발했다.
그 때문에 어지간한 마수들은 감히 폭렬 하마를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폭렬 하마는 성격이 포악하고, 공격성이 강했다.
커다란 입엔 성인 남성보다 큰 이빨들이 나 있었는데, 어지간한 마수의 가죽 따윈 단숨에 뜯어낼 수 있을 만큼 날카로웠다.
그 때문에 어지간한 마수들은 감히 폭렬 하마를 공격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렇게 무서운 마수조차 이곳에선 한낱 다른 마수의 먹잇감에 불과했다.
우적! 우적!
죽은 폭렬 하마의 다리를 뜯어먹는 마수는 그레이 오우거였다.
폭렬 하마를 죽인 것도 바로 그레이 오우거였다.
강력한 B급 마수조차 그레이 오우거에겐 한낱 먹잇감에 불과했다.
폭렬 하마의 다리를 뜯어먹는 그레이 오우거의 두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레이 오우거는 폭렬 하마의 다리를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덕분에 온몸에 힘이 넘쳐흘렀다.
크르르!
그레이 오우거가 주위를 둘러봤다.
모비딕의 영역엔 그레이 오우거뿐만 아니라 많은 마수들이 들어와 있었다.
개중에는 그레이 오우거에 필적할 만한 힘과 권능을 가진 마수들도 다수 있었다.
허공을 선회하는 크림슨 드레이크도 그레이 오우거 못지않은 폭군이었다.
그런 마수들이 모두 모비딕이 발산하는 알 수 없는 기운에 끌려 이곳에 왔다.
평소라면 제아무리 그레이 오우거라도 감히 모비딕의 영역에 들어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
모비딕은 단순히 큰 고래가 아니었다.
놈은 그레이 오우거보다 훨씬 위 등급의 마수였다.
권능 또한 비교할 수 없이 강했다.
그레이 오우거 따윈 한입에 집어삼킬 수 있을 만큼 강력했다.
그 때문에 그레이 오우거도 모비딕을 보면 없는 꼬리를 말고 도주해야 했다.
다른 마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하늘의 패자인 것처럼 위풍당당하게 하늘을 날고 있는 크림슨 드레이크도 모비딕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크림슨 드레이크가 아무리 물어뜯어 봤자 모비딕의 가죽엔 흠집도 나지 않는다. 지닌 권능에서도 상대가 되지 못한다.
모비딕에게 크림슨 드레이크는 귀찮게 구는 모기 정도에 불과했다.
그 때문에 평소 크림슨 드레이크도 모비딕이 나타나면 피하기 바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모비딕이 공격성이 거의 없는 마수라는 것이다. 만일 놈이 다른 S급 마수들처럼 강한 공격성을 가졌다면 어지간한 마수들은 모두 놈의 배 속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모래와 하늘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모비딕에서 도망간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공격 성향이 없어서 그나마 마수들의 생태계가 온전히 유지되는 것이지, 아니었다면 이미 파탄이 났을 것이다.
킁킁!
그레이 오우거가 냄새를 맡았다.
모비딕의 냄새가 강하게 풍기고 있었다.
냄새를 맡자 확신할 수 있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모비딕은 약해졌다.
모비딕이 강했을 때는 냄새를 맡기만 해도 두려움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차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두려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모비딕이 약해졌다는 증거였다.
남은 힘을 끌어모아 영역화를 펼쳤지만, 멀쩡했을 때에 비하면 턱도 없이 약했다.
크르르!
그레이 오우거가 흉측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보다 상위의 마수를 잡아먹어 격의 상승을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모비딕은 신비한 마수였다.
거대한 몸통 자체가 마수들에겐 격의 상승을 이룰 수 있는 영약 덩어리나 다름없었다.
누가 알려 준 것이 아니었다.
마수들은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모비딕이 약해졌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이곳에 몰려온 것이다.
그레이 오우거나 크림슨 드레이크 같은 고등급 마수부터 흡혈박쥐 같은 하급 마수까지 모조리 말이다.
아마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마수들이 모여들 것이다.
개중에는 그레이 오우거가 상대하기 힘든 마수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오기 전에 모비딕을 잡아먹어 격의 상승을 이뤄야 했다.
쿵! 쿵!
타고난 사냥꾼은 일생일대의 사냥을 위해 움직였다.
***
푸우우! 푸우우!
