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81)
281화
모비딕보다 부드러운 몸 선을 가진 조그만 새끼 고래는 어미처럼 허공에 떠 있었다.
이제 갓 태어난 듯 새끼 고래의 우윳빛 몸체에선 양수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새끼 고래는 주변의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모비딕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지느러미를 오므리고 있었다.
이정호와 클레어는 그제야 모비딕이 왜 이곳을 영역화했는지 알아차렸다.
“새끼를 낳기 위해 이곳에 둥지를 틀었던 거군.”
“어떤 생명체든 새끼를 낳을 때 가장 약해지니까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영역화를 한 게 분명해요.”
마수들도 모비딕이 약해졌음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고 달려온 것이 분명했다.
크와아아!
그 순간 그레이 오우거를 비롯한 마수들이 일제히 모비딕을 공격했다.
시간이 지나면 모비딕이 본래의 힘을 되찾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마수들이 모비딕을 잡아먹을 기회는 영영 사라진다.
지금이 모비딕을 잡을 마지막 기회였다.
그레이 오우거가 오러가 실린 몽둥이로 모비딕의 거대한 몸체를 후려치고, 크림슨 드레이크는 파이어 브레스로 공격했다. 자이언트 스파이더가 거미줄을 뿜어 모비딕의 거대한 몸체를 꽁꽁 동여맸다.
그에 대항해 모비딕이 거대한 꼬리를 흔들었다.
백이십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몸은 그 자체로 엄청난 무기였다. 하지만 가슴지느러미 아래 있는 갓 태어난 새끼를 보호하느라 소극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레이 오우거와 자이언트 스파이더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비집고 들어왔다.
놈들의 목표는 새끼 고래였다.
모든 새끼는 어미의 약점일 수밖에 없었다.
새끼 고래를 공격함으로써 모비딕의 신경을 분산시키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시도는 훌륭하게 성공했다.
모비딕이 꼬리를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고, 몸을 돌려 새끼를 보호하려 했다.
A급 마수 셋과 B급 마수들이 그런 모비딕의 몸통을 공격했다.
콰직! 퍼억!
모비딕의 두꺼운 가죽이 패이고, 살이 뜯겨 나갔다.
무척이나 고통스러울 텐데도 모비딕은 악착같이 새끼를 보호했다.
영역화를 한 후 새끼를 낳느라 모비딕은 모든 기력을 소진한 상태였다. 때문에 역장도 펼칠 수 없었고, 마법 스킬도 사용할 수 없었다.
그저 맨몸으로 모든 마수들의 공격을 감당해야 했다.
삐이이!
새끼 고래가 가냘픈 울음소리를 냈다.
아직 눈을 뜨지 못해 돌아가는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그래도 본능적으로 자신과 어미가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을 인지한 것이다.
모비딕은 필사적으로 새끼를 보호하면서 소극적으로 꼬리를 휘둘렀다.
쾅!
모비딕의 꼬리에 얻어맞은 그레이 오우거가 저 멀리 나가떨어져 바닥에 처박혔다. 하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다시 일어나 모비딕에게 달려들었다.
자이언트 스파이더도 마찬가지였다.
모비딕과 달리 놈들은 역장이 건재했다.
역장이 대부분의 충격을 흡수해 주어 별 타격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일어선 놈들은 다시 모비딕에게 돌진했다.
쾅! 콰지끈!
그들의 공격에 모비딕의 몸에 점점 더 많은 상처가 생겼다.
쿠우우!
모비딕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그때 갑자기 아르켈론이 움직였다.
육중한 몸으로 그레이 오우거와 자이언트 스파이더의 공격을 대신 맞았다.
쾅! 콰앙!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충격이 아르켈론을 강타했다. 그때마다 아르켈론이 연신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오랜 세월 모트 일족을 지켜 온 단단한 등껍질이 파괴되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엄청난 충격에 대피소 안에 숨었던 파빌사와 케일리가 뛰어나왔다.
“안 돼!”
“아르켈론 왜?”
누가 봐도 아르켈론이 모비딕을 보호하는 모습이었다.
두 마수 사이엔 어떤 접점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르켈론이 굳이 모비딕을 보호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자신의 몸을 바쳐 모비딕을 보호하고 있었다.
