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95)
295화
로미나는 빈민가를 빠져나와 네오 서울로 들어왔다.
“아휴! 썩은 내. 코가 다 썩을 것 같네.”
아직도 몸에 빈민가의 썩은 냄새가 배어 있는 것 같았다.
로미나는 옷을 털어 몸에 남아 있는 냄새를 털어 냈다.
빈민가 특유의 퀴퀴한 냄새는 그녀와 같은 예민한 엘프에겐 고문과도 같았다.
그 때문에 로미나는 임무 때문에 빈민가로 오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일라이 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수 없으니까.”
그녀에게 헬브린 용병대와 접촉하라는 명령을 내린 이는 바로 북 구역의 이인자인 일라이였다.
로미나는 북 구역으로 들어가기 전에 로브를 벗어 버렸다. 그러자 몸에 쫙 달라붙은 검은색 슈트가 드러났다.
로미나는 바로 일라이의 거처로 향했다.
일라이의 거처는 북 구역 외진 곳에 있었다.
북 구역의 이인자가 머문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한 거처였다.
일라이는 지금 근신하고 있는 중이었다.
화이트 베어 카라반을 상대로 멋대로 병력을 움직인 벌을 받는 것이다.
처음 근신을 명령받았을 때만 해도 일라이는 머지않아 복귀할 거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시간이 꽤 흘렀어도 세리언은 그녀를 부르지 않았다.
그 때문에 일라이의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었다.
화가 난 일라이에겐 조금의 꼬투리도 잡혀선 안 됐다.
괜히 꼬투리 잡혔다가 화풀이 대상이 되고 만다는 것을 로미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빈민가의 냄새를 완전히 덮어 줄 향수를 뿌린 후 그녀는 일라이의 방문을 두들겼다.
“일라이 님! 저 로미나입니다.”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의자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일라이의 모습이 보였다.
로미나가 그녀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명령을 받고 다녀왔습니다.”
“일은?”
“잘됐습니다. 헬브린 용병대가 노예 백 명을 구해 주기로 했습니다.”
“확실해?”
“예! 확실히 책임지기로 했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저…….”
로미나가 말끝을 흐리자 일라이가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왜?”
“꼭 노예를 구하셔야겠습니까?”
“너도 나를 무시하는 거냐?”
“그게 아니라 걱정돼서…….”
짜악!
그 순간 로미나의 얼굴이 홱 돌아갔다.
일라이가 예고도 없이 그녀의 뺨을 때린 것이다.
순식간에 얼굴이 퉁퉁 부어오르고, 입안이 찢겨 피가 흘러나왔다.
로미나는 터져 나오려는 신음을 꾹꾹 눌러 참았다.
여기서 비명을 지르면 일라이가 더욱 흥분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일라이가 로미나의 턱을 붙잡아 얼굴을 바라봤다.
“지금 너 따위가 나를 걱정하는 거냐?”
“그,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끈 떨어진 연 신세라는 거지?”
“아닙니다.”
“그런데 왜 내 명령에 토를 달아?”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죽을죄는 애초 지지 말아야지. 안 그래?”
“맞습니다.”
로미나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라이가 그녀의 뺨을 두어 번 두들겨 준 후 다시 의자에 앉았다.
“다 필요해서, 다 계산해서 하는 일이야. 너는 그저 내가 명령을 내리면 따르면 돼. 알겠어?”
“명심하겠습니다.”
“그래야지.”
그제야 일라이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어렸다.
일라이는 탁자에 놓인 와인 잔을 들었다.
와인 잔 안에는 피처럼 붉은 와인이 담겨 있었다.
그녀가 와인을 한 모금 마신 후 말했다.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찌그러져 있을 것 같아? 나는 다시 내 자리로 돌아갈 거야. 아니, 보다 높은 곳으로…….”
순간 로미나가 입을 틀어막았다.
비록 이곳에 유배를 당했다지만, 그녀는 아직도 북 구역의 이인자였다.
북 구역에는 그녀를 따르는 무리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 때문에 세리언도 일라이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고, 이곳에 유배만 보낸 것이다.
유배 왔어도 일라이가 이인자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인자보다 높은 자리라면…… 설마 세리언 님을…….’
