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8)
28화
위이잉!
날갯짓하는 여왕벌의 눈에 제온의 상이 맺혔다.
여왕벌은 알고 있었다.
자신의 무리에 심각한 타격을 입힌 존재가 제온라는 것을 말이다.
여왕벌은 마수였지만, 인간에 가까운 지능을 갖고 있었다.
그 때문에 고두원처럼 무작정 공격하는 게 아니라 신중하게 탐색하고 있었다.
제온은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거대한 마수인 여왕벌을 마주하고도 크게 두려운 마음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각성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수많은 마수들과 싸웠다.
그가 싸워 온 마수들은 결코 여왕벌에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개체의 위험도만 따지면 여왕벌을 능가하는 놈들도 있었다.
여왕벌이 무서운 것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폭탄벌을 부릴 때였다.
수하를 대부분 잃은 지금은 그리 위험하지 않았다.
제온이 자만해서 그렇게 판단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제온은 그 누구보다 냉정했다.
스킬은 곧 각성자가 품고 있던 재능의 개화다.
조건과 시기, 그리고 본인의 노력과 감이 조화를 이룰 때 진화한다.
초기의 각성자는 다 그렇게 자신의 스킬을 깨닫고 발전시켰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면서 효율적으로 스킬을 발전시키는 방식이 만들어졌다.
일종의 공식이 만들어진 셈이다.
대부분의 각성자가 이와 같은 방식을 따른다. 낭비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방식엔 큰 단점이 존재한다.
바로 정해진 공식을 따르다 보니 사고의 폭이 제한된다는 것이다.
공식이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하니, 그 외의 방법을 굳이 탐구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제온은 달랐다.
모래를 부리는 각성자는 그가 유일했다.
아무도 가 본 적이 없는 길이었다.
때문에 필사적으로 생각하고, 스스로 최적의 성장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런 노력과 고민 덕분에 제온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냉철한 이지를 얻게 되었다.
물론 거기엔 데이오든의 가르침을 빙자한 방관도 한몫했다.
‘내가 상성의 우위를 점하고 있다.’
문제는 어떻게 해야 여왕벌의 배에 매달려 있는 하르를 무사히 구하느냐였다.
여왕벌을 죽여도, 그녀를 구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었다.
제온에게 일종의 핸디캡이 주어진 것이다.
머리에 그림을 그렸다.
하르를 구하는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 여왕벌이 더 참지 못하고 공격해 왔다.
쉬잉!
거의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여왕벌의 거대한 동체가 제온을 덮쳤다.
순간 제온이 모래 장벽을 세웠다.
이전까지 펼치던 것보다 높고, 두꺼웠다.
제아무리 여왕벌이라도 이 정도 두께의 모래 장벽에 부딪히면 적잖은 충격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충격음은 들리지 않았다.
모래 장벽에 부딪히기 직전 여왕벌이 예상했다는 듯이 궤도를 틀었기 때문이다.
여왕벌은 급정거 후 수직으로 치솟아 올랐다.
슈웅!
허공 높은 곳에서 제온을 내려다보던 여왕벌이 그대로 내리꽂혔다.
처음 공격은 페이크였고, 이번이 진짜 노림수였던 것이다.
그러나 제온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 역시 그의 예상 범주 안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챠앗!”
콰콰콰!
제온의 발 근처에 있던 모래들이 응축해 여왕벌에게 쏘아졌다.
고압으로 모래를 쏘는 샌드 블라스터였다.
펑펑펑!
여왕벌의 몸체에 샌드 블라스터가 연이어 적중했다.
그때마다 여왕벌의 거대한 몸통이 크게 흔들렸다.
샌드 블라스터 하나하나의 위력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왕벌의 균형을 살짝 무너트리기엔 충분했다.
그 때문에 여왕벌의 비행 속도가 조금 늦춰졌다.
그사이 제온은 모래 걸음으로 여왕벌의 비행 궤적에서 살짝 벗어났다.
슈웅!
여왕벌이 간발의 차이로 그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순간 제온이 샌드 미사일을 날렸다.
펑!