부서진 등껍질이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당연히 아르켈론의 등껍질 안에 있던 마을도 산산이 박살 났다.
모든 것이 부서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르켈론은 한 걸음도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죽음으로 모비딕을 지키겠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아르켈론 혼자서 수많은 마수의 공격에서 모비딕을 온전히 지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콰아아!
크림슨 드레이크의 파이어 브레스가 아르켈론과 모비딕을 동시에 강타했다.
마그마 같은 화염의 열기에 아르켈론의 남은 등껍질과 모비딕의 가죽이 녹아내렸다.
오죽했으면 파빌사와 케일리마저 아르켈론의 등껍질에서 뛰어내렸을 정도였다.
쿵!
두 사람이 뛰어내린 직후 아르켈론이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모비딕도 거의 빈사 상태에 몰렸다.
반대로 마수들은 더욱 기세등등해 모비딕과 아르켈론을 공격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정호가 클레어에게 말했다.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
“하지만 그러면 모비딕이…….”
“어차피 모비딕의 심장을 가져가려면 죽여야 한다.”
이정호의 차가운 말에 클레어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는 정말 저 신비롭고 거대한 마수에게 해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에겐 선택의 여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정호가 다시 한번 그녀에게 강요했다.
“시작해라.”
“알았어요.”
결국 클레어가 눈을 질끈 감고 목에 걸린 레인보우 팬던트에 집중했다.
레인보우 팬던트는 S급 아이템이었다.
겨우 B급 테이머인 클레어를 순간적으로 S급 테이머로 만들어 준다.
클레어는 레인보우 팬던트의 힘을 빌려 모비딕의 테이밍을 시도했다.
모비딕의 의식과 접속을 시도한 클레어가 깜짝 놀랐다.
‘자아가 너무 강대해. 이렇게 새끼를 낳아 약해지지 않았다면 레인보우 팬던트의 힘으로도 테이밍 하기 역부족이었을 거야.’
레인보우 팬던트의 힘은 분명 대단했다. 예전에도 레인보우 팬던트로 여왕 귀신 잠자리를 강제 탈피시켰을 정도다.
하지만 그런 레인보우 팬던트의 힘으로도 멀쩡한 상태의 모비딕을 테이밍 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정호의 말처럼 지금이 아니면 저 거대한 마수의 테이밍을 감히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주르륵!
클레어의 코에서 피가 터졌다.
힘과 정신을 과도하게 집중하다 보니 몸에 부하가 걸린 것이다.
클레어는 고통을 참으며 더욱 레인보우 팬던트의 힘을 끌어올렸다.
S급 아이템이 작동하면서 붉은빛이 터져 나왔다.
레인보우 팬던트의 힘을 동원했지만, 아직도 모비딕은 버티고 있었다.
그때 그레이 오우거가 쓰러진 아르켈론을 밟고 하늘 높이 뛰어올랐다. 그리고 혼신의 힘을 다해 모비딕을 내리쳤다.
콰앙!
이제까지와 비교할 수 없는 충격을 받으며 모비딕의 동체가 크게 흔들렸다.
모비딕의 정신이 순간적으로 날아간 그때 레인보우 팬던트가 유난히 밝은 빛을 발산했다.
동시에 모비딕의 눈동자가 붉게 변했다.
간신히 모비딕을 테이밍 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성……공했어요.”
“그럼 폭주시켜라.”
“하지만…….”
“내가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알았어요.”
클레어가 입술을 질근 깨물며 모비딕에게 폭주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화하학!
순간 마치 빅뱅처럼 모비딕의 전신에서 검은빛이 터져 나왔다.
강렬한 검은빛은 모비딕을 공격하던 마수들에 작렬했다.
검은빛에 닿는 순간 그레이 오우거의 왼쪽 팔이 날아가고, 자이언트 스파이더의 다리 네 개가 터져 나갔다.
하늘을 날며 파이어 브레스를 날리던 크림슨 드레이크는 양 날개를 잃고 바닥으로 추락했다.
B급 마수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어두운 빛에 닿는 즉시 온몸이 증발한 것처럼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그야말로 엄청난 위력이었다.
이것이 바로 모비딕이 가지고 있는 고유 스킬 중 하나인 ‘죽음의 권능’이었다.
데이오든이 가지고 있던 권능과 이름은 똑같지만, 훨씬 강하고 효과도 즉발적이었다.
