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298)
298화
당연한 말이었지만, 스캐빈저의 습격을 받은 지하 마을엔 단 한 명의 생존자도 존재하지 않았다.
지하를 뒤지자 시신 열 구가 발견됐다.
하나같이 병든 기색이 역력한 노인들이었다.
제온은 한쪽 무릎을 꿇고 노인들의 시신을 바라봤다.
겉보기엔 칠십이 넘어 보이는 노인들이었다. 하지만 제온은 알고 있었다.
이들의 나이가 오십을 넘기지 않았단 사실을 말이다.
네오 서울처럼 문명의 혜택을 받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실제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
반대로 이렇게 생존만을 위한 지하 마을에 사는 이들은 급속도로 노화해 실제 나이보다 최소 열 살에서 스무 살은 많아 보인다.
한눈에 보기에도 조악해 보이는 마을이었다.
마수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지하에 마을을 만들었지만, 모든 것이 부족했다.
식수, 식량, 어느 것 하나 마음껏 먹을 수 없는 상황에서 최대한 아껴 생활했을 것이다.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한 육체는 세월의 풍파에 쉽게 노화된다. 당연히 면역력도 없어 쉽게 질병에 걸린다.
바로 이들처럼 말이다.
이것이 생존자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현실이었다.
브리엘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들은 왜 네오 서울에 안 온 거야? 빈민가에서 살 수도 있었잖아?”
“정확히는 못 온 거지.”
“못 오다니?”
“너도 알잖아. 사막엔 마수들이 득실거린다는 것을. 평범한 이들이 마수들을 모두 피해서 네오 서울에 온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워.”
각성자에게도 사막을 건너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하물며 평범한 사람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너와 나에게 수백 킬로미터가 별거 아닌 거리지만, 이들에겐 죽음으로 가득한 사로야. 아마 수십 킬로미터도 가기 전에 마수에게 걸려 먹잇감이 되었을 거야.”
“그……렇겠구나.”
―삐이!
브리엘이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눈이 붉게 충혈된 것이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했다.
생존자 마을은 열악했다.
기껏해야 집 서너 개 정도 크기에 직접 만든 조악한 가재도구가 널려 있었다.
중세도 아니고 원시 시대에 가까운 도구들이었다.
환기도 제대로 되지 않고, 불도 들어오지 않는 이곳에 사람들이 모여서 생활했을 것을 떠올리니 절로 눈물이 났다.
그에 비하면 빈민가에 있는 자신의 방은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하아!”
안타까움에 그녀가 눈물을 흘릴 때 제온은 생존자 마을의 벽을 살피고 있었다.
“이건 흥미롭네.”
모래는 응집력이 없다.
당연히 아래를 파면 흘러내리거나 무너지기 마련이었다.
강철 요새처럼 사암으로 이뤄진 곳이 아닌 이상 말이다.
그런데 이곳은 사암 지대가 아니었다.
순수하게 모래로 이뤄진 곳이었다.
당연히 이런 지하 공간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런데 이들은 부드러운 모래 속에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냈다.
제온은 그 비밀이 궁금했다.
텅텅!
벽을 두드리자 모래에서 단단한 울림이 느껴졌다.
겉보기엔 모래가 분명한데, 경화된 것이다. 그래서 마을이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것이다.
“모래를 경화시키는 특별한 비법이 있는 모양이네.”
“그게 왜?”
겨우 감정을 수습한 브리엘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생각해 봐. 네오 서울에 가장 큰 문제가 뭔지?”
“너무 많지 않아?”
“많지!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의 주거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거지. 건물을 올려야 사람들이 들어와 사는데, 건축할 재료가 부족하잖아.”
“아!”
“석재야 기존 마정석 광산에서 채굴한다지만, 턱없이 부족하지. 지을 땅도 부족하긴 하지만, 재료도 없으니 언제부턴가 새로운 건물이 지어지지 않고 있어. 그런데 손쉽게 모래를 경화시켜 건물을 지을 수 있다면?”
“아!”
“네오 서울은 모르겠지만, 빈민가 외곽엔 충분히 집을 지을 수 있지. 그곳엔 남는 게 땅이니까. 그러면 생존자들이 찾아와도 충분히 집을 내줄 수 있지.”
네오 서울에서나 빈민가라고 무시하는 거지, 사막에서 맨몸으로 생존하는 사람들에겐 그마저도 황송할 지경이었다.
일단 빈민가에 있으면 마수의 습격은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네오 서울의 항마력이 보호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땅을 파고 숨어 살지 않아도 됐다.
