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88)
288화
―삐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민 가이아가 브리엘과 레빈을 보고 눈을 끔뻑거렸다.
제온이 가이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괜찮아! 내 친구들이야.”
―삐?
“그래, 친구!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야.”
―삐이이!
그제야 가이아가 아공간 밖으로 몸을 완전히 빼냈다.
“맙소사!”
“이게 무슨?”
브리엘과 레빈은 가이아를 보고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공간 안에 살아 있는 생명체가 있다는 것도 놀라운데, 그 생명체가 고래였다.
그것도 하늘을 나는 고래.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다만 브리엘의 놀람은 레빈과 결이 달랐다.
주르륵!
갑자기 브리엘이 눈물을 흘렸다.
구슬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브리엘의 모습에 레빈이 깜짝 놀랐다.
“왜 그래?”
“정령의 향이…….”
“뭐?”
“정령의 향기가 느껴져.”
“그게…….”
레빈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눈을 끔뻑였다.
브리엘은 그런 레빈을 뒤로 하고 가이아에게 다가갔다.
가이아는 가슴지느러미를 마치 나비 날개처럼 부드럽게 휘저으며 브리엘을 바라봤다.
브리엘이 조심스럽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아, 안녕!”
―삐?
“내 이름은 브리엘이야.”
―삐삐?
“어, 보다시피 하이 엘프야.”
―삐이이!
그 순간 가이아가 브리엘의 손에 머리를 부볐다.
보드라운 촉감에 브리엘이 살짝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가이아를 꽉 껴안았다.
가이아도 브리엘을 피하지 않고 그녀의 가슴에 머리를 비볐다.
“아아!”
브리엘이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생전 처음 느끼는 정령의 향기에 그녀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가이아는 지구에서 처음 탄생한 정령 생명체였다.
가이아가 의도하지 않아도 강한 향이 풍겨 나온다.
생전 처음 맡는 정령향은 브리엘의 이성을 마비시킬 정도로 강력했다.
“하아! 하아!”
가이아를 꼭 끌어안은 채 정령향을 맡는 브리엘의 모습은 변태를 연상케 했다.
“야, 야! 정신 차려!”
보다 못한 레빈이 그녀를 가이아에게서 떼어 놓았을 정도였다.
“힝!”
억지로 떨어진 브리엘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제온이 그런 브리엘의 머리를 만지며 말했다.
“가이아는 앞으로도 계속 볼 수 있으니까 그렇게 슬퍼하지 않아도 돼.”
“진짜?”
“그래!”
“우리하고 쭉 지낸다고?”
“응!”
“와아아!”
브리엘이 폴짝폴짝 튀면서 즐거워했다.
지독했던 마약의 후유증에서 벗어난 브리엘은 이제 또래 소녀처럼 제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정말 잘됐다. 그치?”
―삐이이! 삐!
“그래! 내가 정말 잘해 줄게. 우린 이제 친구니까.”
―삐! 삐삐!
“응! 응!”
마치 사람과 수다를 떠드는 것처럼 가이아와 정신없이 대화를 나누는 브리엘을 보고 레빈이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서로 말을 알아듣는다고?”
“쿠라얀에서 엘프는 정령과 소통하는 존재였으니까.”
“그럼 저 고래가 정말 정령이에요?”
“쿠라얀의 정령과 다르지만, 정령이 맞는 것 같아.”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러게 말이다.”
제온이 어깨를 으쓱했다.
가이아는 쿠라얀의 대정령과 지구의 고래가 융합한 생명체의 자식이었다.
그런 가이아를 뭐라고 정의할지는 그도 알 수 없었다.
제온이 브리엘에게 말했다.
“여긴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으니 집으로 들어가자. 가이아도 일단 아공간으로 들어가 있어.”
“응!”
―삐!
브리엘과 가이아가 동시에 대답했다.
가이아는 제온의 아공간으로 모습을 감췄다.
브리엘이 제온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집에선 가이아를 마음대로 만나도 되지?”
“어, 그렇게 해.”
“와아! 신난다.”
“그렇게 좋아?”
“당연히 좋지. 아마 지구에서 태어난 엘프들 중에서 정령을 만난 사람은 내가 처음일걸?”
“그래?”
“이건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아마 이 사실을 엘프들이 알면 뒤집힐 거야.”
“그러면 절대 노출해선 안 되겠네.”
“응! 다른 엘프들이 절대 알게 해선 안 돼. 그것들은 절대 우리 가이아를 가만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
같은 엘프지만, 브리엘은 다른 엘프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인간 세상에 적응해 살아가고 있는 엘프들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인간의 탐욕에 물들어 있었다.
“얼른 집으로 가자.”
“응! 어서 가이아를 보고 싶어.”
브리엘이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제온의 뒤를 따랐다.
레빈이 머리를 긁적이며 그들의 뒤에서 걸어갔다.
“어우! 이게 무슨 일인지 나는 모르겠다. 날아다니는 새끼 고래라니. 그나저나 우리 집에 저 고래가 날아다닐 공간이 있던가? 또 집을 확장해야 하는 거 아닌가 몰라.”
어쨌거나 식구가 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기에 레빈의 입가에도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세 사람이 골목을 떠나고 한참 후 누군가 그 자리에 나타났다.
프렌치 코트를 입은 아름다운 여자는 바로 북 구역 푸른 낙엽 특작대의 대장인 보린 스트라바흐였다.
보린이 골목의 냄새를 맡았다.
“킁킁! 뭐지? 굉장히 좋은 냄새가 나는데.”
북 구역의 여왕 세리언의 명령을 받고 특이한 파장을 추적하던 보린이었다.
그녀는 조금 전 이쪽에서 묘한 파장을 느꼈다.