자신의 생명력을 죽음으로 치환해 발산하는 이 능력은 모비딕이 가진 최후의 방어 수단이었다.
죽음의 권능을 사용하자 힘을 모두 소진한 모비딕이 그대로 추락했다.
콰앙!
모비딕의 거대한 동체가 바닥에 축 늘어졌다.
―삐이이!
간신히 어미가 추락하는 장소에서 벗어난 새끼 고래가 구슬픈 울음을 토했다.
그제야 모비딕이 레인보우 팬던트의 지배에서 벗어나 새끼를 바라봤다.
자신은 죽을 지경에 처했으면서도 새끼를 바라보는 모비딕의 눈엔 따스함이 가득했다.
그때였다.
크워워!
모비딕의 권능에 큰 부상을 입은 마수들이 포효를 하며 기어 왔다.
한쪽 팔을 잃었어도, 네 개의 다리를 잃었어도, 양 날개를 잃었어도 놈들은 오직 모비딕만 노리고 달려들었다.
마치 모비딕만 잡아먹으면 이런 상처 따윈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듯이 말이다.
이정호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드디어 그가 원하는 그림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죽음을 앞둔 모비딕, 약화된 마수들.
그 끝이 어떻게 될지 눈에 선명했다.
“자, 공멸해라. 세상을 어지럽히는 짐승들아.”
“내가 없는 사이 엄청난 일을 저질러 버리셨군요.”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이정호는 놀라지 않았다.
“제온!”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제온이었다.
뒤늦게 도착한 제온의 표정은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 가는 모비딕과 아르켈론의 모습이 충격적이었다.
케일리가 눈물을 글썽이며 제온에게 말했다.
“제온, 아르켈론이 모비딕을 지키려다…….”
뒷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클레어가 인위적으로 모비딕을 테이밍해 폭주시킨 것을 멀리서 두 눈으로 목격했다.
솔직히 목적을 위해서 모비딕을 폭주시킨 것은 뭐라 하고 싶지 않았다. 애초 이정호의 목적이 모비딕의 심장을 얻는 것이었으니까.
문제는 아르켈론이었다.
제온과 파빌사가 아르켈론을 구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렇게 상처 입게 내버려둔 것은 그냥 지나갈 수 없었다.
제온이 이정호를 노려봤다.
“이 일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안 넘기면?”
이정호도 제온을 도발적으로 바라봤다.
초점 없는 그의 눈동자엔 스산한 살기가 어려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려올 정도로 그의 눈빛은 무서웠다.
제온은 그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대가를 치르게 되겠죠.”
“가능할 것 같나?”
“불가능할 것도 없습니다.”
“자신을 너무 과신하는군.”
“그럴까요?”
“내 눈엔 그렇게 보이는군.”
“당신이야말로 자신의 능력을 너무 과신하는군요.”
이정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제온의 말이 그의 자존심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모래술사인 제온이 사막에서 절대적이라는 것은 인정했다. 직접 눈으로 본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온이 무적이라는 것은 아니었다.
모든 것엔 상성이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아무리 강한 자에게도 약점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모든 속성에는 저항이라는 것이 붙기 마련이었다.
제온이 광역 공격에 특화되었다면 자신은 대인전에 특화된 검객이었다.
제온과 정반대되는 대척점 같은 존재.
다른 이에겐 제온이 재앙이겠지만, 제온에겐 자신이 재앙 같은 존재였다.
그런 사실도 모르고 오만하게 나오는 제온이 가엽기까지 했다.
“모비딕의 심장을 꺼내기 전에 가르침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가르침?”
“그래! 죽음의 가르침 말이야.”
슈욱!
말이 끝나는 순간 이정호의 검이 무서운 속도로 뽑혀져 나왔다. 제온의 목숨을 노린 공격이었다.
그의 검이 제온의 목젖에 닿기 직전이었다.
퍼엉!
갑자기 이정호의 발 아래에서 모래 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거대한 모래 기둥은 이정호를 저 멀리 날려 버렸다.
순식간에 방해자를 치워 버린 제온의 시선이 모비딕을 향했다.
마수들이 모비딕과 아르켈론을 물어뜯고 있었다.
제온이 마수들을 보며 싸늘히 중얼거렸다.
“샌드 믹서!”
가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