“아쉽네! 모래를 경화시키는 비밀을 아는 사람이면 네오 서울에서도 크게 대접받을 수 있었을 텐데.”
“이상하지 않아?”
“뭐가?”
갑작스러운 브리엘의 말에 제온이 그녀를 바라봤다.
“마을이라면 당연히 젊은 사람이나 아이도 있어야 하잖아? 그런데 여기 있는 시신들은 다 노인이잖아.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렇네!”
브리엘의 의문에 제온은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을 느꼈다.
스캐빈저들이 습격했으니, 당연히 사람들을 다 죽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캐빈저가 꼭 사람들을 다 죽인다는 법은 없었다.
젊고 어린 사람들이라면 납치해 다른 곳에 팔 수도 있었다.
브리엘이 말했다.
“역시 잡아갔겠지?”
“그랬을 거야.”
“어떡할 거야?”
브리엘이 제온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구해야지.”
“진짜?”
“몰랐다면 모르지만, 사실을 알게 됐는데 그냥 지나칠 수는 없잖아.”
사막에는 사막의 생존 방식이 있다.
네오 서울과 같은 문명 세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잔혹한 생존의 법칙이.
제온은 그 법칙을 부정하지 않는다.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고 생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이 비록 인륜에 어긋날지라도 말이다.
그런 시대였다.
모든 것이 부족한 야만의 시대.
이런 시대에 네오 서울 같은 초고도 문명이 존재한다는 것이 반칙이었다.
하지만 그런 네오 서울조차도 영향력을 넓게 행사할 수 없다.
그만큼 현 지구의 환경은 인류와 생명체에게 적대적이었다.
이런 가혹한 환경에서 모든 사람을 지킬 수는 없었다.
제온이 아무리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말이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그래서 제온도 사막에 널리 흩어져 생존하는 모든 이들을 구한다는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있는 곳에서 벌어진 일까지 무신경하게 지나칠 정도로 감정이 메마르지는 않았다.
제온과 브리엘, 가이아는 일단 밖으로 나왔다.
그사이 세상은 어두워져 있었다.
해가 지고 밤이 찾아온 것이다.
“내일 해가 뜨는 대로 추적하자.”
“바로 안 하고?”
“어두워서 놈들의 흔적을 찾기 힘들어 엉뚱한 곳을 뒤질 수 있어. 차라리 날 밝을 때 추적하는 게 나아.”
“아! 그렇겠네.”
브리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막에선 그 누구도 제온의 추적을 피할 수 없다.
설령 그들이 사막에서 평생을 살아온 스캐빈저라 할지라도 말이다.
제온과 브리엘은 생존자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휴식을 취했다.
평소라면 신이 나서 떠들었을 브리엘이지만, 생존자 마을의 참사에 가슴이 먹먹한지 계속 침묵하고 있었다.
―삐이!
가이아가 그런 브리엘을 위로했다.
브리엘은 말없이 가이아를 꼭 껴안았다.
***
머리엔 터번을 둘러쓰고, 흰색 로브인 데샤다를 입은 남자들이 사막 한가운데 모여 앉아 고기를 뜯고 있었다.
우적! 우적!
손에 기름을 묻히며 게걸스럽게 고기를 뜯는 남자들은 헬브린 용병대였다.
말이 용병대지, 사실은 스캐빈저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사막을 떠돌아다니며 생존자 마을을 습격한다거나, 아니면 누군가의 의뢰를 받아 임무를 수행했다.
헬브린 용병대의 대장은 중앙에 있는 핫심이었다.
핫심은 오십 초반의 사내였다.
아랍계답게 피부가 검었고,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르고 있었다.
눈썹은 송충이처럼 짙고 무성한 데다가 반대로 눈두덩이는 움푹 들어가서 인상이 매우 강렬했다.
핫심이 뼈다귀를 뜯으며 말했다.
“이번에는 영 성과가 좋지 않군. 거지들을 털었어.”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엔 십여 명이 줄에 묶여 쪼그려 앉아 있었다.
이번에 습격한 생존자 마을의 생존자들이었다.
병들고 늙었다면 다 죽였겠지만, 그래도 아직 어리고 쌩쌩해 납치해 온 것이다.
가장 나이가 많은 이가 삼십 대 초반이었고, 가장 어린아이가 일곱 살 정도로 보였다.
그들은 모두 공포에 질려 벌벌 떨고 있었다.
오늘 아침만 해도 평화롭게 지내던 이들이었다.
비록 모든 것이 부족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들끼리 똘똘 뭉쳐 사막에서 살아남았다.
