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90)
290화
제온이 브리엘에게 물었다.
“가이아 주려고?”
“정령이잖아. 속성이 담긴 아이템을 주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진짜 가이아를 좋아하는구나.”
“응!”
브리엘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환한 웃음을 짓는 브리엘을 보며 제온은 잘됐다고 생각했다.
가이아와 만난 지 사흘밖에 안 됐지만, 브리엘의 얼굴에 어려 있던 어둠이 완전히 걷혔기 때문이다.
가이아도 브리엘 같은 친구가 생겨서 좋아하고 있었다.
제온을 보호자처럼 생각한다면 브리엘은 영혼을 교감하는 친구로 생각하는 것이 느껴졌다.
‘어쩌면 둘이 만나는 게 운명이었을지도 모르겠군.’
브리엘이 저렇게 좋아하는 것을 보니 제온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때 유세희가 물었다.
“가이아는 뭐야? 새로 사귄 친구?”
“몰라도 돼.”
“쳇! 나도 네 친구를 알고 싶지 않거든.”
유세희가 콧방귀를 뀌며 제온을 바라봤다.
“그런데 당신은 왜 여기 나온 거야?”
“아! 팔고 싶은 물건이 있어서요.”
“그래?”
“여기서 보여 줄 물건은 아니라.”
“그럼 내 사무실로 가자.”
“그러죠.”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레빈과 브리엘이 말했다.
“형은 조합장님과 이야기해요. 나는 오랜만에 도깨비 시장을 둘러볼 테니까.”
“나도 필요한 게 있는지 찾아볼게.”
“그래! 이따가 보자.”
그렇게 레빈, 브리엘과 헤어진 제온은 유세희의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유세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 우리 모래술사님이 무슨 용건으로 나를 은밀히 보자 했을까?”
“이것 좀 처분해 달라고요.”
제온이 아공간을 열고 마정석 몇 개를 꺼냈다.
“이게 뭔데…….”
마정석을 살펴보던 유세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제온이 내놓은 마정석들이 보통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레이 오우거와 자이언트 스파이더의 마정석이었다.
둘 모두 흔히 볼 수 있는 마정석이 아니었다.
마정석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마나가 느껴졌다.
“설마 이거 다 A급 마수 마정석이야?”
“네!”
“이걸 어디서 난 거야?”
“운 좋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운은 개뿔. 운 좋다고 A급 마수의 마정석을 구할 수 있으면 나도 맨날 바닥만 보고 다니겠다. 어떻게 구한 거야?”
“말했잖아요. 운이 좋았다고.”
“쳇! 됐어.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그러니까 이걸 처분해 달라는 거지?”
“네!”
유세희가 그레이 오우거의 마정석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A급 마수의 마정석은 시중에 쉽게 풀리지 않아서 비싸게 팔릴 거야. 우리가 아니더라도 제값을 받을 수 있을 텐데, 굳이 위탁하는 것은 역시 전면에 나서기 싫다는 뜻이겠지?”
“잘 아시네요.”
“뭐, 하루 이틀 본 사이가 아니니까. 좋아! 이 물건은 우리가 소화해 줄게.”
“고맙습니다.”
“다 돈 받고 일하는 건데. 수수료는 알아서 뗀다?”
“네!”
제온이 흔쾌히 대답하자 유세희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시원시원해서 좋네. 그 깐깐한 엘프 꼬맹이와는 달라. 걔는 왜 그렇게 타락한 거야. 어린 게 돈맛을 알아 가지고. 가이아는 또 누구야?”
“전 이만 갑니다.”
“더 있지 않고?”
“저도 도깨비 시장 구경이나 하려구요.”
“알았어. 나가 봐.”
제온이 방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A급 마수의 마정석을 모두 처분함으로써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이젠 마음 편히 도깨비 시장을 구경할 차례였다.
오랜만에 둘러보는 도깨비 시장의 풍경은 여전했다.
상인들은 분주히 호객을 하고 있었고, 이용하는 고객들은 한 푼이라도 더 깎으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목소리가 높아지고, 심심치 않게 싸우는 모습도 보였다.
그때마다 가드들이 달려와 싸움을 말렸다.
그런 풍경들마저 재밌게 느껴졌다.
어떨 때는 네오 서울이나 빈민가가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이런 광경을 보면 마음이 풀렸다.