아르켈론이 거친 숨을 토해 냈다.
이제 아르켈론의 체력은 한계에 달했다. 그런데도 아르켈론은 쉬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아르켈론이 필사적으로 향하는 곳은 모비딕의 영역 중심부였다.
중심부에 다가갈수록 주변 환경은 심해와 더욱 비슷해졌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깊은 어둠, 부유하는 모래 입자와 자잘한 돌멩이들, 그리고 플랑크톤처럼 빛을 내며 허공을 떠도는 미세한 생명체들까지.
한 번도 보진 못했지만, 말로 듣던 깊은 바닷속과 닮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
케일리는 아르켈론이 급박한 상황이라는 것도 잠시 잊고 눈앞의 풍경을 바라봤다.
난생처음 보는 환상적인 풍경이었다.
오랫동안 사막을 떠돌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꽤 봤다고 자부했는데, 그 어떤 것도 지금 눈앞의 광경엔 비할 수 없었다.
그만큼 모비딕의 영역 중심부는 환상적이었다.
“도대체…….”
케일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가 아는 그 어떤 마수도 이와 같은 권능을 가지지 못했다. 모비딕의 정체가 뭐기에 이런 권능을 펼칠 수 있는 건지 궁금했다.
그때였다.
“으음!”
갑자기 이정호가 신음을 내뱉었다.
“왜 그…….”
이유를 물으려던 케일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갑자기 엄청난 압력이 그녀를 짓눌렀기 때문이다.
이정호 역시 그녀와 같은 압력을 느끼고 반응하는 것이 분명했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파빌사와 클레어도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 역시 강한 압력에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것이다.
케일리의 눈에 핏발이 섰다.
당장은 어떻게 버틸 수 있을 것 같지만, 얼마나 더 오래 버틸 수 있을지는 자신할 수 없었다.
평소의 그녀였다면 이쯤에서 돌아갔을 것이다.
위험을 정면으로 감수하는 것은 그녀의 스타일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아르켈론의 목숨이 달린 일이었다.
이제 와 돌아갈 수는 없었다.
“아르켈론! 우리 힘내자. 조금만 더 버티면 돼.”
푸우우!
마치 그녀의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아르켈론이 거친 숨소리를 냈다.
그때 저 멀리 은은한 빛이 보였다.
새하얀 빛은 영역의 중심부에서 발산되고 있었다.
빛을 보는 순간 케일리는 마음이 묘하게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런 기분은 또 처음이었다.
강한 압력이 자신을 짓누르고 있다는 사실도 잊고, 그녀는 멍하니 하얀빛을 바라봤다.
그때 이정호의 목소리가 그녀의 정신을 일깨웠다.
“모비딕이다.”
“네?”
그제야 케일리가 정신을 차리고 새하얀 빛을 자세히 바라봤다. 그러자 빛 안쪽에 거대한 고래가 떠 있는 것이 보였다.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몸체. 마치 날개처럼 몸체 양쪽으로 나 있는 지느러미. 유순해 보이는 커다란 눈동자.
대왕고래와 닮았지만, 그보다 몇배는 더 큰 거대한 고래는 모비딕이 분명했다.
“저게 어떻게 하늘에 떠 있는 거지?”
이정호가 입술을 질겅 깨물었다.
몸통 길이만 백 미터가 넘는 거대한 고래는 마치 중력의 영향 따윈 받지 않는다는 듯이 허공에 둥실 떠 있었다.
이정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테라포밍의 부작용으로 세상의 많은 법칙이 무너졌지만, 그래도 중력의 법칙만은 유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모비딕은 중력의 법칙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정호의 표정이 살벌하게 변했다.
이제야 자신이 사냥해야 할 마수가 상식을 벗어난 괴물이라는 것이 실감 났기 때문이다.
몸통 길이만 백이십 미터가 넘는 거대한 고래가 허공에 뜬 채 하얀빛을 발산하는 모습은 신성하기까지 했다.
저런 거대한 마수를 상대로 자신의 검이 얼마나 통할지 알 수 없었다.
저 거대한 고래에 비하면 자신은 허공에 떠 있는 먼지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두렵지는 않았다.
진금호는 절대 임무를 허투루 주지 않는다.
수행 가능한 명령만 내린다.
천안을 가진 진금호의 눈에는 미래의 흐름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정호가 완수할 수 있다고 판단을 내린 거니까 명령을 내린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크와아아!