오늘도 그런 날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헬브린 용병대가 습격해 노인들을 죽이고, 그들을 납치했다.
생존자 마을엔 각성자가 두 명 있었다.
마을의 가장 연장자인 노인이 그중 한 명이었고, 또 다른 한 명은 삼십 대 초반의 사내였다.
노인은 무투계 D급 각성자였다.
젊은 시절엔 제법 강했지만, 나이가 들고 병들면서 쇠약해졌다.
마을의 든든한 수호자였던 노인은 핫심의 칼에 무참히 목숨을 잃고 말았다.
잡혀 온 각성자는 마법계 각성자였다.
하지만 마법계 각성자라고 다 전투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니었다.
남자는 F급 연금술사였다.
네오 서울에 있었다면 어떻게든 자신의 능력을 발전시켰을 테지만,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서 그의 능력은 쓸모가 거의 없었다.
재료를 구해야 연금술을 연구해 실력을 높일 텐데, 도통 구할 수가 없어 정체 상태였다.
없는 재료로 기껏 만들어 낸 결과물이 바로 모래 경화제였다.
그가 만든 모래 경화제 덕분에 생존자 마을이 무너지지 않고 버텼던 것이다.
‘그러면 뭐 해? 마을을 지키지 못했는데.’
헬브린 용병대가 쳐들어왔을 때 그는 구석에서 벌벌 떨면서 마을 사람들이 죽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마침내 모든 살육이 끝난 후 그는 생존자들과 함께 이곳에 끌려왔다.
“끅!”
“흐윽!”
같이 잡혀 온 사람들이 흐느껴 울었다.
아무리 울음을 참으려 해도 터져 나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마수와 스캐빈저 들이 두려워 지하에 숨어 살던 사람들이었다. 안전을 위해 인간 이하의 삶을 선택했지만, 결과는 이렇게 비참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비참한 삶이 그들을 기다릴지 몰랐기에 두려움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 핫심이 들고 있던 뼈다귀를 던지며 말했다.
“퉷! 영 질겨서 못 먹겠군.”
“마수 고기가 다 그렇죠.”
곁에 있던 수하가 인상을 쓰며 대답했다.
입에 문 고기가 질겨서 잘 씹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핫심의 시선이 잡혀 온 사람들을 향했다.
인간이 아니라 소 돼지를 보는 눈빛이었다.
“그냥 한 마리 잡을까?”
“흐흐! 그럴까요?”
수하가 타이어처럼 질긴 마수 고기를 억지로 삼키며 대답했다.
질긴 마수 고기보다 야들야들한 인간 고기가 더 맛있는 것은 확실했다.
그들은 이미 인간 고기 맛을 알고 있었다.
핫심의 말에 부하들이 눈을 빛냈다.
부하 중 한 명이 커다란 칼을 꺼내며 일어섰다.
“제가 잡겠습니다.”
그들의 대화에 마을 생존자들이 벌벌 떨 때였다.
삐이이!
갑자기 핫심의 목걸이에서 고주파 음이 터져 나왔다.
핫심이 손을 들어 부하의 행동을 제지했다.
“잠깐 기다려 봐.”
“네!”
부하가 아쉬운 표정으로 칼을 집어넣었다.
핫심이 목걸이에 마나를 주입하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장! 저 에틀리입니다.
목걸이에서 에틀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평범한 목걸이가 아니라 던전에서 발견한 아이템이었다.
무려 수백 킬로미터 밖에서 들어온 통신이었다.
네오 서울에서도 해결하지 못한 통신 장애를 완벽하게 해결해 준 세상 하나뿐인 유니크 아이템이었다.
“그래! 네오 서울에 들어갔던 일은 어떻게 됐지?”
―거미 여왕이 열흘 안에 노예 백 명만 구해 달라고 합니다.
“생존자 마을 씨가 말랐는데 백 명이라고? 그걸 수락한 거냐?”
핫심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그러자 에틀리가 다급히 말했다.
―대가는 충분히 주겠다고…….
“무슨 대가?”
―그게 네오 서울에서 만든 무기를 주겠다고.
“그럼 이야기가 달라지지.”
핫심의 눈동자가 광기로 번들거렸다.
강철 요새가 생존자들을 빨아들이는 통에 그와 같은 스캐빈저들은 요즘 손을 빨고 있었다.
네오 서울에서 사용하는 무기를 얻는다면 눈엣가시 같은 강철 요새를 공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핫심이 통신을 끊으며 부하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노예들을 소중히 다뤄라. 저게 다 무기로 바뀔 테니까.”