로미나는 비명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게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일라이가 와인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너도 나를 따라 높은 곳에 오르려면 부지런히 움직여. 어떤 의문도 갖지 말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로미나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완전히 복종하는 듯한 그녀의 모습에 일라이의 붉은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그녀가 창밖을 바라봤다.
창문 너머 저 멀리 북 구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보였다.
북 구역의 지배자인 세리언이 있는 건물이었다.
‘조금만 기다려라, 세리언! 곧 내가 돌아갈 테니까.’
***
클렉시 영감이 제온 앞에 음식을 내놓으며 물었다.
“그래서 못 찾았다고?”
“네!”
“브리엘의 말에 그쪽 거리를 다 뒤지다니, 네놈도 참 어지간하구나.”
“뭐든 확실하게 하고 넘어가는 게 좋으니까요.”
“그렇긴 하지. 그럼 나도 최근에 빈민가에 수인과 드워프가 들어왔는지 알아보지. 아무래도 특이한 조합이니까 정말 들어왔으면 금방 눈에 띌 거야.”
“수인은 겉보기엔 보통 사람과 똑같지 않습니까? 찾아낼 수 있겠습니까?”
수인은 말 그대로 짐승으로 변신할 수 있는 인간을 말한다.
가장 대표적인 이들이 늑대인간인 라이칸슬로프였다.
쿠라얀에서도 극소수였던 종족이었는데, 다른 이종족들과 함께 지구로 넘어왔다.
수인의 특징이 평상시에는 인간과 똑같다는 것이다.
외모상으로는 거의 구별이 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세세한 특징을 파고들면 차이점을 찾을 수 있겠지만, 얼핏 보기엔 거의 다르지 않다.
때문에 겉모습만 보고 수인을 구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도 한번 찾아봐야지.”
“그럼 부탁하죠.”
“부탁할 것도 없어. 브리엘 일이니까 내가 나서는 게 당연하지. 브리엘은 나에게도 남이 아니니까.”
“네!”
제온이 미소 지었다.
아르고스의 눈이 움직인다면 수인과 드워프를 찾는 게 훨씬 쉬울 것이다.
그들의 눈과 귀는 빈민가 전체에 퍼져 있으니까.
‘이로써 한시름 덜었군.’
진짜 브리엘을 납치했던 자들이라면 잡아서 책임을 물으면 되고, 그들이 아니라면 그 또한 나쁘지 않다.
제온은 마음 놓고 젓가락을 들었다.
클렉시 영감이 내준 음식은 고기를 잔뜩 넣은 면 요리였다.
우육면 같았지만, 진짜 소고기가 들어 있을 리 없었다.
고기의 정체를 모르는 것이 차라리 나았다.
후루룩!
제온은 그릇을 든 채 안에 든 면과 고기를 입에 넣었다.
클렉시 영감이 물었다.
“맛이 어때?”
“끝내줍니다.”
제온이 엄지를 치켜올리자 클렉시 영감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제온은 순식간에 면 요리를 모두 해치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먹었습니다. 그만 가 볼게요.”
“종종 놀러 와 말벗이나 해 달라고.”
“그러겠습니다.”
제온은 클렉시 영감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한 후 집으로 향했다.
브리엘 일 때문에 한나절을 그냥 보냈다. 그래도 시간 낭비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차라리 확실하게 확인하고 가는 게 브리엘과 제온에게 나았기 때문이다.
제온은 문득 얼마 전에 마주쳤던 여자를 떠올렸다.
‘엘프가 빈민가엔 왜 온 거지?’
북 구역의 이종족들은 어지간해서는 빈민가에 들어오는 일이 없었다. 빈민가의 더러운 환경을 꺼려 하기 때문이다.
특히 엘프는 깨끗한 환경을 좋아해서 이곳에 발길을 거의 하지 않는다.
‘혹시 그들과 관련 있는 건가?’
하필 같은 시기에 이종족들이 빈민가에 들어왔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제온은 알고 있었다.
아무런 연관도 없어 보이는 일이 때로는 깊은 고리로 이어진다는 것을 말이다.
또한 때로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육감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는 것도.
“흠!”
제온이 잠시 멈춰 서서 고민할 때였다.
“엇?”