폭음과 함께 하르가 매달려 있던 알에 샌드 미사일이 적중했다.
충격에 알과 하르가 동시에 떨어졌다.
‘좋아!’
제온이 미소를 지었다.
머릿속에 그렸던 그림이 그대로 현실이 되는 짜릿함이 그를 전율케 만든 것이다. 하지만 아직 기뻐하긴 일렀다.
마나가 바닥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쉴 새 없이 스킬을 펼친 대가였다.
키이이!
알과 하르를 빼앗긴 여왕벌이 괴성을 내질렀다.
여왕벌이 알과 하르를 빼앗기 위해 다시 날아왔다.
조금 전과 같은 영악한 기색은 없었다. 조급함이 이성을 날려 버린 것이다.
제온이 조용히 읊조렸다.
“샌드 믹서!”
목에 걸린 엘루라의 눈물에서 섬광이 터져 나오며 바닥났던 마나를 순식간에 채웠다.
그 순간 엄청난 모래가 일어나 여왕벌을 감쌌다. 그리고 고속으로 회전했다.
콰아아아!
모래가 고속으로 회전하며 여왕벌을 갉아 냈다.
키에에!
여왕벌이 비명을 지르며 샌드 믹서를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쳤다. 하지만 제온은 샌드 믹서를 교묘하게 조종해 여왕벌을 완벽하게 가뒀다.
고속으로 회전하는 모래에 여왕벌의 날개가 뜯겨져 나가고, 껍질이 부서져 나갔다.
비명이 계속되자 아직 살아 있는 폭탄벌들이 여왕벌을 구하기 위해 날아왔다.
일부는 제온을 공격하고, 나머지는 여왕벌이 갇혀 있는 모래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순간 정신을 차린 고두원이 화살을 날려 제온을 보호했다.
퍼버버벙!
제온의 주위에서 연신 폭탄벌이 터져 나갔다.
덕분에 제온은 정신을 집중해 샌드 믹서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모래 안에서 연신 폭음이 터져 나왔다.
샌드 믹서에 갈린 폭탄벌이 터져 나가는 소리였다.
폭발은 가뜩이나 약해진 여왕벌에게도 큰 타격을 줬다. 여왕벌을 구하기 위해 뛰어든 폭탄벌의 충성심이 오히려 그녀를 상처입히는 것이다.
빠가각!
마침내 여왕벌의 머리에 큰 구멍이 뚫렸다.
구멍을 파고든 모래가 뇌와 내부의 장기를 갉아 냈다.
고속으로 회전하는 모래는 어느새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오케이! 여기까지.”
그 순간 제온이 스킬을 멈췄다.
겉으로 태연한 척 말했지만, 그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정신력과 마나가 완전히 동났기 때문이다.
쿵!
샌드 믹서가 멈추자 여왕벌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여왕벌의 상태는 실로 처참했다.
머리는 날아가서 보이지 않았고, 몸체 곳곳에 모래에 갈린 자국이 선명했다. 고속 비행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던 날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오랫동안 검은 숲을 지배해 왔던 마수의 최후답지 않게 초라한 모습이었다.
“하르야!”
위협이 사라지자 고두원이 딸에게 달려갔다.
“아빠?”
하르가 알을 안은 채 고두원을 바라봤다.
“괜찮니?”
“난 괜찮아!”
하르가 힘겹게 대답했다.
고두원의 시선이 그녀의 품에 안고 있는 알에 향했다.
“여왕벌의 알을 왜 안고 있어? 어서 버려.”
“이거 알 아냐.”
“뭐?”
“여왕벌이 낳은 알이 아니라고.”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그냥 알아.”
“무슨?”
“이 아이가 나를 불렀어.”
“알이 너를 불렀다고?”
“응!”
하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집 앞에서 놀고 있을 때 그녀는 강렬한 끌림을 느꼈다.
알이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부름에 이끌려 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여왕벌 앞에 있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폭탄벌들이 공격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그녀는 무사했다.
알이 그녀를 보호해 줬기 때문이다.
고두원이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하르가 안고 있는 알을 바라봤다.