상거래가 활발하다는 것은 문명이 유지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물물 거래가 아닌 화폐를 이용하는 것은 다른 콜로니나 요새에선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네오 서울이 얼마나 축복받은 곳인지, 이런 곳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이들은 알까?’
원래 혜택을 누리는 이들은 자신이 행운아인지 모른다.
제온은 느긋하게 도깨비 시장을 거닐며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이 있나 구경했다.
시장을 한 바퀴 다 돌았지만, 제온에게 필요한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기대도 하지 않았기에 실망도 없었다.
제온의 아공간에 담겨 있는 물건들은 모두 직접 구한 것으로 이곳에 있는 물건들에 비할 수 없이 대단했다. 그러니 이곳에 있는 물건들에 눈에 찰 리 없었다.
“이제 돌아가야겠군.”
그런데 브리엘과 레빈은 어느 상점에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제온과 달리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찾은 것 같았다.
제온은 한쪽에 있는 나무 의자에 앉아 두 사람이 나오길 기다렸다.
한 삼십 분쯤 기다렸을 때였다.
레빈이 또래의 소년들과 함께 제온에게 다가왔다.
“형!”
“그래!”
“제 친구들 알죠?”
레빈이 같이 온 소년들을 제온에게 소개했다.
“그래! 오랜만에 보네. 다들 잘 지냈냐?”
“네! 안녕하세요, 형님!”
“다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소년들은 제온을 보고 구십 도로 허리를 숙였다.
갑작스러운 그들의 행동에 제온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레빈이 그들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구박했다.
“그러지 말라니까. 형은 그런 것 안 좋아한다고.”
“그래도 제온 형님인데…….”
“씨발! 하지 말라고…….”
레빈의 친구들에게 제온은 우상이었다.
빈민가에 살지만, 네오 서울의 권력자들조차 함부로 못 하는 엄청난 각성자.
그들도 제온처럼 되고 싶었다.
제온은 그들을 보고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신을 보는 레빈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왜 그렇게 심각하냐?”
“사실 얘들이 얼마 전에 각성했어요”
“그래? 다들 축하해.”
“애론은 E급 무투가로, 도미닉은 D급 마법사예요.”
“E급과 D급? 등급도 좋네. 그런데 뭐가 문제야?”
제온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F급이 아닌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더구나 인간의 육체를 포기해야 하는 기계화 각성자도 아니었다. 그 정도만 해도 빈민가에선 충분히 대접받고 살아갈 수 있었다.
“각성한 것은 문제가 아닌데, 이 새끼들이 이번 마정석 광산 공격대에 덜컥 지원해 버렸어요.”
“응?”
“각성만 했지, 아무런 전투 경험도 없는 새끼들이 그렇게 위험한 임무에 자원했어요.”
“그건 문제네.”
그제야 레빈의 표정이 왜 그렇게 심각한 건지 알았다.
마정석 광산을 새로 개척하는 임무였다.
제온이 확인한 크라켄 외에도 어떤 마수가 주위에 도사리는지 알 수 없었다.
마정석을 쉽게 캘 수 있는 지형이지만, 그만큼 외부의 위협에 노출이 되어 있었다.
마정석 광산을 확복하는 것도, 지키는 것도 쉽지 않았다.
당연히 많은 이들이 죽어 나갈 것이다.
그 때문에 마정석 광산 공략에 수많은 공격대를 동원할 것이다.
당연히 네오 서울의 공격대는 평소보다 많은 인원을 수급해야 했다.
레빈의 친구들은 그런 공략대에 덜컥 지원했고, 합격했다.
레빈이 머리를 부여잡으며 말했다.
“미친 새끼들이에요. 설마 나와 상의도 없이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질러 버릴 줄이야.”
“야! 우리도 많이 고민하고 결정한 일이야.”
“이 기회가 아니었으면 우리가 공격대에 어떻게 들어가? 다들 경험 쌓고 오라고 하는데, 우리 같은 햇병아리 각성자가 어디서 경험을 쌓냐고?”
친구들의 어쭙잖은 변명에 레빈의 화가 폭발했다.
“그렇다고 덜컥 공격대에 자원해? 씨발! 걔들이 진짜 너희들이 필요해서 받아들이는 건 줄 알아? 그냥 고기 방패로 쓰려는 거라고.”
평소라면 네오 서울의 공격대가 빈민가의 하급 각성자들을 받아들이는 일은 거의 없었다.
경험 없는 각성자를 훈련시켜 쓸 만하게 만드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차라리 빈민가에서 알아서 성장한 각성자들을 받아들이는 게 훨씬 효율이 좋았다.
