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83)
283화
퍼버버버벙!
샌드 블라스터가 연신 이정호를 두들겼다.
그때마다 이정호의 몸이 요동쳤다.
엄청난 충격에 온몸이 저릿했지만, 이정호는 참았다.
이미 수십 발의 샌드 블라스터를 허용했지만, 아직도 이정호는 건재했다.
유성 가르기를 펼치는 동안에는 오러가 전신을 보호해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온에게 가까워질수록, 그의 몸에 격중하는 샌드 블라스터가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졌다.
퍼버버버버벙!
고압의 모래 공격이 이어질수록 몸에 쌓이는 충격량도 눈덩이처럼 늘어났다.
사막에 모래는 무한대로 널려 있었고, 제온의 마나는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과장 조금 하면 다음 날 해가 질 때까지도 샌드 블라스터를 날릴 수 있었다.
퍼버버버벙!
“크악!”
결국 거듭된 포격을 견디지 못하고 이정호의 유성 가르기가 깨졌다.
그의 몸을 보호하고 있던 오러가 사라지고 샌드 블라스터 수십 발을 연속으로 허용한 것이다.
이정호가 비명과 함께 저 멀리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제온은 이쯤에서 끝낼 생각이 없었다.
그가 손을 들었다. 그러자 엄청난 모래 기둥이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주먹을 꽉 쥐자 모래가 사암처럼 단단하게 응축됐다.
제온이 바로 눈앞에 이정호가 있는 것처럼 주먹을 힘껏 내리쳤다. 그러자 암석처럼 단단하게 굳은 모래 기둥이 그대로 이정호를 향해 내리꽂혔다.
콰앙!
대지가 크게 진동하며 먼지가 자욱이 피어올랐다.
모래 기둥에 박힌 이정호의 사지가 기괴한 방향으로 꺾여 있었다. 가슴도 함몰된 것이 한눈에 봐도 심각한 상태였다.
“크으으!”
이정호가 가쁜 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과 코, 귀, 입에선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자신이 비참하게 패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이정호는 눈만 끔뻑였다.
그런 이정호에게 제온이 다가갔다.
제온이 이정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죽음의 가르침은 그쪽이 받은 것 같군요.”
“너, 괜찮……겠냐?”
“뭐가 말입니까?”
“시……장님의 분노 감당할 수 있겠냐고?”
이정호의 말에 제온이 고개를 갸웃했다.
“시장이 왜 분노합니까?”
“몰라서 묻는 거냐? 모비딕의 심장을 가져가지 않으면 시장님이 분노할 거다.”
“가져가면 되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문제입니까?”
“뭐?”
“모비딕의 심장을 가져갈 사람이 꼭 당신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이 새끼!”
제온의 말뜻을 알아차린 이정호가 눈을 부릅떴다.
투둑!
제온이 이정호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뜯어내며 말했다.
“아공간이 인챈트 됐죠? 이 안에 모비딕의 심장만 넣어 가면 진금호는 아무런 추궁도 안 할 겁니다.”
“시장님은…….”
“그의 천안은 만능이 아닙니다. 결과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지만, 그 과정까지 알지는 못합니다. 아마 당신이 동행하면 모비딕의 심장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읽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가 본 결과에 당신의 생존 여부가 포함되어 있지는 않았을 겁니다.”
“네가 어떻게 천안을?”
“진금호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분이 말해 줬습니다.”
“너어…….”
이정호가 발작적으로 일어나려는 순간 모래가 그를 뒤덮었다.
가아앙!
맹렬히 회전하는 모래.
샌드 믹서가 펼쳐진 것이다.
비명도 없었다.
순식간에 이정호의 몸이 갈려 나갔기 때문이다.
이정호가 묻힌 자리의 모래가 붉게 물들었다.
그것이 넘버즈의 일원인 이정호의 최후였다.
“어, 어떻게?”
그 모습을 본 클레어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녀가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이 바로 이정호였다. 그런 이정호를 별다른 상처 입지 않고 죽인 제온이 너무 무서웠다.
제온은 단순히 이정호만 죽인 게 아니다.
모비딕을 공격하던 마수들마저 모두 죽였다.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절대 믿지 못했을 광경이었다.
그만큼 그녀가 받은 충격은 엄청났다.
두 다리가 후들거려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이정호의 명령을 받아서 한 일이지만, 모비딕이 저 지경이 된 데는 그녀의 지분이 컸다.