그때 괴성과 함께 어둠을 뚫고 거대한 마수들이 나타났다.
크림슨 드레이크와 그레이 오우거, 그리고 늑대거미를 수백 배로 뻥튀기시켜 놓은 것처럼 거대한 자이언트 스파이더였다.
셋 모두 A급 마수였다.
세 마수는 아르켈론은 본체만체 지나쳤다.
놈들의 목표는 오직 모비딕 하나였다.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가는 세 마수의 모습은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크와아아!
제일 먼저 공격한 것은 크림슨 드레이크였다.
크림슨 드레이크의 입에서 화염이 발사됐다.
불길이 지나간 자리의 모래가 순식간에 녹아내릴 정도의 초고열 화염이었다.
크림슨 드레이크의 스킬인 파이어 브레스였다.
진짜 드래곤의 브레스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일대를 초토화시킬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지간한 마수 따윈 단숨에 증발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불길이 모비딕의 거대한 몸체에 작렬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모비딕은 어떤 타격도 받지 않았다.
모비딕의 몸체에서 발산되는 새하얀 빛이 파이어 브레스를 막아 줬기 때문이다.
다음 공격은 그레이 오우거였다.
그레이 오우거가 거대한 몽둥이를 휘둘렀다.
몽둥이에는 붉은 기운이 어려 있었다.
고위급 무투계 각성자처럼 오러를 사용하는 것이다.
쾅!
오러가 어린 몽둥이가 새하얀 빛에 작렬했다. 하지만 크림슨 드레이크의 파이어 브레스와 마찬가지로 새하얀 빛을 뚫지는 못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자이언트 스파이더가 독액이 어려 있는 거미줄을 발사했다.
치이이익!
녹색의 거미줄이 새하얀 빛에 닿자마자 메케한 연기를 뿜어냈다.
무슨 이유에선지 마수들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모비딕은 반격하지 않았다.
거대한 꼬리만 휘둘러도 자이언트 스파이더 따윈 압살할 수 있으면서도 꼼짝하지 않는 것이다.
아마 모종의 이유로 꼼짝할 수 없는 것 같았다.
그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는지 세 마수는 방어 따윈 신경도 쓰지 않고 모비딕을 공격했다.
콰앙!
쾅!
세 마수가 쓰는 스킬에 모비딕의 새하얀 빛으로 이뤄진 실드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때였다.
곳곳에서 중형, 소형 마수들이 나타났다.
마치 어두운 밤 등대를 본 배처럼 마수들은 미친 듯이 모비딕을 향해 돌진했다.
쿠워어어!
크와앙!
마수들이 울부짖으며 모비딕을 공격했다.
그래 봤자 모비딕의 실드를 뚫을 수는 없었다.
오히려 크림슨 드레이크, 그레이 오우거, 자이언트 스파이더의 스킬에 휩쓸려 목숨을 잃는 마수들이 속출했다.
그런데도 마수들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모비딕에게 달려들었다.
목숨마저 도외시하고 달려드는 마수들의 모습은 이정호와 파빌사를 질리게 하기 충분했다.
파빌사가 겨우 입을 열었다.
“어서 모비딕을 구해야 하네. 저대로 마수들에게 당하면 아르켈론을 치료할 수 없어.”
“아니, 우리는 이 자리에서 대기합니다.”
“그게 무슨?”
“차라리 잘됐습니다. 모비딕이 마수들을 상대하다가 지치면 그때 내가 나서서 죽이면 됩니다.”
“그러면 아르켈론을 구하지 못할 수도 있어.”
“이미 다 늙은 거북입니다. 차라리 이대로 죽는 게 녀석을 위해서도 좋을 겁니다.”
“그런? 처음부터 아르켈론을 구할 생각 따윈 조금도 없었군. 우리는 따로 움직이겠네. 아르켈론에서 어서 내리게.”
스릉!
그 순간 차가운 검날이 파빌사의 목에 닿았다.
이정호의 검이었다.
그가 파빌사의 목에 검을 겨눈 채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들의 싸움이 끝날 때까지 우린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정호의 입가엔 서늘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이제야 진금호가 모비딕처럼 거대 마수를 잡는 데 자신과 클레어만 보냈는지 알 수 있었다.
바로 지금과 같은 상황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손 안 대고 코를 풀 수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