그런 공격대가 아직 하급 각성자인 이들을 받아들인 이유는 한 가지뿐이었다.
최전선의 고기 방패로 쓰겠다는 것이다.
그나마 D급 마법계 각성자인 도미닉은 좀 나았다.
아무래도 마법계 각성자라 그나마 안전한 후방에서 마법을 날릴 테니까.
하지만 최전선에서 마수들과 직접 부딪쳐야 할 애론은 첫 전투에서 죽을 확률이 높았다.
첫 전투에 투입된 무투계 각성자의 생존 확률은 극악했다. 더군다나 투입된 각성자의 전투 경험이 아예 없다면 살아남을 가능성이 없었다.
애론과 도미닉은 레빈이 코흘리개 시절부터 함께 커 온 사이였다.
레빈이 살인마에게 가족을 잃었을 때 위험을 무릅쓰고 정보를 물어 왔다.
레빈이 독자적으로 구축한 정보망은 모두 애론과 도미닉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그 때문에 레빈은 많은 친구 중에서도 두 사람을 매우 각별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두 사람이 한날한시에 각성했다.
그것도 한 명은 무투계로, 또 한 명은 마법계로.
하필 그때 레빈은 살인마를 죽인 후 번아웃이 찾아와 두문불출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두 사람이 각성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레빈이 그 사실을 안 것은 바로 이 도깨비 시장에서였다.
각성자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사는 두 사람을 발견하고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처음엔 부정했는데, 레빈이 집요하게 물어보니 그제야 사실을 털어놓았다.
“미친 새끼들아! 던전 한번 들어가 보지 못한 새끼들이 마정석 광산 공격대에 들어가? 당장 탈퇴해.”
“그럴 수는 없어. 이미 계약까지 했는걸.”
“너무 걱정하지 마. 우리도 그렇게 만만한 놈들이 아니니까.”
그래도 반성하지 않는 두 사람을 보고 레빈이 가슴을 쾅쾅 쳤다.
고구마를 백 개 처먹은 것처럼 속이 답답한 것이다.
“씨발! 어떤 공격대야? 지금 당장 나랑 같이 가.”
“같이 가서 뭐 하려고?”
“당장 계약 해지해야지.”
“그럴 수는 없어.”
“왜?”
“우리도 강해지고 싶으니까.”
“뭐?”
“강해져서 우리도 인간 대접을 받고 싶어. 너처럼.”
“너희들?”
“무섭다고, 경험 없다고 아무것도 안 하면 성장할 수 없잖아? 우리도 너처럼 강해져서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이렇게 매일 피 말리는 삶이 아니라…….”
“…….”
친구들의 말에 레빈이 아무런 말도 못 했다.
저들도 레빈처럼 고아였다.
레빈처럼 중간에 가족을 잃은 게 아니라 태생 자체가 그랬다.
빈만가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약자에게 모질지만, 그중에서도 고아들에게 더 가혹했다.
당연히 그들은 레빈보다 더 어렵게 자랐다.
그 때문에 힘에 대한 열망이 누구보다 강했다.
다만 이제까지는 각성하지 못해 열망을 꼭꼭 숨기고 있었을 뿐이다.
“너와 상의하지 않고 멋대로 공격대에 자원한 것은 미안해. 하지만 이제 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물러날 수는 없어.”
“이번만큼은 네가 이해해 줘. 우리도 고민해서 결정을 내린 거니까.”
두 사람의 말에 레빈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진짜 너희들을 어떻게 하냐?”
한참이나 고민하던 레빈이 제온을 바라봤다.
“형!”
“말해!”
“아무래도 이대로 녀석들을 공격대에 보내면 첫날 죽을 거예요. 내가 함께 가야겠어요.”
“레빈!”
“이대로 개죽음당하게 둘 수는 없잖아요. 이제까지 이 녀석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이젠 내가 이 녀석들을 도울 차례예요. 날 말리지 마요.”
레빈의 결연한 표정에 제온이 혀를 차며 말했다.
“말리지는 않겠다.”
“어, 정말요?”
“대신 저 녀석들을 성장시켜 주지.”
“어, 어떻게요?”
“굴리면 돼.”
“설마?”
“그래! 네가 던전에서 굴렀던 것처럼…….”
제온의 말에 레빈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영문을 모르는 애론과 도미닉이 순진한 표정으로 눈을 끔뻑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