그런 자신을 제온이 용서할지 알 수 없었다.
제온은 클레어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모비딕을 향해 다가갔다.
모비딕의 상태는 처참했다.
두꺼운 가죽이 갈라지고 찢어져 시뻘건 속살을 드러났고, 내장과 피가 몸 밖으로 꾸역꾸역 밀려 나오고 있었다.
누가 봐도 회생 불가능한 모습이었다.
모비딕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삐이이!
새끼 고래도 어미의 죽음을 직감하고 구슬피 울었다.
죽어 가는 어미의 얼굴에 자신의 몸을 비비는 새끼 고래의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까지 아프게 했다.
죽어 가면서도 새끼 고래를 그윽하게 바라보던 모비딕의 눈동자가 제온을 향했다.
자신의 몸보다 거대한 모비딕의 눈동자,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모비딕이 눈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제온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모비딕의 눈동자에 안도하는 빛이 떠올랐다.
제온이 손을 뻗어 새끼 고래를 어루만졌다.
부드러운 손길을 느낀 새끼 고래가 고개를 들어 제온을 바라봤다.
제온은 그런 새끼 고래의 눈을 빤히 바라봤다.
인간과 고래는 그렇게 한참을 서로의 눈을 들여다봤다.
어느 순간 둘은 마음속 깊은 곳에 끈이 연결되는 것을 느꼈다. 바로 그때 제온과 새끼 고래의 몸에서 강렬한 빛이 발산됐다.
빛 입자는 잠시 둘을 휘돌다가 몸에 흡수됐다.
테이머들이 하는 인위적인 길들이기가 아니었다.
진심으로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며 감정의 끈이 연결된 것이다.
그 순간 제온은 모비딕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새끼 고래를 통해 모비딕에 대한 정보가 폭포수처럼 흘러들어 왔기 때문이다.
모비딕은 평범한 마수가 아니었다.
지구의 고래가 진화한 생명체도 아니었다.
쿠라얀에서 태어난 정령이었다.
그것도 무려 네 개 속성을 다 가지고 태어난 대정령.
테라포밍의 반작용에 휩쓸려 어떻게 지구로 넘어왔지만, 대정령은 바로 소멸 위기에 처했다.
대정령이 살아남으려면 속성이 풍요로운 환경이 중요한데, 지구는 모래로 뒤덮여 속성력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결국 힘을 잃은 대정령은 서서히 죽어 갔다.
그때 발견한 것이 거대한 고래였다.
거대한 고래도 바다가 말라 죽어 가고 있었다.
죽어 가는 정령과 고래의 만남은 어떻게 보면 운명이었는지 몰랐다.
정령에겐 고래라는 그릇이 필요했고, 고래에겐 정령이라는 동력원이 필요했다.
극한의 상황에서 정령과 고래는 융합했고, 모비딕으로 재탄생했다.
그것이 모비딕이라는 마수가 탄생한 배경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모비딕은 마수가 아니라 정령 생명체였다.
지구라는 대지에 적응한 새로운 생명체.
하지만 애초부터 완벽하게 태어난 것이 아니라 불완전했다.
그 때문에 모비딕은 때로는 모래 속 깊은 곳에서 그나마 남은 대지와 물 속성을 흡수하거나, 하늘 높은 곳으로 올라가 불이나 공기 속성을 취하며 생명을 간신히 연장해 왔다.
그렇게 지구에서 백 년을 살아가던 중에 새끼 고래를 잉태했다.
쿠라얀이 아닌 지구에서 태어나는 최초의 정령 생명체였다.
온전한 정령도, 생명체도 아니지만, 그 둘의 장점을 가진 생명체.
모비딕은 새끼를 낳기 위해 둥지 일대를 영역화했다.
영역을 구축하면 마수들이 달려올 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차라리 일반적인 S급 마수가 영역을 구축했다면 A급 마수들이 달려들 엄두를 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모비딕은 일반적인 마수가 아니었다.
속성력을 몸에 담은 모비딕을 잡아먹으면 격의 상승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마수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목숨을 도외시하면서 이곳에 몰려온 것이다.
“그렇게 된 거였군.”
새끼 고래는 이 땅에 태어난 완전히 새로운 정령 생명체였다.
불완전한 어미와 달리 새끼 고래는 완전했다.
물론 어미만큼 자라 온전한 힘을 발휘하려면 오랜 세월이 필요하겠지만, 시작부터 완전하다는 것은 남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망가진 지구의 유일한 희망일지도 몰랐다.