빈민가에 있었기에 감지할 수 있었지, 네오 서울에 있었다면 절대 느끼지 못했을 미약한 파장이었다.
혹시나 하고 달려온 보린은 이곳에서 묘하게 기분 좋은 냄새가 남아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그녀가 한 번도 맡아 보지 못한 그런 냄새였다.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청량한 냄새.
마치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도대체 이곳에 뭐가 있었던 거지?”
그녀는 계속 냄새를 맡았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냄새는 금방 사라졌다.
“진짜 뭐지? 도대체 뭐가 이런 향기를 남긴 거야?”
***
삐이이!
집에 돌아오자마자 가이아가 아공간을 빠져나왔다.
브리엘이 신나서 가이아에게 말했다.
“여기가 우리 집이야. 내가 구경시켜 줄게.”
―삐이!
“여기가 거실.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이야. 좋지? ‘지켜보는 눈’이 보호해 주고 있어 안전해.”
―삐삐?
“신기하지? 나도 신기해. 어쨌거나 이 안에 있으면 절대 안전해. 외부에선 절대 침입하지 못한다니까. 그러니까 너도 안심하고 지내.”
―삐!
“일단 내 방부터 가자. 신기한 거 엄청 많아. 제온이 자리를 비운 사이 많이 만들어 냈거든.”
―삐이이!
가이아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브리엘의 뒤를 따랐다.
그 모습을 본 레빈이 고개를 살짝 저었다.
“저건 강아지도 아니고. 저렇게 브리엘을 따른데요?”
“아마 브리엘이 하이 엘프라서 그럴 거야. 순혈의 하이 엘프는 원래 정령과 친화력이 어마어마하게 좋았다고 하더라고.”
“다행이네요. 집에 혼자 남겨 두는 게 조금 미안했는데.”
“나 없는 동안 집을 많이 비웠나 보구나.”
“뭐, 딱히 할 것도 없고, 허무하기도 해서 그냥……. 지금은 괜찮아졌어요.”
복수를 끝낸 레빈은 한동안 허전한 마음에 방황했다.
집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서 나도는 시간이 많았고, 그 시간 동안 브리엘은 혼자서 보냈다.
그렇다고 브리엘이 쓸쓸하게 보냈던 것은 아니었다.
브리엘은 나름대로 영감을 얻어 구체화하느라고 레빈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레빈이 온종일 집을 비워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정도였다.
레빈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혼자 남겨 뒀다는 사실에 조금은 죄책감을 느꼈다.
“괜찮아졌다니 다행이네. 별일은 없었고?”
“평화로웠어요. 이래도 되는가 싶을 만큼.”
“그래?”
“제 추측인데 아마 시청에서 힘을 쓴 것 같아요.”
“시장님이 미리 약속을 지켰나 보네.”
진금호는 제온이 임무를 완수할 시 다른 구역들이 함부로 건들지 못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진금호와 시청이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다른 구역은 함부로 제온과 브리엘 등을 쉽게 건들 수 없었다.
“당분간은 편히 지낼 수 있을 거야. 우리가 문제만 일으키지 않으면 말이야.”
“우리가 문제 일으킬 게 뭐 있겠어요? 싸움에 미친 인간들도 아니고. 전 지금의 평화가 좋아요.”
“나도 그래.”
제온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돌아온 집이었다.
한 번씩 원정을 갔다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렇게 마음 편히 쉴 곳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축복이었다.
강철 요새도, 네오 서울의 번쩍이는 건물도 제온에게 이런 안도감을 주진 못했다.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제온은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이 집이 좋았다.
레빈이 물었다.
“어떻게 할 거예요?”
“뭘 어떻게 해?”
“도깨비 시장은 안 가 볼 거예요?”
“무슨 문제 있어?”
“아뇨. 그냥 왔으니 한번 들르는 게 낫지 않나 싶어서.”
“문제도 없는데 굳이 지금 들를 이유가 없지. 그냥 푹 쉬다가 지치면 그때 가 볼게.”
“알았어요, 형! 그렇게 해요. 어차피 급할 것도 없으니까.”
“그래! 그래서 지금부터 계속 소파에 붙어 있을 생각이야.”
“네!”
제온이 아예 소파에 드러눕는 것을 보며 레빈이 웃었다.
제온이 누워 있는 소파를 모두가 좋아했다.
일단 앉으면 온몸을 감싸 주는 듯한 포근함과 안락함이 장난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온이 없으면 레빈과 브리엘 사이에 소파 쟁탈전이 벌어지곤 했다.
물론 쟁탈전의 승자는 대부분 브리엘이었다.
쟁탈전에서 밀린 레빈은 부러운 눈으로 브리엘을 바라봤지만, 브리엘이 양보해 주는 일은 절대 없었다.
‘이제 가이아까지 들어와 살게 됐으니 내가 소파에 앉을 일은 절대 없겠구나.’
그래도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그때였다.
우당탕!
브리엘이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 뒤를 가이아가 따랐다.
브리엘이 레빈의 방문을 열며 말했다.
“이제 레빈의 방을 보여 줄게.”
“뭐?”
“남자의 방엔 뭐가 있는지 우리 한번 천천히 살펴볼까?”
―삐이이!
“히히! 신난다.”
레빈은 잠시 사정을 파악하지 못하고 브리엘과 가이아를 멍하니 바라봤다.
쿵!
문이 닫히자 정신이 확 돌아왔다.
남자의 방에는 여자들은 모르는 것들이 있었다.
남들에겐 절대 보여 줄 수 없는.
“아, 안 돼!”
레빈이 급히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잠시 후 그의 절규가 터져 나왔다.
“이건 보면 안 돼!”
“하하!”
―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