알에선 은은한 푸른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알과 똑같은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껍질이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푸른빛이 둥글게 압축된 것 같았다.
고두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존재가 있었다.
“혹시 정령의 알인가?”
그의 아내는 말했었다.
이 땅은 정령이 살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됐다고, 그래서 정령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언젠가 정령이 탄생하기를 바랐다.
고두원이 호기심에 물었다.
“정령은 어떻게 탄생하는 거지?”
“자연의 바람, 그리고 스스로 존재하려는 의지예요. 여기에 인간, 혹은 엘프들의 염원이 더해지면 어디선가 정령이 탄생해요. 태초의 정령은 알 형태로 존재하는데, 생명의 염원을 먹고 성장하다가 어느 순간 껍질을 깨고 나와요.”
그러니까 하르가 안고 있는 정령의 알은 여왕벌의 알집에서 스스로 태어난 것이 분명했다. 그편이 생존하기에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르를 불렀다.
‘하르가 하프 엘프이기 때문이지.’
원래 엘프들은 강한 정령 친화력을 갖고 태어난다고 했다. 주위에 다른 엘프가 없으니 하프 엘프인 하르를 부른 것이 분명했다.
“그래! 이건 정령의 알이 분명하다.”
“정령의 알? 그럼 이 안에서 정령이 태어난단 말입니까?”
제온이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각성자가 판을 치는 세상이었다.
거기에 정령이 더해진다고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제온은 정령이라는 단어조차 처음 들었다.
하르가 경계하는 기색도 없이 제온에게 정령의 알을 내밀었다.
“한번 만져 볼래요?”
“그래도 돼?”
“응!”
제온이 조심스럽게 정령의 알에 손을 가져다 댔다.
순간 손바닥에서 묘한 온기가 느껴졌다.
온기는 손을 타고 심장에까지 전해졌다.
“으음!”
기묘한 느낌에 제온이 손을 뗐다. 그러자 하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맙대요.”
“누가? 알이?”
“네!”
“너는 알의 목소리가 들리니?”
“네! 여왕벌의 둥지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 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대요.”
“그게 너였단 거구나.”
“네! 오빠가 떠나면 더 이상 기회가 없을 것 같아 무리해서 불렀대요.”
“음!”
하르는 천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녀가 거짓을 말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때 고두원이 제온의 손을 잡았다.
“정말 고맙네! 덕분에 딸도 구하고, 검은 숲도 되살릴 수 있게 됐어. 모두 자네 덕분일세.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군.”
“됐습니다. 이거면 충분합니다.”
제온이 목에 걸린 엘루라의 눈물을 보며 대답했다.
보면 볼수록 대단한 물건이었다.
하루에 한 번 마나를 완전히 회복시켜 주는 아이템.
덕분에 마나 걱정을 덜어 낼 수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이득이었다.
“이제 나가죠. 아침까지 돌아가지 못하면 데이오든이 저를 버리고 떠날 겁니다.”
“차라리 이곳에 남는 게 어떤가? 데이오든을 따라가는 것보다 그게 백배 나을 걸세. 아는지 모르지만, 데이오든이 가려는 길을 동행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질세.”
“알고 있습니다.”
“그럼 이곳에 남을 텐가?”
“그래도 따라갈 겁니다.”
“대체 왜?”
“그냥 오기가 생겨서요.”
제온이 웃었다.
지금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고두원이 그런 제온을 잠시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더는 설득하지 않았다.
제온의 능력이 탐나긴 했지만, 가장 큰 위협인 폭탄벌 무리가 모두 제거되었으니 없어도 됐다.
폭탄벌이 제거된 검은 숲은 매우 고요했다.
탄화된 나무들이 만들어 낸 거대한 그늘은 이 세상 풍경 같지 않았다.
최소한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검은 숲은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제온이 있을 곳이 아니었다.
그에겐 태양이 작렬하는 사막의 모래 위가 어울렸다.
검은 숲을 나오자 데이오든이 반갑게 맞이한다.
“늦었구나. 병신아!”
‘개 같은 늙은이!’
제온이 미소로 화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