갑자기 앞쪽에서 누군가 제온을 보고 놀라 경호성을 내뱉었다.
제온이 앞을 바라보니 프렌치 코트를 입은 엘프가 보였다.
‘오늘따라 엘프를 많이 보게 되는군.’
프렌치 코트를 입은 엘프는 제온도 알고 있는 이였다.
“보……린 님입니까?”
그녀는 바로 북 구역 푸른 낙엽 특작대의 대장인 보린이었다.
보린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제온에게 다가왔다.
“역시 제온…… 님이었군요.”
마음 같아서는 처음 만났던 그대로 반말을 쓰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상대는 그녀가 멸시하는 인간이지만, 강해도 너무 강했다.
추측 불가의 마수인 발록을 홀로 제압한 초강자를 상대로 반말을 찍찍 뱉을 수 있는 배짱이 그녀에겐 없었다.
자연 제온을 대하는 태도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제온 님을 뵙게 될 줄은 몰랐네요.”
“저야말로 보린 님을 만날 줄 몰랐습니다. 이곳엔 무슨 일이십니까?”
“개인적인 용무 때문에 왔습니다.”
보린이 모호하게 대답했다.
세리언의 명령으로 일대를 뒤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힐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온의 반응이 이상했다.
“그런가요? 난 또 아까 그 엘프와 같이 온 건 줄 알았네요.”
“그 엘프? 저 말고 또 엘프를 봤습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보린은 별생각이 없었다.
엘프들이 빈민가를 꺼리긴 해도, 아예 출입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어 들려온 제온의 말이 그녀의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었다.
“거미 여왕이었나요?”
“네?”
“북 구역의 이인자 말입니다. 그녀의 곁에 있던 엘프였습니다.”
“그게 무슨?”
“화이트 베어 카라반을 일라이가 습격했을 때 그녀 곁에 있었던 엘프라 기억합니다.”
순간 보린은 전신의 피가 싸늘히 식는 느낌을 받았다.
“정말입니까?”
“제가 기억력 하나는 쓸 만합니다. 확실합니다.”
“일라이 님의 측근이 빈민가에 왔단 말이죠?”
“네!”
“일라이 님의 측근이 왜 이곳에…….”
보린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화이트 베어 카라반 습격을 주도한 죄로 일라이는 좌천된 상태였다. 말이 좌천이지, 사실은 근신에 가까운 처분이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그녀는 대외적으로 활동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런데 측근을 빈민가로 보냈단 말이지? 왜? 무엇을 노리고?’
보린의 머릿속에 세리언의 명령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세리언의 명령을 받고 네오 서울 인근을 뒤진 지 꽤 오래되었지만, 그 신비한 파장의 근원이 무엇인지 감조차 잡지 못했다.
그 때문에 조금은 지쳐 있던 상태였다.
이렇게 실체 없는 일보다는 명확한 목표가 있는 일이 그녀의 적성에 맞았다.
보린은 제온이 말한 엘프를 조사해 볼 필요성을 느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그 엘프의 이름이나 특징을 알고 계십니까?”
“이름은 모르겠고, 붉은 머리가 기억에 남더군요.”
“적발이라는 거죠?”
“네! 불길이 타는 것처럼 강렬한 붉은 머리였었습니다.”
제온의 대답에 보린의 눈이 빛났다.
일라이의 휘하에 있는 엘프 중 타오르는 듯한 적발을 가진 이는 한 명뿐이었기 때문이다.
‘로미나인가?’
보린도 알고 있는 엘프였다.
그녀와 사이가 좋지 않기에 더욱 잘 기억하고 있었다.
보린이 제온에게 말했다.
“오늘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더 이야기하고 싶지만, 일이 있어서 먼저 가 봐야겠습니다. 다음에 다시 뵙죠.”
“그러죠.”
“그럼…….”
바로 자리를 뜨는 보린의 뒷모습을 보며 제온이 중얼거렸다.
“역시 북 구역에서 무언가 일어나고 있군.”
보린을 만난 것은 우연이었지만, 그녀에게 다른 엘프 이야기를 꺼낸 것은 제온의 의도였다.
이렇게 슬쩍 건드려 놓았으니 분명 어떤 반응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