그때였다.
화하학!
갑자기 죽어 가던 모비딕의 몸에서 빛 입자가 흘러나왔다.
강렬한 빛 입자는 마찬가지로 죽어 가던 아르켈론의 몸을 휘감았다. 아르켈론 주위를 휘돌던 빛 입자는 서서히 흡수됐다.
빛 입자가 흡수되면서 아르켈론의 몸에 변화가 일어났다.
처참하게 부서졌던 등껍질이 새롭게 재생되고, 축 늘어졌던 팔다리 가죽에 탄력이 돌아왔다.
검은 말미잘에게 당했던 상처도 단숨에 치료되었고, 흐릿하던 눈동자에 총기가 돌아왔다.
변화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뿌드득!
육각형 등껍질에서 큰 가시가 튀어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단단한 등껍질이 크고 날카로운 가시로 무장하게 된 것이다.
아르켈론의 이마에도 유니콘처럼 뿔이 만들어졌다.
이제까지는 단단한 방어력 하나밖에 없었는데, 물리적인 공격 수단까지 생긴 것이다.
제온은 그런 변화가 자신을 구하려 애쓴 아르켈론에게 모비딕이 주는 마지막 선물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흩날리는 빛 입자와 함께 모비딕의 거대한 육체도 서서히 사라져 갔다.
―삐이이!
새끼 고래가 그런 어미를 보며 나직이 울었다.
태어나자마자 어미의 죽음을 바라봐야 하는 새끼의 마음은 무척이나 슬펐다. 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생명체답게 어미의 죽음을 또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시야를 꽉 채우던 거대한 몸체가 모두 사라지고 몇 사람을 합친 것만큼이나 거대한 검고 둥근 보석만이 남았다.
제온은 그것이 모비딕의 심장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나를 위해 선물을 남긴 거냐?”
제온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의 짐작처럼 거대한 둥근 보석은 모비딕이 그동안 흡수한 속성이 담긴 심장이었다.
다만 아르켈론을 구하느라 많은 힘을 소모해 평상시 마나의 십분지 일 정도밖에 담겨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엄청나게 많은 마나였지만, 진금호의 기대를 충족시킬지는 미지수였다.
제온은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받은 의뢰는 모비딕의 심장을 갖다주는 거였지, 반드시 온전한 상태여야 한다는 단서는 없었기 때문이다.
“후!”
제온이 한숨을 내쉬며 목걸이의 아공간을 열어 모비딕의 심장을 집어넣었다.
새끼 고래는 허공에 둥둥 뜬 채 그 모든 광경을 지켜봤다.
제온이 새끼 고래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너에겐 미안하구나.”
―삐이이!
새끼 고래가 괜찮다는 듯이 특유의 가냘픈 울음소리를 냈다.
제온이 그런 새끼 고래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그때 새끼 고래가 제온의 몸에서 무언가 냄새를 맡은 건지 주위를 날아다니며 꼬리를 흔들었다.
“왜?”
―삐이!
“나에게서 좋은 냄새가 난다고?”
―삐!
“어디? 내가 가진 무언가 좋은 냄새를 풍기고 있어?”
―삐이!
교감이 되어선지 제온은 새끼 고래의 울음에 담긴 뜻을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새끼 고래는 제온의 오른팔 주위를 맴돌았다.
초열의 건틀렛을 차고 있는 팔이었다.
‘혹시 아공간에 담은 물건에 관심 있는 건가?’
아공간에 잡다한 물건이 워낙 많았다.
제온이 아공간을 개방하자 새끼 고래가 겁도 없이 머리를 쑥 집어넣었다.
꼬리를 퍼덕이며 새끼 고래는 열심히 제온의 아공간을 수색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제온은 가만히 놔두었다.
한참 후 다시 아공간 밖으로 나온 새끼 고래의 입에는 커다란 광물이 물려 있었다.
“저건?”
얼마 전 마정석 광산에 들렸을 때 박만호에게서 빼앗았던 그 광물이었다.
최상급 마정석이 나온 갱도에서 같이 채굴된 정체 모를 광물.
마나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묘한 온기가 느껴져 특별하게 느껴졌던 녀석이었다.
제온이 새끼 고래에게 물었다.
“그게 뭔데 그러냐?”
―삐이이!
새끼 고래의 대답에 제온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세계수의 씨앗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